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배우) 나이 과거 재혼 아내(부인) 근황
-이승현 프로필 나이 종교 학력 키 혈액형
-이승현 집안 부모 과거 어린시절
-이승현 아역배우로 데뷔하게 된 계기
-이승현 데뷔 이후 작품 활동
-이승현 캐나다 유학길에 오르며
-이승현 필리핀에서 선교 활동, 결혼, 자녀까지
-이승현 배우 복귀 어려워 자살 생각까지
-이승현 전아내(부인)와 이혼, 이혼 사유(이유)
-이승현 복귀 이후 활동 근황
-이승현(배우) 프로필 나이 종교 학력 키 혈액형
배우 이승현은 1961년 11월 26일생으로 올해나이 61세입니다. 이승현 종교는 개신교이며, 이승현 학력은 청운국민학교를 졸업했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그 외 키 혈액형 학력 등 정보는 알져지지 않았습니다.
-이승현(배우) 집안 부모 과거 어린시절
이승현은 어린 시절, 아버지는 사업 때문에 일본으로 많이 나가서 서울 을지로에서 식당을 하는 어머니 이학원과 단 둘이 살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일찍 여윈 아버지는 교사였고, 어머니는 외자청장 비서와 경무대(예전의 청와재) 사무직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이승현은 어머니로부터 동생을 시장에서 사올 정도로 외로이 자랐지만 4세 때에는 어머니의 약국이 있는 광희동 로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거나 어머니가 불공을 드릴 때 절에서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트위스트를 추는 등 비범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에 그런 이승현을 본 주위 사람들이 그를 재동이라 부르면 영화 출연을 권유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다가 이승현은 아주 우연한 계기로 아역배우로 데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승현(배우) 아역배우로 데뷔하게 된 계기
그가 6살 때이던 1966년, 어머니의 친구가 운영하던 충무로의 한 여관에 놀러갔다가 조금하 감독의 눈에 띄게 된 것인데요, 이후 이승현은 영화 육체의 길로 데뷔, 아역 배우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승현 어머니 : "승현이가 6살 때 처음 영화에 출연했어요. 당시 조금하 감독(육체의 길 연출자)께거 저희 집 이웃 여관에 묵고 계셨는데 우연히 승현이를 보시곤 출연을 권유하시더군요"
그런데 이승현은 데뷔 당시 NG 없이 맡은 연기를 척척 해내는 등 연기에서 굉장한 재능을 보이며 조금하 감독으로부터 찬사를 받아냈고 이후 당대 아역이 나오는 영화 상당수를 사실상 독차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승현은 당시 특히 1968년작 영화 속 팔도사나이에서 코믹한 연기로 주목을 받기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사투리 구사에도 능했다고 하네요.
-이승현(배우) 데뷔 이후 작품 활동
이후 이승현은 1970년 TBC 아역탤런트로 특채되어 비둘기가족에서 박병호의 아들 역으로 나와 TV브라운관에도 얼굴을 알렸고 또한 같은 시지 코미디스폿트, 세상만사 등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또한 사투리 실력외에 노래 실력도 뛰어나 쇼와 연극 등지에서 다방면으로 활동, 또 만능 스포츠맨으로서 축구선수 황재만과 박병철과도 친분을 맺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승현은 1972년 영화 '0시'부터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아역으로서 본인의 목소리로 녹음하기 시작했고, 1974년 영화 울지 않으리에서는 전쟁고아 재남 역으로 열연하여 아역으로서 처음으로 대종상 특별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이승현은 1973년 청룡영화제 장려상, 1974년 제 13회 대종상 영화제 특별상, 1977년 제 13회 백상예술대상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승현은 결혼행진곡, 고교얄개 등에도 출연했고, 이후 고교시절에는 얄개 시리즈에만 24편이나 출연했으며 꺼꾸리와 장다리, 소년 홍길동 등의 드라마에선 초등학생 역으로 나와 어린이들에게도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승현 : "당시 고교 얄개 주인공을 뽑기 위해 오디션을 했는데 200명이 모두 탈락했다. 대신 감독님이 다른 드라마에 출연하는 내 모습을 보고 출연을 제의하셨다. 출연료로 100만원을 받았다. 당시 100만 원이면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있을 금액이었다. 얄개로만 20편을 찍었으니 집 20채를 사고도 남을 금액이었다"
그리고 이후 이승현은 1980년대 들어 대학생니아 사회 초년생 역으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여 대학 얄개 등에 출연하기도 했지만 이미지 탈피에 실패하고 결국 1966년 2월에 어머니의 부탁으로 캐나다로 유학을 가 연예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이승현(배우) 캐나다 유학길에 오르며
이승현 : "배우들이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갈 때 겪는 변신에 대한 고통은 이 일은 해보지 않은 분들은 모른다. 이 과정을 못 견디고 영화계를 은퇴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결국 나 또한 이승현 하면 고교얄개 라는 인식이 박혀 성인 역할은커녕 일반 영화에 출연하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그래서 캐나다로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이렇게 이승현은 연기적인 면에서 큰 좌절을 겪게 되었고 또 아들이 외교관이 되기를 바랬던 어머니의 권유가 결정적으로 작용을 해 이승현은 결국 1966년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승현 : "말이 좋아 유학이지 마음 편히 지낸 날은 하루도 없었다. 또 영화를 잊지 못해서 캐나다 영화학교에서 감독의 꿈도 키웠다"
하지만 이승현은 유학 도중 얼마 못가 지인이 급사하고 고궁에 거주한 어머니의 고깃집 사업이 소값 파동으로 실패해 이승현이 애써 모았던 재산이 모두 날아갔고, 이때부터 이승현의 진짜 고생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승현 ; "햄버거를 굽고 화장실 바닥을 닦고 손이 부르트도록 낚시용 지렁이를 잡았어요. 막노동도 했고 레스토랑에서 접시도 닦았고, 호텔에서 청소부로도 일했죠. 내가 남의 나라에서 무슨 짓거리를 하나 싶었어요. 후회도 참 많이 했습니다. 한국에 있었으면 어려움 없이 연기 활동을 계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듭디다"
-이승현(배우) 필리핀에서 선교 활동, 결혼, 자녀까지
결국 이승현은 1993년 캐나다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당시 필리핀에서 의료 봉상 활동을 하고 있던 어머니를 따라 필리핀으로 떠나 거기서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목사가 되고, 독실한 크리스천인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승현은 당시 아내(부인)와 사이에서 아들을 한명 두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맞지 않았던 이승현은 결국 1998년 귀국해 처가가 있는 대전광역시에 정착하며 얄개만두를 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승현 ; "필리핀에서의 선교 사역은 목숨 걸고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뜻이야 좋지만 체질상 신학이 안 맞았어요. 어머니가 강제로 시키니까 할 수 없이 끌려가긴 했는데..."
-이승현(배우) 배우 복귀 어려워 자살 생각까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이승현은 1997년 장영일 감독의 영화 스커트 속의 드라마로 20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또한 2000년에 배우 성인성과 함께 대한영화사를 차리기도 했지만 사기당해 망하고 자살까지 생각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이승현 ;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후배와 함께 술을 퍼마시고 자살을 하기 위해 한강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더군요. 어린 아들와 저만 보고 사시는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죽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이승현은 2002년에 KBS2 인간극장 얄개는 울지 않는다 편에 나오기도 했는데요, 목회자를 원하는 아내와 뜻이 달라 별거하고 고시원에서 혼자 어렵게 살면서 다시 영화에 도전하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승현(배우) 전아내(부인)와 이혼, 이혼 사유(이유)
(실제로 당시 이승현이 다시 연기를 하겠다고 하자 아내와의 다툼이 생겼고, 결국 이승현은 연기를 위해서 1년 정도 가족과 연락을 끊은 적도 있다고 하네요.)
이승현 ; "배우는 그 미련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캐나다에서 밑바닥 생활을 할 때도 필리핀에서 선교사 공부를 하면서도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연기하겠다는 생각을 마음 한구석에 갖고 있었죠"
이승현 ; "내가 다시 연기를 하겠다고 하자, 아내와의 다툼도 생겼어요. 아내는 제가 옛날로 돌아가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요"
이승현 : "그 사람은 내가 옛날에 영화배우였다는 사실도 모르고 결혼했어요. 게다가 영화 바닥을 워낙 싫어하고 편견이 심했어요. 배우하면 욉가, 술, 스캔들 그런 것만 생각했죠. 아내는 내가 배우가 아닌 목회자가 되길 바랐죠"
그리고 이후 이승현은 2004년 4월 이것이 인생이다 얄개는 두 번 울지 않는다 편에서 아내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결국 2010년 이승현은 아내(부인)와 이혼을 하고 맙니다.
-이승현(배우) 복귀 이후 활동 근황
이승현이 당시 인간극장 출연 이후 팬클럽이 생기고 얄개 이승현 살리기 운동본부까지 생겼으며, 2003년 코믹영화 빅 하우스 닷컴에 캐스팅되기도 했지만 개봉이 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8년에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었고, 2013년에는 KBS2 아침 프로그램 여유만만에 나오 여러 편의 영화나 뮤지컬에 참여하고 지인의 회사에서 홍보이사로 일하기도 하는 등 다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승현 : "연기는 마약과 같습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와도 갈 때는 마음대로 못 가는 이유지요. 연기를 못 했더니 병이 생겼어요. 뇌 속에서 그 생각이 안 없어집니다. 연기자였다는 이유로 많은 고통도 겪었지만,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못 버릴 것 같습니다.
이후 KBS2 연예가 중계 2019년 8월 30일 방송분에서는 충남 조치원에서 둘째 아내가 운영한 파전집에서 일하면서 간간히 배우로 활동한다고 근황을 공개했고, 이후 지난해(2020년) 4월 인생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해 근황을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이승현은 과거 연기학원 수업을 위해 내려온 세종시 조치원에서 지금의 아내(부인)를 만났고, 이후 지난 2019년 재혼해 현재 부인이 운영하는 파전 집 일을 도와주며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승현은 마이웨이에 출연해 "사람들에게 이용을 많이 당해 두려움이 생겨 은둔생활을 했다"고 하며 "하지만 이제는 정말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정착했다. 아내가 뒷받침해 주니까 용기가 생긴다"며 행복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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