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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트로트 레전드입니다. 

 

1978년 자작곡 '그때 그 사람'으로 데뷔한 이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비나리', '백만송이 장미' 등 수많은 명곡을 발표하며 오랜 시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가수 심수봉

 

특히 대부분의 히트곡을 직접 작사·작곡한 뛰어난 음악성과 애절한 감성을 담은 독보적인 창법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또한 국악 명문가 출신이라는 배경과 10·26 사건,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삶까지 굴곡진 인생을 살아오며 많은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심수봉의 나이와 고향, 집안과 어린 시절, 데뷔 과정, 대표곡, 결혼과 남편, 자녀 이야기, 그리고 최근 근황까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가수 심수봉 집안, 4대째 이어온 국악 명가

가수 심수봉 집안

 

심수봉의 집안은 우리나라 국악사에서 손꼽히는 4대째 이어온 국악 명문가입니다. 충청·경기 지역의 전통 소리인 중고제 판소리를 중심으로 가야금 산조와 병창, 민요, 전통무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인을 배출한 집안으로, 국악계에서는 대표적인 음악 가문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음악적 계보는 증조부 심팔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심팔록은 피리와 가야금의 명인이었으며, 그의 뒤를 이어 할아버지 심정순(1873~1937)은 중고제 판소리와 가야금 산조, 병창 등 전통 가무악 전반에 뛰어난 실력을 갖춘 명인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가야금 산조와 판소리를 유성기 음반으로 남기며 우리 전통음악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심정순의 예술은 가족들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아들 심재덕은 국악 연주와 연구를 겸한 전문가로 전국을 다니며 민요를 채록하고 우리 소리를 기록하는 데 힘썼으며, 5촌 당숙 심상건은 가야금 산조의 거장으로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고모 심화영은 승무 명인으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보유자로 인정받았고, 심매향은 1920년대 '붉은 장미화' 음반을 취입한 초기 여성 가수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처럼 심수봉 집안에서 남긴 가야금 산조와 병창, 판소리 유성기 음반만 100여 장이 넘으며, 심수봉은 방송에서 "증조부 시절부터 4대에 걸쳐 발표한 음반이 140여 장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음악적 전통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포르테 디 콰트로 멤버이자 《불타는 트롯맨》 우승자 손태진은 심수봉의 조카손자(이복 큰언니의 손자)이며, 걸그룹 Billlie(빌리)의 시윤 역시 같은 친척 가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수 심수봉 학창 시절, 음악에 눈뜨다

가수 심수봉 어린시절

 

국악 명문가에서 태어난 심수봉은 충남 서산의 서산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부모의 이혼 이후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오면서 은로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이후 영등포의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희귀병으로 장기간 입원 치료를 받으며 약 2년간 휴학하는 등 순탄치 않은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중학생 때는 첫사랑이었던 가정교사에게 일본의 전설적인 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레코드를 선물받으면서 엔카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여기에 어려서부터 접한 국악과 재즈, 팝 음악까지 더해지며 훗날 심수봉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와 드럼, 가야금 등 여러 악기를 능숙하게 다뤘고, 노래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며 무대 경험을 쌓았습니다.


가수 심수봉 미8군 무대부터 정식 데뷔까지

심수봉은 1972년 판소리 소리꾼으로 처음 무대에 섰고, 1974년에는 미8군 무대에서 록 밴드 드러머로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박종규 대통령 경호실장의 눈에 띄어 청와대 행사와 비공개 연회 등에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앞에서 나훈아의 노래를 불렀고, 이를 들은 나훈아의 추천으로 음반 제작을 추진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뒤늦게 대학 진학을 준비한 심수봉은 숙명여대 작곡과에 지원했지만 불합격했고, 이후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가수 심수봉 '그때 그 사람'으로 스타가 되다

가수 심수봉 리즈

 

심수봉은 1978년 '여자이니까'로 정식 데뷔한 뒤, 같은 해 명지대학교 재학 중 MBC 대학가요제에 자작곡 '그때 그 사람'을 들고 참가했습니다.

 

당시 대학가요제는 포크와 록 음악이 주류였지만 심수봉은 과감하게 트로트를 선택했습니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심사위원들로부터 "너무 프로답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무대를 선보였고, 이후 '그때 그 사람'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단숨에 정상급 가수로 떠올랐습니다.


10·26 사건과 긴 시련

하지만 데뷔 직후인 1979년 10·26 사건으로 인생의 큰 시련을 맞았습니다.

 

궁정동 안가에서 열린 박정희 대통령의 만찬 자리에 초청됐다가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고, 사건 이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법적인 혐의는 없었지만 방송 활동이 중단됐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는 등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 '아낌없이 바쳤는데'의 주연과 OST 작업에 참여했고, 드라마 '순자의 가을' 주제곡도 직접 작사·작곡해 불렀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 출범 이후 노래 제목에 영부인 이름인 '순자'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방송 금지 처분을 받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가수 심수봉 재기와 국민가수로의 도약

가수 심수봉 리즈

 

1984년 방송 활동이 재개된 이후 심수봉은 다시 음악 활동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직접 작사·작곡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큰 사랑을 받으며 재기에 성공했고, 이어 발표한 '무궁화' 역시 큰 화제를 모았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하루 만에 방송 금지되는 등 또 한 번 시련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은 오히려 심수봉 특유의 깊고 애절한 감성을 완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1987년 '사랑밖엔 난 몰라'가 국민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다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이후 1997년 '백만송이 장미'를 발표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대표곡을 추가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트로트 가수로 확고한 위치를 다졌습니다.


가수 심수봉 최근 근황

가수 심수봉

 

심수봉은 이후에도 꾸준히 음반과 공연 활동을 이어왔으며, 2018년 '내 삶은 빛나기 시작했다'를 발표하는 등 신곡 작업도 계속했습니다.

 

최근에는 방송보다 전국 콘서트와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불후의 명곡' 전설의 아티스트 편과 '현역가왕'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후배 가수들의 멘토 역할을 맡았습니다.

 

또한 '불타는 트롯맨' 우승자 손태진의 조카할머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 화제를 모았으며, 현재도 가요무대를 비롯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과 공연을 통해 꾸준히 팬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1970년대 데뷔 이후 반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대한민국 가요계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수 심수봉 수상 경력

-1978년 제 2회 MBC 대학가요제 입선

-1979년 KBS 가요대상 신인상

-1979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2009년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명예의 전당 최초 수상

-2013년 KBS2 불후의 명곡 시청자가 뽑은 다시 보고 싶은 전설 1위

-2018년 제 9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


가수 심수봉 작사·작곡·가창 능력

심수봉은 뛰어난 가창력과 작사·작곡 실력을 모두 갖춘 대한민국 대표 싱어송라이터입니다. 특유의 애절한 비음과 섬세한 감정 표현, 피아노 연주 실력을 바탕으로 대부분의 대표곡을 직접 작사·작곡하며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대표곡으로는 '그때 그 사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비나리', '미워요', '무궁화' 등이 있으며, 지금도 많은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할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백만송이 장미'를 한국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해 또 하나의 대표곡으로 만들었으며, 조성모의 '후회' 등 다양한 리메이크 곡도 선보였습니다.

 

직접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능력과 시대를 초월하는 감성으로 심수봉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트로트 레전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심수봉(가수) 수입과 재산

심수봉의 정확한 재산 규모는 공개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데뷔 이후 4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하고 대부분의 대표곡을 직접 작사·작곡한 싱어송라이터인 만큼, 가요계에서도 손꼽히는 저작권 수입을 올린 가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수봉의 대표적인 저작권 효자곡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입니다. 이 곡은 발표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큰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고, 한때 월 저작권료만 약 7,000만 원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금액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수억 원에 이르는 수준으로 평가될 만큼 엄청난 수익을 안겨준 곡으로 꼽힙니다.

 

이 밖에도 수많은 히트곡을 직접 작사·작곡하거나 편곡에 참여해 지금도 음원과 방송, 공연, 리메이크 등을 통한 저작권 수입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연 활동 역시 주요 수입원입니다. 심수봉은 방송 출연보다 전국 콘서트와 디너쇼,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오며 오랫동안 안정적인 수입을 올려왔습니다. 여기에 음반 판매와 저작권료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심수봉은 방송에서 재혼 과정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했던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유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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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심수봉 첫 번째 결혼 남편 이혼 아들 

가수 심수봉

 

심수봉은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기 전 두 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습니다.

 

첫 번째 결혼은 10·26 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인연을 맺은 한기석 씨와의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한기석은 도사 또는 심령치료사로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실혼 관계로 생활하며 아들을 얻었지만,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별하게 됐습니다. 심수봉은 이후 여러 방송에서 당시를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 가운데 하나였다고 회상한 바 있습니다.


가수 심수봉 두 번째 결혼과 이혼

이후 심수봉은 사업가와 재혼해 딸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고 약 6년 만에 이혼하게 됐습니다.

 

이혼 과정에서 딸과 생이별을 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심수봉은 전남편의 부탁으로 딸을 잠시 보냈다가 연락이 끊겼고, 이후 오랜 시간 딸을 만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당시의 절절한 심정을 담아 직접 '아이야'를 작사·작곡했으며, 훗날 "딸과 헤어졌을 때의 마음을 담은 노래"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8년이 흐른 뒤 딸이 핑클 사인을 받아 달라며 연락해오면서 두 사람은 다시 연락을 시작했고, 이후 미국에서 함께 생활하며 잃어버린 시간을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가수 심수봉 세 번째 결혼 남편 김호경 누구?

심수봉은 1995년 지금의 남편 김호경 씨와 세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김호경 씨는 MBC 라디오 PD 출신으로, 두 사람이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심수봉이 진행하던 '심수봉의 트로트 가요앨범' 제작을 맡으면서였습니다.

 

당시 심수봉은 김호경 씨가 유부남인 줄 알고 마음을 접었지만, 방송인 김흥국으로부터 이미 이혼한 상태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이후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심수봉은 새벽기도 중 목회자 부부에게 "두 사람이 함께 무덤에서 나오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훗날 김호경 씨와의 만남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대표곡 '비나리'는 남편 김호경 씨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담아 직접 작사·작곡한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수 심수봉 남편 김호경과의 결혼생활

재혼 이후에도 가족이 하나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전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새로운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심수봉은 아이들과 남편 사이에서 고민해야 했고, 결국 남편 김호경 씨와 약 9년 동안 떨어져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심수봉은 오랜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 준 남편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하며 "남편은 원래 사랑 표현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따뜻하게 대해준다"고 말했습니다.

 

현재는 가족 간의 갈등을 모두 극복하고 자녀들과 함께 화목한 가정을 이루며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수 심수봉 자녀, 아들·딸 근황

심수봉은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첫 번째 결혼에서 아들을, 두 번째 결혼에서 딸을 얻었으며, 현재 남편 김호경 씨와의 재혼 이후에는 가족을 이루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심수봉은 두 번째 이혼 과정에서 딸과 생이별을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당시 전남편이 "딸이 보고 싶다"며 잠시 아이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고, 믿고 아이를 보냈지만 이후 연락이 끊기면서 오랜 시간 딸을 만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심수봉은 이 시기의 절절한 심정을 담아 직접 '아이야'를 작사·작곡했으며, 훗날 "딸과 헤어졌을 때의 마음을 담은 노래"라고 설명했습니다.

 

모녀의 인연은 약 8년 뒤 다시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딸이 직접 전화를 걸어 "핑클 사인을 받아 달라"고 부탁했고, 심수봉은 이를 계기로 딸과 다시 연락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후 "정작 핑클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부탁이었다"는 딸의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던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전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심수봉은 딸과 함께 미국에서 약 2년간 생활하며 잃어버린 시간을 조금씩 회복했습니다. 그는 여러 인터뷰에서 "딸과 함께 지낸 시간이 그동안의 상처를 치유해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장남 한승현 씨는 과거 KBS '여유만만' 등 방송에 어머니와 함께 출연해 재혼 당시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는 "막내 여동생이 새아버지의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가족들이 약 9년 동안 떨어져 살아야 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현재는 가족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며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승현 씨는 현재 기획사 대표로 활동하며 심수봉의 공연과 음반 제작, 매니지먼트 등 전반적인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딸은 2018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심수봉을 대신해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며 소감을 전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가수 심수봉 집 위치, 평수, 가격

심수봉은 오랜 기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자택에서 거주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주택은 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공개되며 화제를 모았으며, 강남역과 신논현역 인근의 뛰어난 입지와 대규모 단독주택이라는 점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자택은 언덕 지형에 자리한 건물로, 외관상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처럼 보이지만 등기상으로는 지하 2층~지상 2층 구조입니다. **대지면적은 약 350㎡(약 106평), 연면적은 약 866㎡(약 262평)**에 달하는 대형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지하에는 심수봉의 전용 음악 작업실과 연주 공간, 소규모 공연이 가능한 무대가 마련돼 있으며, 주차장과 엘리베이터 등도 갖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지상층은 상가와 주거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심수봉은 1989년 해당 부지를 매입한 뒤 직접 건물을 신축해 30년 넘게 거주해 왔으며, 부동산 업계에서는 강남역 인근이라는 입지와 100평이 넘는 코너 대지라는 점 등을 고려해 약 120억 원 안팎의 가치가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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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심수봉 본명

가수 심수봉의 본명은 심민경입니다.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은 가수로써 성공하려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권유로 어릴 때 스님이 지어준 법명인 심수봉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다만, 대학가요제에는 심민경이라는 이름으로 나왔고, 데뷔 후에 심수봉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개종 이후 인터뷰에서는 본인이 개신교적인 이름으로 바꾸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심수봉이란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수 심수봉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종교 학력 소속사 

가수 심수봉

 

심수봉 나이는 1955년 7월 11일생으로 올해 69세입니다. 심수봉 고향은 충청남도 서산시이며, 가족으로는 부모님, 언니, 이부 남동생 1명, 이부 여동생 1명, 남편 김호경과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습니다. 

 

참고로, 심수봉 언니는 이복 언니로 나이가 어머니와 비슷한 또래라고 하는데요, 가수 손태진이 이 언니의 손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부 동생들은 심수봉의 친아버지가 그가 출생한 직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재혼해 이부 동생들이 있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심수봉 혈액형은 O형이라고 하며, 종교는 개신교(침례회)입니다. 원래 불교였다가 개종해 1985년부터 개신교 신자가 되었고, 현재 강남중앙침례교회에 다닌다고 합니다.  

 

심수봉 학력은 인화여자고등학교, 명지대학교 경영학 학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심수봉의 현재 소속사는 라이트웨이브 엔터테인먼트, 루체 엔터테인먼트 소속입니다.

 

이중 라이트웨이브 엔터테인먼트는 아들 한승현이 운영하는 회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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