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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일집 나이 집안 가족사 이혼 아들 딸 배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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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일집 나이 집안 가족사(가정사) 전부인(아내) 이혼 아들 딸 배연정



<TV는 사랑을 싣고 배일집>



코미디언 배일집이 11월 25일 TV는 사랑을 싣고에 의뢰인으로 출연한다고 합니다. 



이날  배일집은 옛날식 다방에서 선글라스에 성냥을 물고 등장, 시작부터 여전한 콩트 본능을 엿보였는데요, 배일집은 과거 자신의 집에 세 들어 살았던 동갑내기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밝혔습니다. 



배일집에 따르면 어려웠던 신인 시절 전세금을 포함한 거액의 결혼 자금을 차용증도 쓰지 않고 흔쾌히 빌려준 고마운 친구라고 합니다. 배일집은 "왜 만나지도 못하고 인간 노릇을 못하고 살았나"라며 가슴에 응어리진 후회와 미안함을 드러내 대체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지, 또 40년 만의 재회가 성사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배일집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학력 과거 데뷔 및 활동 배연정, 김인식, 집안 가족사 결혼 전부인(아내) 이혼(이유) 재혼 포기(이유), 자녀 아들 딸 근황>



-배일집(코미디언), 배일집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학력 


배일집의 본명은 배윤식이라고 하구요, 배일집 나이는 1947년 1월 14일생으로 올해 나이 74세입니다. 배일집 고향은 서울이며, 배일집 학력은 성동고등학교,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배일집(코미디언), 배일집 과거 데뷔 전 


배일집은 중학교 1학년 때 친구들과 몰려가 서울 신당동 동아극장에서 선배 코미디언 구봉서가 주연으로 나왔던 영화 부전자전을 보면서 처음으로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배일집은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 HR 시간이 되면 아이들의 성화에 힘입어 가수 현인의 흉내를 내며 신라의 달밤을 불렀다고 하는데요, 그의 코미디언 기질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하네요. 학창시절 그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인기 가수 코미디언들의 쇼를 보며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배일집 : "고등학교 때는 아예 도시락을 안 싸갖고 다녔어요. 점심시간이 되면 이 반 저 반에서 도시락을 준비해놓고 저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이 많았거든요. 그 아이들 앞에서 구봉서, 김희갑, 뚱뚱이와 홀쭉이 같은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 장면을 손짓, 발짓해가며 흉내 내면 아이들이 웃다가 쓰러졌어요"



배일집은 고 3 수학여행을 갔을 때는 직접 대본을 쓴 코미디 연극을 전교생이 모인 앞에서 선보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배일집은 당시 온통 마음이 코미디에만 쏠려 있어 대한진학은 기대도 못할 일이었다고 합니다. 5녀 2남 중 둘째 아들인 그는 결국 혼자만 대입에 실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일집은 대학에 떨어지자 무작정 연예인협회에 등록하고 공연단을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맥이 전혀 없어 누구를 붙잡고 무대에 서게 해달라고 사정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고 하네요. 



그러던 중 해병대 군예대에 가면 군예대는 남진 진송남 같은 인기가수들이 들어가던 곳이었던 것인데요, 결국 그는 육군 1군 사령부 군예대에 지원, 합격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코미디언의 길이 열린 것이었습니다. 


배일집 : 제가 입대하자마자 공연할 때 사회 보던 사수가 제대를 했어요. 덕분에 졸병 때 바로 사회를 맡게 됐죠. 그 당시 두 사람이 함께 사회를 보는 게 유행이었는데, 후에 코미디언으로 활동한 신소걸씨가 한 달 늦게 입대해 둘이 콤비로 사회를 봤어요"



1967년 배일집이 입대했을 때는 군예대 위문공연이 일년에 봄, 가을 두 번 열렸는데 이듬해에는 군인 사기를 높인다는 명목으로 공연이 일년에 네 번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45일 동안 열심히 공연한 뒤 위로 휴가를 받아 사회에 나오는 날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휴가 때마다 극장으로 달려가 그가 좋아하는 코미디언의 연기를 유심히 보며 코미디언의 꿈을 키웠다고 하네요. 당시 코미디언 구봉서를 좋아하던 그는 군대에서 작은 구봉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합니다. 



배일집 : 그렇게 36개월간의 군대 생활을 마쳤는데 마침 군예대에서 후임 사회자를 구하지 못했다며 저보고 한 달만 더 공연 사회를 봐달라고 했어요. 당시 병장 월급이 6백원이었는데 민간인 신분으로 일했더니 월급을 8만원이나 주더군요. 쌀 한 가마니에 1천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8만원은 아주 큰 돈이었죠. 그 돈을 한 푼도 축내지 않고 어머니께 고스란히 가져다드렸어요"


당시 배일집은 군예대에서 사회를 잘 본다는 소문이 나자 월남 위문공연에까지 1년 가까이 초청돼 갔다고 하는데요, 당시 월남 위문공연은 톱가수들이 출연하는 무대였기에 그에 대한 소문은 자연스럽게 방송국에까지 퍼졌다고 합니다. 



한번은 구봉서가 연예인협회 사무실에서 그를 보고는 "너 월남 다녀왔다며? 배일집이 누구야, 걔가 그렇게 웃기다며?"라고 묻기까지 했다고 하네요. 마침내 그는 1971년 방송국 PD의 권유로 코미디 프로그램 쇼쇼쇼에 출연하면서 순조롭게 방송에 데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배일집(코미디언), 배일집 데뷔 및 활동


그렇게 배일집은 1965년 연극배우로 시작해 TBC 동양방송 특채로 TV 프로그램 쇼쇼쇼에 출연, 희극배우로 데뷔하였고 이어 같은 해 1971년 MBC 문화방송 공채 1기 코미디언으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배일집은 이후 MBC 코미디프로에 출연하였고, 2000년대에는 MBC 신파극 모정의 세월에도 출연하여 연극 연기에도 참여했으며 이전에는 영화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습니다. 



배일집이 출연한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웃으면 복이와요, 이장과 군수, 일요일밤의 대행진, 팔도 주방장, MBC 신파극 모정의 세월 등이 있으며, 또한 수상 경력으로는 TBC 동양방송 희극연기대상 인기상, MBC 문화방송 희극대상 최우수상 등이 있습니다. 


-배일집(코미디언), 배일집 배연정


배일집은 같은 코미디언인 배연정의 예명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장본인이라고 하는데요, 배연정은 배일집과 콤비를 이루는 개그로 성공하면서 배일집의 영향을 받아 예명의 성씨를 배일집과 같은 배씨로 정했다고 합니다. 


배일집과 배연정은 이름이 비슷하기도 하고 또 너무 케미가 좋아 친남매로 오해를 받는 일도 많았고, 또 1980년대에 코미디 드라마나 프로그램에서 내외로 자주 나와서 진짜 부부 관계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배일집 : "둘이 꼭 같이 붙어다녀야 한다. 배일집은 배연정, 배연정은 배일집, 이건 운명도 아니고 숙명이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것 같다"


배연정 : "한 번은 부산으로 배일집과 행사를 간 일이 있는데, 호텔 직원이 열쇠를 하나만 주더라. 이에 방 두 개를 요구하자 호텔 직원은 부부 아니었느냐. 싸웠으면 풀어야지 라고 조언까지 하더라"



배일집 배연정 두 사람은 1994년 당시 MBC 웃으면 복이와요의 불루 서울에서영화 터미네이터 등의 명장면을 재연한 뒤 공익성이 담긴 메시지를 시청자들에게 남기며 마무리 하는 형식으로 코너를 구성하기도 했는데요,  


블루 서울 코너의 경우 고작 3분도 안되는 방송분량이었지만 배일집 배연정은 3시간 이상 대본연습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네요. 그러다보니 두 사람은 서로 눈빛만 맞아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통할 정도로 20년 이상 콤비연기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 배연정 프로필 나이 남편 근황 등


참고로 배연정의 본명은 홍매경이라고 하구요, 나이는 1952년생인 69세로, 배일집보다 5살이 어리다고 합니다. 배연정은 1969년 트로트가수로 데뷔, 같은 해 1969년 연극배우로 데뷔했으며, 이듬해 1970년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이후 1년이 지나 1971년 MBC 공채 코미디언 1기로 배일집과 동기로 데뷔했답니다. 



배연정은 코미디언 활동 외에도 한때 소머리국밥을 운영(본점은 경기도 곤지암읍에 위치, 전국 체인점, 미국 진출까지 시도)하면서 매출 대박을 터뜨려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기도 했었는데요, 하지만 이후 개인사로 사업에 길패해서 많은 빚을 지기도 했었다고 하네요. 


당시 배연정은 순식간에 강남에 있는 빌딩 4채 정도에 해당하는 재산을 잃기도 했었다고 하는데요, 2013년 기준으로 환산하면 1000억원이 넘는 거액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배연정은 2003년 췌장암 진단(암까지 발전하지 않은 악성 종양)을 받은 바 있으며, 췌장을 5cm만 남겨놓고 모두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아야만 했다고 하네요. 배연정 남편은 이종호로, 회사원이었다가 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배일집 김인식 전 야구 감독


또한 배일집은 김인식 전 국가대표 야구감독과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배일집의 46년 술친구라는 김인식 전 감독은 배일집이 이혼했을 당시 상황을 가까이서 지켜본 막역한 사이라고 합니다. 



김인식 감독은 혼자 세월을 보내는 친구를 보며 "이런저런 것이 괜치 미안하다. 그래도 여태껏 아이들을 잘 키워온 것이 고맙다"면서 배일집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아끼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배일집(코미디언), 배일집 집안 가족사


배일집은 지난 1월 23일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가슴 아픈 가족사를 공개했었는데요, 배일집은 아버지의 두 집 살림으로 본가에 7남매, 그리고 네 명의 이복동생들을 두며 두 가족 모두 행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배일집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집에 저와 아버지 둘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문을 두드리더라. 어떤 아주머니가 아버지 계시냐고 묻더라. 아버지 여자친구였다"라며 "아이를 업고 왔는데 아버지가 얼른 안방으로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나한테는 작은댁이라고 하셨다. 내가 볼 땐 아버지가 바람을 피운다고 했는데 저 여자이구나 싶더라. 저도 그때 화가 치밀어 작은 어머니를 끌어내려고 했다"고 가슴 아팠던 날들의 기억을 돌이켰습니다. 



이어 "거기도 형제들이 있는데 다들 출가해서 잘 살고 있다. 그 작은집 아이가 지금 저희한테 그렇게 잘한다. 거기도 형제들이 있는데 다들 출가해서 잘 산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만 하면 눈물부터 흘리셨다"고 전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는 진짜 가족이 된 이복동생과 만나는 배일집의 모습이 그려지며 눈길을 끌었는데요, 아버지를 많이 원망했다는 배일집은 "이제는 아버지가 이해가 된다. 외로웠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복동생은 "부모님이 한 뿌리니까 너희가 언니, 오빠와 잘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생이 먼저 연락해야 한다고 했었다"고 돌이켰습니다. 그의 누나는 "그 때는 정말 고생해서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원망도 했다. 모든 것이 이해가 되고 한가족이 됐다. 이런 게 세월의 흐름일까"라고 말했습니다. 


-배일집(코미디언), 배일집 결혼 아내(전부인) 이혼, 이혼 이유, 자녀 아들 딸


배일집은 과거 오랫동안 방송활동에서 승승장구하면서 두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가정생활에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방송에 매달려 바쁘게 사는 동안 아내와 점점 소원해진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배일집은 그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배일집은 아내로부터 이혼하자는 말을 듣고 큰 충격과 배신감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배일집 : "아내는 저보다 9살 어린 사람이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저를 만나 3학년 때 결혼을 했는데 너무 어린 나이에 가정에 구속됐으니 많이 답답했겠죠. 세월이 흐르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쌓였던 것 같아요"



배일집은 아내가 처음 이혼하자고 했을 때 아이들 때문에 안 된다며 거부했다고 합니다. 배일집은 "내가 그렇게 싫으면 잠시 떨어져 있어보자"며 집을 나와 3개월간 여관방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싸우더라도 집에서 싸워야 하니 무조건 들어가라"고 호통을 쳐 다시 집으로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그를 피해 집을 나갔다고 합니다. 


그러자 초등학생이던 아들은 "아빠 때문에 엄마가 집을 나갔다"며 대성통곡을 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내를 다시 집으로 불러들였지만 한 번 돌아선 아내의 마음을 끝내 돌이킬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배일집은 1990년 딸이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엄마와 살았던 아이들이 2년 정도 지나자 그와 함께 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지만, 당장 그는 아이들 도시락 반찬이 걱정이었다고 하네요. 


이혼했다는 소문이 퍼질까봐 가사도우미를 부를 생각도 못했다고 합니다. 밥은 그가 직접 짓고 아파트 근처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주문해 먹었다고 하는데요, 딸아이도 간단한 밑반찬은 곧잘 만들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빨래와 설거지는 딸 배정윤, 청소는 아들 배성균이 분담해 가며 해왔다고 하네요.


이후 배일집은 1990년대 이혼 후 자식들을 홀로 키워왔다는 사실을 공개했는데요, 하지만 5년간은 이혼사실을 숨겨야만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유명세 때문에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을까 두려웠던 것인데요, 



이에 대해 배일집은 "지금은 이혼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지만 예전엔 아니었다. 이혼한 후 5년 동안 그 사실을 숨겼다. 당시 중학교 1학년, 3학년이었던 남매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 것이 염려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가장 예민한 나이에 엄마의 품을 잃어버린 아이들, 특히 여리고 다정한 성격의 딸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하며, "엄마 업이도 반듯하게 자라준 아이들이 고마우면서도 엄마가 있었으면 더 곱고 바르게 자랐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든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배일집은 집에서는 엄마 잃은 자식들이 애처로워 눈물지으면서도 밖에서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어야 했다고 합니다. 


-배일집(코미디언), 배일집 재혼 포기 이유


이후 배일집은 재혼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에 1990년대 중반에 만난 한 여성이 직접 아들의 도시락을 싸줬지만 아들은 새엄마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있지 않아서 도시락을 안먹고 그대로 가져왔다고 하네요. 


왜 안먹었냐고 이유를 물어보자 아들 성균은 울면서 "아빠가 다른 여자 만나면 난 어디로가"라고 반문할 때의 비통함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후 배일집은 재혼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현재까지 혼자 살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배일집은 "아이들이 우선이다. 후회는 없다"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배일집은 과거 집에 기자까지 잠복했던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었는데요, 당시 배일집이 일본에 갔다 왔는데 기자 한 명이 잠복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배일집은 이에 대해 한 방송에서 "내가 어떤 여자랑 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을 듣고 온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와 방을 다 뒤졌다. 나중에 나갈 때 옷방까지 살펴보더라. 그곳에 여자가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배일집(코미디언), 배일집 아들 배정윤 딸 배성균 근황


배일집은 이혼의 아픔과 두 자녀를 키워야하는 어려움 속에 엎친데 엎친 격으로 90년대엔 사기를 당해 경제적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사기를 당하시고 하루는 너무나 속상하셔서 술에 만취해 들어오셔서 우시는 모습을 봤다"고 밝힌 아들 배성균은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덧붙였습니다. 



두 남매는 공인인 아버지가 활동에 지장을 받을까봐 이혼했다는 사실을 입밖에도 내지 않았다고 하네요. 배일집 딸은 이혼 당시(1990년) 중학교 2학년(14살),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11살)이었으니까 지금은 30년이 지났으니 대략 딸의 나이는 44살, 아들의 나이는 41살 정도가 되었겠네요.


배일집과 남매 사이엔 다른 가정보다 끈끈한 정이 흐른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일까 당시(2005년) 배일집의 딸이 결혼을 하는 바람에 배일집의 마음의 빈 자리가 커졌다고 합니다. 실제로 배일집은 결혼식 전날과 당일에 오기로 눈물을 참았지만 이후 한동안 가끔씩 딸 생각을 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합니다. 



이혼 후 딸을 홀로 키운 배일집은 "결손가정만 안 됐다면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잘될 수 있었다. 부부가 같이 있으면서 자식들이 더 잘될 수 있었다. 아이들을 잡아주는 역할이 부족했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 "결혼식장에서 저희 딸이 울었다. 가슴 아프게 울고 싶었지만 딸 때문에 참았다. 딸이 눈으로 보면서 인사하는데 제가 얼굴에 손을 올리니까 뒤에서 하객들이 우는 줄 알고 우는 사람들이 많았다"



"딸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 보내고 집에 왔는데, 잠옷 그대로 벗어놓고 생활한 것이 그대로 있다. 그걸 보는 순간에 미치겠더라. 굉장히 큰 것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라며 딸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드러냈습니다. 



이후 결혼하면서 분가한 배일집의 딸은 지난 2007년 미국에 있는 전부인 곁에서 둘째를 낳은 뒤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배일집은 "첫아이 낳을 때 친정엄마 없이 혼자 낳는 게 불쌍해 이번에는 제 엄마한테 다녀오라고 했어요. 또 아이 둘 키우는 게 보통일이 아니니 들어와서 같이 살자고 했죠. 딸과 사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좋아하더라고요"라고 했습니다. 

 

또한 당시 그의 아들은 영화를 통해 배우로 데뷔할 계획이라고 했는데요, 그는 학창시절 배우가 되길 원하는 아들을 위해 자신이 잘 아는 연기학원에도 보내고, 지인을 통해 개인 교습까지 시키는 등 정성을 쏟아 아들을 뒷바라지 했다고 합니다. 


서울예대 영화과에 입학한 아들은 아버지의 후광 없이 오디션을 봐 배역을 따내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이후 자세한 근황은 알려지지 않았답니다. 이번 사랑을 싣고에서 조금은 밝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무래도 연예인으로 성공했다면 많이 알려졌을텐데 그렇지는 못하지 않았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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