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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선 <프로필 나이 집안 재산 결혼 이상형 집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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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의 문제아들' 가수 김완선

 

가수-김완선

 

가수 김완선이 11월 2일 KBS2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합니다. 

 

 

이날 방송에는 김완선과 배우 최성국이 게스트로 출연하는데요, 공개된 예고에 따르면 김완선은 "내가 다니는 미용실에 김혜수 씨가 다니고 있더라. 오며 가며 보다가 최근 술도 마시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그는 "혜수 씨 성격이 멋있더라. TV에서 보여지는 이미지 그대로다"라며 "(함께 술을 마신 날) 내가 음악메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혜수씨가 촬영해줬다. 그 영상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렸는데 많은 화제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또 김완선은 데뷔 초 몸무게와 현재 체중이 약 1kg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전해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그는 "데뷔했을 때가 약 45kg였는데, 지금은 46kg 정도 나간다. 저녁을 오후 5~6시쯤 먹고 야식은 안 먹는다. 배고플 땐 과자 하나 정도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어릴 때부터 활동하다 보니 잘 안 먹는 습관이 됐다. 집에 혼자 있을 때도 잘 안 챙겨 먹는다"며 소식이 습관이 됐다고 부연했습니다. 


김완선(가수)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학력 소속사

 

가수-김완선

 

가수 김완선의 본명은 김이선입니다. 김완선 나이는 1969년 5월 16일생으로 올해 나이 54세입니다. 김완선 고향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반포동(현 서초구 반포동)이며, 가족으로는 아버지 김성남과 어머니 한수자가 있습니다. 

 

 

김완선은 키 164cm에 혈액형은 B형이라고 하고요, 학력은 서울잠원초등학교, 세화여자중학교, 세화여자고등학교, 하와이 대학교 디지털아트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완선의 현재 소속사는 KWSunflower(김완선 단독 소속사) 소속이라고 합니다. 

 

김완선은 1986년 1집 앨범 오늘밤으로 데뷔, 한국 여성 댄스가수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으며, 대표곡으로 나만의 것,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 무도회 등이 있습니다. 

 

김완선(가수) 집안

 

가수-김완선

 

가수-김완선

 

김완선 집안은 유명한 민속춤의 전통 명가입니다. 김완선 외할아버지가 바로 한성준 명인입니다. 한성준 명인은 한국 민속품의 아버지로, 조선성악회(1933년)의 창립에 관여했고, 일제때 명맥이 끊기다시피한 전통춤을 집대성한 인물입니다.

 

그리고 김완선 이모 중 한명인 한영숙 명인 역시 한국 민속춤에서 중요한 위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완선 :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승무를 추신 분이 저희 이모님입니다. 저도 어릴 때 창을 배우러 다녔고요."

 

그 외에 김완선의 친가 역시 예술가 집안이었습니다. 

 

김완선 : "친할아버지가 탱화 화가셨어요. 할아버지 제자가 바로 만복 스님이고요. 아빠도 어렸을 때 탱화를 그렸는데, 중간에 한자를 배우기 싫어 그만두셨어요. 그리고 나중에 토목 설계를 하게 되셨죠."

 

 

김완선 : "기억에는 없지만, 제가 어렸을 때 외가댁에서 잠깐 살았대요. 그때 저희 이모들이 재미삼아 꼬마들 데리고 동네 노래자랑 대회에 나간 적이 있는데, 제가 우리 동네에서 1등을 하고 옆 동네까지 원정을 갔었대요."

 

김완선 : "원레 제 성격이 많이 외향적이었대요. 그런데 엄마가 저를 외가댁에 맡겨놓았다가 다시 데리러왔는데, 제가 막 울면서 안가겠다고 했대요."

 

김완선 : "엄마가 섭섭했는지 나를 데리고 방안에 들어가 문을 잠근 채 있다가 나왔는데, 그때 이후로 제 성격이 내성적으로 확 바뀌었대요.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요."

 

김완선(가수) 과거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며

 

가수-김완선

 

김완선은 어린시절 언니들 틈에 끼어 이모인 한백희로부터 훈련을 받게 되면서 숨겨진 재능을 발견합니다. 김완선 이모 한백희는 미8군 가수 출신의 한국 최초의 여성 매니저로, 가수 인순이를 발굴했던 스타 메이커였습니다. 

 

김완선 : "우리 집이 딸만 다섯인데, 사실 나보다 언니들이 더 예뻐서 당시 매니지먼트 사업을 하던 이모가 언니들을 점찍었어요."

 

김완선 : "큰언니는 이모 밑에서 연습까지 하다가 본인이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판단해서 그만뒀고, 둘째 언니는 처음부터 그쪽 일을 하기 싫어했어요. 반면에 나는 외모도 평범했고 성격까지 내성적이어서, 이모는 쟤는 왜 왔나라고 시큰둥하게 반응했어요."

 

김완선 : "하지만 춤을 배우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여러 명이 함께 배우기 시작했는데, 석 달 후에는 내가 가르치고 있었죠. 이모한테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저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나는 쟤가 무서워요 그랬다고 해요. 내가 노래로는 미쳐본 적이 없지만 춤에는 미쳐봤어요."

 

 

김완선(가수) 이모 한백희와의 관계

 

가수-김완선

 

김완선은 그렇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대를 앞서간 한백희의 스타 육성법에 의하여 스타로 양육되는데, 철저하게 이모의 계산대로 성장하게 됩니다. 

 

김완선 : "연습생 시절 이모의 집이 있는 도봉구 방학동의 4층 건물에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연습만 죽어라 했어요. 오전에는 노래 연습, 점심에는 음악 공부, 저녁에는 춤 연습 등 하루 일과가 빽빽했어요. 이렇게 7년 동안 감금된 생활을 했어요. 어느 누구도 만날 수가 없었어요."

 

김완선 : "내가 인순이의 리듬터치에서 가수 데뷔를 준비하던 15살 때부터 작곡가 신병하 씨로부터 화성학과 오케스트라 편곡을 배웠어요. 당시에 곡도 몇곡 썼는데, 너무 서정적이다. 이미지와 안 맞는다 라고 이모가 평가를 했고, 결국 앨범에 실을 수가 없었죠."

 

김완선 : "이모가 네가 쓴 곡이 이미지와 다르다라고 했어요. 내가 당시에 반항심이 컸는데, 그 말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는 작곡을 포기해버렸어요. 내가 그때 왜 포기해버렸을까? 지금도 후회가 되요."

 

김완선(가수) 데뷔 및 활동

 

가수-김완선

 

이후 김완선은 1986년 고등학생 신분인 18살의 어린 나이로 1집 앨범 '오늘밤'으로 데뷔하게 되는데, 당시 20살이라고 나이를 속이게 됩니다. 

 

 

김완선 : "당시 10대라고 하면 방송 활동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될 것 같아서 스무살이라고 속이고 가수 활동을 했어요. 88년 스무살 때 3집 앨범 나홀로 춤을 추긴 너무 외로워라는 가사를 부를 때 너무 민망했어요."

 

김완선은 데뷔 이후 1집 오늘밤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이후 1990년에 발매한 정규 5집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에 걸쳐 큰 인기를 누립니다. 

 

그리고 1986년 KBS 가요대상 신인상을 시작으로 1987년부터 91년까지 5회 연속 올해의 가수상을 수상, 한국의 마돈나, 댄싱퀸 등의 수식어를 얻기도 합니다. 

 

김완선(가수) 이모 한백희에 대한 감정

 

가수-김완선

 

그런데 김완선은 이모 한백희에 대해 2가지 감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이모 한백희의 능력에 대한 탄복과 마음의 상처였습니다. 

 

김완선 : "그 당시는 지금처럼 10대 가수가 많지 않았어요. 당시 저의 매니저가 시대적으로 상당히 앞서 가신 분이었고, 저 역시 이모의 생각이 정말 쿨하게 느껴졌어요."

 

김완선 : "일에 관해서는 이모와 잘 맞았어요. 사실 이모가 스마트하고 단호하고 무서우면서도 능력 있는 분이셨으니까요."

 

하지만 김완선은 이모와 점차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됩니다. 

 

김완선 : "3집 정도 내니까 제가 한국 나이로 스무 살 정도였어요. 막 자아가 생기려고 할 때였는데 그걸 이모가 억눌렀죠.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자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김완선 : "타이틀 곡 선정부터 무대의상, 메이크업, 심지어 인터뷰에 응하는 대답들까지도 이모가 시키는대로 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저 자신이 점점 위축되고 작아져 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김완선은 점차 이모 한백희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김완선 : "가수 할 때는 매일 혼만 났어요. 그래서 나는 늘 자신감이 없었죠. 무대에서 노래를 다 부르고 나면, 이모에게 혼날까봐 내려오기 싫을 정도였어요. 다른 가수나 매니저들은 그런 나를 보고 쟤 또 깨지는구나라고 불쌍해하기도 했어요."

 

김완선 : "사실 지금 생각하면 이모의 전략이었던 것 같아요.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말도 안되는 꼬투리로 나를 혼내면서 화를 돋우면, 다른 날보다 월등히 폭발하는 무대를 꾸미게 되는데, 이모가 그런 것을 노린 것 같아요."

 

김완선 : "확실히 저는 이모 덕분에 매번 한계를 뛰어넘고 정신력이 강해졌어요. 하지만 늘 모자라고 못난 아이라는 생각에 주눅이 들었어요. 칭찬 받는 게 행복한 일인지도 몰랐죠."

 

실제로 김완선이 대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모 한백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김완선은 이모에 의해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고 나중에는 잠정 은퇴하기도 합니다. 

 

김완선(가수) 이모 한백희와 결별 이유

 

가수-김완선

 

또한 김완선은 이모와 음악적 갈등 관계 외에도 수입 정산 문제 등으로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모와 함께 활동하는 13년 동안 한 번도 돈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모 한백희는 남편을 잘못 만났고, 그로 인하여 큰 빚을 지게 되었는데 이 빚의 상당 부분을 김완선이 번 돈으로 변제를 했기 때문입니다. 

 

김완선 : "이모와 활동하던 13년 동안(86년 데뷔부터 98년 결별까지) 단 한 번도 돈을 받지 못했다. 이모가 내가 일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완선 : "이모(한백희)는 원래 검소한 사람이다.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 이상한 남자를 만나면 인생이 불행해진다. 차라리 이모가 그 돈을 자신에게 썼더라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김완선 : "내 전성기 때 한 달 수입은 당시 아파트 2~3채를 살 정도였다. 하지만 난 그 돈을 본 적도 없다. 이모와 계약서도 쓰지 않고 13년 동안 활동했는데, 이모부가 사업을 하다 14억원 가량 부도를 냈다. 그래서 내가 버는 돈이 모두 빚을 갚는데 쓰였다."

 

김완선은 이런 갈등으로 1998년 이모와 결별을 하게 되지만 완전히 인연을 끊지는 못합니다. 이모 한백희가 2006년 당뇨병으로 별세를 하게 되는데, 그 전부터 응급실에 갈 돈이 없어서 김완선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 요청을 김완선은 뿌리치지 못한 것입니다. 

 

가수-김완선

 

김완선 : "참다 못해 이모를 찾아가서 따졌다. 그러기에 진작 나한테 돈 좀 주지...돈을 조금이라도 줬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라고 하자, 이모가 미안하다. 완선아, 미안해 라며 눈물을 흘렸다."

 

김완선 : "그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결국 이모와는 마지막까지 화해를 하지 못했다. 내가 용서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용서를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김완선(가수) 잠정 은퇴와 대만 진출

 

가수-김완선

 

아무튼 김완선은 아직 이모와 함께 활동하고 있던 1992년 6집 애수를 끝으로 갑자기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후 1994년 대만에서 퍼스트 터치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한류열풍의 원조가 됩니다. 

 

 

김완선 : "당시 제 중국어가 좀 서툴렀는데, 그런 모습이 애기같이 귀여웠나 봐요. 관계자들이 말을 더이상 배우지 말라는 요청을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대만에서는 3집까지 냈는데, 우리나라 가수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남겨뒀어요."

 

이로 인해 김완선은 대한민국의 이미지 개선과 선약의 공로로 현지의 한국인 유학생들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활약은 나중에 클론의 대만 진출에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김완선은 중국으로 진출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합니다. 

 

김완선(가수) 한국 컴백 이후 빚을 갚기 위해

 

가수-김완선

 

이후 김완선은 한국으로 컴백한 후 1996년 7집 이노센스를 발표하고, 오룡비무방이란 댄스 그룹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1998년 13년동안 같이 해온 이모 한백희와 결국 결별하게 되는데, 하지만 이모부가 그의 이름으로 여기저기 진 빚을 갚느라 바쁘게 활동했고, 또 나중에는 이모의 병원비까지 부담을 안게 됩니다. 

 

이에 당시 김완선은 이모와 결별 후 들어간 소속사와의 갈등 속에 2003년에 김완선 누드화보를 촬영하게 됩니다. 당시 계약 내용은 계약금 5억원과 수익에 따른 러닝 개런티 지급이었습니다. 

 

김완선 : "아무것도 필요 없었고, 단 한가지 돈이 필요했다. 빚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든 해결을 봐야했다. 그 땐 보이는 게 오직 껏(돈) 밖엔 없었다."

 

그러자 김완선 소속사는 김완선에게 회사와 상의 없이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했다며 소송을 제기합니다. 또한 누드 화보를 촬영했던 제작사 역시 김완선에게 계약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2억원만 지급합니다. 이유는 소속사와의 마찰로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결국 이런저런 소송과 재판끝에 김완선은 소속사와 계약해지를 했고, 누드 화보 제작사를 상대로는 소송에서 이기게 됩니다. 다만, 돈을 제대로 지급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김완선(가수) 이모 한백희 사망 이후 

 

가수-김완선

 

그리고 이후 김완선은 이모 한백희의 별세로 큰 충격을 받고 결국 3년 동안 하와이로 떠나서 뒤늦은 공부(디지털 아트 전공)를 하게 됩니다. 

 

김완선 : "그냥 외국에 오래 있고 싶었는데, 당시 방법이 학생 비자밖에 없더라고요. 911 사건 이후부터 학생 비자로 간 사람들이 꼭 학교를 가야 한대요. 그래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는데, 전 제가 새벽 6시에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으로 살 줄은 정말 몰랐어요."

 

김완선 : "한 1년간 화창한 날씨 아래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사니까 억울함, 원망,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이 옅어졌어요. 마음의 상처들이 치유된 것이죠. 우울증이 있는 분들에게 햇볕과 하늘을 보며 지내기를 권해요."

 

김완선 : "결국 이모가 돌아가시기 전에 화해를 하지 못했어요. 어떤 사람이 고민이나 원망, 분노 없이 한평생을 살겠어요. 한때 이모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낀 적도 있지만, 사실 이모와 행복하고 좋은 일도 많았고, 그 덕분에 지금의 김완선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김완선(가수) 복귀 이후 활동 근황

 

가수-김완선

 

이후 하와이 생활을 마친 김완선은 2011년 초에 컴백해 꾸준히 앨범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특히 지난 1월에는 필링을 발표하여 가요차트 상위권에 드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이후 7월에는 뒤늦은 전공을 살려 울산국제아트페어에서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김완선특별전 Here I Am을 열며 가수이자 작가인 다재다능한 아티스트로서의 김완선의 면모를 과시하며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한 올해만 해도 필링, 사과꽃 등의 싱글 앨범을 내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그런가운데 불타는 청춘 등 예능에서도 종종 얼굴을 보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하게 되었네요. 

 

김완선(가수) 정주영과의 루머

참고로, 김완선은 정주영과의 루머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김완선 : "그전부터 모 재벌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이 한국에 돌았나 봐요. 그러다가 제가 해외에 장기간 체류하다 보니 출산설까지 퍼지게 된 것이죠. 전 그냥 어이가 없었어요. 사실이 아닌 거짓에 일일이 대응하기도 그랬고, 저만 떳떳하면 된다는 생각도 했고요."

 

김완선 : "사실 (모 재벌로부터) 백지수표 유혹을 받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런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거절을 했었죠." 

 

 

김완선(가수) 결혼 남자친구

 

가수-김완선

 

김완선은 올해 나이 54세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입니다. 김완선 남편, 김완선 이혼 등의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모두 루머입니다. 다만, 과거 김완선은 호감을 느끼거나 프러포즈를 받은 일은 있었다고 합니다.

 

김완선 : "스물다섯 살 때 대만 진출에 앞서 홍콩에서 잠시 중국어를 배우고 있을 때였다. 그때 연예 관계자들과 미팅하는 자리에서 왕가위 감독을 처음 만나 호감을 느꼈다."

 

김완선 : "왕가위 감독이 보고 싶어 무작정 그의 집 앞에 간 적도 있었는데, 얼마 뒤에 왕감독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접었다."

 

김완선 : 그러다가 다른 착한, 그리고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프러포즈를 받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나를 정말 많이 좋아해줬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내 정신연령은 겨우 15살이었기에 결혼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 생각하고 그 프러포즈를 거절했다."

 

김완선(가수) 결혼 생각

 

가수-김완선

 

이후 김완선은 결혼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털어놓기도 합니다. 

 

 

김완선 :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는 사심을 갖고 상대를 만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30대 초반에 결혼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괜찮은 남자가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나의 사심이었어요."

 

김완선 : "40대 나이에 결혼할 수는 없고, 나중에 50~60대가 됐을 때나 결혼할 생각이 있다."

 

하지만 이후 김완선은 다시 다음과 같이 결혼에 대한 생각을 밝힙니다. 

 

김완선 : "제가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일이다. 결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결혼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김완선 : "어릴 때는 제가 그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안 하실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했다면 다른 사람 인생을 불행하게 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

 

김완선 : "(연애한지) 한참 됐다. 10년 정도 됐다. 내가 그만 만나자고 했다. 조그마한 걸로 싸우는 것이 계속 반복됐다. 똑같은 이유로 그만해야겠다 싶었다."

 

김완선 : "오히려 내가 마음의 문을 닫은 것 같다. 연애나 이런 것은 나와는 안 맞으니까 생각도 하지 말자 싶었다. 그렇게 사니까 편하다. 내가 일도 많이 하는 편이고, 연애하면 쉬는 날 쉬지도 못하고 꾸미고 나가야 하지 않나. 그러 할 자신이 없다."

 

김완선(가수) 집(아파트) 위치 평수 

 

가수-김완선

 

한편 앞서 여러 방송을 통해 김완선 집이 공개돼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요, 공개된 김완선 집은 호텔 객실 인테리어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직접 디자인해 화사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거실은 스튜디오를 연상케 했고, 고급스러운 침실을 비롯해 파우더룸, 욕실까지 남다른 감각으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김완선 집(아파트)는 용인 민속마을쌍용 아파트(2002년 준공, 지상 20층, 총 1596세대 규모)로 김완선이 거주하는 아파트 평수는 전용면적 164제곱미터(약 50평)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하게 된 김완선인데요,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모습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가수 김완선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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