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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택(작곡가) 나이 히트곡 저작권료 아내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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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택(작곡가, 지휘자) 나이 히트곡 저작권료 아내(부인) 자녀 <스타다큐 마이웨이>



<스타다큐 마이웨이 지휘자 겸 작곡가 김정택 단장>



지휘자 겸 작곡가 김정택 단장이 화제입니다. 




11월 20일 스타다큐 마에웨이에서는 지휘자 겸 작곡가 김정택이 출연, 자신의 음악 철학을 전한다고 합니다. 피아노 건반 위에서 누구보다 자유로운 영혼, 음악으로 행복을 전하고 싶다는 김정택은 가수 전영록의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 현숙의 정말로,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 등 히트곡을 만들어 80년대 가요계를 장악했던 인물로, 최근 트로트 가수 요요미의 신곡 만약 혹시나 만약에를 작곡했다고 합니다. 



김정택 단장은 2018년 보관문화 훈장을 받으며 "음악으로 소외되고 힘든 분들의 눈물을 닦아드리고 기쁨을 드리는 대중 예술가가 되고 자 한다"고 했는데요, 그에게 음악에 대한 애착을 만들어준 인물은 모차르트라고 합니다. 


헤어스타일까지 모차르트를 닮은 그는 "영화 아마데우스를 본 후 모차르트를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다"며 애정을 드러냈는데요, 이날 방송에서는 김정택의 전화 한 통에 먼 길을 달려와 준 가수 최성수와 세계적인 성악가 김동규의 아름다운 가을 여행이 펼쳐진다고 합니다. 




<목차>

-김정택 프로필 나이 키 혈액형 고향 가족 종교 학력 별명

-김정택 활동 경력 

-김정택 과거, 클래식 연주자 -> 대중가요 뮤지션

-김정택 히트곡을 제조하는 대중가요 작곡가로, 현숙

-김정택 히트곡 제조기, 정수라 전영록 인순이 심수봉, 이주일, 자니윤, 이덕화

-김정택, 클래식과 대중가요 접목한 크로스오버

-김정택의 저작권료, 봉사, 결혼 아내(부인) 자녀




-김정택 단장(작곡가 지휘자), 김정택 프로필 나이 키 혈액형 고향 가족 종교 학력 별명


지휘자 겸 작곡가 김정택 단장은 1950년 12월 6일생으로 올해 나이 71세입니다. 김정택은 키 175cm에 몸무게 74kg 혈액형은 B형이라고 하구요, 김정택 고향은 서울이며, 김정택 가족으로는 아내(부인)와 아들 1명과 딸 1명을 자녀로 두고 있습니다. 



김정택 단장의 종교는 개신교라고 하구요, 김정택 학력은 배제 중학교, 서울예술 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기악학과, 무사시노 음악대학 작곡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정택의 별명으로는 고장 난 수도꼭지가 있는데요, 김정택의 아내(부인)가 지어준 것이라고 하네요. 


-김정택 단장(작곡가 지휘자), 김정택 활동 경력 개요


김정택 단장은 현재 SBS 명예예술단장(2009년부터)과 단국대 겸임교수로 활동 중에 있는데요, 서울예고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그는 1991년 SBS개국과 함께 SBS관현악단 지휘자로 취임, 이후 서울방송 예능국 전속예술단 단장, SBS프로덕션 예술단 단장 겸 관현악단장, SBS 프로덕션 사업본부 예술단 단장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또한 동계 아시안게임, 부산 아시안게임, 대구 유니버시아드대회, 2002월드컵전야제 등 다양한 국가행사에서 개폐회식 음악 작곡 편곡자로 활동하며 세계 속의 한국 문화 위상을 드높였던 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택 단장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3년에는 대통령 표창장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지난해에는 순천시 명예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또한  그는 작곡가와 SBS 예술단장 뿐 아니라 전도사로 활동하며 신앙과 관련된 서적들을 출판하기도 했답니다. 


김정택 단장은 작곡가 데뷔 이후 밤이면 밤마다, 전영록의 불티, 아직도 어두운 밤 인가봐, 이젠 가슴 아픈 말 하지 말아요, 하얀 밤에, 정수라의 어부의 딸, 현숙의 정말로, 심수봉의 미워요 등 다양한 노래들을 만들어냈는데요, 



과거 1980년대 한국가요계에 많은 히트곡을 내서 히트곡 제조기 라는 닉네임을 가질 정도였던 김정택은 현재 한국 음악 저작권 협회에 등록된 곡이 320곡 정도 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김정택은 과거 KBS 불후의 명곡 전설의 작곡가 김정택 편에 출연하기도 한 그야말로 한국대중가요계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통한답니다. 


김정택 수상내역으로는 1987년 한국일보 백상예술대상, 1996년 문화방송 아름다운 노래 대상, 2003년 대통령 표창, 2018년 10월 제 9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김정택 단장(작곡가 지휘자), 김정택 과거, 클래식 연주자 -> 대중가요 뮤지션


김정택 단장은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요, 6.25 이후 대구에 피난을 갔다가 이후 9.28 서울수복 당시 다시 상경해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정택 단장은 1958년 서울대 음대 작곡가를 졸업한 큰형의 영향으로 8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이후 배제중학교에서 밴드부원으로 활동을 하다가 서울예고에서 트럼팻을, 서울대에서 피아노와 호른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이후 김정택 단장은 20대 청년기에는 동부이촌동에서 녹음실 전문 연주자인 세션맨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고 하는데요, 당시에는 전문적으로 연주하고 활동하도록 교육하는 대학교 실용음악과가 없어서 마장동, 방배동, 동부이촌동 등지에 산재한 녹음실에서 도제식으로 사사받으며 연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김정택 단장은 육군 병장으로 44개월 복무한 후 전역해 한 명의 완숙한 성인으로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한다는 목표 하에 자신의 능력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중 적은 시간을 투자해 고수입을 올리는 세션맨의 활동을 알게 되어, 서울시에 산재한 유수 클럽과 방송 등에 필요한 음악을 연주하고 편곡은 물론 작곡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정택 단장은 당시 서울대 음대 출신으로 정통음악 클래식을 연주하지 않고 대중음악 딴따라를 한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의 결심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합니다. 


김정택 : "주위에서 순수음악인 클래식을 연주하지 않고, 딴따라 B급 음악인 대중가요를 연주한다고 못마땅해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음대 교수님도 연주회가 끝나고 제자들과 뒤풀이를 할 때는 흥에 겨워 눈물 젖은 두만강, 홍도야 우지마라, 목포의 눈물 등을 열창했다"


김정택 : "사람의 생활상과 밀접한 가요를 통해 개개인의 감정과 감흥을 한 단계 높여보자는 취지에서 세션맨, 뮤지션의 길을 선택했다. 무엇보다 나는 새로운 일, 신나는 일, 그리고 신비로운 일거리를 찾아내 추진하는 것이 좋았다"



김정택 단장은 한 단계 더 진일보해 대학 선배였던 김훈(현직 목사)이 조직한 그룹사운드 트리펄스(나그네들) 활동에 참여해 보컬과 키보드를 담당하기도 했고, 또한 소공동 라스베이거스와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연주를 하며 자신의 기량을 신장시켜 나갔다고 합니다. 



당시 트리펄스는 연주와 외모, 재능 등을 두루 갖춘 인재들로 구성돼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대 음대 출신이 실용음악을 추구한다는 이슈로 인해 세인들이 많은 관심과 높은 인기가 뒤따랐다고 합니다. 


-김정택 단장(작곡가 지휘자), 김정택 히트곡을 제조하는 대중가요 작곡가로, 현숙


이후 1981년 녹음실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편곡하던 김정택에게 가수들의 방문이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먼저 그동안 친분을 쌓고 지내던 16세의 효녀가수 현숙이 직접 찾아와 자신의 나이에 맞는 노래를 작곡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현숙은 김정택의 곡을 받으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몇 백원을 가지고 와서 김정택에게 식사를 대접하며 눈물로 호소했다고 하네데요, 그러한 현숙의 눈물에 김정택은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 김정택은 저 소녀(현숙)의 눈물을 닦아줘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김정택 : "현숙 씨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라는 곡을 써줬다. 현숙 씨와의 인연은 정말 잊지 못할 사연으로 넘쳐난다. 당시 현숙 씨는 무명가수였는데 정말 춥고 배고픈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김재에서 1만 5000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가수가 되겠다고 온갖 고생을 하고 있을 때였다. 조그만 무대에서 성인가요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시집도 안간 아가씨가 성인가요를 부르냐"는 핀잔을 많이 받았다"


김정택 : "어느 날 현숙 씨가 허름한 중국집으로 나를 불러서 자기에게 맞는 곡을 써달라고 했다. 밥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짜장면을 시키려고 하니 자기는 먹었다고 하나만 시키라고 해서 혼자만 먹었다. 난 정말 밥을 먹고 온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짜장면 값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닐 정도로 힘들어했다는 것을 듣고 마음이 짠했다"



김정택 : "어떻게 해서든 곡을 써주고 싶어 만들어 준 곡이 정말로이다. 전파를 타자마자 3주 만에 대박이 났다. 현숙 씨는 이 곡으로 10대 가수에 들어갔다. 개런티가 10배 이상으로 올라갔다. 얼마나 고마워 했는지 40여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얘기를 하며 의리를 지키고 찾아오고 있다"


-김정택 단장(작곡가 지휘자), 김정택 히트곡 제조기, 정수라 전영록 인순이 심수봉


이후 5세 때부터 무대에 섰던 화동가수 정수라가 작곡을 의뢰해 왔고, 김정택 단장은 어부의 딸(1987)을 작곡, 이어 신인작곡가의 노래를 편곡한 아아 대한민국(1994), 그외 그런 사람 필요치 않아 등의 노래를 작곡해 가수 정수라의 입지를 굳히는 초석이 돼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정택은 이후 1985년에는 가수 전영록과 인순이의 노래를 작곡해 주었다고 합니다. 



김정택 : "당시 애잔한 노래를 많이 불렀던 전영록 씨는 레코드 회사를 옮기면서 나를 찾아왔다. 돈을 많이 받고 회사를 옮겼는데 히트곡이 필요하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애잔한 노래를 버리고 전통락으로 도전해라 라고 조언해주고 아직도 어두운 밤 인가봐, 불티 같은 곳을 써줬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역시 천재 음악가답게 전영록 씨도 잘 불러주어서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김정택 : "인순이는 보컬 트리오 희자매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당시 희자매는 한백희 선생님이 매니저이면서 대표를 맡고 있었다. 한백희 선생님이 인순이를 소개해 주면서 오리지널곡이 없다고 곡을 써달라고 했었다. 그 당시 난 일본 유학 당시 외로움을 많이 타고 있었던 것 같다"


김정택 : "이런 내 신세를 한탄하며 만든 노래가 밤이면 밤마다이다. 락&롤 품의 음악으로 써줬는데 인순이씨가 정말로 잘 불러서 대박이 났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김정택 단장은 이밖에도 심수봉 선생을 비롯해 설운도, 토끼소녀, 세또래, 숙자매 등 지금까지 모두 10만여곡을 편곡해 주었다고 하는데요, 또한 지난 2016년에는 군복무중인 한류스타 아이돌 유노윤호와 슈퍼주니어 신동, 은혁, 성민이 참여한 내가 지키는 조국이라는,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신개념 군가를 작곡 편곡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김정택 단장(작곡가 지휘자), 김정택 이주일, 자니윤, 이덕화


이어 김정택 단장은 SBS 이주일의 투나잇쇼와 자니윤 이야기쇼를 진행하며 관현악단장과 지휘자, 연주자로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게 되는데요, 연예인도 아닌 그가 쇼 프로그램을 전격적으로 담당하며 이야기와 음악을 교대로 배치하는 방식을 선택해 새로운 흥미의 주역으로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김정택 : "이주일 선생님은 홀리데이 서울에서 악단장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다. 우리 둘은 정말 호흡이 잘 맞았다. 환상의 콤비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오늘 이 무대를 빛내줄 김정택 단장님이십니다 라고 이주일 선생님이 나를 소개할 때마다 후렴을 많이 넣으니까 이주일 선생님이 너무 재미나게 얘기해 주셨다. 


김정택 : "게스트를 보러오는 것보다 나를 보러오는 게 더 재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주일 선생님의 멘트에 관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서 대본까지 써드렸다. 이덕화 씨는 TBC 라디오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덕화 씨도 이주일 선생님 못지않게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나중에는 서로 존경하고 아껴주는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김정택 단장(작곡가 지휘자), 김정택, 클래식과 대중가요 접목한 크로스오버


이후 김정택 단장은 기악 속에서 작곡으로, 순수에서 대중음악으로 전향하며 클래식과 대중가요를 접목한 크로스오버의 길을 개척해갔는데요, 1982년에 MBC 문화방송에 관현악단 수석연주자 리듬파트 연주자로 채용되어 드럼, 키보드, 기타 등을 총괄했다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 김정택은 오랜 시간동안 홀리에이인서울 극장식 가족 레스토랑에 전격적으로 채용이 되는데요, 낮에는 방송 일, 밤에는 클럽에서 연주를 하며 8년 동안 활동, 내외적인 인지도를 확보해갔습니다. 



히루에 두 번 연주 무대에 서는 김정택은 열정과 정성으로 준비하는 덕분에 음악에 미친 사람으로 소문이 나게 되었고 덕분에 1991년경 SBS 관현악단 최연소 지휘자로 채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어 1998년에는 타 방송사로 이적하지 못하도록 전속예술단 계약을 채결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정택 : "처음에는 SBS 전속관현악단으로 채용되었다. 그러다가 1994~1995년경에 관현악단, 합창단, 무용단을 총괄하는 예술단장직을 도맡게 되었다. 그 이전부터 SBS 신우회에서 회장으로 활동한 경력을 높이 산 덕분에 비정규 계약직에서 연봉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건국 이래 전속단체장으로서 그런 관례가 없었다고 한다"



이후 김정택 단장은 1991년 SBS 관현악단 지휘자 이후 1998년 서울방송 예능국 전속예술단 단장, 같은 해 8월 서울방송 예능국 관현악단 단장 겸임과 더불어 2000년까지 SBS 프로덕션 전속예술단장 겸 관현악단장을 맡게 되었고, 


이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SBS프로덕션 예술단 단장과 2009년부터 현재까지 SBS 예술단 단장을 역임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2003년에는 김대중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는데요, 그의 공로는 2002년월드컵전야제, 부산아시안게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하이서울페스티벌 등 국자적 행사의 개폐회 음악을 관장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김정택 단장(작곡가 지휘자), 김정택의 저작권료, 봉사


김정택은 특이하게도 돈 벌어서 남 주자는 복지비전 철학을 가지고 있는데요, 지난 1992년 주님의 교회와 더불어 사단법인 나누리선교비전센터를 운영하는 전몽월 목사 겸 이사장의 권유로 지금까지 25년 넘게 사랑의 콘서트를 진행하며 재능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김정택 : "지난 2018년 1월까지 25년 넘게 활동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와 연주, 기획과 제작, 추진과 활동을 병행하며 외롭고 힘들어 많이 울었다. 하지만 공연을 해서 얻은 수익금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되니 보람차다



김정택 : "처음에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어 울고, 나중에는 감사하고 고마워서 울었다. 일천한 저 자신의 재능으로 돈을 벌어 가난하고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 도와주는 계기가 되니 인생에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계속해 재능기부 활동으로 많은 사람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


김정택 단장은 사랑의 콘서트에 클래식, 팝퓰라, CCM 등 모든 장르를 도입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는데요, 유명인사도 1회에 4명 정도 참여한다고 합니다. 25년을 추산하면 대략 100여명의 명사들이 참여해 도움을 주었다고 하네요. 


김정택 단장은 이를 통해 소년소녀 가장과 청소년은 물론 노숙자, 미혼모, 지역교육센터, 푸드뱅크, 해외빈곤 아동, 사랑의 집, 우물파기, 의정부 독거노인 돕기 등에 자원을 투척하고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한 김정택 단장은 그 외에 지난 2011년부터는 군부대 위문공연도 열정적으로 준비했다고 하는데요, 과거 SBS 신우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군부대 정훈교육, 예비군 관련 교육 사단에 공연을 하면서부터 남다른 국가관도 배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정택 단장은 국가의 필요성과 국민의 역할에 대해 각인하며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다"는 지론 하에 군부대 연주 때에는 피아노를 비롯한 모든 악기 공수와 메이크업 완비, 연주복 착용도 직접 한다고 합니다. 



김정택 : "저의 예술단장으로서의 운영철학은 돈 벌어서 남 주자이다. 예술단원들을 행복하게 해주자, 노후대책 해주자는 취지다. 사람은 욕심에서 죄를 짓는다. 물질을 많이 소유하는 것으로 인생을 걸지 않고 유익한 인간 존재로 인생을 건다. 사람에게 기쁨을 주며 사는 데 보람을 느낀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든 일에 무조건 감사한다"


김정택 : "다행이 어릴 적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초긍정적이고 초작관적이다. 그래서 사랑의 콘서트를 하면 3000명 이상이 찾아온다. 고맙고 감사하다. 이러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정성과 마음을 모아 초희망으로 봉사하고 싶다. 이것이 나의 자산이며 행복이다"


참고로, 김정택 단장은 과거 2013년 한 인터뷰에서 당시 기준으로 월 2-3천만원 정도의 저작권료가 나왔다고 했는데요, 그 인세로는 봉사와 섬김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김정택 결혼 아내(부인) 자녀


김정택 단장은 아내(부인)인 박해순과 1980년 5월 9일 결혼했는데요, 김정택의 아내(부인) 박해순은 전북 전주의 독실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불교 신자였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결혼 후 김정택 아내(부인)는 한동안 김정택 집안의 기독교적인 분위기에 적응치 못해 힘들어했다고 하는데요, 



집에서 간혹 구역예배라도 드릴 때면 음식을 차려놓고 살그머니 밖으로 나갔다가 교인들이 모두 돌아간 뒤에야 들어오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며느리에게 별로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언젠가는 며느리도 신앙을 갖게 될거라 믿었던 것인데요, 결국 교회에 다니게 됐을뿐더러 권사가 되었다고 하네요. 김정택 단장은 슬하에 아들 1명과 딸 1명을 자녀로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가족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답니다. 


* 현숙(가수) <나이 결혼 아들(양자) 송해>


* 정수라 <전남편 이혼 루머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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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순이 딸 남편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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