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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가수) <나이 과거 부인(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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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가수) <나이 과거 부인(아내)>



<박상철 불후의 명곡 첫 출연>



가수 박상철이 불후의 명곡에 처음 출연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3월 7일 방송된 KBS2 불후의 명곡 KBS의 아들과 딸 특집에는 전국노래자랑이 낳은 스타 박상철이 출연했는데요, 27년 전 박상철은 전국노래자랑 삼척 편에서 화려한 날은 가고 를 불러 최우수상을 수상한 이후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당시를 기억하며 박상철은 전국노래자랑 최우수상을 받으면 지역 축제에서 향토 가수가 된다 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어 박상철은 "우리 전국노래자랑 은 송해 선생님이 전설 그 자체다. 든든하다"며 전국노래자랑 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또 하나의 KBS 프로그램과의 인연은 6시 내 고향이다. 박상철은 "리포터를 13년 정도 했다. KBS가 아주 편안한 곳이 됐다"고 소개했습니다. 


박상철의 메가 히트곡 무조건은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 중 하나인데요, 박상철은 불후의 명곡 첫 출연 소감으로 전국노래자랑 얘기를 하면 제가 안 나와선 안 되지 않겠나. 무조건 달려왔다"고 센스 있게 말했습니다. 



화려한 의상을 선보인 박상철은 "모든 출연자들의 무대가 긴장된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이날 방송에서 박상철은 무조건과 윤수일의 아파트를 불렀습니다. 



<박상철 프로필>



-박상철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박상철은 1969년 1월 19일생으로 올해 나이 53세입니다. 박상철 고향은 강원도 삼척시이며, 박상철 학력은 삼척초등학교, 삼척중학교, 삼척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상철 데뷔 전 과거, 미용사, 전국노래자랑 참가


박상철은 한 때 아줌마들 사이에선 그 인기가 가히 폭발적이었던 트로트계의 서태지라 불릴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신세대 트로트가수로 알려졌었는데요, 하지만 그 화려한 이면에는 눈물로 점철된 세울이 적지 않은 가수라고 합니다. 


박상철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나서 무일푼으로 가족들 몰래 기차에 몸을 실은 것이 고생길의 시작이었다고 합니다. 서울에 도착해 박상철이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작곡가 사무실, 오디션을 본 후 "당장 음반을 취입해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박상철의 가수 되기는 비교적 순탄해 보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는데요, 음반을 취입하는데 대략 1천만원의 돈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고향집이 20만원 정도였으니 그에게 1천만원은 상상을 초월하는 크나큰 액수였습니다. 



그래도 꿈에 그리던 가수만 될 수 있다면 못할 게 없던 박상철은 돈을 벌기 위해 공사현장을 찾았고, 어렵사리 일자리를 얻어 주말에도 그리고 몸미 아픈 날도 쉬지 않고 일해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고 합니다. 


단시간에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월세도 아껴야 했기에 잠은 아파트 계단에서 해결하고, 끼니 건너뛰기를 밥먹듯 하며 악착같이 1천만원이라는 큰 돈을 수개월만에 모았다고 합니다. 


'일당으로 받은 돈을 헝겊으로 싸 허리춤에 묶고 다니던 기억이 나요. 꿈에 그리던 1천만원을 손에 쥐던 날 그날로 곧장 작곡가 사무실로 뛰어가 작곡가에게 덮석 돈을 안겼죠. 그런데 돈만 주면 금방이라도 음반을 내줄 것처럼 굴던 작꼬가는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그렇게 몇 달이 지나도 앨범을 내줄 생각을 안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참다 못해 대체 왜 음반을 안 내주는 거냐 따져 묻기까지 했어요. 그랬더니 오히려 되려 절 호통치더군요. 지금껏 내가 가르쳐준 수업료만 따져도 얼만데 건방지게...라면서요. 한마디로 사기를 당한 거에요. 당시엔 드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죠"



어렵게 마련한 돈을 고스란히 사기당하고만 박상철은 자포자기했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 빌딩 계단과 지하도를 오가며 행인들이 던지고 간 동전 몇 개로 끼니만을 간신히 이어가는 거리의 노숙자로 전락해버린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잊으려 하면 할수록 노래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만 갔고 그는 가수로 성공하는 그날을 위해 다시금 이를 악물었고, 힘겹게 미용기술을 익히며 재기를 시도, 결국 헤어디자이너로 성공하게 되었답니다. 


박상철은 "하루는 명동 거리를 지나는데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온 여자들이 어쩌면 그렇게 많던지요. 단시간에 돈을 벌어 가수의 꿈을 이루려면 저거만한 게 없겠다 싶었죠. 게다가 당시 남자 미용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때였어요. 틉새시장을 공략하면 성공하겠다 싶어 미용일을 시작했어요"라고 했습니다. 



박상철은 미용사 자격을 취득한 뒤 고향 삼척에 내려가 직접 미용실도 차렸다고 합니다. 당시 박상철의 별명은 노래하는 미용사였다고 합니다. 노래에 대한 애착을 버릴 수 없었던 그는 미용실에 개인 노래방 기계를 설치, 손님들에게 서비스로 노래를 불러주었고, 그의 뛰어난 미용 솜씨와 멋들어진 노래가 어우러지면서 그는 금세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박상철 데뷔, 이후 무명시절 활동


어느정도 헤어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은 박상철은 천신만고 끝에 작곡가 박현진을 만나 앨범 제작의 가능성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1992년의 일이었는데요, 박현진 작곡가는 네박자, 있을 때 잘해, 야간열차 등을 작곡한 트로특에 히트 메이커로 그는 색깔 있는 가수 박상철의 가능성을 일찍부터 점쳤다고 하네요. 


이후 박상철은 1993년 7월 25일 전국노래자랑 강원도 삼척 편에 출연하게 되었고 유열의 화려한 날은 가고를 불러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미용사를 그만두고 2000년에 본격적을 1집 앨범을 발표하며 가수로 데뷔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박상철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반짝 스타로 알고 있지만 알고 보면 박상철은 준비된 스타라고 하네요. 1992년부터 박현진 작곡가로부터 본격적인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해 데뷔 앨범을 내기까지 장장 8년 동안 삼척과 서울을 오가며 연습에만 매달렸다고 합니다. 


박상철이 데뷔 앨범이 늦어진 건 실력이 모라자서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 사이 작곡가 박현진은 그에게 앨범 제작 제의도 수차례 건넸다고 합니다. 하지만 뛸 듯이 기뻐할 줄 안 박상철은 웬일인지 아직은 때가 아니라 며 연구푸 사양했다고 합니다. 


"제가 엘범을 준비하던 당시는 서태지와 아이돌의 등장으로 가요계가 온통 댄스 일색이었어요. 그 상황에 제가 설 자리는 없다고 판단했죠. 당시엔 저도 젊었느니 "그럼 댄스 가수로의 전향도 고려해볼만하지 않았겠냐?"고 반문하는 분도 게실거에요. 하지만 전 시류에 편승해 득을 보기보단 개척자가 되길 바랐습니다. 당시 제 판단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옳았다고 생각해요."



박상철의 데뷔 타이틀 곡이었던 부메랑은 박현진이 작곡한 경쾌한 리듬을 가진 트로트였지만 그렇게 주목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가수의 꿈을 좇아서 왔던 박상철은 데뷔 직후 부터 무명시절을 겪어야만 했다고 하는데요, 



박상철은 2002년 10월 2집 앨범 자옥아를 발표했습니다. 자옥아는 작곡가 박현진이 작곡하여 가수 이태호가 부른 자옥이를 리메이크한 곡인데요, 박상철은 혼자서 방송 3사 라디오국을 드나들며 노래를 홍보했습니다. 


-박상철 라디오부터 알려지기 시작, 리포터 배우 등 다양한 활동


그래서 먼저 박상철의 노래 자옥아가 라디오로 부터 방송되기 시작하여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아직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 동대문의 두타, 밀리오레 등 행사장에 출연했고 문화센터 노래 교실에 나가서 노래를 배우려는 주부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리포터 배우 등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요, 특히 뉴 논스톱, 이것이 인생이다. TV는 사랑을 싣고, 사랑과 전쟁, 타임머신,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솔로몬의 선택, 6시 내 고향, 내 사랑 못난이, 아내의 유혹, 경숙이 경숙 아버지 등에서 재연배우로 자주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박상철 히트곡 무조건


무조건은 경쾌한 리듬과 빠른 박자, 가창력을 필요로 하는 이곡은 처음에는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박상철이 아이돌 버전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을 뚫었다고 하네요. 




음악 전문 채널에 자주 나가면서 박상철은 젊은 팬들이 자연스럽게 무조건을 알게 됐고,이렇게 조금씩 시간이 흐르자 급기야는 연예인들까지 SBS 도전 1000곡 이라는 프로그램에나와 무조건 을 부르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트로트계의 황태자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며 2006년 제 6회 대한민국 전통가요 남자최고가수상, 제 16회 서울가요대항 성인부문 본상을 수상하였고 장윤정, 박현빈과 함께 트로트계 신트로이카로 불리며 국민가수로 떠올랐습니다. 



박상철의 무조건이 로고송으로까지 사용되면서 대한민국의 애창곡으로 불릴 만큼 장윤정의 어머나 열풍에 이어 무조건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박상철 이후 발표한 앨범과 대중들의 반응


박상철은 2007년 싱글앨범 꽂바람을 발표하였는데 이 노래는 SBS 아침드라마 사랑하기 좋은 날 OST로 선공개되어 인지도를 얻었고, 이어 같은 해에 발표한 4집 앨범 황진이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박상철은 대한민국 노래방 애창곡 순위 중 트로트 분야에서 1위를 기록하였습니다. 




현재 박상철은 주요 히트곡 자옥가, 무조건, 황진이, 등을 가지고 각종 행사와 무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박상철은 2010년 6월에는 강도범을 잡아 이슈가 되었으며 이에 대한 포상을 경찰청 명예경찰관으로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박상철은 2011년 발표한 6집 앨범의 수록곡 너무 예뻐, 노래방 이 연속으로 인기를 얻고 2014년 빈 깡통의 인기와 더불어 최근 MBC 가요베스트 대제전에서 국민애창곡상, 베스트 가요상을 수상했습니다. 박상철의 주요 노래로는 무조건, 부메랑, 황진이, 자옥아, 빵빵 등이 있습니다. 


-박상철 영화 전국노래자랑에서 박봉남 역의 실제 모델


박상철은 2013년 이경규가 제작한 영화 전국노래자랑에서 김인권이 맡은 박봉남 역의 실제모델로 밝혀졌습니다. 



-박상철 부인(아내) 아들 구윤


박상철 부인(아내)은 김점숙씨로 박상철 헤어아트 미용실을 같이 했던 사이라고 하네요. 박상철은 강원도 삼척시 남양동에 박상철 헤어아트 라는 미용실을 차렸고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후에는 미용사는 그만뒀지만 현재까지도 박상철 헤어아트 미용실은 존재한다고 합니다. 




박상철 이혼은 루머로 위에서 말했듯이 박상철이 인기가 높아지다보니 돌기 시작한 루머에 불과합니다. 박상철은 자옥아로 인기를 얻을 당시 이런 소문이 돌아 아내와 함께 방송에 나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박상철과 부인 김점숙 씨 슬하에는 딸 2명, 아들 1명이 있다고 합니다. 


-박상철 박구윤과 인연


박상철은 또한 후배 가수 박구윤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요, 박상철은"박구윤의 아버지 박현진 선생님이 내 노래 황진이, 무조건, 자옥아를 만드신 분이다"고 밝혔습니다. 



박상철은 "내가 무명시절 박현진 선생님을 따라다닐 때부터 보던 사이다"며 "지감은 가요계 선후배 사이가 됐지만 만나면 생각나는 추억이 많다"고 박구윤을 챙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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