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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농구선수 <프로필 나이 키 거인병 우울증 생활고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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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다큐 마이웨이' 전 농구선수 김영희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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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농구선수 김영희가 3월 6일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근황을 전합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김영희는 전성기 시절 거인증이라 불리는 말단비대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 그녀는 뇌출혈로 쓰러지며 은퇴 경기도 치르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코트를 떠났어야 했습니다. 

 

더구나 병마와 싸우던 중 얻게 된 합병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방안에서의 이동도 어려운 상태가 된 김영희는 "변해버린 외모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게 두려워 자꾸만 움추러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때문에 우울증을 얻게 되었고, 한때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자신의 곁을 지키는 이웃들과 동료들이 있어 희망을 선택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영희는 이날 외출에 나서며 활기찬 기운을 뿜어냈습니다. 평소에 신지 않던 구두까지 꺼내 신고 그녀가 향한 곳은 바로 모교인 숭의여고 터였습니다. 그는 "교정 근처만 둘러봐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며 학창 시절 함께 훈련했던 농구부 동창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김영희(농구선수)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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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농구선수 김영희는 1963년 5월 17일생으로 올해 나이 60세입니다. 김영희 고향은 울산광역시이며, 학력은 숭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영희는 키 205cm로 역대 최장신 여자 농구 선수이자 한국인 여성 중 최장신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 거주 여성으로서는 키 205cm의 몽골인 유학생 여성이 있서 공동 1위라고 합니다. 

 

 

거인증을 앓고 있는 김영희 선수와 달리 이 여성은 질병이 없이 키가 큰 것이라고 하네요. 또한 북한의 농구선수 박진아가 205cm라고 하는데 박진아는 2018년 기준 15세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자랄 것을 감안하면 한민족 최장신 여성 타이틀은 내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영희(농구선수) 과거 선수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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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선수는 태어났을 당시 너무 작고 여려서 할머니가 건강하게 자라게 해달라고 백일기도를 올릴 만큼 연약했고 다섯살 때까지는 보통 아이들에 비해 작은 편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당시 또래 아이들보다 한뼘쯤 컸던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물만 주면 쑥쑥 자라는 콩나물처럼 자라기 시작, 부산광역시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배구 선수로 운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농구로 종목을 바꾸고, 동주여자중학교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장신의 유망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이후 치열한 스카우트 경쟁 끝에 농구 명문 학교인 서울의 숭의여자고등학교에 입학, 1979년 서울 숭의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화장품 여자농구단에 입단했습니다.

 

김영희 : "키가 크다는 이유 때문에 중학교 2학년 때 실업팀인 한국화장품과 인연을 맺었어요. 아마 중학생이 실업팀에서 뛴 것은 농구계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일 겁니다. 역시 큰 키 때문에 숭의여고 2학년 때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행운을 얻었어요. 그때는 내 인생의 전부가 농구라 여겼기 때문에 키가 크다는 사실이 고마웠어요."

 

 

실제로 김영희는 숭의여고 2학년 때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에 처음 발탁된 후 은퇴할 때까지 대표 선수로 활동, 구기 종목 최초의 올림픽 은메달을 획득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도 출전하여 은메달리스트가 되었습니다. 

 

당시 박찬숙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지만 나름 한국화장품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이형숙과 함께 팀을 이끌었던 주역이었고, 이후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1984년 LA올림픽에 출전, 은메달을 따는 데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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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해 김영희는 점보시리즈에서 한국 여자농구 사상 최고인 60득점을 하면서 개인타이틀 5관왕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당시 여자대표팀 조승연의 회고에 의하면 상대 팀들이 김영희 선수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고 상대 감독들은 장신에 대한 전략 구상, 선수들 같은 경우에는 장신과 겨루는 개인기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점보시리즈 농구대잔치에서 한 경기에 52점을 기록하여 이후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던 여자농구 한 경기 역대 최다 득점과, 75 리바운드를 기록하여 한 경기 역대 최다 리바운드를 기록하는 등 그녀의 전성기는 8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졌습니다. 

 

김영희 : "농구선수로서의 그만한 영광을 누려보기도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당시에 저를 몰라보는 사람이 없었고, 큰 키에 대한 콤플렉스보다는 자신감에 차 있던 때였어요. 그러나 저에게 영광을 안겨줬던 큰 키는 축복인 동시에 저주이기도 했습니다."

 

 

김영희(농구선수) 뇌수술, 말단비대증(거인증), 합병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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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남동생은 한국인 남자 평균 신장에 해당하는 173cm, 그의 아버지는 165cm, 엄마는 163cm로 보통 사람의 수준을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몸과 키가 계속 커져 가는 것은 바로 거인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김영희 : "어려서부터 주변사람들이 식구들 중에 유독 너만 왜 그리 크냐고 물으면 내가 우리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다 뺏어 먹어서 이렇게 크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했어요. 내가 거인병인지조차도 몰랐고 키가 2m를 넘으면 유능한 농구선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춘기 때 치료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는 현역 시절에는 202cm였지만 지금은 205cm. 아직도 키가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끊이지 않고 샘솟는 성장호르몬 때문에 뇌종양이 생겨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던 도중 갑자기 쓰러지면서 뇌수술을 받게 되었고, 은퇴식도 없이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김영희 :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다시 코트에 복귀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그런데 병원에 있는 동안 당뇨병과 위궤양 등 합병증이 찾아와서 절 괴롭혔죠. 그때부터 병마와 싸우기 시작했고 내 삶의 전부라 여겼던 농구코트를 떠나게 되었어요."

 

김영희 : "아파서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농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게 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어요. 내가 세상에서 잘할 수 있는 것은 유일하게 농구뿐이었거든요."

 

 

이후 그는 투병하던 중 뇌종양이 커져서 두번째 수술을 받았지만 머릿속에 큰 혹 하나는 제거하지 못했다고 하며 설상가상으로 결핵까지 걸려 이가 하나 둘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앞니가 네개나 빠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릎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져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방안에서의 이동도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영희(농구선수) 부모님의 죽음 이후 자살 생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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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어머니가, 2000년엔 아버지가 3차례 암 수술을 받았음에도 59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김영희 : "은퇴하고 나서 한국화장품에서 대리점을 개설해줬어요. 몸이 좀 나아지면서 90년부터 한 3년 동안 그 일에 매달리기도 했는데 5년 전쯤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어요. 엄마는 여전히 완치되지 않은 제 병수발하랴, 아버지 돌보랴 참 힘드셨을 거예요."

 

김영희 : "저 몰래 눈물 흘리면서 우리 딸 불쌍해서 어쩌나라고 걱정하던 엄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졌어요...엄마를 따라 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식음을 전폐했어요...엄마 없이는 살고 싶은 이유도,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어요."

 

김영희 : "엄마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에 엄마를 따라 죽겠다고 몸부림치자 남동생이 올케와 함께 저를 붙잡고 대성통곡 하더라고요. 제발 죽지 말라고 밤낮으로 애원을 하대요."

 

 

김영희는 그렇게 남동생 때문에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몸을 추스리면서 동생 내외와 함께 아버지 병수발을 도왔고, 선수시절 번 돈과 한국화장품 대리점을 넘기면서 받은 권리금 등은 자신과 부모님의 치료비로 다 써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경기도 부천의 여덟평짜리 단칸방에서 혼자 살며 양말 수선과 전자부품을 조립하던 부업도 몸이 안좋아져 결국 그만두게 되었고, 결국 아버지까지 돌아가시고 나서 김영희는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면서 힘든 생활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김영희(농구선수) 변해버린 외모에 대인기피증 우울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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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런 가운데 김영희는 점점 변해버린 외모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게 두려워 자꾸만 움츠러들게 되면서, 한때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이 생겨 술에 빠져 처참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영희 : "변해버린 외모에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게 두려워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이 때문에 우울증을 얻게 되었고, 한때는 극장적인 선택을 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김영희 : "외출을 하면 사람들이 여자야, 남자야, 저것도 인간이냐 하면서 큭큭 웃더라. 언제는 중학생 20명이 대문을 두들기면서 거인 나와라라고 소리를 질렀다."

 

김영희 : "3-4년 정도 집 밖으로 안 나갔다. 불안증과 우울증이 심해져서 밤에 영하 15도까지 내려간 날에 난방도 틀지 않고 문을 열어 놓고 혼자 울기도 했다." 

 

 

김영희(농구선수) 도움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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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특별보조금 전달

그러던 중 처음에는 아무도 그를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지만 이후 그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한국여자농구연맹은 2003년부터 그를 경기위원에 임명하여 병원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고, 그외 많은 농구인들의 도움을 받고 이를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이런 김영희의 사연이 전해지며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지난해 12월 28일 그를 특별보조금 대상자로 선정, 황희 문체부 장관은 다음날 김영희의 자택을 방문해 특별보조금 1000만원을 전달하고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외 농구인들 뿐만 아니라 농구 스폰서 기업에서도 김영희를 평생 도와주기로 했는데 모 스포츠 용품 기업에서 김영희의 운동화를 평생 공짜로 지원해주기로 했다고 합니다. 

 

김영희 : "운동을 그만둔지 몇년이 지나다보니 아껴 신던 운동화도 다 떨어져 신을 신발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신발 만드는 회사 몇 군데를 돌아다녔어요. 제 신발은 특수하게 제작해야 하기 때문에 다들 돈을 줘도 만들어 줄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김영희 : "풀이 죽은 채로 마지막으로 서울의 명동에 있는 랜드로바 매장에 찾아갔는데 생각지도 않게 죽을 때까지 무료로 신발을 만들어줄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뭐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웠죠. 신발 한 켤레 만드는 비용이 1백 20만원이 드는데 6년 전(1997년경)부터 여름용 샌들과 단화를 만들어주고 있어요."

 

 

김영희(농구선수) 서장훈과 허재의 미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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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인 서장훈의 경우도 김영희에게 남몰래 돈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그는 "더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서장훈 : "LA올림픽 때까지 건강하게 운동하시다가 안 좋아지셔서 투병 중이신데, 얼마 전 프로그램에 나와 제 얘기를 하셨나 보다. 선배님에게 제가 도움 될 수 있는 일들을 해드리려고 하고 있다."

 

김영희는 지난해 11월 1일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에 출연해 오랜 기간 투병하며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당시 김영희는 "매달 70만원씩 나오는 올림픽 연금으로 생활 중인데 이번에 입원하면서 병원비가 많이 나왔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후배 농구 선수 서장훈과 과거 대표팀에서 함께 운동했던 허재 감독이 응원차 돈을 보내줬다. 정말 마음이 따뜻하다. 고맙더라. (두 사람이) 정이 많다. 겉모습만 보면 안 된다."고 말해 서장훈과 허재의 미담이 세간에 알려졌습니다. 

 

 

김영희(농구선수) 결혼

김영희 결혼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김영희 선수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이라고 합니다. 보통 사람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체격이 컸던 터라 자신과 어울릴 만한 남자도, 자신을 좋아할 남자도 없다고 미뤄 짐작했기 때문에 그는 결혼은 아예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았다고 하네요.

 

김영희 : "결혼에 대한 꿈은 오래전에 접은 터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았지만 엄마는 선수시절부터 딸이 여자로서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어요. 시집도 못 가는 딸이 되어 엄마에게 고통을 안겨주었어요."

 

김영희의 사연은 2009년 2월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다시 출연하게 되었네요. 건강을 되찾아 동네 꼬마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싶다고도 했던 김영희인데요, 아무쪼록 건강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상 전  농구선수 김영희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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