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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우<나이 집안 부인(아내) 아들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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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우<나이 집안 아버지 부인(아내) 이혼 아들 근황>



<사랑의 콜센터 조관우>



가수 조관우가 10월 15일 방송되는 사랑의 콜센터에 출연한다고 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예능 출연이라 더욱 반가운데요, 이날 방송에서는 TOP6 임영웅, 영탁, 이찬원ㅡ 장민호, 김희재가 가수 조관우를 비롯해 임태경, 김태우, 테이, 나윤권, 신용재와 초유의 대결을 펼친다고 합니다. 



어떤 무대가 꾸며질지 기대가 되는 가운데 조관우의 근황에 대해서도 상당히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앞서 조관우는 지난해 휴먼다큐 사람의 좋다에 출연해 근황을 알린 바 있습니다. 



당시 방송(사람이 좋다)에서 조관우는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사업실패와 현재 큰 아들 월세집에 함께 살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사정을 밝혀 많은 분들의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었는데요, 당시까지만 해도 아직 약 2억 원 정도의 빚이 남아 있고 다 갚으려면 약 1-2년 정도 더 걸린다고 했었지만 이제 시간이 흐른 만큼 어느 정도 정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또한 조관우의 집안은 국악인 집안으로도 유명한데요, 지난 2015년 유자식 상팔자에서는 조관우 부자 3대(조관우 아버지 조통달, 조관우, 조관우 앋르 조현)가 합주를 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방송 정말 기대가 되는데요, 좋은 무대 기대하면서 여기서는 조관우의 나이 집안 과거 그리고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아들과 사업실패과 근황 등 가수 조관우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모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관우 프로필 본명 나이 가족 키 몸무게 혈액형 학력 소속사 집안 과거 데뷔 활동 음반 노래 배우활동, 정치성향, 결혼 부인(아내) 장연우 이혼 아들 재혼(결혼) 부인(아내) 이혼 아들 근황>



-조관우(가수), 조관우 프로필 본명 나이 가족 키 몸무게 혈액형 학력 소속사


조관우의 본명은 조광호라고 하구요, 조관우 나이는 1965년 8월 3일생으로 올해 나이 56세입니다. 조관우는 1남 2녀 중 셋째로, 현재 가족으로는 아들 조휘, 조현, 조환, 딸 조하은이 있고, 아버지 조통달과 이모할머니 박초월이 있습니다. 




조관우는 키 172cm에 몸무게 69kg 혈액형은 A형이라고 하구요, 조관우 학력은 국악예술학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시스템 미술학과를 중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소속사는 송노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고 합니다. 


-조관우(가수), 조관우 집안 과거


조관우는 1965년 판소리의 대가인 조통달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조통달의 집안은 예로부터 국안만을 해온 집안으로 조관우 아버지 조통달은 지난 1950년에 월북한 국악 판소리 창극 작사가 조상선이 대한민국 서울 본토에 남긴 차남이었고,  



이외에도 조관우의 이모할머니이자 최초의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예능보유자 중 한 명인 박초월 또한 그 가계의 유명한 국악인이라고합니다. 그런데 원래 박초월은 조관우의 이모 할머니인데 조통달을 양자로 삼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조관우가 박초월의 손자가 되게 됩니다. 



이러한 가계의 영향인지 조관우 역시도 어렸을 적부터 판소리, 창 그리고 가야금에 재주를 보여 국악예술고등학교에서 가야금을 전공했다고 하는데요, 조관우는 원래 중학교 때 연극부에 들어 큰 상도 탔지만 당시에는 연기를 잘해서 갈 수 있는 고등학교가 한 군데도 없었다고 하네요. 



이에 조관우는 절망하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아버지가 가야금을 가르쳐줘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인 1982년에 가야금 연주자로 첫 데뷔한 그였는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아버지 조통달은 아들이 국악을 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조통달은 국악을 하는 아들에게 크게 화를 내고 국악기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여 결국 국악은 접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관우가 재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등만 알아주는 세계이기에 말렸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사실 조관우는 오히려 재능에 있어서는 가야금 3년 커리클럼을 일주일 만에 뗐을 정도로 천재적이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조관우는 나중에 승승장구에서도 가야금을 연주한 적이 있고, 또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에 출연했을 때도 직접 가야금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조관우는 어린시절 유달리 엄한 아버지의 교육방식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때와 중학교 때 가출을 감행한 적이 있었고, 부모님 이혼 후에 할머니 손에 키워져 할머니가 어린 조관우를 데리고 연탄불을 피워서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결국 조관우는 아버지의 반대로 국악을 포기하기로 하고 이후 1989년에서 1990년까지 잠시 케빈조라는 이름으로 캘리포니아 주립대 미술전공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는데요, 조관우는 이때 완전히 미국 디스코 펑크 밴드들의 음악에 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이 시기에 조관우는 비 지스와 같은 가성 창법을 이용하는 록밴드나 흑인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여기에 감명받은 조관우는 자신만의 가성 창법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조관우는 조관우라는 예명으로 가수 데뷔하기 전 1992년에 본명 조광호로 1집을 낸 전력이 있다고 하는데요, 당시 이후 첫 번째 부인(아내)이 되었던 장복신(장연우)이 이 앨범에 작사가로 대부분의 곡을 써주었다고 합니다. 


-조관우(가수), 조관우 데뷔 활동 앨범 노래


조관우가 처음 가족에게 가수가 되겠다 라고 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나와 같은 길 가는 것은 결단코 반대"라며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수가 되고 싶었던 조관우는 결국 새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1994년에 가수로 데뷔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조광조는 1994년 1집 앨범 '마이 퍼스트 스토리' 가 130만 장의 판매 기록을 올리며 가요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하게 되었는데요, 당시로서는 남성이 내는 고음의 가성이 매우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데뷔하자마자 명성과 비난을 동시에 얻게 되었습니다. 



조관우는 데뷔 초 얼굴 없는 가수로 컨셉을 잡고 활동했는데요, 소속사에서 기획한 하나의 전략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음반이 불티나게 팔려나가자 TV 출연을 해달라는 방송국과 소속사의 요청에 결국 수락했고 단 한 번 출연한 방송 직후 음반 판매량이 급락했다고 합니다. 



이 음반에 실린 늪이라는 곡은 이후 조관우의 대표곡으로 꼽히게 되며 많은 후배 가수들에게 의해 리메이크되었는데요, 이 곡은 유부녀를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곡이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1년 조관우가 엠넷의 MIC라는 프로에 출연해 밝히길 자위 행위를 묘사한 곡이었다고 합니다. 그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종교계 등에서 큰 지탄을 받기도 했으며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되기까지 했습니다.

 

1집의 인기에 힘입어 조관우는 2집은 리메이크 앨범인 메모리 를 발표했는데요, 이 앨범은 비공식 추산 320만장, 공식 214만 장 가량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공식적으로는 3번째 비공식적으로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며 1집 이상의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1집 이상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리메이크곡 꽃밭에서 는 늪 과 함께 조관우를 대표하는 곡으로 손꼽히는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또한 2집에 수록된 오리지널 곡 겨울이야기는 CF 음악으로 삽입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관우는 이러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제작사와의 불리한 계약으로 인해 본인은 지하 전셋방에 살며 막걸리로 끼니를 때우는 등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이에 조관우는 소속사를 옮겼고, 1996년 3집 마이 써드 스토리 어바웃을 발매하면서 정산을 제대로 받았다고 합니다. 


조관우는 이후 3집도 100만 장이 넘는 히트를 치지만 4집부터 깊은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는데요, 특히 대중적인 노출을 꺼리는 그의 특성을 언론에서 선정적으로 비틀어서 추측성 기사 및 루머를 양산했고, 



전 소속사와의 갈등의 골도 깊어졌으며 음악적으로도 매너리즘에 빠져 음반 판매량에서는 100만 장으로 선방했지만 여러모로 다소 아쉬운 성과를 올렸다고 합니다. 


5집 타이틀곡 실락원은 가사가 자살을 미화한다고 하여 방송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으며 그 결과 5집은 35만 장을 조금 웃도는 판매고를 올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6집부터 다시 심기일전하여 좋은 편을 받게 되었고, 이후 2002년부터 당시 유행하던 팝페라를 접목시킨 작품들을 발표하는데 이때 발표한 7집과 8집은 다시 예전 그의 명성을 되찾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조관우는 7월 15일, 지인이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찔리는 중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요, 이때문에 100바늘을 꿰매는 중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는 하지만 목 부위에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에 앨범 작업과 앞으로의 가수 생활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다행히 성대는 문제가 없다고 하네요. 


이후 2013년 새로운 디지털 싱글 화애가 발매가 되었는데요, 성대결절 수술을 받고 새로 낸 곡이라고 했지만 다행히 수술이 잘돼 오히려 음역이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후 조관우는 2014년 EP앨범 프라이데이 나이트와 세월호 추모곡 풍등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이때 뮤직비디오에 영화계, 가요계 인물들이 함께 참여했고 팝핀현준이 함께 출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2015년 불꽃, 2016년 겨울이야기 파트2, 2018년 3월 15년 만에 9집 정규앨범 다시 시작을 발매했습니다. 


-조관우(가수), 조관우 배우 활동


조관우는 2011년 12월 5일 첫 방송한 JTBC의 시트콤 청담동 살아요에서 첫 연기 도전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2012년 8월부터 2013년 2월까지 방송된 KBS의 일일 시트콤 닥치고 패밀리에 황신혜의 전남편이자 박지윤, 다솜의 아버지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2015년 영화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조관우는 특히 여기서 그가  원래 전공하던 국악실력을 발휘하기도 했으며, 연기력이 예상외로 엄청나서 깊은 인상을 주었고 사람들은 나중에서 그 배역을 연기한 사람이 조관우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하네요. 


조관우는 또 이후 2018년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이어 같은해 7월에는 KBS 2부작 드라마 투 제니에 앤씨아의 소속사 사장 역할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조관우(가수), 조관우 정치성향, 팝핀현준과 친분


조관우는 동갑내기 가수인 이승환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였으며 노무현 대통령 지지자들에게는 엄혹한 시기였던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시기에도 꾸준히 노무현 대통령 기념 음악회에 참석해서 축하의 노래를 불렀고 노무현 대통령 헌정곡까지 만들기도 했습니다. 

조관우는 립싱크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관우는 팝핀현준과도 친분이 있는데요, 조관우는 팝핀현준의 춤에 대해 국악의 살풀이를 보는 것 같다고 칭찬했고, 조관우의 개인 콘서트나 방송 무대에서도 자주 서는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합니다. 또한 의외의 사실로 팝핀현준의 첫 연예인 제자라고 하네요. 



-조관우(가수), 조관우 결혼 부인(아내) 장연우 이혼 아들


조관우는 결혼을 총 두 번 했는데요, 첫 번째는 1993년 작사가 겸 보컬디렉터인 장연우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조관우는 29살이었고, 조관우 부인(아내) 장연우는 23살로 두 사람 나이차는 조관우가 6살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조관우 부인(아내) 장연우는 스무살 당시(1990년) 미대생이었던 장연우는 동네 노래자랑대회에 나갔던 인연을 계기로 당시 조관우와 같은 기획사에 들어가 가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기획사에서는 "지금 준비하는 남자가수 앨범 내고, 그 다음에 네 앨범을 내주겠다"고 했는데 그 남자가수가 바로 조관우였다고 하네요. 



당시 조관우는 그가 작곡한 듀엣곡을 같이 부를 여가수를 찾던 중이었는데 사무실에서 "저녁에 연습하러 오는 여학생이 있느니 같이 해보라"고 권해 두 사람의 만남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듀엣곡은 음반에 포함되지 않았고, 결국 조관우 부인(아내) 장연우의 가수 데뷔는 미뤄지게 되었답니다. 결국 조관우 부인(아내) 장연우는 1991년 막 개국한 SBS 공채모집에 지원해서 1기생(합창단과 무용단을 합친 쇼탤런트 부문)으로 뽑히게 되었다고 하네요.

 


조관우 부인(아내) 장연우는 그렇게 코서스 활동을 하다가 조관우의 청혼을 받아서 1993년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1994년 조관우가 늪을 발표하면서 톱스타가 되고, 아내인 장연우 역시 작사가 장복신(장연우의 본명)으로 남편의 노래 가사를 쓰거나, 코러스 디렉팅 등에 참여하는 등, 앨범 작업을 같이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관우 장연우 두 사람은 결혼 후 아들 조휘, 조현 아들 둘을 낳고, 음반 작업을 함께 하는 등 소문난 잉꼬 부부로 세간에 알려졌었는데요,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은 2003년 3월 성격 차이를 이유로 합의 이혼을 하게 됩니다. 


조관우는 지난해 9월 마이웨이에 출연해 부인(아내) 장연우와의 이혼에 대해 "가까운 사람들이 레코드사를 옮기며 뒷거래 한 돈을 법원에 가서 알았다"라며 "아내는 날 믿는다고 했지만 결국 합의 이혼했다"고 말하기도 했고, 


또한 조관우 전 부인(아내) 장연우는 과거(2007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모든 기준을 남편에게 맞추고 살았는데, 차츰 삶을 바라보는 서로의 가치관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서로 간의 간격이 커졌고, 어느 순간 그 간격을 메우기가 너무 힘들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조관우 부인(아내) 장연우는 이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혼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아, 이혼이라는 방법이 있구나 싶었어요. 아이들이 커가고 있는데 더 감정이 악화돼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멈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아마 성격 차이 이외에도 장연우가 자신의 인생을 되찾겠다는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장연우는 2006년 가수로 데뷔하여, 노 모어 블루라는 싱글 앨범을 발하게 됩니다. 2003년 이혼 후에 음식점 장사도 했는데 실패하고 여러 어려움을 겪다가 뒤늦게 자신의 원래 꿈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이혼을 할 때 초등학교 2학년, 6살이었던 두 아들의 양육권은 조관우가 맡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관우 장연우 두 사람은 이혼 후에도 친구처럼 지낸다고 하네요. 두 사람은 실제로 2005년 발매한 조관우의 EP앨범 가을의 기적에서 다시 음반 작업을 함께 했다고 합니다. 



조관우 부인(아내) 장연우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관우씨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해서 셋이 함께 만난 적도 있어요. 만나서 가볍게 맥주도 마시고 아이들하고 다 같이 밥도 먹고 편하게 친구처럼 지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햔편, 조관우는 이혼 당시 재혼하면 아내에게 저작권을 양도하기로 했다고 하는데요, 조관우는 "사실 가수 조관우 이름을 만드는데 첫 번째 부인이 50% 일조했다. 아내에게 음악을 배웠고, 작사도 아내가 다 했다. 내 이름으로 올리길 원해서 그렇게 했다. 방송에서 처음 하는 이야기"라고 하며 이어 "이혼할 때보다 재혼할 때 전 아내에게 더 미안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조관우(가수), 조관우 부인(아내) 손혜련 나이(차) 직업 결혼(재혼), 이혼, 이혼이유


이후 조관우는 전부인(아내) 장연우는 혼자 살고 있고, 조관우는 전 부인 장연우와 이혼한지 7년만인 2010년 3월 10세 연하의 부인(아내) 손혜련과 재혼을 하게 됩니다. 당시 조관우 부인(아내) 손혜련의 직업은 재즈댄서였는데, 조관우의 콘서트를 본 인연으로 교제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두 사람은 3년의 교제 끝에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결혼 당시 조관우 부인(아내) 손혜련은 임신 5개월인 상태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조관우 부인(아내) 조혜련은 재즈댄서라는 직업을 살려 결혼 후에도 남편인 조관우와 함께 봉사활동을 주로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조관우는 2011년 성대 결절 수술 이후 수입 없이 수개월을 생활했고, 설상가장으로 지인의 배신으로 인해 십 수억의 빚더미에 올라 앉게 되었다고 합니다. 10억이 넘는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되었다고 하네요. 



결국 두 사람은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두 번째 이혼을 하게 되는데요, 이에 대해 조관우는 "빚이 이자 때문에 계속 불어났다. 아기분윳값도 책임지지 못해다"라며 "돈 없는 조관우였다"라고 전했습니다. 당시 조관우는 타인에게 재산관리를 맡기면서 15억 원의 빚을 지게 됐고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하네요. 



조관우는 지난 2018년 MBC 사람이 좋다에서 빚 때문에 아들의 월세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는데요, 이날 조관우는 "사람을 너무 믿었고, 내가 너무 몰랐다. 재산 관리를 맡긴 부분이 빚으로 남았다. 내 돈을 다른 사람이 가지게 됐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가 소유했던 집은 경매로 넘어간 상황이고 현재 아들의 월세집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조관우는 "신용불량자였는데 현재 회복 단계에 있다. 집 등을 처분하고 탕감해서 2억 원 정도 남았다. 다 갚으려면 1, 2년 정도 지나야 할 것 같다"고 현 상황을 털어놨습니다. 



또한 두 번째 아내 손혜련 씨와의 이혼에 대해서도 "생활고로 너무 힘들 때 서로 감싸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까 3-4년 떨어져 있었고 그래서 헤어지는 계기가 됐다. 조정기간"이라면서 이혼 중이라는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조관우 아들 조휘, 조현, 조환, 딸 조하은


조관우는 슬하에 3남 1녀(아들 조휘, 조현, 조환, 딸 조하은)를 두고 있는데요, 이 중 아들 조휘와 조현은 첫번째 부인(아내) 사이에서 낳은 자녀이고, 아들 조환과 딸 조하은은 두 번째 부인(아내) 사이에서 얻은 자녀입니다. 



이 중 조관우 아들 조휘는 히든싱어 조관우 편에 모창능력자로 나온 적이 있으며, 아들 조현은 불후의 명곡에서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이 경연에 나와 피아노를 쳤고 부모님과 같이 유자식 상팔자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조관우 아들 조현은 특히 지난 2017년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해 중학교 때부터 작곡 작사를 해내는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는데요, 조관우 아들 조현은 악기를 다루는 것부터 작곡, 편곡까지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조관우 아들 조현은 "작곡을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작곡을 했다. 사소한 곡까지 합치면 약 200곡 정도 되는 것 같다"며 남다른 음악적인 재능을 드러내며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조관우는 지난해 사람이 좋다에서 "무엇보다 제가 아이들한테 물려주기는커녕 아이들한테 빚을 남겨주는 건 굉장히 아버지로서 미안하다"며 

해준 거는 없고 제가 홀로 키웠고 이게 정말 미안하니까, 그렇다고 미안하다는 얘기는 안 한다"고 하며, 



이어 조관우는 "각자 위치에서 뭐든 열심히 하다보면 점차 나아질거고 만약 음악을 한다면 아빠가 도와줄 수 있는 게 그러라면 같이 해보자 했는데 오히려 제가 도움을 더 받고 있다"라며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힘이라는 조관우는 다시 시작하겠다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겠습니다"라며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는데요, 앞으로는 정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구요, 좋은 음악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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