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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신 <나이 키 부인(아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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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신 나이 키 부인(아내) 아들<뭉쳐야 찬다(뭉찬)>



<뭉쳐야 찬다 윤경신 선수>



핸드볼계의 전무후무한 레전드 윤경신이 뭉쳐야 찬다에 합류한다고 합니다. 



10월 11일 방송되는 JTBC뭉쳐야 찬다에서는 핸드볼 전 국가대표 선수 윤경신이 용병으로 등장하는데요, 골키퍼에 최적화된 피지컬을 뽐내며 수문장 자리를 노린다고 해 흥미진진한 골키퍼 대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신의 신이라 불리는 핸드볼 전설 윤경신은 올림픽에 5회 출전하며 20년 동안 국가대표로 뛴 인물로, 동양인 최초로 핸드볼 종주국인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것은 물론 독일 핸드볼 역사상 최다득점자로 기록돼 있으며, 통산 7차례 득점왕을 거머쥔 살아있는 전설입니다. 



키 203cm 역대 최장신 용병 윤경신 등장에 술렁이던 전설들은 그가 골키퍼 포지션에 관심 있다고 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요, 이어 "김동현을 위협하고 싶다"며 도발하자 김동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답니다. 


윤경신은 신장은 물론 손 크기와 팔 길이까지 범접할 수 없는 완벽한 체격 조건을 보였는데요, 그중에서도 공을 한 번 던지면 50m 가까이 날려버리는 파워와 정확성으로 모두를 경악케 했습니다. 


특히 하프라인을 훌쩍 넘기는 롱 패스에 감독 안정환은 이를 활용할 새로운 전술까지 구상했는데요, 전설들이 김동현이 발로 찬 공보다 윤경신이 손으로 던진 공이 더 멀리 나가면 골키퍼를 교체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상황을 몰자, 김동현은 "그렇다면 골키퍼를 포기하겠다"며 초강수를 둬 역대급 골키퍼 전쟁이 예고되고 있는데요,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지네요~~^^



<윤경신 프로필 나이 키 몸무게 고향 학력 경력>



-윤경신(핸드볼선수), 윤경신 프로필 나이 키 몸무게 고향 학력 


윤경신은 1973년 7월 7일생으로 올해 나이 48세입니다. 윤경신은 키 202cm에 몸무게 95kg이라고 하구요, 윤경신 고향은 서울시이며, 윤경진 학력은 숭덕초등학교, 광운중학교, 고려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윤경신의 가족으로는 부모님과 누나와 남동생, 그리고 부인(아내) 권순균과 아들 윤재준이 있는데요, 윤경신의 막내 동생 윤경민도 같은 핸드볼선수라고 합니다. 윤경신 가족은 특이하게도 가족 모두가 키가 굉장히 크다고 하는데요, 



윤경신의 아버지는 181cm, 어머니는 170cm, 누나는 174cm, 남동생은 194cm라고 하네요.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윤경신의 가족을 보면 흠칫 놀랄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윤경신이 가장 크다고 합니다. 


윤경신은 중학교 때부터 키가 빠르게 크기 시작했는데 2학년 땐 3주 만에 11cm가 자라 거인병을 의심했을 정도라고 하네요. 윤경신은 다시 태어난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90cm만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윤경신은 '큰 키의 장점이요? 별로 없어요. 공기가 맑나? 오히려 단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불편하고 맞는 옷을 찾는 것도 쉽지 않고, 또 사람들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기도 하죠. 그래서 어릴 땐 큰 키가 콤플렉스였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핸드볼 선수인 윤경신에게 큰 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장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203cm 장신이 꽂아 내리는 시속 120km의 속사포를 막아낼 사람은 없었다고 하네요. 


-윤경신(핸드볼선수), 윤경신 현역 시절 선수경력


윤경신은 대한민국 핸드볼 선수로, 대한민국 구기종목  운동선수 중에서 역사상 올타임 넘버원을 뽑으라면 당당히 뽑힐 수 있을 정도로 해외 무대에서 활약이 가장 뛰어났던 선수인데요,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득점왕, 1995년 세계선수권대회 득점왕을 수상하며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 3대 스포츠가 축구, 야구, 농구라면 유럽에선 핸드볼이 그 중 하나인데요, 특히 독일의 핸드볼 분데스리가는 전 세계 핸드볼 리그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곳입니다. 1부 리그 18구단, 2부 리그 20구단 등 남녀 1, 2부를 통틀어 60여 개가 넘는 팀과 시합할 때마다 경기장을 꽉 채우는 수천, 수만 명의 팬들이 그 인기를 증명해 준답니다. 



윤경신은 1995년 핸드볼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인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는데요,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했습니다. 윤경신은 당시 VfL굼머스바르에 들어갔는데요, 그가 들어간 굼머스바흐 핸드볼팀은 1부 리그에 겨우 발을 걸치고 있던 최하위 팀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윤경신은 '성적이 좋다, 전통 있는 팀이다 해서 들어갔죠. 근데 가서 보니까 성적이 밑바닥이더라고요. 그 당시 16구단 중에서 13-14위를 다투고 있었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2부 리그로 강등당할 뻔했던 굼머스바흐를 살려낸 주인공이 바로 윤경신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지능적인 플레이와 파워풀한 공격을 앞세워 굼머스바흐를 3위의 막강 팀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윤경신은 첫 시즌이던 1996-1997 시즌부터 2001-2002시즌까지 연속 여섯 시즌 득점왕, 다시 2003-2004시즌과 2006-2007시즌 득점왕에 오르며 역대 분데스리가 최다 골을 기록했습니다. 그 중 2000-2001시즌엔 324골로 분데스리가 역대 유일한 300골 이상의 기록을 달성했다고 하네요. 


재미있는 점은 윤경신이 2002-2003시즌 득점왕을 놓친 이유가 유럽 선수들이 동양인에게 계속 득점왕을 내주는 게 자존심 상해서 한 선수에게 7m드로우를 몰아줘 득점왕 자리를 빼앗았다는 것입니다. 윤경신은 당시를 회상하며 처음 독일에 갔을 때 텃세성 파울이 많아 힘들었다고 하는데요, 또 유일한 동양인이다 보니 인종차별도 있었다고 합니다. 



윤경신은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는다, 마늘 냄새가 난다. 이런 말을 들었어요. 그 고정관념을 깨주기 위해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셨죠.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마늘이 들어간 불고기랑 잡채를 해주셨거든요. 애들이 밥을 다 먹으면 제 역할은 술 게임을 알려주는 거였어요. 독일엔 술 게임 문화가 없다보니 369나 007빵 같은 걸 가르쳐주면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렇게 술 게임을 하면서 서로 친해졌던 것 같아요"라고 했습니다. 



2006년 시즌이 끝나고 윤경신은 함부르크 SV로 이적했습니다. 그는 굼머스바흐를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굼머스바르의 구단주가 바뀌면서 그의 연봉을 삭감하는 등 부당한 대우가 많았다고 하네요. 


윤경신은 "이적할 땐 배신감을 느껴서 번호도 7번에서 77번으로 바꿨어요. 그 당시엔 21번 아래 번호 선수가 주축을 이뤘는데 제가 높은 숫자로 바꾼 이후엔 다들 저를 따라 하더라고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윤경신은 2008년 그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독일에서 가진 마지막 경기에서 공교롭게도 함부르크와 굼머스바흐 두 팀이 맞붙었다고 하는데요, 걱정과는 달리 굼머스바흐 팬들도 그의 마지막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모였다고 합니다. 


윤경신은 "그때 함부르크가 두 골 차로 이겼어요. 굼머스바흐를 상대로 제가여덟 골인가 넣었죠. 유럽 사람들이 굉장히 다혈질이라 이 사태를 어떻하나 했는데 다행히도 굼머스바흐 팬들이 마지막이라고 예우를 많이 해준 것 같아요. 끝날 때 박수도 쳐주고 북도 쳐주고, 특히 대형 유니폼을 만들어서 작별인사해주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당시 독일에서 윤경신의 인기는 한국은 몰라도 윤경신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 그를 검색하면 아직도 핸드볼의 신, 득점기계, 구기종목의 전설이라는 연관검색어들이 뜬다고 하네요. 



윤경신은 2007 시즌이 끝나고 2008년 7월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와 2011년 6월까지 실업팀인 두산 핸드볼선수단에서 활동했으며 2008년 두산 베어스 야구단 시구를 맡기도 했습니다. 


윤경신은 2006년 함부르크 SV로 이적할 때까지 여섯 번, 함부르크 SV에선 2007년에 한 번으로 총 7번 득점왕을 차지했는데요, 분데스리가 통산 득점은 2908골로 독일 핸드복 분데스리가 최다 득점왕, 통산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입니다. 



참고로 득점 2위 선수는 2460고르 3위는 2236골입니다. 그리고 윤경신은 유럽 핸드복 챔피언스 리그에서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에 득점왕을 차지했고,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세 대회 연속으로 득점왕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윤경신은 2001년에는 세계 핸드볼 협회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윤경신은 리그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는데요, 1970-1980년대 최강으로 군림했던 굼머스바르였지만 1990년대 들어 THW킬(Kiel)이 거의 내뫼 우승하다시피하며 콩라인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윤경신은 굳이 축구에서 비슷한 업적을 올린 선수를 찾자면 게르트 뮐러가 적당한데요, 뮐러는 분데스리가 득점왕 7회에 챔피언스 리그 득점왕 4회, 월드컵 득점왕 1회 및 발롱고르 수상 1회라는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윤경신이 소속 팀과 소속 국가가 더 약했다는 점입니다. 



윤경신은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한 덕택에 현지인도 따기 어렵다는 독일 운전면허를 취득했고 굼머스바흐 5년차에는 주장까지 맡게 되었는데요, 함부르크 SV를 떠나 대한민국으로 복귀할 때는 함부르크 팬들이 윤경신을 꼭 잡아야 한다고 집회를 열었으며 상당한 아쉬움을 보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윤경신은 2011년 6월 두산과 계약이 만료된 후 계약 조건에 이견을 보여 재계약하지 않았고, 2012 런던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할 때까지 올림픽 국가대표의 플레잉 코치로 일했습니다. 



윤경신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하여,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단의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는 기수를 맡기도 했는데요ㅡ 아마도 세계적으로 명성이 가장 높은 한국의 운동선수인데다 올림픽 출전 경력도 길어서 기수를 맡았다고 합니다. 



-윤경신(핸드볼선수), 윤경신 은퇴 이후 경력


윤경신은 선수 겸 플레잉 코치로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전패를 당해 아쉬움 속에 은퇴하게 되었는데요, 올림픽 이후 2012년 9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2013년부터 이상섭 감독의 후임으로 두산 핸드볼 팀의 감독을 맡아 그해 첫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윤경신은 2015년 2월 6일 핸드볼 국가대표팀 감독에 공식적으로 선임되어 두산 핸드볼팀 감독직과 겸임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윤경신은 대한민국 남자 핸드볼이 리우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실패하고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6위에 그치자, 2016년 2월에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사임하게 되었답니다. 



그럼에도 윤경신은 "나라가 부르면 가야 한다. 대한민국 핸드볼에 힘이 될 수 있다면 국제위원 등 행정 분야를 맡겨도 피하지 않겠다"고 언급했습니다. 실제로 국대 감독을 맡을 때 대표팀 선수들이 체육관에 도착하면 국민의례부터 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 


-윤경신 결혼 부인(아내) 권순균 나이(차) 직업 결혼스토리


윤경신은 부인(아내) 권순균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를 1년 앞두고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고 하는데요, 윤경신 부인(아내) 권순균은 22살 때 당시 선수촌 안에 있는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윤경신은 당시 매일 커피숍을 찾아갔다고 하느데요,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맥주를 마시고 싶어 카페 사장님께 대학생이라 돈이 없는데 맥주를 사주시면 안되느냐 물었고 사장님이 사주시는 중 아내가 윤경신과 동갑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윤경신은 선수촌에서 농구선수들은 아는데 핸드볼은 모른다고 해서 더욱 오기가 생겼고 몇 번 만나면서 진심으로 좋아해서 사귀고 싶다고 바로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윤경신이 키도 너무 크고 핸드볼이 비젼이 없어 부담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윤경신을 믿고 허락을 했다고 하는데요, 윤경신 부인(아내)는 윤경신이 멋은 없지만 순수한 마음이 좋았다고 합니다. 



윤경신이 독일에 가기 전 부인(아내)을 집으로 초대했고 프러포즈에 성공하며 결혼 후 독일도 함께 건너가게 되었다고 하네요. 윤경신의 부인(아내) 권순균은 결혼 전 패션업계에서 일을 했다고 하는데요, 고 앙드레김과도 친분이 있어 윤경신의 옷 협찬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혼과 함께 그만두었다고 하네요. 


윤경신 부인(아내) 권순균은 독일에서 일을 안하고 아이만 키우며 외로움을 느껴 힘들어 했지만 다시 한국에 온 뒤 언니와 패션 관련 일을 하면서 지낸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윤경신 부인(아내)와 자녀의 사진이나 다양한 정보들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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