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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윤복희가 9월 26일 TV조선 트롯올스타전에 출연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방송에 나와 근황을 알린 가수 윤복희인데요, 이에 가수 윤복희 나이 집안 과거 프로필 결혼 이혼 전남편 자녀 근황 등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가수 윤복희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윤복희(가수) 집안 오빠 윤항기 어린시절 과거


윤복희는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했지만, 부모님이 일찍 세상을 떠나면서 어린 나이에 오빠 윤항기와 함께 고생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합니다.
오빠 윤항기의 회고에 따르면, 어머니는 한국전쟁 중 그가 10살 때 먼저 세상을 떠났고, 불과 3년 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남매는 의지할 곳이 없어 결국 서울 청계천 일대를 떠돌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 시절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끝없는 배고픔이었다고 합니다.
윤항기 : "우리 남매가 어쩔 수 없이, 원치 않게 당장 잘 곳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서 청계천을 떠돌게 됐다. 힘든 시절 먹었던 꿀꿀이죽을 잊을 수 없다."
윤항기 : "꿀꿀이죽이 뭐냐면, 미군 부대에서 식사하고 난 잔반이다. 그걸 시장에서 사는 사람이 있다. 끓여서 파는 거다. 그걸 먹는데 그 안에 담배꽁초, 시가꽁초, 이쑤시개 어쩔 때는 깨진 유리 조각이 나온다."
윤항기 : "복희가 그 앞에 철퍼덕 앉아 오빠, 나 배고파. 이거 먹으면 좀 좋겠어라며 막 우는 거다. 돈이 있어야지. 돈이 있어야 사주지. 그래서 복희야 가자 했다."
윤항기 : "마침 그때 어떤 할머니가 그 꿀꿀이죽을 사서 우리 앞에서 걸어가다가 넘어진 거다. 뜨거운 줄도 모르고 땅바닥에 쏟아진 꿀꿀이죽을 거지 깡통에 담아서 복희 손을 잡고 저 쪽으로 가서 먹었다."

윤복희 : "어려서부터 힘들어서 7살 때 자살을 2번 하려고 했다. 죽으면 춥지도 않고 배도 안 고플 것 아닌가. 단순한 생각이었다. 칼끝이 따갑고 간지러워 못 죽었다."
윤복희 : "여관에서 일을 하면 손님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었다. 요기가 되더라. 허기만 채우고 이슬만 피하면 괴로운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7세 때 터득했다."
이런 극심한 가난과 결핍 속에서도 두 남매를 붙잡아준 건 다름 아닌 음악이었습니다. 윤항기는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지만, 타고난 재능이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음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이 곧 생명줄이자 삶 자체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윤복희(가수) 데뷔 앨범 작품 활동




윤복희는 1952년 여섯 살 때 뮤지컬 ‘크리스마스 선물’로 데뷔하며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후 1963년 루이 암스트롱과의 인연을 계기로 해외에 진출해 필리핀, 홍콩, 유럽을 거쳐 1964년부터 1976년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활동하며 세계적인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 시기 윤복희는 베트남 위문 공연에도 참여했고, 1967년에는 ‘웃는 얼굴 다정해도’ 등 음반을 내며 가수로도 활약했습니다. 윤복희는 또 한국에서 미니스커트를 유행시킨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967년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습이 화제가 되며 사회적 논란과 함께 전국적인 유행으로 번졌습니다. 당시 계란 세례 루머까지 돌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훗날 본인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1979년에는 오빠 윤항기가 작곡한 ‘여러분’으로 서울국제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대통령 앞 공연에서 ‘네가’라는 가사 문제로 한때 금지곡이 되기도 했지만, 훗날 해금되며 세대를 아우르는 명곡이 되었습니다.

윤복희는 뮤지컬 1세대 배우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마리아 막달레나 역을 비롯해 9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뮤지컬계의 대모’라는 명성을 얻었고, 영화와 애니메이션 더빙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건강 문제(삼차신경통)로 활동이 줄어든 상태인데요, 2022년 방송(특종세상)을 통해 “이제는 많이 좋아졌다”고 전하며 팬들에게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이후 화요일은 밤이 좋아 등 일부 음악 예능 등에 출연하기도 했고, 또 2024년 나루아트센터에서 생애 첫 서울 단독 콘서트를 열기도 했던 윤복희입니다. 이번에 트롯올스타전에 출연하여 반가운 근황을 알렸네요.
윤복희(가수) 결혼 첫 번째 남편 유주용 나이 집안, 누구?

윤복희의 첫 남편은 가수 유주용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김소월의 시에 곡을 붙인 ‘부모’로 인기를 얻은 가수였고, 경기고·서울대 화학과·연세대 대학원을 거친 수재 출신이었습니다. 부유한 집안 배경(아버지는 독일 유학파 의학박사, 어머니는 독일인)까지 갖춘 엘리트였죠.
윤복희(가수) 첫 번째 남편 유주용 결혼스토리, 결혼생활, 이혼 사유

두 사람은 20대 초반에 만나 연애를 했고, 1968년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시댁의 사랑을 받으며 순탄한 나날을 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윤복희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때문에 결혼하면 전업주부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지만, 유주용은 아내의 재능을 살려 계속 활동하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매니저 역할을 자처했으나, 이러한 차이가 갈등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특히 남진과의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부부 사이의 불화가 커졌고, 유주용이 아내를 믿지 못한다는 생각에 홧김에 이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윤복희 스스로도 “그때 남편의 순정을 시험하려다 큰 잘못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두 사람이 1985년에 이혼했으나, 윤복희는 일찍이 사실상 결별 후 혼자 살아왔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윤복희(가수) 재혼 두 번째 남편 남진 이혼, 이혼사유

이후 윤복희는 1976년 스캔들의 당사자였던 가수 남진과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 생활은 길지 못했고, 불과 3년 7개월 만인 1979년 3월 파경을 맞았습니다. 실제 동거 기간은 약 6개월에 불과했다고 그녀가 나중에 밝히기도 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의 결혼은 루머와 오해가 얽히며 사회적 파장이 컸습니다. 남진이 윤복희를 폭행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고, 남진은 끝내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은 채 모든 비난을 감수했습니다.

훗날 윤복희는 "남편(유주용)을 향한 홧김에 남진의 사랑을 이용한 것"이라며 죄책감을 고백했습니다.
다만, 유주용과의 혼인 관계가 법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진과의 결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중혼 관계가 되어 남진과의 결혼은 원천 무효가 되었습니다.
윤복희(가수) 독신 근황
윤복희는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이후 지금까지 독신으로 지내고 있는데요, 그녀는 한 방송에서 첫 남편 유주용과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윤복희 : “10년 결혼생활과 연애 기간을 포함해 20년을 알고 지낸 사람, 오빠 같은 존재였다.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잘 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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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복희(가수)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가족 종교 학력

가수 윤복희의 본명은 윤복기입니다. 윤복희의 나이는 1946년 3월 9일생으로 올해 나이 76세입니다. 윤복희의 고향은 충청남도 보령시이며, 가족으로는 큰 오빠 윤영기, 작은 오빠 가수 출신 목사 윤항기, 언니 윤수현이 있습니다.
윤복희 종교는 개신교(장로교)이며, 윤복희 학력은 한양대학교상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이후 서라벌예술대학교 무용과에 입학했지만 중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