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진 <프로필 나이 과거 집(펜트하우스) 재산 결혼 이상형>
-주병진 프로필 나이 키 혈액형 고향 학력 데뷔 활동
-주병진 집안 과거 어린 시절
-주병진 데뷔 활동
-주병진 은퇴 이후 사업 성공, 복귀 근황
-주병진 결혼하지 못한 이유, 결혼 생각, 이상형
-주병진 프로필 나이 키 혈액형 고향 학력 데뷔 활동
주병진은 1959년 3월 1일생으로 올해 나이 63세입니다. 주병인은 키 172cm에 몸무게 68kg 혈액형은 O이라고 하고요, 주병진 고향은 서울이며, 주병진 학력은 덕수초등학교,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 인천쳬육전문대학 체육학과,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경영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병진은 1977년 MBC 개그콘서트로 데뷔, 이후 일밤, 주병진쇼, 주병진 아이 트쇼 등을 통해 MBC 간판 개그맨으로 활약하다가 사업가로 일하게 되었는데요, 주병진은 속옷 전문업체인 좋은 사람들 대표 이사를 수행했고, 2008년 자신의 지분을 모두 팔면서 좋은 사람들(주)에서 손을 떼고 다시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병진 집안 과거 어린 시절
어린 시절 주병진의 집안은 무척 가난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주병진은 가난을 이겨내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기에 사업가를 꿈꿨지만 돈이 없어 연예인은 돈을 많이 벌 것 같아서 먼저 연예인이 돼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병진 ; "아버지가 어릴 때(초 3학년, 10살)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시고 집안이 어려워서 분위기가 많이 우울했다. 그래서 일부러 집안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애썼는데, 나에게 사람들을 웃기는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도 나에게 나중에 코미디 언하라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주병진 ; "어려운 집안 형편을 돕기 위하여 신문배달을 했다. 그런데 당시에 신문사절이라는 종이를 붙여놓는 집이 있었는데, 신문 판매소에서는 무조건 그런 집들도 신문을 넣으라고 했다"
주병진 : "그래서 그런 집들은 이틀은 안 넣고, 다시 며칠 넣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신문값을 받으러 가니, 집주인이 신문 안 본다고 화를 내면서도 "매일신문이 오지 않는다"며 불만을 얘기하더라. 그래서 "신문을 다 넣어드릴 테니까, 반값에라도 보시라"라고 권했다. 그래서 신문값 반값이나마 건지게 되었다"
-주병진 데뷔 활동
그러다가 주병진은 영동에 있는 이종환의 음악살롱에서 사회자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뛰어난 말솜씨와 재치로 금방 유명해지게 되었고 결국 코디미 프로그램을 총괄하던 PD가 그 소문을 듣고 직접 명동에 찾아가서 주병진을 발탁했다고 합니다.
이후 주병진은 개그콘서트와 청춘만만세 등의 프로그램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고, 결국 MBC에서는 주병진을 일밤의 메인 MC로 세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병진 : "일밤 출연 당시에 외국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다가 카메라를 숨겨놓고 상황을 연출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코너명을 몰래카메라라고 정했는데, 결국 그게 고유명사가 되었다. 뉴스에서도 그 단어를 써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당시 몰래카메라는 일밤의 한개 코너였고, 주병진은 자신의 옆에 있던 이경규를 몰래카메라의 담당자로 발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병진은 일밤 메인 MC로 노사연과 콤비를 이루면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요,
둘의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한때 주병진 노사연 결혼 예정이라는 스캔들성 기사까지 나기도 했습니다. 이에 노사연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병진의 성화에 잡지사를 고소했다고 합니다.
노사연 : "사실 나는 고소까지 갈 이유가 있었나 싶다. 주병진과 스캔들에 대해 기분이 나쁘지 않았었다. 결국 잡지를 1년 동안 정기 구독했다"
주병진 : "노사연과 열애설은 핑크빛이 아니라 그냥 누런빛이다. 사실이 아닌데 그런 기사가 나서 화가 많이 났다. 그래서 노사연한테도 "어떻게 이런 기사가 날 수가 있냐"라고 했는데 노사연의 반응이 뚱했다. 그래서 혹시 노사연이 열애 기사를 뿌린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또한 주병진은 특유의 뛰어난 말솜씨로 우리나라 1인 토크쇼의 효시를 열게 됩니다. 실제로 최초의 토크쇼는 자니윤이었고 그다음 주자가 바로 주병진이었다고 합니다.
주병진 ; "주병진쇼나 주병진의 나이트쇼에는 정치인들도 출연했다. 그런 분들이 나올 때는 어린 나이에 심리적으로 부담이 됐다. 어떤 분은 본인이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편집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주병진 은퇴 이후 사업 성공
그러다가 주병진은 1991년 연예계 은퇴를 선언하고 사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사실 주병진은 연예계에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23살의 나이에 제인스 딘이라는 카페를 방배동에 열었는데요,
카페에는 제임스 딘 사진이 걸려있고, 카우보이 모자 간판을 크게 달았는데 당시 택시 기사들이 주병진 카페를 기준으로 길을 찾아갈 정도로 유명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병진 : "처음에 다른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서 카페를 열었는데, 결국 6개월 만에 모든 빚을 갚게 되었다. 1990년에 제인스 딘이라는 이름으로 의류사업에 뛰어들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91년에 속옷도 패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보디가드 남성 속옷을 출시했다"
주병진 : "당시 업계를 주름잡는 언더웨어 회사는 쌍방울 태창 BYC 등 단 3개였다. 그래서 한 주 장만 팔아도 업계 4위인 거다. 당시 포장이 모두 사각형인데, 나는 원통형 포장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진열을 하면 원통형이기 때문에 바닥에 떨어지니까 가게 주인들이 판매 거부를 하려고 하더라"
주병진 : "포기를 하려고 생각했는데, 어떤 조그마한 중소 언더웨어 회사 영업부 직원들이 같이 일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나는 당시에 남성 전용 브랜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직원들이 여성을 겨냥한 꽃무늬가 들어간 화려한 속옷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병진 : "결국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물건을 만들었더니 영업부 직원들이 이틀 만에 다 팔고 수금까지 해왔더라. 이 사람들이 도대체 정체가 뭘까, 이해를 못하겠더라"
주병진 : "하지만 이 친구들을 믿을만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당시에 돈(회사 자금)을 만들기 위하여 야간 업소를 뛰었다. 서울보다 지방이 1.5배를 더 주기 때문에 지방을 돌면서 행사를 해서 자금을 모았다. 안양 평택을 돌고 집에 들어가면 새벽 2시였고 아침 9ㄱ시에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그리고 주병진은 기상천외한 광고 전략으로 큰 주목을 끌게 됩니다. 주병진은 1995년 2월 정장을 입은 모습으로 신문의 지면 광고에 출연해서 1995년 2월 21일 옷을 하나씩 벗겠다고 선언한 것인데요,
(2월 21일 신문광고에서) 주병진은 실제로 겉옷을 모두 벗고 속옷 차림으로 광고에 출연했고, 그러면서 다시 2월 24일에는 속옷까지 모두 벗겠습니다 라고 다시 광고를 해 상당히 큰 논란이 벌어지게 되었답니다.
경찰에서 올 누드 광고가 나가면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전화가 오기도 하고, 또한 광고 선정성이 짙다는 이유로 뉴스에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주병진은 쾌재를 불렀다고 합니다. 선정성, 호기심 덕에 광고 효과가 높아졌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로 2월 24일 주병진의 올누드 광고가 나가는데, 누드 상태의 주병진이 본인의 돌사진으로 중요 부위를 가린 광고였습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주병진의 기상천외한 광고 전략에 웃었고 주병진은 그때 큰 광고효과를 거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주병진 : "그날만 속옷 브랜드 전문점 100개 이상을 모집할 수 있었다"
사실 주병진의 광고는 다른 나라의 광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요, 이는 1994년 프랑스 선거에서 모 정당이 사용했던 홍보 비법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주병진은 사업가로 전념하게 되는데 2000년 주병진 꽃뱀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답니다.
주병진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재판을 벌이는 와중에 그리고 나중에 누명을 벗은 다음에도 계속 사업에 전념하게 되었는데요, 결국 그의 사업체는 한때 매출액 1600억 원까지 달성했다고 합니다.
주병진 : 속옷사업을 하면서 연 매출 1600억 원까지 도달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사람이 꿈만 같았다. 내가 목표했던 게 이뤄지고 또 그 과정을 달리고 있고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어디 있었는가. 그래서 더 열심히 하자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했다"
주병진의 속옷 회사로 알려진 좋은 사람들은 1993년 설립됐는데요, 주병진은 직원 3명과 함께 속옷회사를 시작해 제임스 딘, 보디가드 등 7개 브랜드를 거느린 대형 속옷회사로 키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주병진은 2008년 6월 "회사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시스템화한 경영이 필요하다면서 자신이 보유했던 (주) 좋은 사람들의 주식 30%와 경영권을 이스트스타 어패럴에게 270억 원에 매도하고 손을 떼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2010년 7월 주병진은 서울 홍대에서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 스노 스푼을 열고, 그와 함께 복귀를 준비하며 담배를 끊고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주병진 : "(주) 좋은 사람들은 더 이상 개인의 아이디어와 크리에이티브로 키워 가기에는 어려운 회사가 되었다. 더 큰 성장, 세계 무대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시스템화한 경영이 필요했다"
주병진은 실제로 2007년에 개성공장에도 진출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을 했는데요, 결국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한계에 부딪혔고 이때 주병진은 재산(재력)을 이때의 매각 대금 270억 원 외에 그동안 벌였던 돈을 합치면 500억 원 이상은 될 같습니다.
참고로, 주병진의 아이스크림 가게인 스노 스푼은 주병진이 매출 신장을 위해 이 사업을 론칭하기 전 무려 5년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고 하는데요, 이미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와 있는 아이스크림 브랜드들과 차별화를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준비 기간이 길었다고 합니다.
이후 주병진은 스노 스푼의 매출 신장에 탄력을 받아 홍대점을 오픈한 이후 일산점, 분당 야탑점, 대전 둔산점, 잠실점을 차례로 열었고 영등포 타임스퀘어점도 신설하며 억대 매출을 기록, 손을 대는 사업마다 대박을 쳐 연예계에서는 알아주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주병진 연예계 복귀 이후 활동
한편, 주병진은 서울 홍대에서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를 운영하면서 연예계 컴백을 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2011년 12월부터 시자고 딘 주병진 토크 콘서트는 시청률 부진으로 결국 조기 종영이 되었고, 이후 근대 가요사 방자전, 개밥 주는 남자 등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주병진 집(펜트하우스) 위치 평수 가격
특히 개밥 주는 남자에서 주병진의 집(펜트하우스)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복층으로 구성된 주병진의 집(펜트하우스) 위치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소재 카이저팰리스 아파트 최상층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상층인 만큼 옥상정원도 제공된다고 하는데요, 방송을 통해 공개된 주병진 집(펜트하우스) 평수는 200평대로, 4개의 테라스와 4개의 게스트룸, 그리;고 3개의 화장실과 사우나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고 합니다.
주병진 집(펜트하우스) 가격은 분양가만 해도 약 52억 정도가 된다는 말이 돌기도 했는데요, 지난해만 해도 약 65억에서 95억 사이로 짐작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고가의 펜트하우스입니다.
-주병진 결혼하지 못한 이유, 결혼 생각, 이상형
그런데 주병진은 안타깝게도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이가 있기 때문에 주병진 이혼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죠. 지금은 나이가 상당히 많긴 하지만 아직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지는 않다고 하네요.
주병진 : "어머니께서 20여 년 전에 네가 이다음에 장가가면 이런이런 여자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요 근래에는 네가 결혼하면이라고 똑같은 말씀을 하시더라. 이제 내가 따지고 할 입장이 못 된다. 갈기 다 빠지고 이빨과 발톱 다 빠졌는데 뭘 더 짜지겠냐. 다만 나이 먹은 고집과 아집이 날 방해할 뿐이다"
주병진 : "그냥 순하게 생긴 현모양처, 한국형 미인이 좋다. 옛날에 주병진의 데이트라인에 고현정 씨가 게스트로 나왔는데, 내 이상형에 가깝더라. 그때 마음은 있었지만 연락처(전화번호) 교환은 시도도 못했다"
앞으로 좋은 분 빨리 만나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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