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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가수) 프로필 나이 가정사(가족사) 이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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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가수) 프로필 나이 가정사(가족사) 이혼 이유

 

 

-홍민 프로필 나이 고향 키 혈액형 학력

-홍민 데뷔 앨범 활동

-홍민 가정사(가족사)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

-홍민 아내(부인)와 이혼 사실 고백, 이혼 이유


-홍민 프로필 나이 고향 키 혈액형 학력

 

가수 홍민은 1947년 8월 7일생으로 올해 나이 75세입니다. 홍민의 고향은 경기도 화성이며, 이외 홍민 키 혈액형 가족 학력 소속사 등의 정보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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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 데뷔 앨범 활동

 

홍민은 1973년 고별을 발표하며 데뷔했습니다. 홍민은 이후 망향, 석별 등의 히트곡을 내며 쎄시봉의 맞수로 불리며 1970년대를 풍미했는데요, 음악다방 세시봉 멤버들이 통기타 하나로 여심을 사로잡은 그 시절, 중저음의 애절한 보이스로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바로 가수 홍민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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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그의 인기를 옆에서 지켜본 가수 김도향은 "그가 오빠 부대의 원조"라고 말했을 정도였는데요, 하지만 홍민은 과거 한 방송에서 가수 김도향과 함께 이전의 인기를 돌아보며 그 당시 대단했던 인기가 이장희의 그건 너의 등장으로 저지당했다고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데뷔 46년 차인 홍민은 40년 신곡을 준비하기도 했고 또한 한 방송을 통해 절친한 가수 이용복이 살고 있는 태안으로 떠나 마리 포 앞바다에서 펼쳐진 작은 콘서트 현장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가요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네요. 

 

-홍민 가정사(가족사)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

 

홍민은 지난 2019년 2월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아픈 가정사(가족사)를 털어놓은 적이 있는데요, 홍민의 아버지는 서울대학교 전신인 경성제국대학교 교수를 지낸 지식인으로, 홍민이 어릴 적 월북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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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찾으러 누나와 함께 집을 떠난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남겨진 하나 밖에 없는 두 살 동생마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하네요.

 

 

홍민 : "내 그리움의 원천은 부모님이다. 부모를 모르고 살았다. 아버지가 월북했는데 당시에는 연좌제가 있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 시대였다. 아버지가 납치된 줄 알았다. 나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홍민 : "네 살 때 어머니가 동생을 업고 누나와 내 손을 잡은 채 물속으로 다이빙을 했다. 그때는 잡히면 총살이었다. 물 밖으로 나왔는데 어머니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아버지를 찾는다고 나가셨더라. 그 길로 어머니를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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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은 그렇게 어머니와 더나고 난 뒤, 동생과 함께 외가에서 지냈다고 하는데요, 이후 두 살 동생마저 세상을 떠나 혼자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홍민은 또한 가수로 성공한 뒤 어머니를 찾아 나섰던 사연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홍민 : "시장에서 한 상인이 나만 나오면 쟤가 내 아들인데라고 말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어머니가 살아있다고 해서 수소문했는데 결론은 아니더라. 그런데 아내는 어머니가 맞는 것 같다며 여자의 느낌이라고 하더라"

 

 

홍민 : "또 한번 버림받은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니 내 등을 만지며 아니어도 언제든 오라고 했는데 묘했다. 우리 작은어머니에게 그분 사진을 보여줬더니 네 엄마 맞다고 하시더라.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는데 현실이 아닌 건 아니다. 애써서 치워버려야 내가 살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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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 아내(부인)와 이혼 사실 고백, 이혼 이유

 

홍민은 또한 이혼 사실을 담담하게 고백했는데요, 자유로운 성격인 그와 모든 것을 함께 공유하기 원했던 아내,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속한 이혼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홍민 : "이혼을 오래전부터 생각했는데 이제 때가 됐다 싶더라. 이건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 간에 만나서 돌발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대다. 나도 첫 아이로 인해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나도 그렇고 상대방도 결격 사유는 없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그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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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 :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상대방 쪽에 매몰돼 산다는 건 불행한 거 아니냐. 어떻게 살았냐면 제가 따로 제 경제생활을 할 수도 없었고 개인 카드도 없고 오로지 제가 필요한 돈은 타서 써야 하니까. 제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홍민 : "가서 일하면 통장은 제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관리하는 사람에게 돈이 가니까. 그거 손도 못 댔다. 휴대전화도 제 명의로 가져본 게 이제 4년 밖에 안 됐다. 그런데 그게 당연하게 생각되는 거다. 너무 오래되니까. 뭘 사려고 해도 허락받아야 하고, 그게 하기 싫으니까 안 하고 그러니까 참는 거다. 내 힘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조차 없어졌다고 생각이 들더라"

 

홍민 : "경제생활에서 나를 다 빼버리더라. 모든 걸 다 버린 게 뭐냐면 주민등록증 있잖나. 그걸 아주 오래 전에 줬고, 인감도장도 자기 필요하다고 해서 옛날에 줬다. 나중에 포기할 게 없더라. 그렇게 되니까 저는 이제 저의 힘으로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조차 없어진 거라고 생각이 든 거다"

홍민 : "한 번은 오랜만에 혼자 공연을 가게 됐는데, 절로 콧노래가 나오더라.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일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과를 내 발로 찾아간 적도 있다. 그네에 벨트를 걸어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극단적인 생각할 정도로 불행했다"

 

홍민 : "그래서 집을 그냥 나왔다. 나와서 어떻게 해야 하나 했다. 돈도 하나도 없고 이거 어떻게 하지 했는데, 운 좋게도 한 친구가 소송 비용을 부쳐주겠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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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 : "증인으로는 큰아들을 신청했다. 큰아들이 우리의 결혼생활을 더 오래 봤잖나. 큰 아이가 딱 중립을 지켜주더라. 이때 너 참 괜찮다, 잘 컸다 싶었다. 어디에 치우치지 않고, 그래서 참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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