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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나이 집안 과거 프로필 아내 채령, 누구? 아들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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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 TV조선 특집 다큐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 임권택에 출연한 임권택 영화감독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또한 그의 아내와 아들 근황 등 관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오늘은 임권택 감독과 아내 채령과 아들 등 가족들에 대한 근황까지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보았습니다. 

 


임권택 감독 나이 고향 가족 종교 학력

 

임권택-감독

 

영화감독 임권택은 1934년 12월 8일생으로 올해 나이 89세입니다. 임권택 고향은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단광리이며, 가족으로는 아내 채령과 아들 임동준, 권현상이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종교는 천주교(세례명 바오로)이며, 학력은 월평초등학교, 장성중학교를 졸업했으며, 광주숭일고등학교를 중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후에 가톨릭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최고위 언론과정 수료 등의 추가 학력이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 프로필 및 경력

임권택 감독은 1962년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감독 데뷔, 이후 총 102편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한국영화의 산증인으로 불립니다. 대표작으로 잡초, 아제 아제 바라아제, 만다라, 씨받이, 장군의 아들, 서편제, 태백산맥, 춘향뎐, 취화선, 하류인생 등이 있습니다. 

 

 

임권택 감독 집안 과거 

 

임권택-감독

 

임권택 감독의 어린 시절은 부유하면서도 당시 좌익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불행했던 이중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임권택 : "할아버지가 경성에서 미두상을 하시다가 아버님이 제 2고보(지금의 경복고) 3학년이 되던 해에 고향인 장성을 낙향하셨다. 당시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사이가 나빴다."

 

임권택 : "매일 금광한다고 밖으로 떠돌던 아버지를 언젠가는 할아버지께서 만주까지 사람을 보내 찾아오기도 하고, 한번은 배우가 되겠다고 집을 나간 양반을 부산까지 형사를 보내 찾아오기도 하셨다."

 

그러다가 임권택 아버지는 지리산에 빨치산으로 들어갔다가, 병을 얻어서 산을 내려와서 자수한 후 몇 년 뒤 병사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당시 시대적인 분위기속에서 임권택은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결국 무거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한 임권택은 집을 가출해서 부산으로 가게 됩니다. 한국 전쟁 중 부산은 임시 수도가 될만큼 남한 사회의 중심지였고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임권택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섞일 수가 있었습니다. 

 

 

임권택 영화감독이 된 계기

 

임권택-감독

 

임권택 : "좌익이셨던 아버지 때문에 집안이 어려워졌다. 그래서 18살 때 집에서 기차삯만 훔쳐서 가출했다. 더 있었으면 더 훔쳤겠지만 집안에 돈될 만한 것이 별로 없었다."

 

임권택 : "부산에 도착해서 사흘을 굶었다. 가판대에서 그냥 자고 노동판 지게 일을 하면서 지냈다. 당시에 술을 많이 마셔서 수전증도 생겼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군화 장사를 시작했다."

임권택 : '2년 정도 군화 장사를 했다. 당시 내 주변에서 군화 파는 사람들이 서울로 영화 제작일을 하러 가면서, 나에게 군화 몇 켤레와 노점을 줬다. 그런데 내가 장사에 소질이 없었는지 얼마 안 가서 다 거덜 나버렸다. 아마 부산에서 군화 장사가 잘 됐으면 영화감독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임권택 : "(군화 장사가 거덜이 난 다음에) 서울에 올라갔던 군화 장사치들의 연락을 받고 서울로 올라갔다. 처음에는 잡부나 심부름꾼에 가깝던 연출부 막내로 일했다."

 

임권택 영화감독 데뷔

 

임권택-감독

 

임권택 : "영화 촬영장에서 일이 있으면 잠을 안 잘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 덕분인지) 당시 정창화 감독님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결국 임권택은 당시 정창화 감독의 두터운 신임속에서 영화 연출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임권택은 1962년 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감독 데뷔를 하게 되는데, 그전까지는 조감독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4.19 혁명이 터집니다. 

 

임권택 : "오랫동안 (아버지가 좌익이었기에) 정신적으로 참으로 긴 시간 주눅 들어지냈다. 4.19시절 서울에서 조감독을 하고 있었는데, 저기 휩쓸렸다가 내 신원이 밝혀지면 나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임권택은 그런 압박감 속에서 정말 잠을 안 잘 정도로 열심히 했고, 덕분에 1962년 2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임권택 감독 흑역사

 

임권택-감독

 

이후 잘 알려진 것처럼 임권택은 수많은 국제 영화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임권택의 흑역사가 펼쳐지게 되는데, 바로 이상아 노출 연기 강요 사건이었습니다. 

 

참고로, 영화 길소뜸에서 이상아의 노출 연기 내용은 전라로 뒷모습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양오빠에게 곳간같은 곳에서 약간 반강제적으로 하는 러브씬이 나오고, 두번째는 풀속에서 남녀가 같이 누워서 키스하고 어루만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14살(중학교 2학년생) 짜리가 할 장면은 아니었습니다. 

 

이상아 : "영화 길소뜸에 출연할 때 어린 나이에 노출을 해야 했다. 원래 영화계에서 캐스팅할 때 먼저 대본을 주는데, 나에게는 대본이 안 나왔다고 하더라. 이후에 대본을 받았는데 대사는 없고 지문만 많았다. 그런데 어린 아이가 이해하기에 지문도 어려웠다.

 

이상아 : "대본을 보니까 내 대사가 괄호안에 없더라. 말이 없고 괄혼 안에 뭐뭐뭐뭐하고 괄호 닫고. 많이 야했다. 딱 뽀뽀하는 장면에서 스톱하는 게 있었고, 그 뒤에는 (상대 남자 배우의) 손이 제 엉덩이로 올라와서...막 시작이 되는 씬이었다."

 

 

이상아 : "그때 엄마도 너무 놀라셔서 전화해서 못하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감독님께서 저희 엄마에게 "나도 일찍 결혼했으면 상아만한 딸이 있을텐데 그런 걸 내가 시키겠어요? 믿고 따라오세요 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거 믿고 따라 갔다."

 

이상아 : "(영화 촬영 중에) 처음에는 약간 뽀뽀 정도? 나도 할 수 있을 만큼의 진행을 다 하다가 결국 마지막 촬영 때, (스태프들이 노래하듯이) 상아는~옷벗어야 된다~ 벗어야 된다~ 벗어야 된다 라고 노래를 막 부르시더라."

 

이상아 : "나 안한다고, 내가 왜 하냐고, 감독님이 그거 안 시킨다고 했는데, 왜 그러시냐고 말했다. 결국 안하겠다고 막 울고 짐싸서 가겠다고 움직이고 있는데 스태프들이 감독님을 모시고 오셨다."

 

이상아 : "감독님이 냉정하게 한마디 하셨다. 너 돈 많아? 너 돈 많으면, 이 때까지 찍었던 필름 값 니가 다 물고 가도 돼! 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너무 속상해서 울었다."

 

임권택 결혼 아내(부인) 채령 나이차 직업, 누구?

 

임권택-감독

 

임권택-감독

 

임권택 감독은 아내(부인) 채령과 1973년에 혼인신고를 하고 이후 1979년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임권택과 아내 채령 두 사람의 나이차는 임권택은 1934년생인 89세이고, 아내 채령은 1951년생인 72세로 17살 차이가 납니다. 

 

아내 채령은 서울 수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9년 연극배우로 데뷔, 이후 1970년 광고 모델 일을 시작했고, 1971년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선발된 후 영화 요검, 혼혈아 쥬리, 바다의 사자들 등에 출연합니다. 또한 채령은 오란씨 1대 모델로도 활동합니다. 

 

 

임권택 아내 채령 결혼스토리

 

임권택-감독

 

임권택 감독은 아내 채령을 그녀가 신인배우였을 때 처음 만나게 됩니다. 

 

임권택 : "당시 준비하고 있던 영화 요검(1971)에 채령을 캐스팅하려고 했는데, 노출신이 있다고 안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결국 노출 장면을 빼고 캐스팅했다."

 

채령 : "그 무렵 우리 집에서 열흘쯤 됐을 때 부모님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다. 우리 딸을 데리고 가겠다라고 밤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임권택 : "촬영장에 채령의 부모님이 찾아와 (여배우에 대한 스캔들이나 불상사 없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랬다. 어디까지 책임지겠다는 소리인지를 장인 장모님은 모르셨을 거다."

 

임권택 : "영화 현장에서 사고 없도록 하겠다는 뜻이었다. 인생을 책임진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그런데 부부까지 됐으니 진짜 책음을 지게 된 거다."

 

임권택 : "(아내에 대한 첫느낌은) 어쩐지 도도한 느낌이었다. 사실 영화 요검이 끝난 뒤에도 연락처를 몰랐는데 운명처럼 우연히 충무로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임권택-감독

 

임권택 : "아내는 연기자로서 갖춰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연기가 안 되면 미안해하는 마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다."

 

채령 : "(남편 임권택 감독과) 두 세작품 같이 했다. 당시에 내가 잘 해서 또 쓴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임권택 : "아내와 만나기 전까지 진짜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오로지 일 밖에 모르고 살았다. 사실 영화 감독을 하면 예쁜 여자들의 유혹이 있는데, 난 그런 걸 모르고 살았다."

 

임권택 : "예전에는(연애할때는) 아내가 선생님이라 부르며 꼼짝 못했는데, 지금은 거꾸로 됐다. 아내와 데이트 할 때 (서울의) 변두리 시장에 가서 순댓국을 먹었다. 당시에 데이트 비용이 적게 들었다."

 

결국 임권택과 채령은 약 7년간 비밀연애를 하다가 1979년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두 사람의 나이차이가 16살이 나면서 임권택 재혼, 임권택 이혼, 초혼 아님이라는 루머가 떠돌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 무근입니다. 

 

임권택 : "결혼한 후 이사갔더니 (이웃들이) 첩을 데리고 왔다고 수근대더라."

 

 

임권택 아내 채령 아들 임동준, 김동재 

두 사람은 그렇게 결혼에 골인, 이후 아들 2명을 얻게 됩니다. 임권택 큰아들 임동준은 영화 기획일을 하고 있고, 임권택 작은 아들 임동재(활동명 권현상)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임권택-감독

 

임권택-감독

 

이중 1981년생으로 올해 나이 42세인 아들 권현상(본명 임동재)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영화일을 시작, 2008년 영화 고사 피의 중간고사로 데뷔합니다. 

 

그리고 이후 영화 도시의 풍년, 달빛 길어올리기,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돈 크라이 마미, 타워, 타투 등과 드라마 혼, 공부의 신, 공주의 남자, 야왕, 블러드, 귀신 보는 형사 처용2 등에 출연합니다. 

 

임권택 : "아들이 영화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듣고 속으로는 하지 않기를 바랐다. 이쪽 일이 너무 힌든 일이니까. 아들에게 내가 영화감독이지만 너를 도울 길이 없다라고 했다."

 

임권택 : "그러니까 아들 역시 내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 아들이 이름을 바꿔 가명(권혁상)을 사용하기에 정말 내 도움 받을 생각이 없구나 싶었는데 성까지 바꾸더라."

 

권현상 : "(아버지 때문에)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너무 많았어요. 대학 진학 후에도, 또한 군대 가서도 누구 아들이다, 아빠 빽으로 들어왔다 이런 얘길 숲하게 들었죠."

 

권현상 : "저를 온전한 나로 봐주지 않고 누구 아들로 봐주고요. 그래서 제가 사춘기 때는 친구들이 제 앞어서 아버지 얘기를 꺼내지도 못했어요."

 

 

임동준(큰 아들) : "(동생 권현상처럼) 나 역시 유명한 아버지, 누구 아들이라는 그런 부분이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강제적인 족쇄가 채워지는 것인데, 그게 없었다면 내가 조금 더 엇나가는 부분들이 있었을 것 같다."

 

참고로, 권현상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미혼이고, 형 임동준은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습니다. 

 

임권택 아내에 대한 고마움

 

임권택-감독

 

임권택 : "감독 생활이라는 게 수입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데, 내가 철없이 영화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건 집사람 덕분이다. 집사람 덕분에 한 번도 생활비를 걱정한 적이 없었다."

 

채령 : "이렇게 (남편처럼) 나를 굉장히 편안하게 해주는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이런 말 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나중에 다시 태어나도 저 사람이랑 결혼할 것 같다."

 

임권택 : "아내 채령은 (내가) 같이 살기에는 (남편으로써) 많이 부족한데, 여기까지 탈 없이 살아온 것 보면 그것도 내 복인 것 같다."

 

임권택 아내 채령 주식사기로 큰 돈을 잃기도 

다만, 아내 채령은 15년 전 주식사기로 큰 돈을 잃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영화촬영으로 바빴던 탓에 경제 관리는 모두 채령의 몫이었는데, 채령은 주식을 알게 된 후 믿던 지인에게 투자를 했고, 그걸 알게 된 임권택은 그런 돈 벌이는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채령 : "자기가 뭘 알아 그러면서 핀잔을 줬다. (임권택은) 주식에서 손 떼라고 했는데 이미 들어간 돈이 있어서 이걸 넣어야 해준대 이런 식으로 했다."

 

하지만 임권택은 사기사건에 대해 전혀 채령을 질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못 살겠다"라는 채령의 말에 임권택은 "그냥 시골집 얻어 살면 되지 뭘 못 사나"라며 아내를 일으켜 세웠던 것입니다. 

 

임권택 : "평소에 돈놀이에 끼어들도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쩌다 그런 일에 휘말렸는데 그거 때문에 상처받고 우리 사는데 지장을 주면 곤란하다는 생각이었다. 원래 내가 돈을 별로 가져본 적 없으니, 돈은 있다가 없다고 하는 거다."

 

채령 : "어떤 남편이 한소리 안 하겠나. 그런데 한 마디도 하지 않아줘서 너무 고맙다."

 

이상 영화감독 임권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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