민혜경(가수) 남편 이인수 나이(차) 직업 딸 근황
<'불후의 명곡' 가수 민해경 남편 나이(차) 딸 근황>
가수 민해경이 오랫만에 방송에 출연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2020년 12월 19일 KBS2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게 된 것인데요, 앞서 지난 1월에도 민해경은 오랫만에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상당한 관심을 모은 바 있습니다. 당시 민해경은 "나이는 제일 어린데 연차는 제일 높다"며 데뷔 41년차라고 밝혔는데요, 권인하는 데뷔 36년차, 박강성은 31년차라고 해 놀라움을 더했습니다.
이어 민해경은 "섭외 때 제가 노래를 하는지, 전설인지 물었는데 노래하는 거라고 해서 출연했다. 기다리고 있었다. 경연을 떠나 내가 노력했던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자주 안 보이기 때문에 더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네요. 이에 오늘은 가수 민해경 나이 고향 가족 학력 키 혈액형 과거 결혼 남편 딸 등 민해경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모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김원준 프로필 나이 집안 아내(부인) 이은정, 누구? 딸 근황
<목차>
-민해경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종교 학력
-민해경 과거, 데뷔, 활동
-민해경 스캐들, 일본 활동, 복귀 이후
-민해경 결혼 남편 이인수 나이(차) 직업
-민해경 남편 이인수 결혼스토리(러브스토리)
-민해경 남편 이인수 대마사건
-민해경 남편 이인수 결혼생활, 딸 이유빈
-민해경(가수), 민해경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종교 학력
가수 민혜경의 본명은 백미경(아명 백해경)이라고 하구요, 민해경 나이는 1962년 4월 18일생으로 올해 나이 59세입니다. 민해경 고향은 경상북도 대구시 달서구이며, 가족으로는 이복 오빠 2명과 오빠 1명, 언니 민재연과 남동생 1명 여동생 1명, 그리고 남편 이인수와 아들 1명이 있습니다.
이중 언니 민재연(백춘자)은 미쎄스 비비 라는 이름으로 가수로 데뷔한 적이 있는데요, 과거(2009년) MBC 기분 좋은 날에 출연해 친언니 민재연의 데뷔 소식을 공개하기도 했었습니다.
민해경 언니 민재연은 놀라운 노래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과거 아버지 반대로 가수의 꿈을 포기했었다고 합니다. 30년 동안이나 가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다가 2009년 가수로 데뷔를 하게 되었는데요, 현재는 민해경이 언니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민해경 오빠 백강기는 그룹 부활을 탄생시킨 프로듀서라고 합니다.
민해경은 키 161cm에 혈액형은 O형이라고 하구요, 민해경 종교는 개신교이며, 민해경 학력은 서울구로남초등학교, 대방여자중학교,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배우 나영희와는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하네요. 참고로, 활동 당시 민해경의 별명은 왕눈이가 있었는데요, 선배 가수인 하춘화와 닮은꼴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민해경(가수), 민해경 집안 과거
민해경은 16세 어린 나이에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를 무대로 이끈 것은 어려운 가정 환경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민해경 : "무대에 올라간 것이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가수로 데뷔하려고 한 건 아니다. 어릴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세진이라는 가수가 학교선배였다. 내가 학교 안에서 노래 잘하는 아이로 소문났었다.
민해경 : "어느 날 그 선배가 부르더니 가수를 하라고 했다. 돈이 없다고 했더니 돈 벌면서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더라. 학생이라 야간업소를 가면 안 됐지만 교복 입고 야간 업소를 찾아갔다. 학생이라서 안 된다고 했는데 오디션 보고 싶다고 막무가내로 졸랐다. 일단 노래나 해보라고 했는데 노래를 했더니 바로 합격해서 다음날부터 나오라고 했다. 어린 아니가 당당하게 하니깐 감동받았던 것 같다"
당시 국악예술고등학교를 다니던 그에게 가요를 부른다는 것은 단순한 돈벌이에 지나지 않았는데요, 그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은 업주들만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합니다.
민해경은 당시 한 번 무대에 오르면 3만원을 받았는데, 당시 평균 근로자의 월급이 14만원이던 때, A급 가수의 1회 TV 출연료가 2만원, 라디오 출연료는 8천 5백원이었다고 합니다. 5남매와 부모님을 책임져야 했던 그에게는 엄청난 돈이었다고 합니다.
민해경은 당시 무교동 청계천 일대에 있던 극장식 나이트클럽 업소 사이에서 노래 잘하는 아이로 입소문을 타면서 그 일대를 장악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민해경은 그렇게 돈을 벌어 집안의 빚도 갚고 온 가족이 생활도 했다고 합니다.
민해경 : "밤무대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그게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지 모를 거예요. 사람이 싫고, 특히 남자가 너무 싫었어요. 소름끼칠 정도로. 원래도 성격이 차가운 편이었는데 그런 성격이 더 굳어졌죠. 흐트러지면 누군가 저를 해칠 것만 같았어요. 결국에는 제 차가운 성격을 제 자신을 지키려는 방패로 삼은 거죠"
-민해경(가수), 민해경 데뷔 및 활동
그러던 중 민해경은 경기도 인천시 국악경연대회에서 고전무용으로 입상하기도 했는데요, 이듬해인 1980년 민해경은 TBC 동양방송에서 주최한 제 2회 TBC세계가요제 국내예선전에서 '누구의 노래일까'로 참가해 데뷔하게 됩니다.
당시 민해경은 비록 입상은 하지 못했지만 그 해에 앨범을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 곧이어 발표한 서정적인 발라드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 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그 해(1981년) 발표하여 그해 MBC '10대 가수가요제'에서 여자부분신인상을 수상했습니다.
이후 1983년에는 김현준과 듀엣으로 내 인생은 나의 것 이라는 곡을 발표하며 인기스타로 자리매김을 했으며, 그해 제 1회 '미국LA세계가요제'에서 '그대는 나그네' 란 곡으로 그랑프리와 최우수가창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민해경(가수), 민해경 스캐들, 일본 활동, 복귀 이후
하지만 민해경은 1983년에 '요정출입 스캔들'이 터져서 방송출연 금지 조치 등으로 발이 묶이는 바람에 한동안 일본으로 도피하여 일본에서 잠시 활동하다 1986년 초에 귀국하여 활동을 재개, 복귀작에 수록된 사랑은 이제 그만이 당시 가요톱10 1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으며 성공적으로 국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민해경은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 1987년부터는 사랑은 이제 그만의 히트를 시작으로 댄스가수로 전향해, 이후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그대 모습은 장미, 보고 싶은 얼굴 등 다수의 히트곡을 연달아 발표하며,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됩니다.
민해경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골든디스크상 6회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한편으로 1990년 제 10회 ABU국제가요제에서 보고 싶은 얼굴로 한국가수로는 최초로 대상인 최우수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민해경은 1991년 일본의 여배우 미야자와 이에의 누드화보집인 산타페의 발표 이후 유연실과 함께 각각 누드집을 발간하기도 했었는데요, 민해경은 리턴 투 에덴 이라는 영상집으로 등장했는데, 현재는 둘 다 구하기 어렵고 발표 당시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당사자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민해경은 한때 1993년 SBS에도 1편 출연하였고, 이듬해 1994년 뮤지컬 광개토대왕 에서 말갈 공주 역으로 연기하기도 하며 인기를 누렸는데요, 하지만 민해경은 그때까지 꼬박 10년이 넘도록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가족들의 얼굴도 잊을 만큼 바쁘게 살아왔지만 자신의 손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민해경 : "정말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딱 맞아요. 저는 그만큼 활동했으면 제가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까 가진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제가 활동하는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고, 또 소속사는 재투자도 해야 하는 거니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정말 하나도 남은 게 없더라고요. 제 성격이 좀 쿨하거든요. 어? 하나도 없네? 그럼 이제부터 모아야지 했으니까요"
민해경은 서른을 넘긴 나이에 불이 떨어진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럼에도 여전히 가족의 생계가 그의 어깨 위에 있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당시 민해경은 24세 때 미국으로 떠나려고 결심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면 명성도 인기도 버리고 일반인으로 살아야 했고 또 막막하고 자신이 없어 그렇게는 못했다고 하네요. 이후 민해경은 소속사와의 오랜 인연을 뒤로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고 합니다. 나이트클럽, 카바레, 각종 지방 행사까지 불러주는 곳마다 무조건 달려갔다고 합니다.
눈 뜨면 일어나 노래를 했고, 새벽 늦게 집에 돌아왔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으면 발은 통통 부어 있었고 발가락 사이에는 핏물이 고여 있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민해경은 그렇게 돈을 모으게 되었다고 합니다.
민해경은 최근 한 방소에서 "나는 돈 모으는 게 취미다. 저축하는 게. 돈이 없어봤던 시절이 너무 길었으니까. 내가 은행에 다니면서 통장이 하나씩 늘고 또 그 통장에 쌓인 액수가 올라갈 때 진짜 그 기쁨이 너무 컸다는 의미보다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던 것 같다. 왜냐하면 돈이 없었으니까"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민해경은 그렇게 2년 동안 몰아치듯 돈을 벌고 한숨 돌리고 있을 즈음,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인연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바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민해경은 1995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한 이후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민해경(가수), 민해경 결혼 남편 이인수 나이(차) 직업
민해경은 남편인 이인수와 1996년 10월 3일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민해경과 남편 이인수 두 사람 나이차는 민해경은 1962년생인 58세이고, 민혜경 남편 이인수는 1967년생인 53세로 민해경인 남편보다 5살이 연상이라고 합니다.
민해경 남편 직업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날 당시에는 카페 운영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현재는 무역업을 하고 있고 돈도 상당히 잘 번다고 하네요.
-민해경(가수), 민해경 남편 이인수 결혼스토리(러브스토리)
민해경와 남편 이인수의 첫만남은 하나의 해프닝으로 시작이 되었는데요, 당시 민해경의 남편은 집 근처 전통 있는 카페의 주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민해경은 원래 잘 돌아다니지 않아 카페의 존재를 몰랐었다고 하네요.
그러던 어느 날 민해경은 당시 함께 연습중이었던 뮤지컬의 상대 배우와 만나게 되었는데, 집 근처의 그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매니저도 없이 단둘이 만났는데, 어이없게도 그날 따라 둘 다 지갑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고 하네요.
식당이나 카페에서 스스로 돈을 내본 적이 없는 연예인들의 오랜 습관 때문이었다고 하는데요, 둘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계산대에 있던 젊은 직원이 그냥 가세요라며 넉살 좋은 웃음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에 민해경은 속으로 사장도 아니면서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지? 하는 생각에 내일이라고 못을 박아 외상을 걸었다고 합니다.
민해경 : "계산서를 보니 2만 여원이 나왔더라고요.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려는데 돈이 없는 거예요. 같이 간 친구도 돈이 없었어요. 그래서 점원 (지금의 남편)에게 집이 가까우니까 갖다 줄테니 제 전화번호를 적으라고 했죠. 그랬더니 그냥 가라는 거예요. 어이가 없었어요. 속으로 아르바이트생 주제에 웃긴다고 생각하면서 빨리 적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제 전화번호를 적으면서 자기 전화번호를 주더라고요"
그러한 일이 있은 후에 민해경은 한동안 자신이 외상을 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고, 그 점원으로부터도 전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민해경은 그렇게 한참 동안 외상을 잊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저녁 TV를 보다가 번뜩 그 생각이 났다고 하네요.
민해경 : "그렇다고 직접 갈 수는 없고 마침 매니저가 옆에 있어서 외상값 1만 4천원을 갖다 달라고 부탁하고는 그 종업원(남편 이인수)한테 전화를 걸었죠. 미안하다고. 그랬더니 자기가 커피를 사줄테니 놀러 오래요. 또 잊고 살던 어느 날 그냥 심심하기도 하고 커피 사준다는 말도 생각나서 불쑥 찾아갔어요"
민해경은 "커피 한 잔, 아니 진토닉으로 주세요" 라고 했다고 하는게요,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카페에 앉아 열심히 컴퓨터 게임 폭탄 터뜨리기를 했다고 합니다. 민해경은 그 뒤로 자주 그 카페를 찾아갔다고 하네요. 이유는 카페에 흐르는 노래가 좋았고 포근한 분위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종업원을 대할 때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민해경이 독감에 걸린 날, 매니저도 없고 가족도 없이 혼자 집에서 끙끙 앓고 있을 때 불현듯 떠오른 사람이 바로 그 종업원이었다고 합니다. 민해경은 "너무 아픈데, 병원에 데려다줄 수 없겠느냐"고 전화를 걸었고, 종업원은 그 뒤로 일주일을 꼬박 병원 통원 치료에 동행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고도 민해경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가 민해경의 방으로 전화를 걸어와도 받지 않았다고 하네요. 유대전화도 없던 시절, 그의 방 자동응답기에 아침마다 메시지를 남겼다고 합니다.
민해경 : "제가 없을 때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지만 전화가 오는 소리를 듣고도 받지 않았어요. 참 못됐죠? 그러다가 어느 날 그가 제가 실례를 범한 것 같다며 다시는 전화하지 않겠다고 하는 소리에 얼른 수화기를 들었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금 들어왔는데 지금 놀러 가겠다고 했죠"
집 앞 카페에서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그 짧은 길에서 민해경은 "저런 남자와 결혼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의 유쾌한 성격에 자신의 차가운 성격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민해경 : "나중에 알고 보니 카페는 큰형에게 물려받아 본인이 운영하고 있던 거였어요. 스무 살 중반부터 개인 사업도 하던 터라 생활력이 엄청 강했죠. 그 뒤 10개월 만에 결혼했으니,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어요. 거의 매일 만났죠"
민해경 : "그래도 데이트는 꿈도 못 꿨어요. 한번은 큰맘 먹고 영화관에 갔는데 추운 날 멋을 낸다고 하얀 밍크코트를 입었죠. 누가 봐도 내가 민해경이다 했을걸요? 그 뒤로는 영화관도 못 갔네요"
결국 민해경은 남편 이인수에게 먼저 프러포즈를 하고,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민해경 : "결혼 전 이런 사람이라면 결혼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프러포즈 했다. 갑자기 결혼 하자고 하니 남편이 놀라더라. 지금도 우리는 결혼한 게 아니라 연애 중인 것 같다"
-민해경(가수), 민해경 남편 이인수 대마사건
그런데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남편 이인수가 대마법 위반으로 구속이 된 것이었습니다. 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민해경의 가족들마저 이 결혼을 반대하고 나섰다고 합니다. 대마를 피우는 약쟁이에게 민해경을 시집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민해경은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미 뱃속에 6개월된 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임신된 상태에서 결혼식을 취소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거기다가 민해경은 남편의 대마 구속에 대하여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는데요, 이유는 유명 연예인인 자신만 아니라면 남편 이인수가 연일 신문지상에 이름이 오르내릴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언론의 과잉 취재에 지친 민해경이 결혼식장을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없는 서울 용산 미 8군 영내 드래곤 힐 호텔로 잡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다행히 남편 이인수는 잠깐 구속됐다가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되었는데요, 이유는 대마관리법 관련 전과가 없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해 관대한 처분을 내린 것이라고 하네요.
결국 민해경 남편 이인수는 결혼 직전 극적으로 풀려나서 결혼식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식을 반대했던 민해경의 가족은 한명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딸을 대마범죄인에게 내줄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인데요, 물론 나중에는 화해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민해경(가수), 민해경 남편 이인수 결혼생활
민해경은 36살에 5살 연하의 남자와 결혼에 성공한 후 과감히 자신의 활동을 접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워낙 차갑고 강한 이미지여서 주변에는 수군거리는 말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남편이 힘들겠다, 일주일도 못 갈 거다"며 두고 보겠다는 말은 그나마 애교였고, 아예 벌써 이혼하고 미국에 갔다더라는 말도 나돌았다고 합니다.
민해경 : "제가 남편을 휘어잡고 살 것 같죠? 절대 아니에요. 제가 센 거 같으면서도 은근히 여린 면이 있거든요. 우리 남편은 털털하게 넘어갈 것 같으면서도 딱 잡아주는 뭔가가 있고요. 제가 가끔 화를 내거나 하면 아 내가 당신 덕에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오 하면서 저를 웃게 만들죠.
민해경 : "그런 남편의 유쾌함도 본인이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 또한 남편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먼저 남편을 존중할 때 남편도 저를 존중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게 없으면 행복할 수 없을 거에요"
민해경은 또 "하지만 남편도 기가 쎈 편이다. 서로 임자를 만난 것 같다. 남편이 머리가 좋아서 날 잘 파악한다. 가끔 져주기도 하고, 잘못한 점은 며칠 뒤에 자상하게 설명해준다. 지혜로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민해경은 임신과 함께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는 3년 만에 앨범을 내는 등 느린 스타카토처럼 가수 활동을 이어갔고 때로는 미사리 무대에도 서고, 지방 행사도 찾았다고 합니다. 프로젝트 그룹에 참여하기도 했고, 2002년에 앨범을 내기도 했지만 민해경은 예전처럼 화려한 조명을 받는 것보다는 오히려 집에 있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민해경 : "결혼하면서 모든 일을 그만둔 것은 조용히 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에요. 가족이 생기면 제가 충실해야 할 곳은 여기라고 생각했죠. 제가 살림하는 걸 아주 좋아하거든요. 새벽에 일어나 아침상 차리고, 또 더러운 꼴을 못 봐서 정리를 깨끗하게 해야 하거든요. 그러고는 운동하고 요리하는 생활 패턴을 좋아해요"
민해경은 결혼 초 유난히 꼼꼼한 성격 탓에 가족의 빨래 하나도 남의 손에 맡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신혼여행 중에도 욕실에 들어가 아주 열심히 빨래를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네요.
-민해경(가수), 민해경 딸 이유빈
민해경은 남편과 결혼 후 1997년 딸 낳게 되었는데요, 민해경 딸은 올해 나이가 24살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국에 있지만 과거 홀로 유학을 떠났던 딸이 하루는 울면서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수업 중에 자신의 프로필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엄마에게 매를 맞았다는 말을 꺼냈다가 교실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고 하네요.
민해경 : "딸이 아빠한테 다 맞고 사는 줄 알았는데, 나만 맞고 살았다며 펑펑 울더라고요. 남편이 아이들 달래주기에 오히려 아이한테 혼나고 싶냐고 그랬죠. 아빠는 은근히 감싸주니까 저는 엄하게 해야죠. 외동딸이니까 오히려 애지중지하지 않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제가 강하게 자랐으니까 은영중에 아이에게 내 삶의 과정이 반영되는 것 같기도 해요"
민해경 원래 딸에 대한 사진 등은 공개하지 않았는데요, 이후 인생다큐 마이웨이라는 방송을 통해 딸의 얼굴을 공개했습니다. 민해경의 딸이 엄마의 컴백에 큰 힘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민해경은 남편을 잘 만났기 때문에 음악을 다시 할 수 있었다는 말과 노래를 부르는 기쁨을 알게 됐다는 말을 했습니다.
민해경 : "이제 노래가 예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저에게 기쁨을 주는 것 같아요. 일단 돈을 벌려고 악착같이 해야 하는 게 아니라서 좋고요. 제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 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무엇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그 어떤 부담감도 없이 편안하게 노래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민해경 활동 근황
민해경은 결혼 후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다가 이후 성인가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출연하면서 방송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던 중 2011년에 이치현, 강인원, 권인하와 함께 프로젝트 보컬 음악 그룹 컬러스를 결성하기도 했고, 지난 2013년에 11년만에 새 정규앨범 밸런스를 내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 2017년 싱글 위 러브 유를 발표하여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민해경은 또한 지난 1월에는 불후의 명곡, 그리고 2월에는 열린음악회에 출연하기도 했고, 또 3월에는 인생다큐 마이웨이, 그리고 지난 12월 12일에는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오빠시대에 출연하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더욱 활발한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 이윤미 <프로필 나이 남편 주영훈 딸 수입 재산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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