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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나이 부인(아내) 딸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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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나이 부인(아내) 딸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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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축구선수), 이영표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종교 학력 별명 


이영표는 1977년 4월 23일생으로 올해 나이 44세입니다. 이영표 고향은 강원도 홍천군 내면 창촌리 출생이며, 가족으로는 부인(아내) 장보윤 씨와 딸 이하엘 양과 이나엘 양이 있습니다. 




이영표는 키가 177cm라고 하구요, 이영표 종교는 개신교로, 다녔었던 교회는 경기도 군포시 영광교회를 다녔었다고 합니다. 이영표 학력은 안양초등학교, 안양중학교, 안양공업고등학교,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영표는 반짝이는 눈을 묘사해서 흔히 초롱이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요, 빠른 스피드로 인하여 바람 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또한 한 때,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에는 이영표길이 생기기도 했었는데요, 그만큼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이영표(축구선수), 이영표 축구선수 데뷔 및 경력


이영표는 2000년 드래프트 1순위로 안양 LG 치타스(현 FC 서울)에 입단해 프로로 데뷔하여, 그 해 K리그 우승과 2001년 K리그 준우스으 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영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큰 공헌을 하여 많은 찬사를 받았는데요, 이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를 따라 2003년 1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로 진출해 PSV 에인트호번에 6개월 임대된 후 완전 이적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초반부터 좋은 활약을 펼쳤고, 특유의 성실함까지 더해져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풀백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2004-200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박지성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로 4강에 진출하였고, 그 과정에서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이영표는 이후 유럽 빅리그에서 러브콜이 이어졌고, 결국 2005년 8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훗스퍼로 이적, 두 시즌 동안 팀 내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영표는 2006년 측면 수비수의 영입을 노리던 이탈리아의 명문 AS 로마의 제의를 받아 합의가 끝난 상황에서 개인적인 이유로 이탈리아행을 막판에 거부를 하면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었습니다. 



이영표는 이후 이영표를 영입한 마틴 욜 감독이 떠나고 새로 부임한 감독이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점차 기회를 잡지 못하고 전력 외 선수로 분류되며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요, 이후 시즌이 끝나면서 결국 2008년 8월 독일 분데스리가의 부루시아 도르트문트로의 이적이 확정되어 새 팀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였습니다. 


-이영표(축구선수), 이영표 은퇴


이적 후 이영표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이후 부상을 입은 뒤 점차 기회를 잡지 못했고 이후 2009년 7월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스리그의 알힐랄로 이적, 2011년 선수경력을 마감했습니다.



이후 이영표는 친정팀 FC 서울이 복귀를 요청하였지만 은퇴 후 스포츠 비즈니스와 행정쪽으로 진로를 고심한 끝에 거절하고 2011년부터 메이저 리그 사커의 밴쿠버 화이트캡스 FC에서 뛰었으며 2013년 10월 28일 시즌 최종전에서 공식적인 은퇴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후 11월 15일 대한민국과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또 한 번 은퇴 행사를 가지고 마지막으로 친정팀인 FC 서울에서 은퇴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영표(축구선수), 이영표 국가대표팀 선수 경력


이영표의 국가대표 경력으로는 1999년 6월 12일 코리아컵에서 멕시코와의 경기로 A매치 데뷔전을 치뤘고, 2002년 피파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활약했으며, 또 2002년 아시안 게임에 이운재, 김영철과 함께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어 준결승 이란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갔다가 이영표가 찬 공이 아쉽게 골대를 맞게 되어 이란에 패하게 되었고, 결국 3위 결정전으로 가게 되어 태국을 이기고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후 2010년 6월 피파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4경기 모두를 뛰었고, 2011년 1월에 개회된 아시안컵에 출전, 6경기 모두 뛰며 대한민국 최고의 풀백으로써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영표는 은퇴 이후 2014년 피파 월드컵에서 KBS의 해설위원을 담당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경기결과를 적중시켜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요, 점수는 일부 적중시키지 못하기도 했지만 승패 결과는 대한민국 대 알제리, 브라질 대 독일 준결승전과 아르헨티나 대 독일 결승전을 제외하고모두 맞혔습니다. 


-이영표(축구선수), 이영표 결혼 부인(아내) 나이(차) 직업


이영표는 지난 2003년 6월 6일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지금의 부인(아내) 장보윤 씨와 결혼을 했는데요, 이영표 부인(아내) 장보윤 씨는 이영표보다 1살 연하로, 건국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한때 기독교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이영표는 부인(아내) 장보윤 씨가 인터넷 방송국에서 일할 당시 인터뷰를 하며 사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에 대해 이영표는 "아내(부인)가 대학 시절 신방과에 재학 중이었다. 아내(부인)가 대학교 4학년 때 방송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당시 프로선수였던 나를 취재 왔었다"



"처음에는 사귄 게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만나다보니 좋아져 프로포즈를 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교회를 중심으로 3년간 연애를 하다가 2003년 6월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는데요, 두 사람은 종교가 서로 같기 때문에 더 빨리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고 하네요. 이영표는 결혼 전 따로 프로포즈는 준비하지 않고 그냥 결혼하자고 한마디만 했다고 합니다. 


이영표는 결국 부인(아내) 장보윤 씨가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 부인(아내)와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고, 결혼 이후 두 사람은 딸만 둘을 낳았는데요, 이영표 장보윤 부부는 딸의 이름을 이하엘, 이나엘로 지었다고 하네요. 




하엘이라는 말의 뜻은 오직 한 분쭌인 하나님이라는 뜻으로 이영표가 딸의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을 보면 그의 신앙심이 상당히 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영표는 축구선수 중에서도 신앙심이 싶기로 유명하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이영표는 고아원을 후원하고 북한 염소보내기 운동에도 동참하는 등 여러 가지 사회 활동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이영표는 또한 가족들도 늘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는데요, 이에 대해 이영표 부인(아내) 장보윤 씨는 "원정경기나 전지훈련 등으로 떨어져 있게 되면 두툼한 편지 뭉치를 서로 나누곤 해요. 몰래 성경책에다 껴 놓기도 하고, 옷 주머니에다 편지를 넣어 두기도 하죠"


"떠나는 사람은 집안 구석구석 흔적을 남기고, 보내는 사람은 두툼한 편지를 써서 늘 함께 있는 기눕이 들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아요. 남편이 준 편지를 읽고 감동받아 답장을 쓰려고 하면 어느새 남편이 출장 경기를 끝내고 집으로 오는 걸요"라고 하며,



이어 이영표 부인(아내) 장보윤 씨는 "남편은 연애 때부터 자신의 별명이 이한결 이라고 했어요. 늘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뜻이죠. 그리고는 머쓱한지 혼자 킥킥 거리며 웃곤 했어요. 그런데 그 말이 정말 사실이었어요. 연애할 때나 임신 중일 때나 지금이나 늘 제 옆을 지켜주는 사람이에요"



네덜란드에 있을 때 임신 중에 화이트데이가 있었어요. 그날 남편이 제 이니셜을 넣은 초콜릿을 주더군요.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초콜릿을 선물받아서 기쁘기도 했지만 그것을 스스로 만든 것이 뿌듯해 방실방실 웃던 남편 모습이 더 기억에 남는 거 있죠"


"가끔 작은 선물들, 예를 들어 소속팀 식당에서 삶은 계란을 가져오기도 하고 선수들에게 나눠 준 껌을 네덜란드에서 제일 맛있는 껌이라며 쭈듯한 표적으로 제 손에 건넬 때 남편 모습은 귀엽기까지 해요. 그런 모습을 떠올리면 남편이 더 보고 싶어지죠"라고 하며 남편 이영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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