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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 <프로필 나이 집안 가족사 과거 재혼 아내(부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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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가수) 프로필 나이 집안 가족사 과거 재혼 아내(부인) 딸

 

 

-최백호(가수)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학력 

-최백호(가수) 집안 가족 아버지 최원봉과 어린 시절

-최백호(가수) 예술적 재능, 어머니의 죽음과 결핵 

-최백호(가수) 데뷔 계기, 앨범 활동

-최백호(가수) 결혼 전부 인(아내) 김자옥 이혼 사유(이유) 

-최백호(가수) 재혼 아내(부인) 손소인 나이 차이 직업, 결혼 스토리(러브스토리)

-최백호(가수) 아내(부인) 손소인 딸 최솜


-최백호(가수)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학력 

 

가수 최백호의 본명은 최백호입니다. 백호라는 이름은 아버지 최원봉 의원의 스승이자 동양철학자였던 예비역 대한민국 육군 중령 범부 김정설 선생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최백호

 

최백호 나이는 1950년 4월 23일생으로 올해 나이 72세입니다. 최백호 고향은 강원도이며, 최백호 가족으로는 아버지 최원봉과 아내(부인) 손소인, 그리고 슬하에 딸 1명이 있습니다. 최백호는 키 170cm에 몸무게는 50kg이라고 하고요, 최백호 학력은 가야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백호(가수) 집안 가족 아버지 최원봉과 어린 시절

 

최백호는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2대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 최원봉과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최백호의 아버지 최원봉은 당시 28살의 나이로 당선,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을 지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최백호가 태어난지 겨우 5개월이 지난 때 6.25 전쟁 당시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백호

 

최백호 : "할아버지가 아주 부농이었어요. 그런데 저를 굉장히 싫어했죠. 제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지요. 흔히 하는 말로 아비 잡아먹은 자식이라고 생각하셨던 겁니다. 때문에 할아버지는 저에 대한 노여움이 아주 많았죠. 하다못해 학비 한번 안 대주셨어요. 이건 개인적인 가정사지만 지금도 삼촌들과 왕래를 안 하고 있어요"

 

 

최백호 : "어머니는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어요. 때문에 전근을 많이 다녀야 했던 어머니를 따라 저 역시 어릴 적부터 이곳저곳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죠. 결국 어머니께서는 당시 교사가 받던 박봉으로는 도저히 자녀들을 교육시킬 수 없다며 부산에서 장사를 시작했어요"

 

최백호 :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인지 몰라도 조금은 조숙했던 것 같아요. 아버지에 대한 정도 모자랐고 어릴적부터 혼자 있을 때가 많아 어쩌면 상당히 빗나갈 만한 여건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너무나 많이 들어왔는데 그게 저에겐 거의 신화처럼 다가왔어요. 때문에 제 머리맡엔 항상 아버님 사진이 있었어요. 돌아가셨지만 늘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준 버팀목이 되셨거든요. 아마 그런 아버님 때문에 빗나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최백호 예술적 재능

 

사실 최백호는 본래 마라톤 유망주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백호는 과거 선수관리 개념이 확립되지 않던 시절, 위에서 몸 상태를 감안 않고 출전을 밀어붙이며 무리를 한 탓에 결국 선수생활을 접고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최백호의 가수로서의 재능은 어릴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최백호

 

최백호 : "내 노래중에서 2,3곡을 빼놓고는 다 내가 직접 작곡한 곡들이다. 잦은 전학과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을 달래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무 위에 올라가 습작하던 습관이 내가 스스로 노래를 만들게 하는 데 밑거름이 된 것 같다"

 

 

최백호 : "제 오랜 꿈은 가수가 아니라 영화감독이었어요. 구체적으로 영화감독이 되겠노라고 다짐했던 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였죠. 사실은 모 대학의 연극영화과에 합격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진학을 포기했어요. 대학에 재학 중인 누나가 둘 있었는데, 어머니의 수입으로는 저까지 대학을 보낼 수 있는 처지가 안됐어요. 어머님께서 1년만 기다렸다가 대학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혼자 그림 공부를 했었어요"

 

-최백호 어머니의 죽음과 결핵 

 

그런데 최백호가 그렇게 재수를 하던 해 10월 어머니가 갑자기 사망하게 됩니다. 

 

“최백호

 

최백호 : "어머니가 가게를 열어 적은 돈이나마 벌어 볼 희망에 부푼 것도 잠시, 어머니께서 췌장암 판정을 받았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세 들어 살던 가게는 이내 처분했죠"

이후 최백호는 군대에 입대하게 되지만 입대 반년만에 결핵을 앓게 되어 의가사 제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최백호는 당시 학업과 직장 때문에 흩어져 살고 있던 누나 둘에게 의지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최백호 데뷔 계기

 

결국 최백호는 경남 동래둔 일광해수욕장 인근의 가장 싼 방을 구해 혼자 요양하기 시작했고, 월세를 낼 돈이 떨어지자 산속에 들어가서 오두막을 지어서 기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최백호

 

최백호 : "당시 중고 기타하나 들고 산속으로 들어갔어요. 2년간 이어진 지독하게도 힘들었던 시간은 어쩌면 내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습작하는 데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해 준 기회였는지도 몰라요"

 

그렇게 약 2년간의 요양을 통해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최백호는 친구 매형의 부산 클럽에서 노래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최백호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짙은 음색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고,

 

 

하수영과의 인연으로 서울로 진출, 결국 이렇게 최백호는 먹기 위하여 통기타 가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77년 그의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발표합니다. 

 

-최백호(가수) 앨범 활동

 

최백호 : "사실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면서 쓴 가사에요. 전쟁이 나던 해에 내가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아버님이 돌아가셨고, 내 나이, 스무 살 가을에 어머니가 떠나셨어요. 어머니를 여읜 이듬해에 부산의 어느 허름한 거리를 거닐다가 쓴 가사예요"

 

“최백호

 

최백호 : "사람들은 연인과의 이별을 떠올리는 가사지만 전 어머니를 그리면서 노래를 불렀어요. 사람들이 제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가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있는 그래도 내가 살면서 겪은 삶이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당시 최백호의 데뷔곡인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는 3개월 만에 6,000장이 판매돼 가요계에 최백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이후 1978년에는 독특한 창법으로 연이은 히트를 하여 정식 데뷔 1년여 만에 톱 가수 반열에 올랐고, 

 

가요제가 한창 무르익을 1979년에는 인기 포크 록 그룹 산울림, 사랑과 평화, 인기 가수 김만준, 전영 등과 함께 대학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당시 가요계를 휩쓸며 주류를 이루던 트로트 가요를 밀어내고 새바람을 일으킨, 젊은 시절에는 그야말로 힘있는 목소리와 운동선수 같은 탄탄한 몸으로 유명했던 가수입니다. 

 

 

최백호는 이후 김자옥과 이혼한 후 시련을 겪다 1984년 10살 연하의 아내(부인)와 재혼한 후 복귀, 1987년에는 삼각산 경국사에 들어가 가수로서의 마지막 승부를 걸고 작곡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1년 후 시인과 촌장을 끝으로 1989년 1월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됩니다.

 

“최백호

 

이후 최백호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미국 처가의 도움으로 잠시 한인방송 라디오코리아 DJ로 활동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다가 한인방송국이 망하고 또 본인도 다시 노래를 하고 싶어 해서 그 후 1990년 2월에 다시 귀국하여 공연 관련 활동을 재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1996년 삶의 허무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을 담은 낭만에 대하여라는 곡이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에 삽입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당시 앨범이 무려 35만장이나 팔렸고, 지금도 인기를 얻고 있는 곡입니다. 

 

 

최백호가 부른 노래 중 명곡으로는 내마음 갈 곳을 잃어, 낭만에 대하여, 영일만 친구, 청사포, 그쟈, 아비, 뛰어, 마이웨이(오늘만 같아라 OST), 다시 길 위에서(가족끼리 왜 이래 OST), 바다 끝, 부산에 가면 등이 있습니다. 

 

“최백호

 

최백호는 음악 활동 외에 대한가수협회의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또한 2006년 KBS 제 2라디오 최백호 김민희의 라디오 챔피언의 진행을 맡기도 했고, 이후 2008년부터 지금까지는 SBS 러브 FM에서 밤 10시~12 시대에 최백호의 낭만시대라는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최백호는 최근 드라마 괴물 OST와 나빌레라 삽입곡 등에 참여해 극의 몰입도를 높이는 등의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불후의 명곡에 출연하게 되었네요.

 

<최백호 수상내역>

-1983년 MBC 10대 가수상, KBS 가요대상 남자가수상

-1984년 제3회 가톨릭 가요대상

-1996년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본상, KBS 가요대상 작사상

-2016년 제28회 한국PD대상 출연자상 라디오 진행자 부문 《최백호의 낭만시대》

 

 

-최백호 취미 만화책 읽기

 

최백호는 의외로 만화책 읽는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홍대 근처 만화방에서 가끔씩 목격이 된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즐겨 보았던 취미가 지금까지 이어진 거라는데, 본인은 만화책을 수시로 보아야 늙지를 않는다고 자주 언급을 했다고 합니다. 책 관련 모 TV 방송을 통해 공개한 바로는 원피스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하네요. 

 

-최백호 결혼 전부 인(아내) 김자옥 이혼 사유(이유) 

 

최백호는 당시 국민배우였던 김자옥과 1980년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하지만 이후 3년 만인 1983년 돌연 이혼을 하게 됩니다. 두 사람의 이혼 사유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성격차로 합의 이혼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습니다.

 

“최백호


-최백호 재혼 아내(부인) 손소인 나이 차이 직업

 

최백호는 전 부인(아내) 김자옥과 이혼 이후 1년이 지난 1984년 지금의 아내(부인) 손소인과 재혼하게 되었는데요, 최백호와 아내(부인) 손소인 두 사람 나이 차이는 최백호는 1950년생인 72세이고, 아내(부인) 손소인은 1958년생인 64세로 8살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최백호 아내(부인) 손소인은 당시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하던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최백호 아내(부인) 손소인 결혼 스토리(러브스토리)

 

최백호는 아내(부인) 손소인을 1984년 초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우연히(예식장, 백화점, 최백호가 노래하는 곳 등에서) 몇 번 더 만나게 되면서 아내(부인) 손소인에게 반해 끊임없이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최백호

 

최백호 : "아내를 처음 만난 건 친구 집에서였어요. 친구 부인의 친구였는데, 저보다 10살 연하였죠. 첫눈에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감히 제 상대로 생각하지 못했어요"

 

 

최백호 : "그렇게 몇 번 보니까 좋더라고요. 그래서 친구한테 부탁을 했죠. 만나고 싶다고... 심각한 자리를 한번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제 친구가 그러지 말고 자신이 전화할 때마다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지금의 집사람이 올 때마다 전화를 한 거예요. 꼬박꼬박 갔죠. 그랬더니 나중에 집사람이 하는 말이 자기가 갈 때마다 내가 있으니까 처음엔 제가 그 집의 하숙생인 줄 알았대요. 그렇게 만났어요"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 당시 처가의 극심한 반대로 포기할 상황까지 이르기도 했지만 결국 결혼에 골인, 하지만 장인어른은 결혼식에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최백호

 

최백호 : "결혼하기 전 처가의 반대가 심해서 내가 물러나야겠구나 생각했죠. 그런데 아내가 굉장히 강한 면이 있거든요. 아마 아내가 아니었으면 결혼 못했을 거예요. 결혼하고 나서도 굉장히 힘들었어요. 제가 돈을 거의 못 벌었으니까요. 고생 많이 했죠. 아마 아내가 처가 도움을 많이 받았을 거예요. 아내 덕분에 집도 사고 편안해졌죠. 저는 워낙 돈 욕심 없는 사람이고요"

 

최백호 : "장인어른이 결혼식장에 나타나지도 않았어요. 아마 저라면 끝까지 반대했을 거예요"

 

-최백호 아내(부인) 손소인 딸 최솜

 

두 사람은 결혼 이후 딸 최솜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최백호의 딸 최솜은 다섯 살 때부터 미국 처가에 가 있게 되면서 딸과의 갈등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최백호

 

최백호 : "딸이 다섯 살 때부터 미국의 처가에 가 있었어요. 한국에 들어왔다가도 다시 공부하기 위해 나갔죠. 저는 조기 유학은 절대로 시키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창 예민한 시기를 혼자 보내면, 그 영향이 생각보다 크거든요"

 

최백호 : "딸이 어느 정도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서 2년여 살았는데, 거리를 두고 부모를 대하더라고요. 부모인 나는 멀리 있어도 늘 딸 생각을 했는데... 씁쓸하고 가슴 아팠어요"

 

 

최백호 : "지금은 남자 친구가 없는 것 같은데, 저는 딸에게 항상 연애 실컷 하고 결혼하라고 말해요. 결혼은 서른 넘어서 하고 지금은 인생을 즐겨라. 그리고 멋진 놈들이 보이면 무조건 만나라. 그러죠. 물론 제 와이프는 그러면 안 되겠지만요. 얼마 전 딸이 주위에 괜찮은 사람이 있는데 나이가 어리다고 하더라고요. 다섯 살 더 넘어가면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괜찮으니 만나보라고 했어요"

 

최백호 : "딸과 함께 살았던 2년 동안 서로 많이 싸우고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고 부딪힌 후에야 딸아이와 좀 더 가까워지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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