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사관련 정보와 상식/연예 스포츠

김성녀(배우) 프로필 나이 집안 남편 손진책, 누구? 아들 딸

728x90

배우 김성녀가 4월 30일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합니다.

 

배우-김성녀

 

이날 방송에서는 연기 인생 도합 240여 년의 한국 연극사를 만든 배우 이순재, 신구, 박정자, 김성녀의 일상이 공개됩니다. 

 

이날 방송으로 이들의 나이 프로필 가족 근황 등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중 오늘은 배우 김성녀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김성녀(배우)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학력

 

배우-김성녀

 

배우 김성녀는 1950년 9월 16일생으로 올해 나이 74세입니다. 김성년 고향은 서울특별시이며, 가족으로는 아버지 김향, 어머니 박육진, 동생 김성예, 김성일, 김성아, 그리고 남편 손진책과 딸 손지원, 아들 손지형이 있습니다. 김성녀 학력은 단국대학교 국악과, 중앙대학교 대학원 음악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성녀(배우) 집안 부모 과거 

 

배우-김성녀

 

김성녀의 아버지는 춘향전을 최초로 영화화(1957년 대춘향전)한 국극 연출가 겸 극작가 김향, 어머니는 여성 국극의 개청자로도 불리는 눈물의 여왕이자 남도잡가의 명창인 국악인 박옥진입니다.

 

김성녀 : "아버지 고향이 함경도라 이북에 본처가 있으셨는데요, 전쟁 터지기 전에 남한으로 내려오셨다가 저희 어머니와 만나서 다시 결혼하셨어요. 아버지는 이북에서 연극하고 글 쓰던 분이었는데요, 당시 윤인자 씨라는 배우와 같이 내려오셨어요. 아마 두 분이 사랑의 도피를 하신 것 같아요."

 

김성녀 : "그 후에 황해 씨, 장동휘 씨 등 연극계 동기들과 활동하시다가 여성 창극을 하던 어머니를 만나셨죠. 그때부터 아버지가 여성 국극 쪽에 눈 뜨시면서 어머니 쪽 세계로 완전히 전향하셨어요."

 

김성녀의 가족은 부모님 뿐 아니라 동생들 역시 예술계에서 활약 중인데요, 특히 동생 김성애와는 비둘기 시스터즈로 활동하기도 했고, 남동생 김성일은 안무가로 활동 중입니다.

 

 

그러한 집안 배경에서 김성녀는 1950년 목포로 피난가던 배 안에서 태어났고, 이후 서울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김성녀의 부모님은 두분 모두 전국을 누비며 공연을 하는 것이 직업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김성녀는 그러한 부모님을 따라 극단에서 자라게 됩니다. 

 

김성녀 : "그 시절엔 특별한 홍보 수단이 없잖아요. 그래서 유랑극단처럼 큰 트럭을 빌려서 의상이나 소품을 다 집어넣고 배우들도 함께 타고 지역을 돌았어요."

 

김성녀 : "배우들이 의상을 입고 악기를 불면서 마을을 도는 게 선전하는 거였죠. 집시처럼 지역을 돌면서 3-4개월 동안 전국을 순회하는 게 당시 공연 문화였어요."

 

김성녀 :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극장을 놀이터로 삼고 살았어요. 온 가족이 같이 공연을 하면서 돌아다녔으니까요. 5살 때부터 무대에 서기 시작했는데,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게 소꿉놀이였어요."

 

김성녀 : "극장에서 놀고, 데뷔하고, 결혼까지 했으니 저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고향이에요. 그러다가 김삿갓 이라는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혼자 떨어져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죠."

 

김성녀 : "아버지는 굉장히 멋쟁이였어요. 아코디언, 피아노, 기타 등 못 하시는 게 없었고, 소위 말하는 그 시대의 신남성이라 여자들이 많이 따랐죠."

 

김성녀 : "반면 어머니는 지고지순하고 한국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었어요.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런 순수한 면에 매력을 느끼셨대요. 그래서 제가 극과 극의 성격을 가진 부모를 갖게 됐죠. 아마도 저의 끼는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성실하게 가정을 꾸려간다거나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아요."

 

김성녀(배우) 데뷔 및 활동

 

배우-김성녀

 

실제로 김성녀는 그렇게 성장환경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끼 덕분에 벌써 5세에 어머니의 아역으로 무대 데뷔, 이후 가게를 책임지던 어머니의 변환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72년 동생 김성예와 함께 비둘기시스터즈를 결성해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김성녀 : "엄마가 국극을 하시면서 고생을 많이 하셔서 늑막염, 결핵 등에 걸려 쓰러지셨어요. 그러면서 저와 동생은 대학 진학을 못하게 됐죠. 그래서 제 동생과 함께 비둘기 자매를 결성해서 까투리 사냥 음반을 냈어요."

 

김성녀 :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집안을 끌어가기 위해서 엄마가 잘 불렀던 민요를 뽑아서 음반을 냈던 거죠. 최초의 민요 듀엣으로 가계를 이끌었죠."

 

김성녀 : "근데 그게 제 정서엔 너무 안 맞았어요. 방송국에 가면 인사하고 다녀야 하는데, 전 그게 싫어서 화장실에 숨어있고 동생을 대신 시켰어요. 그리고 가수라고 하면 함부로 대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김성녀 : "그런 것들이 너무 싫었어요.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사람대접을 받으며 내가 좋아하는 일을 떳떳하게 하자고 마음을 먹게 됐죠."

 

김성녀 : "그래서 가수 생활을 조금 하다가 가야금 명창 인간문화재였던 박귀희 선생을 찾아갔어요. 근데 그분이 갑자기 네 엄마 재능을 보면 너는 말할 것도 없다 면서 곧바로 저를 전수생으로 시키셨어요."

 

김성녀는 그렇게 2년 여의 가수 생활을 한 뒤 가야금 병창의 명인 박귀희의 이수자 겸 전수자로 국악에 입문하게 되었는데요, 그러던 중 극단 민예에서 한국적인 음악극 한네의 승천의 주인공 한네역으로 캐스팅되면서 1976년 배우로 정식 데뷔하게 됩니다.

 

배우-김성녀

 

김성녀 : "국악을 막 시작할 즈음 저의 선배 중 한 사람이 가장 한국적인 음악극에 사람이 필요한데 네가 가서 오디션을 보라고 권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처음 허규 선생님과 손진책 씨를 만났어요."

 

김성녀 : "당시 허규 선생님이 이끌던 민예 극단의 젊은 연출가가 손진책씨였거든요. 근데 가봤더니 허규 선생님은 손톱을 깎으시면서 소주 한 잔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빈촌의 농사꾼 같은 모습이었죠."

 

 

김성녀 : "게다가 손진책 씨는 대뜸 저에게 한네의 승천 대본을 주면서 바로 주인공을 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혹시 이게 사이비 극단인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국내에서 알아주는 극단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한네의 승천의 주인공 역할을 통해 아역 때 이후로 다시 데뷔를 하게 됐죠."

 

김성녀는 이후 국립창극단에 입단, 국립극단과 극단 미추 단원으로 활동하며 드라마에도 출연, 토지, 서울뚝배기, 아내가 있는 풍경 등에 출연하였고, MBC 마당놀이 놀부전, 멕베드, 죽음의 소녀, 남사당의 하늘 등에도 출연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수많은 연극무대와 뮤지컬, 마당놀이, 콘서트, 더 나아가 드라마와 영화까지 넘나들며 활동해왔습니다.

 

또한 그녀는 신앙심이 두터운 불교 신자로서 수많은 찬불가를 불러서 가수로 활약하기도 했고, 뒤늦게 중앙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 석사까지 받아 2000년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과정이 설립되면서 교수로 영입되기도 했습니다.

 

배우-김성녀

 

그리고 이후 2005년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음악극과 학과장을 거쳐 2007년 3월 제 5대 국악대학장에 취임하였고, 음악극 전공의 교수로서 학장, 대학원장을 겸임하기도 했습니다.

 

김성녀는 특히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시절 창극의 다양하고 파격적인 시도로 창극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남편인 연출가 손진책과 마당놀이라는 장르를 만들고, 윤문식, 김종엽과 함께 마당놀이 3인방으로 불리며 30년 동안 3000회 이상 공연을 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성녀는 현재까지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다양한 방면에서 굵직한 활동을 배우, 국악인, 교수, 예술감독 등 여러가지 수식어가 따르고 있습니다.

 

 

<김성녀 수상 경력>

-1986년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1990년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1991년 서울연극제 여자연기상

-1991년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1992년 서울연극제 여자연기상

-1993년 서울연극제 여자연기상

-1996년 한국뮤지컬대상 여우주연상

-2000년 꽃봉지회 올해의 배우상

-2000년 춘사영화제 여우조연상

-2003년 김동훈연극상

-2004년 꽃봉지회 올해의 인물

-2005년 동아연극상 연기상, 올해의 예술상

-2007년 한국연극협회 자랑스런 연극인상

-2010년 이해랑연극상

-2013년 국민문화훈장회관

 

김성녀(배우) 결혼 남편 손진책 나이 직업, 누구?

 

배우-김성녀

 

김성녀는 남편 손진책과 1977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남편 손진책은 연출가로 김성녀와 함께 마당놀이라는 장르를 만든 장본인이고, 현재도 그가 출연한 연극 벽속의 요정 등의 연출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성녀(배우) 남편 손진책 결혼스토리

두 사람은 1976년 극단 민예의 연극 한네의 승천에서 연출과 배우로 만나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원래는 독신주의였지만 아이가 생겨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배우-김성녀

 

김성녀 : "아버지는 여자들에게 워낙 인기가 많았고, 본인도 여자를 좋아하셨어요. 저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애인도 있었죠. 그리고 엄마는 아버지에게 속상한 걸 맏딸인 저에게 다 털어놓으셨어요."

 

김성녀 :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전문적인 직업을 얻어서 혼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독신주의자였죠. 근데 손진책 씨도 연극하고 결혼했으니 가족을 고생시키면 안 된다고 하면서 독신주의를 선언했어요. 그래서 두 독신주의자가 맘 놓고 같이 다니다가 결혼을 하게 됐어요."

 

 

김성녀 : "손진책 씨는 여자들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도 안 걸고, 늘 작품 얘기만 하는 진지한 청년이었어요. 저는 잘 웃고 까부는 스타일이었고요."

 

김성녀 : "연극이 끝나고 술자리에 가면 저는 항상 크게 웃어요. 그러면 손진책 씨가 성냥개비를 잘라서 던지는 거예요. 웃지 말라고, 너무 넘친다면서 저를 자제시켰던 거죠."

 

김성녀 : "그러다가 한네의 승천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 술을 마셨는데 감정이 격해지면서 그렇게 눈물이 났어요. 술이 취해서 통곡하는데, 그 다음 날 손진책 씨가 전화로 3일 동안 근신해! 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뭔데 그러나 싶었는데, 그 후로 미술관이나 음악회에 같이 가면서 만남을 가졌어요"

 

김성녀 : "근데 저희는 데이트 하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손진책 씨는 늘 예술에 대해서 얘기했고, 좋은 배우 만들기 프로젝트로 들어간 것처럼 저를 대했어요."

 

김성녀 : "늘 아주 작은 소줏집 같은데만 데려가고, 통행금지 걸릴까봐 뛰고, 돈이 없으니 택시를 태워 보낸 적도 없고, 매너가 전혀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게 연애인가 싶었죠."

 

김성녀 : "그러다가 어느 날 사고사 생겼어요. 저녁에 술을 마셨는데 통행금지 시간을 넘긴 거예요. 그날 저희 큰 아이가 생겼죠. 독신주의자 둘이 만나서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결혼했어요."

 

김성녀(배우) 남편 손진책 자녀 아들 딸

 

배우-김성녀

 

두 사람은 그렇게 약 1년여의 열애 끝에 1977년 결혼에 골인, 이후 딸 1명과 아들 1명을 자녀로 두게 됩니다. 딸 손지원은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기도 했고, 아들 손지형은 연극 연출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성녀(배우) 남편 손진책 결혼생활

김성녀 : "결혼할 땐 둘 다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순수한 마음으로 가난한 연극쟁이에다가 8남매의 장남인 사람에게 겁도 없이 시집을 갔죠. 저는 순수한 걸 좋아하는데요. 손진책 씨가 참 순수하고 계산을 몰랐어요."

 

김성녀 : "돈을 모르고, 하늘의 별을 따는 사람 같은 연극인들의 삶 자체가 저에겐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고생하더라도 같이 해보자는 마음에 결혼을 했어요."

 

배우-김성녀

 

김성녀 : "그런데 그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경제적 어려움도 어려움이었지만 8남매의 맏며느리로서 사람들과 거미줄처럼 얽힌 게 정말 힘들었어요. 남편은 영주 안동 쪽이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제사가 1년에 12번이 넘었어요. 그리고 제가 하는 연극을 딴따라라고 생각하는 집안이라 무시도 당했어요."

 

김성녀 : "회가 용광로에 몇 번 들어갔다 나오면 강철이 되잖아요. 결혼 생활 10년 하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결혼 생활 10년 하고 나서는 사막에 갖다놔도 살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제가 어린 나이에 결혼했으면 이혼을 생각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김성녀 : "한계점까지 일하다가 뛰어가곤 했죠. 일하고 오면 밤에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해야 했어요. 그리고 시댁 식구들과 같이 살았는데 제가 늦잠을 자면 어머니가 딸들 이름을 그렇게 부르셨어요."

 

김성녀 : "저더러 일어나라는 거죠. 제가 일어나면 조용해지셨어요. 그리고 시누이들이 제 옷을 맘대로 입고 다니는 거예요. 그래서 가족회의에서 얘기를 했는데요, 어떻게 저런 얘기를 할 수 있냐면서 어머님과 시누이들이 다 나가버리셨어요."

 

김성녀 : "그 시절엔 그런 게 안 먹혔던 거죠. 그 후로 제가 입을 다물었어요. 근데 저에게도 잘못이 있었어요. 말하는 방법론에서 틀렸던 거죠. 자존심 상하는 얘기를 대놓고 하면 안 되잖아요. 살짝 불러서 얘기하든가 해야지."

 

김성녀 : "손진책 씨는 우리 엄마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분이라고 말했는데요, 아들한테는 모든 엄마가 법없이 살 수 있죠. 근데 며느리한테는 법이 있어요. 그래도 좋은 어머님이긴 하셨어요."

 

김성녀 : "내가 좀 더 지헤로웠다면 어머님을 제 쪽으로 잘 끌어들일 수 있는 노하우를 찾았을 텐데, 그때만 해도 억울한 생각만 머리에 가득 찼어요."

 

 

김성녀 : "그러니까 퉁명스럽게 대하고, 말도 잘 안하고, 어머님도 고달프셨겠죠. 어머님 입장에서는 내가 8남매를 키웠는데 며느리까지 키워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드셨을 거고, 또 둘이 나가서 일하는데 벌어오는 것도 별로 없고."

 

김성녀 : "그러다가 10년 만에 어머니하고 단독으로 붙었어요. 제가 불평불만을 다 털어놓았더니 어머니가 미안하다 너에게 잘못했다. 그래도 난 딸들보다 너한테 용돈 받는 게 제일 좋다. 앞으로도 너한테 용돈 달라고 하겠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두 사람 마음이 탁 통했어요."

 

김성녀 : "그러고 나서 몇 년 후에 돌아가셨어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다 해야 해요. 처음에 좀 상처를 받더라도 그게 단련되면 서로 이해하는 공통적인 부분이 생겨야 해요. 전 처음에 참고 말을 안 하다가 10년이 흐른 거예요."

 

김성녀(배우) 근황

김성녀는 현재 연극 장수상회에 출연하고 있는데요, 이외에도 올해 연극 벽속의 요정(1인 32역) 무대와 오는 10월 김성녀의 마당놀이에도 서게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게 된 배우 김성녀인데요, 앞으로도 꾸준한 활약과 다양한 분야에서 좋은 모습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배우 김성녀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 추천 글 -> 이순재 <나이 과거 아내(부인) 논란 근황>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