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 엄홍길이 2월 5일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합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제 2의 고향 네팔로 떠난 산악인 엄홍길의 발자취를 따라가봅니다.
1988년부터 2007년까지 19년간, 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완등한 세계 유일무이한 사나이 엄홍길 대장. 38번의 실패 끝에 히말라야 16좌 완등에 성공한 불굴의 사나이 엄홍길은 그동안 "그동안 산의 정상만 보고 도전을 했는데 (올라서니) 산 아래가 보이고, 산 아래 사는 사람들의 삶이 보이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며 "척박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늘 마음이 쓰였다"고 전합니다.
그는 이제 꼭대기에 오르는 대신, 그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학교를 짓기 시작, 히말라야 정상에 오르내릴 때마다 무사히 도와준 산에게 감사함을 느낀 그는 재단을 만들어 2010년 4000m 고도 팡보체 마을에 첫 학교를 시작으로 타르푸, 룸비니, 비렌탄티, 다딩, 산티골리 등 현재까지 19개의 학교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지원해 주기 위해 책으로 가득 찬 도서관을 만들었고, 태권도를 보급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끔 도와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네팔 방문에서 학교와 더불어 가정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게끔 선물도 준비했고, 이뿐 아니라, 세상을 떠난 셰르파의 자녀들을 위해 유가족 후원도 계속하는 그의 선한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엄홍길 나이 고향 가족 키 종교 학력 현재 직업
산악인 엄홍길은 1960년 9월 14일생으로 올해 나이 64세입니다. 엄호길 고향은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영현면이며, 가족으로는 아내 임순래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엄홍길은 키 167cm에 몸무게는 66kg이라고 하고요, 엄홍길 종교는 불교이며, 학력은 호암초등학교, 의정부중학교, 양주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학 석사,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체육학 석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에도 엄홍길은 한양대학교 최고엔터테인먼트 과정 수료, 강북구 청소년 희망원정대 11년 과정을 수료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엄홍길 프로필 및 경력
엄홍길은 박영석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번째, 인류 역사상 9번째로 히말라야 8천미터급 14좌에 완등, 8천 미터급의 위성봉 얄룽캉을 완든하기도 했고, 2007년 5월 31일에는 8400미터의 로체샤르도 완등하면서 세계 최초로 16좌 완등에 성공한 전설적인 산악인입니다.
엄홍길은 현재 엄홍길휴먼재단 소속이며, 산악인이자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또한 강북구 청소년 희망원정대, 상명대학교 석좌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엄홍길 과거
엄홍길의 어린 시절은 무척 평범했다고 합니다.
엄홍길 : "어렸을 때는 엄청난 개구쟁이였어요.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할 정도였어요. 항상 직접 부딪치거나 뭔가 하는 걸 많이 좋아했죠. 저희 집이 도봉산 중턱에 있었어요."
엄홍길 : "그래서 수시로 산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했어요. (부모님이 거기서) 매점을 하셨으니까, 굳이 등산을 따로 하실 필요가 없었죠. 그래서 학교를 가려면 산길을 따라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어 다녔어요. 매일 뛰어다니고 노는 거를 좋아했죠."
엄홍길 : "(제가 산악인이 된 데에) 부모님은 많이 반대를 하셨어요. 그래서 부모님이 만류하시면, 알겠습니다.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산 아래에만 다녀오겠습니다, 다시는 안 가겠습니다 라고 그랬어요. 그러곤 또다시 산에 가는 거죠."
엄홍길 : "그래서 제가 히말라야에 가면, 어머니는 거의 절에서 살다시피 하세요. 그러면서 어머니는 이놈아, 집안의 장남이 이렇게 해서 되겠냐.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느냐라고 반대를 하셨지만, 그래도 아버님과 저 중간에서 중재를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아버님 몰래 좀 주시기도 하셨고요"
엄홍길 : "등산 시즌이나 주말이면 (도봉상 중턱의 매점) 장사가 아주 잘돼서 정신없을 정도예요. 조카들까지 나서서 돕는데 전 (산 때문에) 그걸 돕지도 못하니까, 많이 미안했죠."
엄홍길 부모님이 아들의 일을 반대한 이유는 2가지였습니다. 첫번째 엄홍길의 히말라야 등반 등이 너무 위험했고, 두번째는 별로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엄홍길 군대
그러다가 엄홍길은 군대에 입대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넓은 바다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해군으로 가게 됩니다.
엄홍길 : "어릴 때부터 산에 완전히 빠져서 살았어요. 고등학교 졸업해서는 거의 산에 미치다시피 했었죠. 그래서 군대에 입대할 때는, 3년 동안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서, 해군에 지원했어요. 그동안 산에 미쳐서 살았으니까, 이번에는 배를 한번 타보자 라고 생각이었죠."
엄홍길 : "처음에는 연안경비정 근무로 배치를 받았어요. 그런데 출동을 하면, 제가 쫄병이어서 취사병 노릇을 해야했거든요. 매일 생선 손질하다가 가시에 찔리고, 선임들은 음식이 맛없다고 타박을 하고...그러다가 배 엔진에 불이 나서 폐선 처리를 하게 되었고, 우리는 모두 육지에서 대기발령을 받게 되었죠."
엄홍길 : "그러다가 하나둘씩 발령을 받아 다 나갔고, 저 혼자 남았는데, 군기가 너무 빠졌어요. 갓 일병 달았는데, 살이 쪄서 허벅지가 얼마나 긁어졌는지..."
엄홍길 : "제가 봐도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침 해군 UDT 특수대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는 바로 지원했어요. 그러자 주변에서는 너 같이 군기 빠진 놈은 절대 안 된다라고 말리더군요."
엄홍길 : "하지만 전 6개월 훈련을 받았어요. 그 훈련이란 것이 정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상을 초월한 정도에요. 나중에는 완전히 돌아버리겠더라고요. 뭐, 덕분에 나중에 산에 오를 때 큰 도움이 됐어요."
엄홍길과 세르파의 죽음
이후 엄홍길은 하사 만기전역한 후 1985년 9월 25살의 나이에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남서벽 원정에 첫 도전을 했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 죽음을 목도하게 됩니다.
엄홍길 : "해외여행 자체가 특권이던 시절이었다. 한 번 히말라야에 간다는 것은 집을 팔거나, 전세값이라도 빼야 할 정도로 목돈이 깨졌다."
엄홍길 : "1986년 히말라야에서 에베레스트와 맞설때 내 나이 26이었다. 내 근육은 단단했고, 힘줄은 팽팽했으며, 누구보다 자신만만했다. 비록 그 일년전에 첫 등장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엄홍길 :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눈보라가 휘몰아쳤는데, 해발 7500mm쯤에서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암벽을 타던 셰르파(히말라야 등산대의 짐을 나르고 길을 안내하는 사람) 술딤도르지가 추락한 것이다. 몸이 공처럼 통통 튀더니 1000m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엄홍길 : "서둘러 도르지를 찾으러 내려갔는데 피묻은 옷자락과 찢어진 배낭만 바위에 끼어 있을 뿐, 그의 시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 팡보체라는 셰르파 마을에서 그의 어머니와 부인 학파디기를 만났다. 셰르파 도르지 부인의 나이는 당시 열여덟살, 결혼한 지 넉 달만인 신혼이었다. 가족들은 나를 원망했다."
엄홍길 : "처음으로 목격한 죽음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가 먼저 앞서가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고통으로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죽음을 목격한 이후로) 다시는 히말라야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두렵고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엄홍길은 포기하지 않았고, 세번째 도전인 1988년 9월에 다시 도전하여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였고, 이후 2001년 9월에는 시샤팡마(8,027m) 등정에 성공하여 13년 만에 14좌 등정을 모두 성공합니다. 이후 2004년 5월 5일에는 14좌에 속하지 않는 위성봉 얄룽캉(8,505m) 등정에 성공하게 됩니다.
로체샤르 등정
로체샤르는 히말라야 산맥 중에서도 등정이 가장 어려운 산맥으로 엄홍길은 2001년 첫 도전에 실패, 이후 2003년 도전에서 정상을 150미터 앞두고 판상 눈사태가 일어나 동료 2명을 잃습니다.
이후 2006년 3번째 시도도 실패, 이후 2007년 5월 31일 4번째 도전에서 로체샤르 남벽을 통해 등정, 숨진 동료들이 생각나 태극기를 꽂고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동료 변성호 대원에게 눈에 빛이 반사되어 설맹이 걸려 앞이 안보이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엄홍길은 안보이는 대원을 데리고 하산을 결정했고, 서로의 몸을 묶은 상태에서 내려가는 도중에 발을 헛디뎌 죽을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하산하게 됩니다.
당시 5시간이면 내려오는 것을 12시간동안 통신 두절이 된 베이스캠프 기자들이 실종기사를 내보내려는 순간 엄홍길이 눈앞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엄홍길의 휴먼원정대
엄홍길은 또한 2005년 에베레스트산에서 숨진 박무택, 백준호, 장민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유먼 원정대라는 팀을 꾸려 등정하기도 했습니다.
2004년 세 명의 대원들은 엄홍길과 함께 한국에서 출발한 후 네팔에서 헤어져 에베레스트로 갔고 엄홍길은 얄룽캉이라는 15좌에 등정하기 위해 흩어졌다고 합니다.
엄홍길이 정상에 등정 후 하산길에 후배들의 조난 소식을 들었는데, 8750미터에서 설맹에 걸려 주저앉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들을 결국 내려오지 못하고 사망했습니다.
시신이 실종된 것도 아니고 산에 매달려 있어 다른 사람들이 등정할 때마다 지나치게 되는데 이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휴먼원정대를 꾸려 시신 수습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이 휴먼원정대는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홍길은 당시 컨디션이 아주 안좋아서 고생하기도 했고 이 가운데 박무택은 발견되었지만 눈으로 인해 몸이 닩단해져서 무려 100kg이 넘었다고 합니다.
결국 시신을 운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해가 잘 비치는 동쪽에 돌무덤을 만들고 하산했고, 백준호, 장민 대원들의 시신은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엄홍길 수상 내역>
-2020년 제 24회 만해대상 실천부분 대상
-2013년 대한민국 창조경영인상
-2010년 제 10회 4.19 문화상
-2001년 체육훈장 청룡장
-2001년 대한민국 산악대상
-2000년 한국 유네스코 올해의 인물 선정
-1996년 한국 대학 산악 연맹 올해의 산악인상
-1996년 체육훈장 맹호장
-1989년 체육훈장 거상장
엄홍길 산악인 이외 활동
엄홍길은 산악인 활동 외에도 2006년 영화 아이스 에이지2에서 딱정벌레 아빠 한국어 더빙을 맡기도 했으며, 이후 2015년 영화 히말라야 산악자문, 2017년 채비 산악인 역 특별출연, 2018년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 산악인 엄홍길 역으로 특별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엄홍길은 현재 엄홍길휴먼재단 상임이사, 또한 강북구 청소년 희망원정대, 상명대학교 석좌교수로도 활동했고, 최근에는 네팔에 학교(19개 설립)와 도서관을 세우는 등의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엄홍길은 이외에도 미운 우리 새끼, 무릎팎도사 등의 예능에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이번에는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게 되었네요.
엄홍길 결혼 아내(부인) 이순래 나이차 직업, 누구?
엄홍길은 아내 이순래씨와 1997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엄홍길 아내 이순래씨에 대해서는 아직 나이 차이 직업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엄홍길 아내 이순래 결혼스토리 자녀
두 사람은 연애 5년 끝에 결혼에 골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결혼 이후 자녀를 낳아 현재 슬하에 엄현식, 엄지은 1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엄홍길 : "아내는 (제 일에) 이해를 많이 해줘요. 속으로는 걱정도 되겠지만, 겉으로 내색을 안 해요. 그래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많이 미안하죠."
엄홍길 : "딸이나 아들은 아직 아빠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실 어른도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기 힘드니까요. 가족과 같이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1년에 반 이상을 히말라야에서 살고,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원정 준비한다고 바쁘니까요."
이번에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게 된 엄홍길인데요, 앞으로도 좋은 활약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산악인 엄홍길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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