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관련 정보와 상식/정치 사회 경제

나루히토 일왕 깊은 반성의 뜻 표현, 일왕 가계도

728x90

나루히토 일왕 깊은 반성의 뜻 표현, 일왕 가계도

 

 

< 나루히토 일왕 깊은 반성의 뜻 표현 >

 

-나루히토 일왕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깊은 반성의 뜻 표현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수차례 반성의 뜻을 표해온 평화주의자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2019년 4월 30일 퇴위함으로써 30년 3개월에 걸친 '헤이세이(平成·일본의 현 연호)' 시대가 막을 내린 후에,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지난 5월 즉위 후 처음 맞은 종전일일 15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을 한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전후(戰後)세대 일왕의 첫 종전기념 추도발언에는 “깊은 반성 위에 서서”라는 표현이 담겼는데요, 전쟁세대였던 부친의 “깊은 반성과 함께”라는 표현과는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전범국인 일본에게는 오늘이 태평양전장 종전 (패전) 74주년 기념일이었는데, 1960년생 전후세대인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도쿄 닛폰부도칸에서 열린 기념행사인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종전 이후 74년간 여러 사람의 부단한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나라(일본)의 평화와 번영이 구축됐지만 많은 고난에 빠졌던 국민의 행보를 생각할 때 정말로 감개무량하다.

 

 

 

-나루히토 일왕 아베총리 입장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행보

전후 오랫동안 이어온 평화로운 세월을 생각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深い反省)을 한다.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간절히 원한다”고 밝히면서 아베 총리와는 확실히 다른 행보를 보였습니다.

 

 

아키히토 전 일왕은 2015년 추도식 때부터 ‘깊은 반성’이란 표현을 사용해 왔으며 당시 아베 총리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어서 일본 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요,

 

 

 

 

이번에도 새 일왕의 ‘깊은 반성’과 달리 아베 신조 총리는 반성이나 가해국의 책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요, 그는 기념사에서 “이전 (2차 세계) 대전에서 300만여명의 동포가 목숨을 잃었다”고 일본이 피해자라는 점만 강조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이후 역대 총리는 기념사에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가해 책임을 언급하며 ‘깊은 반성’이나 ‘애도의 뜻’을 나타냈지만 아베 총리는 제2차 정부 출범 후 7년 연속 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고 하는데요,

 

아베 신조 총리는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에 7년 연속으로 공물을 보냈으며, ‘포스트 아베’로 각광받는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 의원 등 국회의원 수십여명은 직접 참배를 갔다고 합니다.

 

 

 


또한 아베 총리는 이날 추도식에서 일본의 가해 책임에 대해서 일절 언급하지 않았는데 아베 총리는 “이전 대전(2차대전)에서 300만여명의 동포가 목숨을 잃었다”면서 “무참히 희생된 분들”이라고만 언급했고,

 

이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은 전몰자 여러분의 존귀한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서 “다시 한번 충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고만 말하고 전쟁 희생자인 이웃국가나 전쟁에대한 사죄 반성은 없었다고 합니다.


아베 총리가 추모한 300만여명은 군인·군무원 등 220만여명과 미군의 공습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 등으로 숨진 민간인 등 약 80만여명입니다.

 

이 행사의 기념사로 확연이 다른 입장인 일본 총리와 일왕 사이의 간극이 확인되었으며 일왕 즉위전에 아베 총리를 위시한 극우파 정치인들이 나루히토 당시 왕세자가 아닌 나루히토의 동생이었던 우파인 후미히토를 옹립하려했다는 일각의 주장에도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나루히토는 왕세자 시절에도 한국과의 교류를 위해 힘쓰는 등 평화주의자다운 모습을 이미 보인바 있습니다.

 

 

-아키히토 전 일왕

한편, 아키히토 전 일왕은 일왕을 '상징'으로 규정한 현행 일본 헌법상 즉위한 첫 왕이라고 합니다. 일왕은 1889년 공포된 대일본제국 헌법(메이지헌법) 하에서는 국가원수로서 통치권이 있는 절대군주였지만, 2차 대전 패전 후 성립된 평화헌법을 통해 정치적 실권 없이 권위만을 갖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키히토는 재위 중 재해지를 방문하고 전몰자를 위령하는 등의 활동에 힘을 쏟으며 일본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서 큰 인기를 누렸는데요, 기자회견 등에서는 평화에 대한 의지를 자주 피력했다고 합니다.

 

지난 2001년 생일 기자회견에서는 "역사책 '속일본기'에 간무일왕( 桓武·737~806년)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라고 쓰여 있어 한국과의 연을 느낀다"며 한국과의 인연을 강조해, 일본 우익의 반발을 사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아키히토 전 일왕은 재위기간 중 한국 방문도 물밑에서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고 하는데요, 다만 2017년 9월에는 일본 내 고구려 왕족을 모시는 고마(高麗)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또한 아베 신조 총리와는 달리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에는 재임 기간 중 단 한차례도 참배하지 않아 일본 우익 세력의 반발을 샀다고 하네요.

 


< 나루히토 일왕 프로필 약력 >

 

-출생 : 1960년 2월 23일, 일본

-학력 : 가쿠슈인 대학교 대학원, 옥스퍼드 대학교 석사, ~1982 가쿠슈인 대학교 사학 학사

-경력 :2019 제126대 일본 일왕, 유엔 물과 위생자문위원회 명예총재

 

 

< 일왕 가계도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