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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일청(가수) 나이 부인(아내) 김치사업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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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일청(가수) 나이 부인(아내) 김치사업 근황 

 

 

<가요무대 위일청>


 

가수 위일청이 8월 24일 가요무대에 선다고 합니다. 

 

 

과거 서울패밀리로 인기가 굉장했었기 때문에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을 모르시는 분들이 없으실 거 같은데, 요즘에는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네요. 그래서 오늘은 위일청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모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일청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데뷔 활동(허리케인 -> 서울패밀리 -> 솔로) 위일청 그룹 탈퇴 후 사업실패, 이후 가수 복귀  이후 김치사업 근황 성현아>


 

-위일청(가수), 위일청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데뷔

 

가수 위일청의 본명은 위규용이라고 하구요, 위일청 나이는 1955년 2월 1일생으로 올해 나이 66세입니다. 위일청 고향은 서울시이며, 1974년 미 8군 무대를 시작으로 음악활동을 시작, 

 

 

 

다운타운의 메탈 그룹사운드 활동과 당시 인기 그룹사운드 딕 훼밀리 를 거치면서 락과 부루스 음악을 접하였고, 이후 쉘부르를 비롯한 다수의 라이브 무대 활동을 거치면서 포크음악을 섭렵한 후 1981년 KBS 주최 서울국제가요제에 자작곡 사랑은 으로 정식 데뷔했습니다. 

 

이에 대해 위일청은 한 인터뷰에서 "원래 음악을 좋아했어요. 지인 중에 미 8군 쇼 기획사에서 일하는 분이 계셨는데 심심하면 연락하라고 늘 말씀하셨죠. 대학 시험을 보고 무료하던 차에 용산 미군 클럽에 놀러 갔어요"

 

 

이어 "장난 반, 재미 반으로 무대에 올라가서 노래를 불렀어요. 그때부터 무대에 서기 시작해 하루 200원씩 받고 아르바이트를 했죠"라고 노래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위일청은 대학 입학 후에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그룹사운드를 결성, 멤버 중에는 아버지가 나이트클럽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있어 손님이 없는 6시 반에 무대에서 공연을 하며 연습했다고 합니다. 

 

 

위일청은 "가수 이미베씨에게 주기 위해 만든 곡을 서울국제가요제에 출품했어요. 엉겁결에 1차 심사에 통과했고 그걸 계기로 가수가 된 거죠. 지금 생각해도 준비된 가수라기보다 얼레벌레 됐어요. 준비 안하는 습관은 지금도 여전해요. 원래 목소리가 허스키해서 자다 일어나 공연해도 아무 상관이 없어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위일청(가수), 위일청 데뷔 이후 활동(허리케인 -> 서울패밀리 -> 솔로)

 

이후 위일청은 82년 정통 락밴드 허리케인 을 결성하여 다운타운 KBS 젊음의 행진 에 출연하면서 방송활동을 했으며, 84년 6인조 혼성밴드 서울패밀리를 결성하여 85년 내일이 찾아와도 가 수록된 서울패밀리 1집을 발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대중가수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어 86년 이제는 이 수록된 서울패밀리 번안가요 앨범은 당시 40만장이라는 기록적인 앨범판매와 함께 1986, 1987년 양대 방송사 10대 가수로 선정되기도 했었습니다. 

 

위일청은 "그 해 대한민국 가요계 관련된 상이란 상은 다 받았어요. 저희를 남녀 듀엣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6인조로 시작해 9인조까지 멤버가 늘어났거든요. 상패를 하나 받으면 멤버들끼리 돌려가면서 사진을 찍었던 생각이 나네요"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후에는 위일청과 김승미 두 사람이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는데요, 당시까지만 해도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참고로 당시 위일청은 김승미와 스캔들이 터지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사실과는 다르다고 하네요. 

 

 

김승미는 과거 한 인터뷰를 통해 "서울패밀리가 큰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다. 남녀가 듀엣으로 노래를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연인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나와 위일청은 연애를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위일청의 이상형은 여성그럽고 예쁜 여자인데, 나는 그렇게 여성스럽지가 않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2집을 준비할 때 갑자기 위일청의 탈퇴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김승미의 남편인 유노(위일청 이후 서울패밀리 후속 멤버)에 따르면 당시 김승미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노래도 안한다고 할 지경이었다고 하네요. 

 

위일청은 1988년 솔로 유닛트 활동을 시작하여 4장의 앨범과 13장의 리메이크 앨범으로 2000만장의 판매를 가지고 있으며 SBS 일일드라마 사랑의 찬가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는데 이 드라마의 연출자 주일청 PD가 작사자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위일청(가수), 위일청 그룹 탈퇴 후 사업

 

위일청은 그룹 탈퇴 후 스튜디오 녹음실을 열었고 특유의 부지런함으로 사업을 일궈나갔는데요, 그는 국내 최초로 MIDI 시퀀스 음악(컴퓨터음악 작업)이 가능한 스튜디오를 냈다고 합니다. 이에 많은 가수들이 이 스튜디오를 이용하기 위해 그를 찾았다고 하네요. 

 

 

"일본에서 장비를 한두 개 사오다 보니 시퀀스 음악을 할 수 있었어요. 가수들이 모이니 그 안에서 콘서트를 하자는 말이 나오기도 하고, 실제로 우드스톡 같은 록 페스티벌을 열어 강원도 고성에서 보름간 공연을 열기도 했어요. 그게 소문이 나서 사업이 커지기 시작했죠"

 

위일청은 신문사 광고부 간부였던 남동생의 도움으로 광고 사업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다양한 고객을 만나다 보니 영화 제작에 손을 댔고 CG나 각종 효과가 필요해 IT 사업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방송국 두 곳을 인수하기까지 했다고 하네요. 

 

 

"전 하고 싶은 게 참 많은 사람인가 봐요. 그동안 수월하게 사업을 해왔는데 영화에 손을 대고 나이 타격이 크더라고요. 2003년까지 사업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하지만 이후 위일청은 사업을 접게 되었는데요, 공들였던 사업을 쉽게 접을 수 있었던 것은 그를 항상 아해해주는 아내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위일청의 부인(아내)은 남편이 가수로 무대에 올랐을 때가 가장 위일청답다고 했는데요, 

 

 

위일청 부인(아내)은 "망한 것과 다름없었죠. 사업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남편에세 지난 일은 모두 잊고 당신은 노래하는 사람이니 노래만 하라고 했죠"라고 했다고 합니다. 

 

-위일청(가수), 위일청 사업 실패 후 가수 복귀 

 

그 이후로 위일청은 사업을 포기하고 무대만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다고 합니다. 매일 하루에 대여섯 곳을 다녔고 식사할 시간도 없어 이동 중에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먹으며 다녔다고 하네요. 

 

 

 

위일청은 그렇게 1년 넘게 지방 공연을 다녔더니 경제적으로도 안정되기 시작했고 여유를 되찾은 그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위일청은 횟수로 약 200회 이상 공연을 하며 모금을 하기도 했으며, 또 아내와 함께 적은 양이나마 힘닿는 대로 복지시설에 김치를 후원하기도 했답니다. 

 

-위일청(가수), 위일청 김치사업

 

위일청은 이후 음식 솜씨가 있는 부인(아내)의 손맛을 이용해 우연한 기회를 얻어 김치사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위일청은 과거 한 인터뷰에서 "가수 활동을 하면서 집으로 많은 손님들이 방문했다."

 

 

"그런데 아내가 만든 음식을 맛본 사람들이 다 맛있다고 감탄하더라. 특히 김치를 만들어서 주위에 나눠줬는데, 입소문이 자자하게 났다. 이후에도 게속 우리 집 김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김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고, 

 

또한 위일청은 "이것저것 생각해 봤지만 상품화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은 김치더라"며 노화와 암예방에 탁월한 한국의 대표음식 김치를 사업 아이템으로 결정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위일청은 "2시간 1200도의 옥화로에서 구어 내어 몸에 해로운 중금속과 간수를 제거한 순도 100%의 소금, 김치의 감칠맛을 더해주는 비법 육수와 항암 및 면역효과가 뛰어난 라이조포스 종균을 함께 버무려 내는 것이 우리 김치의 특징"이라고 말하며 일청 명가 김치 자랑에 여념이 없었는데요, 

 

 

위일청은 5개의 특허를 출원하고 한국 전통 식품 인증마크까지 획득할 정도로 사업가로서는 어느 정도 성공적인 위치에 섰다고 하는데요, 위일청은 "우리 김치는 100%로 수작업, 우리 농산물로 만들어지고 있다. 내 가족이 먹듯 김치를 만들어 제공하니, 내 음식을 먹어준다는 느낌이 들어 그게 그저 행복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위일청(가수), 위일청 근황

 

위일청은 또한 최근 2020년 신곡 들꽃같은 인생을 타이틀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는데요, 위일청의 신곡은 지난 2005년 '우연'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위일청의 신곡은 파란만장했던 본인의 인생을 담은듯한 가사 자존심 하나만으로 거친 인생을 살아온 내모습이 짙은 허스키와 구성지게 어우러지는데요, 밴드 시절 구사하던 록과 블루스에서 세미 트롯으로의 변신도 인상적이랍니다. 

 

 

또한 위일청은 한편 지난 5월부터 유튜브 위일청 tv를 시작했는데요, 다운타운 그룹 데뷔부터 10대가수 시절, 7080포크음악까지 뒷이야기들을 진솔한 입담으로 늘어놓으며, 40년 동안 즐겨 부르던 노래들을 매회 4곡씩 본인의 통기타 반주와 함께 열정 라이브로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위일청(가수), 위일청 부인(아내)와 성현아

 

위일청의 부인(아내) 방미자 씨로, 성현아와 친자매처럼 지낼 정도로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하는데요, 실제로 위일청은 지난 2017년 MBN 아궁이에 출연해 성현아의 남편 통장 잔고를 언급하며 안쓰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위일청에 따르면 사망한 성현아의 남편 통장에는 불과 몇 천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성현아는 SBS 플러스 김수미의 밥은 먹고 다니냐?에서 "남은 700만원도 살던 집을 정리하고 남은 보증금이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위일청의 아내에세 도움을 많이 받았다"라며 "너무 더운 여름에 선풍기 두 대를 주셨는데 너무 행복했다. 아들과 추억이 됐다"라고 이야기하며 끝내 김수미의 손을 잡고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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