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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자 나이 집안 과거 전남편, 재혼 남자친구, 누구? 재산 집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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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연자가 9월 2일 KBS 가요무대에 출연합니다. 

 

1974년 데뷔, 이후 일본에 진출해 8090년대 엔카의 여왕으로 불리며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고, 이후 아모르파티, 아침의 나라에서, 천하장사, 10분 내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 블링블링 등의 히트곡을 내며 트로트계의 전설로 인정받고 있는 가수 김연자입니다.

 

이에 김연자 나이 과거 프로필 노래 결혼 이혼 남편 근황 등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오늘은 가수 김연자에 대해 알려진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김연자(가수)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종교 학력 소속사 

 

김연자

 

가수 김연자는 1959년 1월 25일생으로 올해 나이 65세입니다. 김연자 고향은 전라남도 광주시 사직동(현 광주광역시 남구 서동)이며, 가족으로는 어머니와 여동생 김수진이 있습니다.

 

김연자는 키 154cm에 혈액형은 O형이라고 하며, 김연자 종교는 개신교입니다. 학력은 수피아여자중학교(중퇴, 명예졸업), 광주수피아여자고등학교를 명예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연자의 현재 소속사는 YJK컴퍼니(일본)와 초이크리에이티브랩(국내) 소속이며, 유튜브 채널 기획사로는 온웨이즈 소속이라고 합니다. 

 

 

김연자(가수) 프로필 및 경력

김연자는 1974년 TBC 전국가요 신인스타쇼에서 우승과 1974년 말을 해줘요로 솔로 가수로 데뷔, 이후 1977년 일본에서 데뷔해 8090년대 엔카의 여왕으로 불리며 큰 성공을 거뒀고, 이로 인해 일본 내에서 인지도가 매우 높은 한류스타이자 거물급 가수입니다. 

 

2010년대 이후에는 국내 활동에 주력하고 있으며, 2016년 이후에는 아모르파티가 국내에서 역주행하며 대히트를 쳐 젊은 세대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대표곡으로는 진정인가요, 아침의 나라에서, 천하장사, 암야항로, 인생해협, 북녘의 눈벌레, 남십자성, 새벽전, 10분 내로, 단장의 미아리 고개, 아모르 파티 등이 있습니다. 

 

김연자(가수) 집안 과거 

 

김연자

 

김연자는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큰집과 같이 살았는데 할머니가 한 집에서 두 명이 태어나면 안 된다며 둘째인 김연자의 엄마에게 밖에서 낳으라고 해서 마당에서 출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김연자가 가수가 된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이발소를 했는데 김연자가 5~6세 때부터 매일 손님 앞에서 노래를 시켰고, 이발소 영업이 끝난 후에는 가게 안에서 1시간 동안 전축으로 이미자 노래를 틀고 김연자에게 연습하라고 한 뒤 나갔다고 합니다.  

 

김연자 : "아버지는 제가 공부할 때보다 노래할 때 더 많이 칭찬을 하셨어요. 그래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이발소에 온 손님들 앞에서도 매일 노래를 시키셨죠."

 

그리고 이후 김연자가 국민학교 3학년 쯤에는 큰엄마가 광주공원에서 열리는 노래자랑에 나가라며 참가금 2~3백원을 줬는데, 당시 김연자의 용돈은 10원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유행가 부르면 안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동요를 불렀는데, 떨어져서 참가상으로 소주 1병을 받아 참가금으로 큰 돈을 줬는데 상을 못 탔다고 야간을 맞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민학교 4학년 때는 가요교실 학원 선생에게 돈이 없다고 하니 무료로 다니게 해줘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5년을 다녔는데, 또래 친구들은 동요를 좋아했지만 김연자는 이미 트로트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후 국민학교 5학년 때 광주의 대표적인 노래 대회였던 벚꽃 노래 자랑에 출전해 인기상을 탔고, 이후 중학교 시절에는 오락 부장을 맡아 선생들이 자주 교단에 불러내 노래를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73년 14세였던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는 열흘 정도 공연장에 따라다니느라 학교에 나가지 못해 수업 미달로 정학을 당해 아버지가 차라리 학교를 중퇴하고 서울 가서 가수를 하는게 어떻냐며 열차표를 직접 사줘 거역하지 못하고 홀로 상경했다고 합니다. 

 

이후 김연자는 미아리의 작은아버지 집의 작은 방에서 함께 지내기 시작, 작은 아버지와 오디션을 보러 다녔지만 다 떨어졌고, 이후 어머니와 동생들이 상경하여 단칸방 사글세 살이를 시작한 후에는 옆집에 부유한 수양엄마 집에서 매일 전축을 틀고 노래 연습을 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따라 관악산 어느 절로 올라갔고 그 절에 있던 스님이 21세에 꽃가마를 탈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후 가수 이영숙의 소개로 청계천에 있던 오아시스 레코드 사장에게 오디션을 보고 합격, 연습생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한 평론가가 어느 카바레에 신인가수가 필요하다며 오디션을 권했고, 결국 18세로 나이를 속이고 비어홀, 카바레 등 3곳의 밤무대에서 월 6~7만원을 받으며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은 없었고, 딸이 가수가 됐다며 학교를 못 다니게 해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기에 결국 김연자는 경제적 가장 역할을 하게 됩니다. 

 

김연자

 

김연자 막내 동생 : "저에게는 무척 중요한 언니다. 아빠 역할을 해줬고 제가 있는 건 언니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교육도 다 시켜줬다. 그래서 정말 고맙고 자랑스러운 언니다"

 

김연자(가수) 데뷔, 일본 진출

 

김연자

 

아무튼 김연자는 이후 결국 열 다섯 나이에, TBC 방송국이 주최했던 전국가요 신인 스타란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가수로 데뷔, 처음에는 무슨 노래를 불러도 이미자 창법이 나와 개성이 없다고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미자는 그녀에게 드레스를 줄 정도로 아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처음에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가기도 했지만, 금방 잘리고, 가족들 부양을 위해 주로 밤무대 행사를 뛰었다고 하며, 송대관의 해뜰날 코러스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후 1976년 MBC 신인가수 선발대회에 출전해 주목을 받기도 했고, 이후 엄마의 노래, 봄비 등의 앨범을 내고, 1977년에는 TBC 전국남녀가요신인 콩쿨에서 우승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봄비가 히트 조짐을 보이던 즈음인 1977년 김연자는 일본의 토리오 레코드가의 오디션을 보고,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일본으로 진출하게 됩니다.

 

김연자 : "당시 일본의 한 레코드 회사로부터 일본 진출을 제안 받았어요. 그때 우리나라 가수 이성애씨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큰 인기를 끌었거든요. 그러자 일본의 레코드 회사들이 한국의 실력 있는 가수들을 스카웃하려는 붐이 일게 되었죠."

 

김연자 : "제가 한국에서 트로트 가수로 시작했으니, 일본에 가서 엔카를 한 번 제대로 불러보자고 결심했어요. 하지만 너무 준비없이 간 게 탈이었죠."

 

김연자(가수) 한국 귀국 이후 활동

결국 김연자는 별다른 성과없이 3년만에 일본 활동을 접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그리고 김연자가 귀국한 1980년은 당시 정부가 민심을 얻기 위하여 통행금지 해제 조치와 더불어 경기 부양 정책을 취했기에 밤업소들이 호황을 누리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김연자는 한국에서 재기에 성공합니다.

 

1980년대 큰 인기를 얻었고 김연자는 88 서울올림픽때 작곡가 길옥윤과 함께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김연자의 아침의 나라에서가 올림픽 공식 노래가 될 뻔했는데, 대회 직전에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가 공식 주제가로 선택이 됩니다. 

 

김연자

 

김연자 : "많이 섭섭했지만 어떡하겠어요. 그래서 울고만 있을 게 아니라 이 기회에 아침의 나라에서 를 들고 다시 일본으로 진출해야겠다고 다짐했죠."

 

김연자 : "일본은 제가 십대 때 건너가서 한 번 실패했던 나라에요. 그래서 나중에 꼭 한번 다시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죠. 제가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하자, 남편이 한달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왔어요. 사실 제 시댁이 있는 곳이 일본이기도 해서 꼭 다시 진출하고 싶었어요."

 

 

김연자(가수) 두 번째 일본 진출 

이후 김연자는 일본 2번째 진출때 첫노래부터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어두운 밤뱃길이라는 노래로는 오리콘 엔카 가요차트 1위, 일본 유선방송 최다 리퀘스트 가수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고, 1989년 일본의 권위 있는 가요 프로그램인, NHK의 홍백가합전에 출전을 하게 됩니다.

 

(김연자는 이후 1994년과 2001년에도 홍백가합전에 출전하여 총 3회 출연이라는 외국인 가수로서는 보기 드문 기록을 갖고 있음)

 

김연자

 

아무튼 김연자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돈도 많이 벌게 되는데(약 1400억원), 전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이 모든 것이 날아가게 됩니다.

 

전남편이 그동안 김연자가 벌어들인 돈을 모두 써버린 것이었는데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결혼 전에 한국에 마련해 둔 작은 건물과 집이 있어 이 건물과 집 덕분에 다시 한국에서 보다 수월하게 재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김연자(가수) 귀국 이후 활동 근황

앞서 김연자는 2009년에 일본 활동 22주년을 끝으로 대한민국 활동을 공식화한 이후, 귀국과 함께 경쾌한 리듬의 트로트 '10분 내로' 로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김연자는 2012년 5월, 함께 일해왔던 남편과 이혼하고 센슈기획과의 업무 제휴가 종료되면서, 김연자가 직접 대표가 되어 일본에 새 회사를 설립, 이후 2013년, 2014년에는 아모르 파티, 타이틀로 정통에서 벗어난 EDM과 트로트를 접목시킨 장르를 선보이며 활동하게 됩니다.

 

아모르 파티는 10대와 20대 젊은 세대들에게도 폭발적인 반응과 공감을 얻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김연자는 몰라도 '아모르 파티'는 알고 있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김연자는 '아모르 파티'의 히트로 사실상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는데요, 이후 한동안 뜸했던 국내 무대에서 다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상파 3시의 프로그램에 심심치 않게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김연자(가수) 결혼 전남편 나이(차) 직업, 누구?

 

김연자-전남편

 

김연자는 전남편 히로시 오카(한국 이름 김호식)와 1981년 비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김연자와 전남편 히로시 오카 두 사람의 나이차는 김연자는 1959년생인 65세, 전남편은 1941년생으로 18살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전남편 김호식의 직업은 원래 일본에서 색소폰 연주가 겸 밴드 지휘자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후 김연자의 매니저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김연자 남편이 야쿠자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사실은 원래 음악인이었고, 또한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예총 일본지부장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연자(가수) 전남편 김호식과 결혼스토리 자녀

두 사람의 인연은 김연자의 일본 1차 활동 초창기때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김연자 : "제가 일본에 처음 진출했을 때(1977년) 방송무대에 출연했다가 남편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어요. 사실 제가 그때 나이도 어린데다가 낯선 외국 땅이라 모든 것이 쑥스럽고 기도 제대로 못 펴고 있었거든요."

 

김연자 : "그런데 하루는 누군가가 다가와서 한국말로 아주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라고 하는 거에요. 깜짝 놀라서 돌아봤더니, 바로 밴드 지휘자였어요. 그때 누군가와 한국말로 대화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반가웠죠."

 

김연자 : "남편과는 처음부터 끌렸어요. 첫만남 장소에서 서로 같은 김씨 성이지만, 본관이 다르다는 사실까지 확인하고 안심했을 정도였죠."

 

결국 김연자가 1980년 한국으로 귀국해서 가수 활동을 하고, 1982년 4월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요, 두 사람 사이에는 자녀는 없었다고 합니다. 

 

김연자 : "제가 스물세살에 결혼했지만 노래를 하다 보니 기회(아이 낳는 일)를 놓쳤어요.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제게는 평생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바로 노래죠."

 

김연자-전남편

 

김호식 : "아내는 가수이다. 가수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면 노래를 잘 할 수 있을까,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거다. 그래서 그것만 생각하는 편이 좋은 가수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때떄로) 가엽기도 하지만 이미 가수의 길을 택했으니 어쩔 수 없다."

 

김연자 : "남편이 나를 잘 봤다. 왜냐하면 나에게 아이가 있으면 아이에게 집중하지 노래를 못 할 것 같다. 사실 나는 두 가지 일을 못한다. 내가 여자로서는 불행하지만 가수니까 그게 좋지 않을까 싶다...사실 후회는 없는데 (아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 김연자가 나중에 이혼을 한 다음에 밝힌 바에 의하면 아이를 갖지 않은 것 역시 남편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음이 드러납니다. 

 

김연자 : "그것도 남편이 필요 없다고 못 갖게 했다. 장난으로 남편이 '나는 큰딸(김연자)이 있으니까 괜찮다'고 하더라. 남편이 나와 18살 차이가 나지 않냐. 젊었을 때 나는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남편은 들어주지 않았다. 우리 부부생활의 중심은 노래로 시작해 노래로 끝났다"

 

 

김연자(가수) 전남편 김호식과 이혼 사유

하지만 김연자는 이후 2012년 전남편과 이혼하게 됩니다. 

 

김연자 : "일본에서 하루에 1억원씩 때도 있었는데, 이혼 후 내 앞으로 된 재산이 하나도 없더라. 사실 이혼을 결심한 건 10년 전부터였다. 재일교포인 전 남편과 10년 전부터 갈등을 느꼈고, 지난(2012년) 2월부터 3개월의 조정기간을 거치고 지난 5월에 이혼하게 됐다."

 

김연자 : "남편에게 쉬는 날을 만들어달라고 하면 행복한 비명이라고 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의지할 곳은 남편 뿐이었다. 그래서 남편이니까 내 장래 설계도 해주겠지 라는 믿음이 있었다."

 

김연자 : "남편에게 개런티가 얼마인지 물어본 적도 없고 은행에 가본 적도 없이 믿고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문득 뒤돌아 봤더니 내 앞으로 된 게 아무것도 없더라."

 

김연자 : "나는 내가 번 돈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지 못한다. 하루에 1억원 이상 번적도 있었다. 대략 100억엔(한화 약 1400억원) 이상을 벌었다고 예상만 하고 있다."

 

김연자 : "하지만 위자료는 하나도 못 받았다. 나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게다가 전남편이 재판 중에 돈이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 받았다. 위자료 뿐만 아니라 재산 분할 등 아무것도 안해줬다."

 

김연자 : "(한국으로 재산이) 0원으로 돌아온 것은 사실이다."

 

김연자(가수) 남자친구 나이 직업 인연

 

김연자-남자친구

 

그리고 그렇게 전남편과 이혼한 김연자는 이후 지금의 소속사 대표를 만나 열애 중인 사실을 공개하며 결혼 준비 중인 근황을 밝혔습니다. 힘들었던 시절 자신의 곁을 지켜준 사람이 바로 남자친구였다고 하네요. 

 

김연자는 한 방송에 출연해 지금의 남자친구와 11년째 만남을 이어오고 있고 10년째 동거 중이라고 밝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김연자 : "우리 둘은 인연이 엄청 길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원에 다니며 노래 연습을 했는데 그때 같은 학원에 다녔던 학생이다. 알고 지낸 세월만 50년이다."

 

김연자 : "서로 상경해서 생활하다 보니 긴 시간 엇갈렸는데 힘든 시기에 많은 도움을 줬다. 일본에서 활동하다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싶었는데 그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다. 남자답고 리더십이 있다."

 

김연자 : "2013년 정도부터 같이 살고 있다. 서로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 결혼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결혼을 하고 싶은데 자꾸 미루게 됐다. 코로나19가 끝나면 꼭 결혼하려고 한다. 남자친구는 봄에 하자고 하는데 나는 많은 분께 축복을 받고 싶어서 가을쯤 생각하고 있다."

 

김연자 : "(남자친구가) 운동을 해서 어릴 때부터 술 담배를 안 한다. 반면 나는 술을 엄청 좋아한다. 뒤풀이 자리에서도 제가 조금 취했다 싶으면 바로 데리고 나간다. 그것 때문에 자주 싸웠는데 결국엔 내가 진다."

 

실제로 김연자는 전 남편과 이혼 후 국내 복귀 과정이 난관에 부딪히면서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는데요, 귀국 후 달라진 국내 가요 트렌트에 적응하지 못했던 그녀가 아모르 파티로 재기할 수 있었던 건 현재 소속사 대표인 남자친구의 도움이 컸다고 합니다.

 

또한 김연자의 연인(남자인구) 홍상기 대표는 김연자보다 4살 연상으로, 가수 출신으로 현재 소속사 대표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가수 송대관과 폭언 논란으로 진실 공방을 벌여왔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2017년 KBS1 가요무대 녹화 후 송대관이 홍상기 대표와 김연자의 인사 문제로 언쟁을 벌였습니다. 

 

결국 송대관이 명예훼손 등을 혐의로 고소장을 제출하며 법적 공방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또 지난해에는 탈세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김연자 측은 탈세는 말도 안 된다면서 김연자의 유명세를 악용하려 한다며 반박했습니다. 

 

김연자(가수) 남자친구와 결혼 계획 

이후 김연자는 남자친구와의 결혼 계획을 다음과 같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김연자 : "처음엔 나이도 드니까 빨리 (결혼)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도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 반대로 나이 먹고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연자 : "서로가 이해하고, 같이 살기도 하고, 모든 걸 같이 하고 있다. 식만 안 올렸을 뿐이다. 결혼식을 할 거면 의미 있게 하자고 해서 김연자 기념관이 완공되면 결혼식을 하자고 했다."

 

김연자 : "김연자 기념관을 전남 영광에서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빨리 생각대로 안 되더라. 내 생각엔 빨라야 3~4년 뒤다. 그래서 70살이 넘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연자 : "상대방(남자친구)도 원래 가수였다. 그래서 그냥 결혼식을 하기보다는 같이 콘서트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팬도 오고, 보고 싶은 사람 다 공짜로 초대해서, 성대하게 (결혼 콘서트를 하고 싶다)"

 

김연자(가수) 집 

한편 2022년 한 방송을 통해 김연자 집이 공개돼 관심을 모으기도 했는데요, 특히 김연자의 수작업 무대 의상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평균 옷값은 500만원, 300벌이 넘는 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총 15억원이 넘는다고 전해져 놀라움을 안기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과거 방송을 통해 몇 차례 공개된 바 있는 김연자의 집은 경기도 은평구에 위치한 아파트로 알려졌는데요, 해당 집 위치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이번에 가요무대에 출연하게 된 가수 김연자인데요, 앞으로도 좋은 무대와 다양한 모양으로 활약 이어가는 모습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가수 김연자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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