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소신발언, 나이 부인들(이숙희 김지미 정수경) 이혼 근황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소신발언 작심비판>
-나훈아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시청률 기록
올레 TV 실시간 채널 순위에서 2020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시청률이 70%를 넘겨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나훈아는 9월 30일 KBS 추석 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비대면 공연으로 15년 만에 방송에 출연했는데요, 코로나 19 장기화로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다시 한번 힘을 내자는 취지로 마련된 만큼 나훈아는 출연료 없이 공연에 임했다고 합니다.
지난 23일 열린 비대면 공연은 단 1000명에게만 온라인 방청권이 주어졌고, 세계 각국에서 신청이 쏟아져 서버가 한동안 다운되기도 했는데요, 방송에 공연다운 실감을 더하기 위해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심지어 다시보기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날 나훈아는 2005년 이후 무려 15년만에 처음 TV에 나와 말그대로 무대를 씹어먹을 듯한 카리스마와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보이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는데요,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위해 출연료 없이 나왔다는 나훈아는 홍시, 무시로, 잡초, 영영, 사내 등 수많은 히트곡을 한치의 흔들림없이 열창한 것은 물론, 중간중간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드러내 눈길을 끌었습니다.
-나훈아 소신발언, 작심비판
특히 제 2부 사랑 편에 청바지에 통기타를 들고 등장한 나훈아는 깜짝 MC로 등장한 김동건 아나운서와 대화 중 공영방송 KBS를 에둘러 씀소리를 함과 동시에 소신발언을 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KBS는 국민을 위한 방송이지요? 두고 보세요. KBS는 앞으로 거듭날 겁니다" 또한 나훈아는 코로나 방역의 영웅인 의사와 간호사들을 칭송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많이 힙듭니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습니다. 옛날 역사책을 보면 제가 살아오는 동안 왕이나 대통력이 국민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 저기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이 나라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 모두가 다 보통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IMF때도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습니까.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 팔고, 나라를 위해서.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입니다.
2부, 3부에서 이어진 나훈아의 묵직한 입담에 시청자들은 "역시 나훈아다. KBS는 국민의 방송이 되라는 나훈아의 말을 명심해라, 나훈아씨가 오른 KBS에 거듭나라고 말하던데 사장이 잘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훈아가 진짜 애국자다" 같은 댓글을 쏟아냈습니다.
"나라가 주는 훈장을 사양했다고 하더라"는 김동건 아나운서 질문에 나훈아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월의 무게가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무거운데 어떻게 훈장까지 달고 삽니까. 노랫말 쓰고 노래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합니다."
나훈아는 또한 언론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습니다. "저를 보고 신비주의라고 하는데 가당치 않습니다. 언론에서 만들어낸 것이죠. 가수는 꿈을 파는 사람입니다. 꿈이 고갈된 것 같아서 11년간 세계를 돌아다녔더니 저더러 잠적했다고들 하대요. 뇌경색에 걸려 혼자서는 못 걷는다고도 하고요 . 이렇게 똑바로 걸어다니는 게 아주 미안해 죽겠습니다. 하하!"
나훈아는 또 노래는 언제까지 부를 것이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내려올 자리나 시간을 찾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제는 내려올 시간이라 생각하고, 그게 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나훈아 언급한 위정자의 뜻
나훈아가 위정자를 언급하면서 위정자는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냈는데요, 위정자라는 말의 뜻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나훈아가 "국민의 힘이 있으면 위정자가 생길 수가 없다"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재 위정자들 곧 제대로 못하는 거짓된 정치인을 두고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번 공연은 나훈아가 KBS 측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굳이 노개런티로 하겠다는 것도 그렇고, 또 재방송을 안하는 조건으로 했다는 것을 보면 뭔가 작심하고 나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재방을 안하는 조건은 물론 희소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일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이번 공연을 통해 언급한 나훈아의 소신발언 작심발언은 현 정부에 대해 힘들어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을 감동케 할 만큼 시원한 발언이었고, 정치권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였으니까요.
참고로, 2020 나훈아 콘서트는 재방송계획이 없었으나, 워낙 뜨러운 열풍이 일자 10월 3일 밤 10시 30분에 스페셜 편을 편성하기로 했는데요, 방송 비하인드 영상과 더불어 본방송 내용을 함께 편집해 방송하기로 했답니다. 본방송 시간이 약 2시간 30분 정도가 되었는데 스페셜 편에서 전부 다 방영이 될지 모르겠는데요, 문제의 발언부분도 다 재방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나훈아 소신발언 행보, 남북정상회담 사전행사 불참
나훈아의 소신 발언과 행보, 그리고 자유로운 영혼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사전행사로 열린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에 나훈아가 참석하지 않으면서 일찌감치 화제가 됐었는데요, 평양을 방문한 도종환 당시 문체부 장관에 따르면,
나훈아가 평양에 오지 않은 것을 의아해하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스케줄이 바빠서 못 왔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이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지었다고 합니다. 국가가 부르는데 어떻게 오지 않을 수 있느냐는 의문이었다고 하네요.
-나훈아 소신발언, 삼성 이건희 거액초청 거절 일화
또한 나훈아의 이러한 소신 있는 말과 행동은 지난 2007년에도 있었는데요, 2007년 10월 이른바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한 변호사(삼성을 생각한다는 책을 펴냄)는 삼성 일가와 가수 나훈아에 얽힌 일화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책에는 이건희 전 회장과 삼성을 둘러싼 다양한 일화가 실려 있는데요, 연예계와 예술계에 얽힌 일화도 들어 있답니다. 나훈아와의 일화도 그 중 하나인데요, 이 책에 따르면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일가의 파티에는 연예인, 클래식 연주자, 패션 모델들이 초청됐는데, 가수의 경우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2-3곡을 부르고 3000만원쯤 받았다고 합니다.
이 전 회상 일가의 파티 초청을 거절하는 연예인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나훈아는 삼성 쪽에서 아무리 거액을 주겠다고 해도 나훈아를 불러 노래를 부르게 할 수는 없었다고 하네요.
나훈아는 대략 이런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으면, 공연장 표를 끊어라" 고 했다고 하네요. ^^
<나훈아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가족 학력 소속사 과거 결혼(재혼) 부인들 이혼 아들 딸 근황>
-나훈아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가족 학력 소속사
나훈아의 본명은 최홍기라고 하구요, 나훈아 나이는 1947년 2월 11일생으로 올해 나이 74세입니다. 나훈아의 나이는 프로필 상으로는 1947년생이나, 실제로는 1950년생이라고 하는데요, 남진은 나훈아가 1951년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하네요.
나훈아 고향은 부산 동구 초량동이며, 2남 2녀 중 차남으로, 현재 가족으로는 아들 1명과 딸 1명이 있습니다. 참고로 남진의 사촌동생 나진기는 가수로 본명은 최진기라고 합니다.
나훈아는 키 175cm에 몸무게 71kg, 혈액형은 B형이라고 하구요, 나훈아 학력은 초량초등학교, 부산대동중학교,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소속사는 나예소리 소속이라고 합니다.
-나훈아 과거, 데뷔 및 활동
나훈아는 과거 한때 경기도 의정부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이후 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성장했다고 하는데요, 학창시절의 나훈아는 노래를 좋아해 고향 뒷산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타를 즐겨쳤다고 하는데, 나훈아의 지인들은 나훈아가 악기를 다루는데 능숙하고 그 중에서도 피아노 실력이 수준급이라고 밝혔습니다.
나훈아는 1965년에 형을 따라 서울로 상경하여 서라벌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요, 고교 1학년 때 오아시스레코드와 계약하여 '천리길'을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습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간드러진 꺾기 창법이 매력적이었던 나훈아는 1968년에 발표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크게 히트했는데요, 트로트 보컬로 주로 유명세를 탔지만, 수많은 히트곡을 직접 작곡해서 히트시킨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답니다.
히트곡만 무려 120곡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노래방 반주기에 수록된 곡이 가장 많은 가수라고 하네요. 1970년대에는 남진과 함께 라이벌 구도를 이루었습니다.
나훈아는 히트곡의 숫자에서도 국내 최다는 물론이고, 앨범 발표수만 해도 무려 200장 이상, 800곡 이상의 자작곡을 포함해서 2600곡 정도의 취입곡을 자랑하는데요, 나훈아는 트로트의 황제라는 별명이 정말 잘 어울리는 가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이 가요계를 장악하면서 서로 경쟁을 벌여 보통 남진 아니면 나훈아가 가수왕상을 수상했는데요, 하지만 실제 방송사 기록을 보면 남진이 주로 1위와 동시에 가수왕상을 수상했고, 나훈아는 주로 2위를 한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나훈아는 남진과 달리 대부분 차분하고 조용한 노래를 선곡했으며 당시 무대에서 다양한 포즈와 꺾기 창법으로 트로트를 불러서 중년층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요, 나훈아 특유의 창법은 가요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으며, 수많은 가짜 나훈아를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나훈아는 건강을 회복한 뒤 1973년 비밀리에 공군에 입대하여 큰 화제를 불러 모았는데요, 군입대후 나훈아는 군악대에서 복무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훈아는 입대 직전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와 결혼했는데요, 전역을 1년 앞둔 1975년 이혼했다고 합니다.
나훈아 또 이후 김지미와 결혼발표를 하고 김지미의 고향인 충청남도 대전 신탄진에서 신혼집을 마련하여 거주하게 되었는데요, 그로 인해 방송에 출연하지 않던 나훈아는 1981년 대동강 편지를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복귀했으며,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고, 1982년에 김지미와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가수 출신의 정수경과 결혼한 후 1남 1녀를 두었답니다. 이후 나훈아는 1984년 조용필 다음으로 일본에 진출하여 데이자쿠레코드와의 계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나훈아는 1980년대 후반에는 방송에 잘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나훈아의 공연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방송에서 나훈아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명절 특집 프로그램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홍보와 마케팅에 집중하는 현대 가수들은 위험할 수도 있는 은둔 활동이라는 일종의 희소 가치는 그의 공연에 관객을 몰려들게 했고, 그의 존재감은 전설로 상승했습니다.
또한 나훈아는 서정적이면서도 슬픈 로맨틱한 자작곡을 불렀는데 갈무리, 영영,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홍시 가 대표적인 노래라고 합니다. 또한 나훈아의 자작곡 중 1987년 발표한 땡벌은 발표 당시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답니다.
나훈아는 지난 2000년에 강진이 리메이크하여 발표하였는데 역시 발표 직후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2006년 조인성이 비열한 거리에서 이 곡을 불러 화제가 되었고, KBS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에서 이승기가 극 중에서 어머니를 위호하는 곡으로 땡벌을 부르는 장면이 등장하여 인지도가 상승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나훈아는 2007년 9월 21일 방송된 KBS 뮤직뱅크에서 강진이 1위를 차지하며 땡벌은 발표된 지 20년 후에야 범국민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나훈아는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시대를 달리 하는 끊임없는 히트곡 양산과 더불어 작곡가 작사 능력으로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나훈아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약 2500여곡을 취입하고 정규 앨범 19장을 포함한 200여개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나훈아가 직접 작사하거나 작곡한 노래는 약 800여곡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답니다.
나훈아는 2007년 3월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예정된 콘서트가 갑작스럽게 취소되며 2006는 순회 콘서트가 나훈아의 마지막 할동이 되었고 이후 나훈아는 가요계에서 잠정 은퇴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에 남자의 인생을 발표하며 11년만에 가요계에 복귀했습니다.
나훈아는 이후 2017년 11월 3일부터 총 3일간 서울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에서 단독 공연을 선보였으며, 이후 서울 대구 부산 콘서트의 대흥행으로 2018년에는 20개 도시 전국투어를 추가로 개최하기도 했고, 이후 2019년 5월 17일부터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3일 무대를 시작으로 전국투어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나훈아는 지난 2020년 8월 20일 새 앨범 2020 나훈아의 아홉 이야기를 발표했는데요, 신보 나훈아 아홉이야기에는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 영자, 테스형, 딱 한 번 인생, 웬수, 감사,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모란동백, 엄니까지 총 9곡이 수록되었답니다.
-나훈아 스토커 테러
나훈아는 1972년 6월 4일, 어느 스토커 같은 이에게 테러당해서 한동안 입원한 적도 있는데요, 사이다 병 파편으로 왼쪽 얼굴을 찔려 무려 70여 바늘이나 꿰맸고 지금도 그 흉터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남진이 사주했다는 소문이 돌아서 한동안 논란이 되기도 했었는데요, 남진은 "재론할 가치조차 없다"고 잘라말했으며, 남진이 관련됐다는 증거도 없고 신기하게도 라이벌인 남진도 테러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훈아 기자회견 루머 해명
나훈아는 2008년 일본 야큐자와 여배우 K를 놓고 시비가 붙어 고자되기를 당했다는 헛소문이 돌았는데요, 헛소문이 너무 돌자 이런저런 의혹에 답변하고자 1시간짜리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정말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는데요, 기자회견을 어느 정도 진행하다가 "제가 여러분이 원하시는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하더니 웃통을 걷어부치고 단상 위로 올라갔고, 이윽고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증명해 주세요. 제가 지금 여기서 딱 5분간 보여드리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며 원한다면 아예 바지를 벗어 증명하겠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기자회견은 그가 단상에 올라갈 때부터 술렁이고 셔터가 미친듯이 터지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나훈아의 팬들이 나훈아를 굳게 믿는다고 외쳐서 바지를 내리지는 않고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 거침없고 적극적인 해명에 여배우K나 고자 스캔들은 싹 사라져버렸는데요, 나훈아는 추가로 인터뷰에서 "여러분 기자들이 팬으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라고 다시 한 번 강하게 비판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또한 나훈아는 한때 개그맨 황기순의 첫 번째 부인 불륜 상대가 나훈아였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는데 이 역시 그냥 루머인 채 끝났습니다. 또 지난 2012년 12월에는 인도와 티베트를 돌아다니며 심신을 달래고 있었다고 하네요.
<나훈아 (전)부인들(이숙희, 김지미, 정수경) 결혼(재혼) 이혼스토리 아들 딸 근황>
-나훈아 첫번째 결혼 부인(아내) 이숙희 이혼
나훈아는 결혼과 이혼을 세 번이나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나훈아는 1973년 입대 직전 배우 고은아(본명 이경희, 1946년생)의 사촌인 이숙희와 결혼했는데요, 이후 나훈아가 전역을 1년 앞두고 결혼 2년만인 1975년 이혼했답니다.
당시 나훈아는 한국 공군에 자원 입대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결혼생활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훈아 첫번째 부인(아내)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네요.
-나훈아 두번째 결혼(재혼) 부인(아내) 김지미 이혼
나훈아의 두번째 결혼은 세기의 결혼이라 일컬어지는 여배우 김지미와의 만남이었는데요, 인기가 절정에 올랐던 1976년, 나훈아는 전역한 후 얼마되지 않아 영화계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여배우 김지미와 결혼을 발표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요, 1976년 7월 10일자 경향신문은 "여배우 김지미(37)가 7살이나 연하인 가수 나훈아(30)와 결혼을 선언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나훈아와 김지미 두 사람 나이차는 나훈아는 1947년생으로 올해 나이 74세이고, 김지미는 1940년생인 80세로 나훈아보다 김지미가 7살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남진의 주장에 따라 나훈아 나이를 1950년생인 71세로 볼 때 나훈아와 김지미 두 사람 나이차는 10살이 났던 셈이네요. 다시 말해 나훈아는 당시 27살의 나이에 37세인 김지미와 결혼한 것입니다.^^
기사는 "전날 저녁 이들은 처음으로 양가의 부모들이 대면한 자리에서 결혼을 승낙받았다 고 밝혔다"면서 "이들이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72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렸던 스타의 밤 공연 때였다고 합니다. 서로가 연예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연예인이라는 생각에 뜻을 통하게 됐고 그 뒤 자주 만나왔다"고 전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처음부터 가시밭길이었는데요, 나훈아 전부인 김지미는 간통 혐의로 고소를 당한 이력이 있었고 나훈아는 군입대 전 결혼했던 부인과 막 이혼한 참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나이 차이 역시 따가운 눈총의 대상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나훈아와 김지미는 "남녀가 사랑을 하는데 나이차이가 무슨 문제가 되느냐"면서 "사는 날까지는 열심히 노력하고 살아갈 것"이라고 사랑을 다짐했습니다.
나훈아 전부인(아내) 김지미는 나훈아의 재능을 크게 사서 예절과 서예 등 다방면에 걸쳐 가르쳤다고 하는데요, 그 덕분에 나훈아는 서예에 능하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오랜 기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는데요, 나훈아는 훗날 "김지미는 나를 남자로 만들어 준 사람"이라 평했습니다. 김지미도 "진정 남편으로 믿고 의지할 남자였다"라고 평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 뒤인 1982년 5월 6일자 경향신문엔 두 사람의 파경 소식이 실렸는데요, 기사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 속에 불안한 스타트를 보였던 배우 김지미(42)와 연하의 가수 나훈아(35)의 결합은 6년 만에 파경으로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고 전했습니다.
기자들과 만난 나훈아는 "지난 3월 심한 부부싸움을 한 이후 냉전이 계속 되어오던 중 오늘 아침 집사람이 너무 피곤해 참을 수 없으니 헤어지자고 이혼을 제의했다"고 말했으며 "나도 서로의 피곤한 상태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었다"며 파경에 이른 직접적 이유를 밝혔습니다.
당시 나훈아는 "여자는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이라며 전 재산을 위자료로 넘겨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나훈아와 김지미의 혼인이 화목했던 기간은 별로 길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김지미는 주위에 간혹 나훈아와의 혼인이 조금 후회된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내용을 말한 적도 있답니다. 원래 둘은 평범하게 식당을 경영하면서 살고 싶어했지만 나훈아가 가수로 복귀하면서 둘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고 하네요.
-나훈아 재혼(결혼) 부인 정수경 나이(차) 직업 아들 딸
나훈아의 파란만장한 결혼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나훈아는 김지미와의 이혼 1년 뒤인 1983년 아빠가 됐다는 소식을 알렸는데요, 이때 나훈아는 14세 연하의 후배가수 정수경과의 열애설도 함께 불거지게 되었고, 결국 1985년 나훈아는 부인(아내) 정수경과 세 번쨰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나훈아 부인(아내) 전수경은 본명은 정해인이라고 하구요, 정수경 나이는 1961년생인 60세로 나훈아와는 14살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나훈아 부인(아내) 정수경의 고향은 서울시 마포구 염리동이며, 1남 4녀 중 4녀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정수경의 종교는 천주교이며, 정수경 학력은 서울신석국민학교, 서울여자중학교, 서울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수경은 1978년 이름 모를 그 사람으로 가요계에 데뷔한 신인 가수였는데요, 당시 나훈아와 정수경 두 사람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14살 나이차를 극복한 채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나훈아 부인(아내) 정수경은 "(나훈아가) 결혼하기 전에 나는 한 번도 결혼한 적 없다. 총각이다 해서 사실 결혼 결심을 한 것도 있었죠"라고 말하기도 했었는데요, 하지만 나훈아는 정수경과 결혼 이후 굉장히 부인(아내) 정수경에게 잘해주었다고 합니다.
나훈아 부인(아내) 정수경은 "굉장히 잘했었죠. 연애하면서 사랑 같은 노래도 불러주고요. 제 생일에는 아들에게 전화해서 집 앞에 장미꽃 100송이를 놓아주라든가 이런 이벤트도 해줬어요"라고 했습니다.
나훈아와 부인(아내) 정수경은 결혼 전 동거를 하다가 첫째 아들을 얻었고, 1983년 연말에 3번째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1990년에 둘째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나훈아 부인(아내) 정수경은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1993년 하와이로 거처를 옮기며 이들은 오랫동안 떨러져 지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마음만은 늘 함께였다고 합니다.
-나훈아 부인(아내) 정수경 이혼, 이혼 이유, 아들 딸 근황
하지만 나훈아의 세번째 부인(아내) 정수경은 그로부터 26년이 지난 2011년 8월, 나훈아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며 "나훈아가 오랜 기간 연락을 끊었으며 불륜을 저지르고 생활비를 주지 않았다."고 했고,
이후 2014년 한 방송 인터뷰에서 "남편과 연락이 안 된지 7년이 넘었어요. 이렇게 안 보면서 호적상으로만 부부로 되어 있고... 이 상태로 죽을 때까지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라고 하며 2007년 이후 연락이 잘 닿지 않는 남편에 대한 착잡한 심경을 전했습니다.
이들의 결혼 생활은 2007년 나훈아가 아들의 결혼식에 불참한 이후로 급격히 나빠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나훈아 부인(아내) 정수경의 말에 따르면 당시 나훈아는 아들 결혼식 이전에 이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너무 힘드니까 좀 쉬어야겠다. 연락이 안 될지도 모른다" 라고. 이에 대해 정수경은 "근데 그게 길어야 2-3년일 거라 생각했지 이렇게 남남이 될 거라고는... 저 사람이 너무나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보다 그 정도로만 생각했죠"
이때부터 나훈아는 아들의 결혼식 불참은 물론 가족 앞에서도, 대중 앞에서도 모습을 감췄다고 합니다. 그해 3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콘서트가 갑자기 취소되면서 소문은 일파만파 커졌습니다.
대관료의 50% 이상인 계약금 수천만 원을 포기하면서까지 공연을 취소하고 소속사고 연락이 끊기자 야쿠자 폭행설, 신체 훼손설(일본 야큐자와 여배우 K17를 놓고 시비가 붙어 고자되기를 당했다는 헛소문) 등 악성 루머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듬해 2008년 1월 나훈아는 기자회견을 열었는데요, 그는 단산 위에 올라 바지 지퍼를 반쯤 내리며 "이래야 믿겠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했했습니다. 나훈아 부인(아내) 정수경은 이 순간에도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하네요.
"걱정도 됐었고 황당하기도 했었고 어이도 없었고요. 근데 걱정은 돼도 딱히 연락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대중의 기억에서 나훈아 세 글자가 잊혀갈 즈음, 이들 부부의 이혼소송이 전해졌는데요,
오랜 법정 공방 끝에 2016년 재판부는 나훈아게게 "12억 1000만원을 지급하라" 명하며 "두 사람 이혼하라"고 판결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나훈아는 부인(아내) 정수경과 결혼한지 31년만인 2016년 세 번째 이혼을 하고 말았는데요, 나훈아는 결국 부인(아내) 정수경에게는 재산분할로 12억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사람들이 몰랐던 사실이 있는데요, 나훈아 부인(아내) 정수경은 한국에서 이혼소송을 제기함에 앞서 2010년 미국에서 이미 이혼 판결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나훈아는 이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합니다.
사실 나훈아는 부인(아내) 정수경과의 이혼을 원치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렇게까지 되어지다보니 나훈아는 부인(아내) 정수경이 미국에서 한 이혼을 다 정리해야지 함께 살 수 있다는 내용의 말을 전했다고 하네요.
이에 대해 당시 정수경은 한 방송에서 "첫째는 일단 4년이 지날 때까지 연락이 없으니까요. 세금도 그렇고 아이 학비 같은 경우도 전혀 보조를 못 받아요. 제가 수입이 없는데 집 하나만 덩그러니 가지고 있다고 해서 거기서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나훈아 부인(아내) 정수경은 또 "경제적으로 많이 힘겨운 시기였어요. 갓 대학을 졸업한 아드이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으니까요. 미국에선 이혼을 해 싱글맘이 되면 학자금, 세금, 보첨 등에서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아들과 상의해 이혼을 결심하게 됐죠. 미국에선 일정 기간 이상 남편과 연락이 안 되는 등 유기가 이뤄지면 쉽게 이혼이 돼요 그래서 미국에서 이혼 소송을 시작한 뒤 6개월여 만에 이혼이 이뤄진 거죠. 그 덕분에 딸 대학 등록금은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라고 했습니다.
정수경은 또한 이후 한국에서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먼저 이혼 촉탁서를 보내왔어요. 2007년부터 연락이 끊긴 채로 지내다 2011년에 어렵게 연락이 됐어요. 그제야 애들 학비로 20만 달러를 보냈더라고요. 그때 돈과 함께 남편 측에서 이혼 촉탁서를 함께 보냈어요"
"미국 기준으로 볼 때 저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미국인이에요. 이미 미국에선 이혼을 했고 한국에서도 이혼을 하려면 남편 쪽에서 제 미국 거주지 영사관에 이혼 서류를 보내야 돼요. 내가 영사관을 찾아가 영사 앞에서 관련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면 이혼이 성립되는 거죠"
당시 남편은 그렇게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이혼을 끝내려고 한 것 같아요. 그렇게 촉탁서를 받고 사인을 하려다 거부하고 한국에서 정식으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어요"라며 이어 "너무 화가 났죠. 그동안 살면서 남편이 이런 저런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어떻게 이혼 서류까지 보낼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떄 남편이 설명한 말도 황당해요. 법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기면 너한테 첫 번째로 가니까 이혼서류를 보낸다. 널 지키기 위해 이혼한다더군요 정말 너무 화가 났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이혼 소송을 한 거죠,"
"함께 사는 동안 남편이 시키는 대로 다 했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거든요. 어느 정도였냐면, 유리컵이 돌컵인 줄 알아 라고 남편이 그러면 알았어 라고 그 이 말을 따랐어요. 남편은 당시 내가 이혼 소송을 할거라고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거에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훈아가 부인(아내) 정수경에게 미국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귀국하면 재결합한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지만 사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사안을 그 전제 조건으로 내세운 하나의 구실이었다고 하네요.
실제로 나훈아는 부인(아내) 정수경이 어렵게 남편인 나훈아를 찾아가 만났을 때도 단 20분 정도 만난 게 전부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들 결혼식에도 안가고 아이들에 대해 물어보지도 않았다고 하네요.
정수경은 "아들은 연락이 끊긴, 그래서 자기 결혼식에도 오지 않은 남편한테 화가 많이 나 있어요. 딸은 그래도 아빠가 보고 싶은가봐요"라며 "사람이 살다가 싫어질 수도 있고 좋은 사람 생길 수도 있어요. 정상적으로 이혼하면 되잖아요. 그리고 최소한 애들하고는 연락을 해야죠".
실제로 나훈아는 아들이 암투병 중이라는 정수경의 말을 듣고도 "혹시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 믿을 수 없다"는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데요, 정수경은 "자신의 아이가 아프다는데, 고작 하는 말이 그동안 제가 거짓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믿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며 "친부로서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정말 기가 막히다"고 전했습니다.
정수경은 또 "애들도 이제 다 커서 성인이고, 굳이 나를 안 거쳐도 애들한테 연락하면 만날 수 있잖아요. 다 할 수 있는데 지금 상황이 너무 유치해요. 그러니까 정정당당하게 나와서 대화했으면 좋겠어요. 싫으면 이혼하고 좋으면 다시 살고 명확하게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습니다. 나훈아 부인(아내) 정수경과 아들과 딸은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나훈아 나이, 나훈아 재산 저작권료, 근황
나훈아는 1966년 데뷔 이후 3000여곡의 노래를 불렀고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도 800곡이 넘어 음원 저작권료만 해도 연간 약 6억원으로 예상을 하고 있는데요, 음원 저작권료가 사후 70년까지란 점을 고려한다면 순수 저작권료 수익은 420억이라고 합니다.
나훈아의 월 저작권료는 정확하게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약 5천만 원에서 1억원 정도 된다고 하는데요, 또한 나훈아 소유의 양평 자택도 이 곳에 유명인사들이 모여 산다는 입소문이 돌며 구입 당시보다 가격이 많이 올랐을 것이라고 하네요.
한편 나훈아는 지난 8월 20일 정오 각종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통해 새 앨범 아홉이야기를 발매했습니다. 지난 9월 30일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을 기획, 비대면 특별 공연을 선보이며 신곡 소개와 함께 소신발언을 해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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