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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프로필 나이 아내(부인) 나이(차) 자녀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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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곤 프로필 나이 과거 아내(부인) 나이(차) 자녀 근황

 

 

오늘은 김명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명곤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몸무게 종교 학력 데뷔 활동 경력 영화 서편제 출연작품(드라마 영화 등) 이외 경력, 앞으로 하고 싶은 일, 결혼 아내(부인) 나이(차이) 직업 결혼스토리 자녀 근황>


-김명곤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종교 학력 

 

배우이자 작가, 연출가, 창극인, 성악가, 전문화부장관인 김명곤은 1952년 12월 3일생으로 올해 나이 70세입니다. 김명곤 고향은 전라북도 전주시이며, 김명곤 가족으로는 아들 1명, 딸 1명이 있습니다.

 

 

김명곤은 키 168cm에 몸무게 63kg이라고 하구요, 김명곤 종교는 개신교이며, 김명곤 학력은 전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독어교육학과 학사,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언론학 석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명곤 과거 

 

김명곤은 어린시절 부모님께서 빚 보증을 잘못 서서 집안이 기울기 시작해 큰 집에서 살다가 단칸방으로 옮기게 되면서 주인집 눈치를 보고 살아야 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명곤은 어린 마음에 절절하게 느낀 가난은 큰 상처로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명곤은 이런 절망과 고통 속에 어린 시절을 보낸 김명곤은 고향을 탈출해 서울로 가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김명곤은 대학에 갈 형편이 안되었지만 공부를 잘해 당시 전국에서 학비가 제일 싼 서울대 사범대학교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첫 등록금과 한 달치 하숙비만 받고 상경한 김명곤은 결국 한 달이 지나자 돈이 다 떨어져 하숙집에서 쫓겨나게 됐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친구들의 하숙집을 전전하는가 하면 연극반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다가 결핵까지 얻어 휴학을 했을 정도로 힘겨운 시기를 버텨내야만 했다고 합니다. 

 

김명곤은 그때 느꼈던 고통과 절망감이 이후 그의 인생 캐릭터가 된 유봉이란 인물에 많이 묻어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명곤 데뷔 활동 경력

 

김명곤은 대학시절 연극배우로 활동하였으나, 대학 졸업 후 잡지사 기자, 고등학교 교사 등 여러 직업을 거쳤고, 다시 배우로 복귀하여 1983년 영화 바보선언으로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김명곤 : "나는 연극을 할 때 가장 살아있는 느낌을 받고 행복하다. 대학 졸업 후 잡지사 기자 1년 독일어교사 2년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연극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지 못하겠구나, 연극 아닌 다른 삶은 견딜 수 없구나, 라고 체험했다. 실제 그 때 우울증과 위병에 걸리기도 했다. 돈을 벌든 못 벌든, 남이 알아주든 말든, 연극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김명곤은 영화 바보선언 이후 영화 서편제, 태백산맥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는데요, 연극 연출, 각본에 일가견이 있어 영화 서편제의 각본을 직접 쓰기도 했으며, 같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어 1993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명곤 영화 서편제

 

사실 김명곤은 10여년 간 명창 박초월(1917~1983)에게 판소리를 배운 소리꾼이라고 합니다. 대학 연극반 시절 빠져든 판소리는 김명곤의 예술인생에서 중요한 축이 됐다고 합니다.

 

 

김명곤은 1986년부터 극단 아리랑을 꾸리며 가난한 연극쟁이를 자처한 그였는데요, 그런 그가 대중 스타로 이름을 알린 것도 판소리 영화 서편제(1993) 성공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명곤이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한 서편제는 서울 단성사 단관 개봉으로 한국영화 사상 첫 100만 관객 돌파한 대기록을 세웠는데요, 그는 "내 인생의 명대사도 서편제에서 찾아냈다. 소리를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한 비정한 아버지 유봉이 '야 이놈아, 쌀 나오고 밥 나와야만 소리 하냐? 지 소리에 지가 미쳐가지고 득음을 하면 부귀공명보다도 좋고 황금보다도 좋은 것이 이 소리속판이여, 이놈아!'라고 호통치는 대목이다"

 

 

김명곤은 이 대사에 대해 "평소 내 생각"이라며 "내 삶과도 진하게 연결돼 있는 대사"라고 했습니다. "예술가가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 미치지 않고선 뭔가를 이룰 수 없다. 그러는 동안 돈도 못 벌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의 세계에 자기가 미쳐서 꾸준히 하다보면 예술가로서 느끼는 행복이 그 속에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김명곤 출연작품(드라마 영화 등)

 

김명곤이 출연한 작품으로는 영화는 강철비, 대립군, 광해, 왕이 된 남자, 명량, 바보선언, 서편제, 태백산맥, 신과 함께 인과 연이 있구요, 드라마는 각시탈, 대왕 세종, 붉은 달, 왕의 얼굴, 명불허전, 친애하는 판사님께 등이 있습니다. 

 

 

 

김명곤 수상내역으로는 1992년 제 1회 어린이연극제 연출상, 제 1회 어린이연극제 최우수작품상, 1993년 제 1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주연상, 제 14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1995년 자랑스런 서울시민상, 제 1회 현대연극상 연출상 등이 있습니다. 또한 김명곤은 이외에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에서 지니 성우를 맡기도 했습니다. 

 

-김명곤 이외 경력, 근황, 앞으로 하고 싶은 일

 

김명곤은 주변에서 왜 좋은 학교(전주고-서울대) 나와 좋은 직장 다니다가 다 때려치고 연극을 하냐, 미친 놈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돌아온 무대를 잠시 내려와야 했던 때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국립극장 극장장(2000-2005)과 문화관광부 장관(2006-2007)을 지낸 기간이라고 합니다. 

 

 

김명곤 : "그 7-8년 간 인생의 소중한 경험을 했지만, 창작자로서는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썻 펼치지 못하고 숨어있던 시간이었다. 지금 뒤늦게 하려다보니 하고 싶은 작품들이 쌓였다"

 

 

김명곤 : "기회가 있으면 배우로 계속 활동하고 싶다. 그런데 배우는 남이 하자고 해야 할 수 있는 수동적인 존재 아닌가, 기회가 없어 못하는 건 내가 작가로서, 연출가로서 만들고 싶다"

 

김명곤은 그 바람을 이루기 위해 건강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어쨌든 절제하고 틈 나는 대로 운동을 하죠. 배우로서 촬영을 하고 무대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데, 건강을 잃으면 바로 끝나는 거니까요. 건강을 지키는 건 내 직업상 아주 필수적인 거죠"

 

김명곤은 지난 2015년부터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라고 합니다. 

 

 

-김명곤 결혼 아내(부인) 나이(차이) 직업 결혼스토리 자녀 아들 딸

 

김명곤은 아내(와이프) 정선옥을 배화여고에서 사제지간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김명곤은 서울대학교 독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배화여고에서 독어 선생님으로 재직하게 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김명곤은 독일어를 가르치는 28세 총각 선생님이었고, 김명곤 아내(부인)는 고 1 여고생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김명곤 아내(부인) 정선옥은 허름한 양복 상의에 후즐그레한 바지를 입고 수업을 하는 김명곤의 머리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을 보고 첫 눈에 반했다고 하는데요,

 

 

김명곤은 독일어 수업에서 춘향가를 부르는 등 독일어보다는 연극 얘기와 독일 노래 등 시와 음악, 예술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하는 괴짜선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김명곤은 교사 시절 당시 학생들에게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고 하네요. 

 

 

당시 김명곤 아내(부인) 정선옥은 김명곤을 보기 위해 교정을 서성이고 밤마다 김명곤의 꿈을 꿀 정도로 가슴앓이를 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당시 김명곤은 연극 무대에 서다보니 시간이 부족했고, 결국 1년 만에 연극 일에 집중하며 안정적인 직업인 학교 선생을 그만두고 약 2-3년 강사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김명곤 아내(부인) 정선옥은 김명곤이 학교를 떠난 뒤 사흘 밤낮으로 울다가 김명곤이 극단에서 연극을 한다는 소문에 신문의 문화면을 뒤적이며 김명곤의 공연을 손꼽아 기다렸고 직접 찾아 나서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후 김명곤 아내(부인) 정선옥은 김명곤이 연극 무대에 설 때마다 찾아와서 선생님, 저 왔어요 라는 제자 중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자신을 찾아오던 학생이 줄어들었는데도 아내 정선옥은 꾸준히 찾아오는 제자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사제관계와 연인 사이의 감정이 뒤섞인 묘한 만남을 이어가게 되었는데요, 그러다가 두 사람은 어느새 자취방에 찾아와 콩나물 국을 끓여주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병을 앓고 있었고, 형편없는 수입을 가진 김명곤이 결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긴 쉽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에 김명곤은 "나는 방탕한 사람이다. 미래는 비참할 것이다. 나를 잊고 좋은 사람 만나라"고 했다고 합니다. 

 

김명곤 "아내(부인)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만남을 가졌다. 당시 연극을 하면서 돈도 못 벌고 결혼할 수 있는 자격이 하나도 없었다.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안했다"

 

그럼에도 김명곤 아내(부인) 정선옥은 "왕을 사랑하면 왕비가 되는 것이고, 거지를 사랑하면 거지 아내가 되는 거예요. 전 거지 아내가 되고 싶어요"라는 말로 김명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김명곤과 아내(부인) 정선옥 두 사람은 1986년 10월 26일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단출한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당시 김명곤은 35살, 아내(부인)는 25살로  두 사람 나이차이는 김명곤이 아내(부인)보가 10살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결혼 이후 제주도로 신혼 여행을 떠났지만 제주도공연과 겹쳐 제대로 된 신혼여행이 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그마저도 김명곤이 무리하게 아내(부인)를 안고 나오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투병여행이 돼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이 빚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식을 올리기 까지 남편이 돈이 없는 줄 알았어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던 아내(부인) 정선옥은 울기도 많이 했었지만 식을 올린 뒤에는 거지 아내가 돼 친정에서 반찬도 얻어오고 옷가지를 집어오며 살림을 꾸려갔다고 합니다. 

 

김명곤은 가난에 시달리고 예술에 시달리고 고독에 시달리던 시절 그의 아내가 샘물과도 같은 활력을 주는 존재였다고 하는데요, 김명곤과 아내(부인) 정선옥 두 사람 사이에는 현재 슬하에 자녀로는 아들 1명과 딸 1명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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