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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초 프로필 나이 히트곡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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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초(유시형, 유의형) 프로필 나이 히트곡 근황

 

 

<목차>
-유심초(유시형, 유의형) 프로필 나이 학력
-유심초 데뷔 계기, 이후 앨범 활동
-유심초 재결성 이유
-유심초 재결성 이후 근황, 아내 자녀

-유심초(유시형, 유의형) 프로필 나이 학력

 

 

유심초는 유시형, 유의형 두 형제(친 형제)로 구성된 2인조 음악 그룹입니다. 형인 유시형의 나이는 1951년생인 71세로, 외국어대학교 국제통상학 말레이시아어를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동생 유의형은 1973년생인 69세로, 한양공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심초 데뷔 계기

 

유심초는 1975년 너와 나의 석별로 가요계에 데뷔했는데요, 그런데 두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둘은 너무 쉽게 가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대학가와 다운타운에서 먼저 인기를 얻은 후 앨범을 낸 독특한 케이스였는데요, 발품을 파는 수고도 없이 먼저 찾아온 음반 기획자의 제안으로 음반을 냈다고 합니다. 

 

 

음반을 낼 당시 시형씨는 한국외대에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어와 무역할을, 의형 씨는 한양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대학 노래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시형 씨가 대학에 입학하자 듀엣을 결성했고 이들은 각 대학 축제를 통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유의형 : 형 방하고 제 방이 바로 옆에 붙어있었어요. 대학 노래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형이 친구들과 방에서 기타 치고 노래를 부르다가 나가면 몰래 그 방에 들어가서 형이 부르던 트윈폴리오 노래나 팝송을 흉내 내곤 했죠"

 

-유심초 데뷔 앨범 활동

 

유심초는 이후 1975년 6월 데뷔하게 되었는데요, 첫 앨범의 수록곡 너와 나의 석별이 히트한 후 두 사람은 각각 학업과 군입대를 이유로 중간중간 공백기를 가지며 간헐적으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로 접어든 것은 81년. 그해 발표한 앨범에서 사랑이여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가 히트하면서라고 합니다. 

 

유시형 : "그때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고요? 어떻게 우리 입으로 말해요. 하하. 길거리를 지나다니지 못할 정도였어요. 지방 공연을 가면 팬들이 우리가 탄 차에 올라타려고 해서 백미러도 여러 번 망가졌죠. 그래도 그때 팬들은 지금처럼 좋아하는 내색을 적극적으로 하지는 못했어요"

 

그러다가 유심초는 이후 3집 앨범을 내고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포크음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포크가수들이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는데요, 이후 형 시형 씨가 미국 이민을 떠나면서 유심초는 결국 1985년 해체되었습니다. 

 

 

 

유심초는 그렇게 70년대 중반 데뷔 이후 80년대 후반까지 활동을 이어갔는데요, 유심초의 대표곡으로는 사랑이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라, 사랑하는 그대에게 등이 있습니다.

 

-유심초 재결성 이유

 

그런데 유심초가 해체된 후 라이브 카페 붐이 일면서 뒤늦게 사랑하는 그대에게가 라이브 카페 최고 인기곡으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이에 유심초는 팀 해체 후 13년 만인 지난 2003년 2월 팀을 재결성해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유시형 : "다시 유심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미국으로 떠나면서 음악세계에서도 완전히 떠난다고 생각했거든요. 주변에서 언제 복귀하냐고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그쪽에서 하던 사업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음악을 할 형편이 아니었어요. 이번에도 동생이 아니었으면 결정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실제로 두 사람은 해체 후 모두 가수가 아닌 생활인으로 살아왔는데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시형씨나 국내에 남은 의형 씨 모두 사업에 몰두하느라 노래와는 담을 쌓고 지낸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유심초가 다시 무대로 돌아오게 된 것은 다름아닌 팬들의 뜨거운 요청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경기도 미사리 일대 라이브 카페가 활성화되면서 유심초의 히트곡을 신청하는 팬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던 것인데요, 결국 의형 씨는 미국에 있는 형 시형 씨를 대신할 기타리스트를 영입해 2001년부터 유심초라는 이름으로 먼저 활동을 시작합니다. 

 

 

 

유의형 : "우리가 활동을 접었는데도 팬들이 계속 관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이제 경제적으로 안정도 됐고, 제 2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노래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미국에 있는 형도 불러들인 거고요"

 

-유심초 재결성 이후 근황, 아내 자녀

 

이후 의형씨의 끈질긴 권유로 형 시형 씨는 유심초로 다시 활동하기 위해 미국 생활을 완전히 청산하고 귀국, 미사리 라이브 카페 바고와 2년 계약을 맺고 재결성 첫 무대에 서게 되었고, 이후 현재까지도 가끔씩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번에 가요무대에 출연하게 되었네요. 

 

 

형 시형씨와 동생 의형 씨는 슬하에 각각 남매와 두 딸을 두고 있는데요, 미국에 아내와 남매를 두고 혼자 귀국한 시형 씨는 분당에 집을 마련해 살고 있다고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수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서인지 자녀들도 노래에 재주가 많다고 하네요.

 

형 시형씨가 "딸아이가 자기도 가수가 되게 해달라고 조른다"며 은근히 뿌듯해하자 동생 의형 씨도 "작은 딸이 대학에서 그룹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거들기도 했는데요, 이후 전해진 소식은 아직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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