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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사진작가) 프로필 나이 재산(부동산), 남편 송경섭, 누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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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사진작가) 프로필 나이 재산(부동산), 남편 송경섭, 누구? 아들

 

-조선희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학력 키 혈액형 

-조선희 과거 어린 시절

-조선희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조선희 프로 사진작가의 길로 

-조선희 결혼 남편 송경섭 나이(차이) 직업, 누구?

-조선희 남편 송경섭 결혼 스토리 자녀 아들

-조선희 아들 출산 후에


-조선희(사진작가)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학력 키 혈액형 

 

사진작가 조선희는 1971년생으로 올해 나이 51세입니다. 조선희 고향은 경상북도 칠곡군이며, 조선희 가족으로는 남편 송경섭 와 아들 송기 휘가 있습니다. 조선희 학력은 대구 원화여자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 조선희 키 혈액형 등 정보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조선희는 2011년 이후 현재까지 서울에서 조아조아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으며, 또한 경일대학교 부교수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선희(사진작가) 과거 어린 시절

 

조선희는 경북 왜관에서 만물상을 운영하던 부모님(아버지는 조선희가 14살 때 돌아가심)과 떨어져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조선희 : "제가 열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 때문에 어머니가 왜관시장에서 만물상회를 열어 온갖 물건을 다 팔았죠. 제가 다섯 남매 중에 셋째인데, 어머니는 아주 억척스러워서 남들이 가게 문을 닫은 뒤인 새벽 3~4시에야 가게문을 닫았고 그리고 2~3시간 자고 난 뒤에는 다시 문을 열었을 정도였어요"

 

 

조선희 : "어릴 때부터 흙바닥에서 구슬치기를 하면서 놀았어요. 그때는 영락없는 사내아이였죠. 당시에는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하던 시절이라 오빠는 버스비 60원을 받아 학교에 다녔는데, 저는 걸어 다녔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오히려 저를 더 강하게 키웠던 것 같아요"

 

조선희 : "조금 성장한 다음에는 어머니 일을 도와줘야 했어요. 짐 자전거로 물엿 24kg을 배달하면 1천 원을 주셨어요. 또한, 가게에서 물건을 팔면 자기가 판 물건 값의 5%를 주셨고요. 그렇게 일한 만큼 돈을 받았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제대로 된 경제관념을 가질 수 있었어요"

 

-조선희(사진작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그리고 조선희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자신의 어릴 적 사진만 없어, 그에 대한 결핍이 자연스럽게 사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조선희는 대학 입학 기념으로 어머니가 사주신 카메라를 갖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조선희 : "대입 1 지망에 떨어졌는데, 어머니가 재수는 시켜줄 수 없다고 단언하셨어요. 결국 2 지망한 연세대 의생활학과에 들어갔죠. 그때 어머니가 입학 기념으로 거금 50만 원짜리 니콘 FM2를 사주셨어요. 제 인생의 첫 번째 카메라였죠"

 

이후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온 조선희는 월 20만 원짜리 하숙집에서 살다가 친구와 함께 12만 원짜리 반지하로 옮겨 자취를 시작했고, 그 차액으로 필름과 인화지를 사서 본격적으로 사진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조선희 : "2 지망으로 들어간 의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 대신에 고등학교 시절 좋아하는 선생님이 사진반 동아리를 담당하셔서 사진에는 관심이 많았어요"

 

-조선희(사진작가) 프로 사진작가의 길로 

 

당시 조선희는 그렇게 사진 동아리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게 되었고, 돈이 없어 텐트에서 노숙하면서까지 인생의 첫 포트폴리오 작품을 완성했다고 합니다. 이를 본 김중만 작가는 그를 제자로 전격 발탁했고, 조선희는 그렇게 프로 사진작가로서 첫발을 내딛게 됐다고 합니다. 

 

 

조선희 : "전 사진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사회에 연줄이 전혀 없었어요. 결국 10개월 동안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김중만 선생님께 찾아갔어요. 그때는 정말 사진에 미쳤어요. 꿈에서도 사진을 찍을 정도였죠. 꿈속에서 얼마나 셔터를 눌렀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어깨가 아플 정도였어요. 뭘 하든지 미쳐야 하는 것 같아요"

 

조선희는 그렇게 3년 동안 김중만 작가의 어시스턴트가 되어서 배우게 되었고, 이후 뉴욕으로 떠났다고 합니다. 

 

조선희 : "김중만 선생님 어시스턴트를 3년쯤 하면서 모은 돈, 2천만 원을 들고 1998년 무작정 뉴욕으로 갔어요. 거기서 사진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두 달 정도 지내니까 제가 가진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게 되어어요.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입학 준비를 하는 게 시간 낭비 같았죠"

 

 

결국 조선희는 남은 돈을 털어서 자신 장비를 사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서 서울 압구정동에 스튜디오를 차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조선희 : "당시 IMF 외환위기여서 문을 닫은 스튜디오가 많아서 싸게 빌릴 수 있었어요. 물론 사람들은 경기도 안 좋은데 스튜디오를 연다고, 저보고 미쳤다고 했고요"

 

조선희 : "결국 돈을 아끼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살게 되었어요. 스튜디오가 지하에 있어서 한겨울에는 너무 추웠어요. 천장은 무척 놓고, 사람의 온기는 없고, 한 2년 동안을 그렇게 스튜디오에서 살았는데, 그때 많이 춥고 배고팠죠"

 

조선희는 그렇게 창문도 없는 56만 원 월세 지하방에 첫 스튜디오를 개업하게 되었고, 이후 200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경제적인 궁핍을 모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희는 특히 한국에서는 인물 사진으로 아주 유명하고, 또한 여성 사진작가로도 많이 유명한데요, 특히 유명 연예인들과 작업을 많이 해서 친한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중 가장 친한 스타는 배우 고소영, 이정재라고 하네요. 

 

<조선희 약력>

-1995년 한겨레 21 길 프리랜서 사진작가

-1995년~1996년 네오룩, 이매진 사진작가

-1996년~2002년 엘르, 보그, 바자, 코스포 몰리탄 패션지 화보 촬영

-2004년 조아조아 스튜디오 사진작가

-2009년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과 조교수

 

<조선희 수상 내역>

-2003년 올해의 패션 포토그래퍼상

-2009년 잡지 바자 올해의 포토그래피상

 

<조선희 저서>

-왜관 촌년 조선희,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2004년)

-네 멋대로 찍어라(2008년)

-조선희의 힐링 포토(2005년)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2002년)

-JJANG NARA(2002년)

 

-조선희(사진작가) 결혼 남편 송경섭 나이(차이) 직업, 누구?

 

조선희는 남편 송경섭과 지난 2004년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조선희와 남편 송경섭 두 사람 나이 차이는 둘 다 1971년생인 51세로 동갑이라고 합니다. 조선희 남편 송경섭의 직업은 축구 코치라고 합니다.

 

 

송경섭은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드래프트 10순위로 대우 로얄즈에 입단, 1996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거친 다음에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하게 됩니다. 

 

 

송경섭은 이후 1999년 최연소로 아시아 축구연맹 지도자 강습회에 참가하며 지도자 경력을 시작, 2001~2002년 2월 U-13 대표팀 코치, 2002~2012년 12월 U-16, U-17 및 U-22 대표팀 코치, 2013~2015년 KFA 지도자 전임 강사 겸 유소년 전임 지도자 등을 거쳐 현재는 K리그 클래식의 명문 클럽 FC서울의 코치로 재직 중에 있다고 합니다. 

 

-조선희(사진작가) 남편 송경섭 결혼 스토리 자녀 아들

 

조선희는 남편 송경섭을 후배의 소개로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고 하는데요, 만난 지 한 달만에 조선희가 동거를 제안했고, 결국 이후 한 달 만에 동거를 시작 약 1년 반 동안 동거를 하다가 이후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희 : "후배한테서 남편을 소개받았다. 사실 그 후배는 늘 나에게 누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 한 번 만나보라 라고 졸랐는데 그 대상이 바로 남편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첫 만남을 가졌는데 나는 다음날 제주도 출장이 잡혀 있었고 청소년 축구 감독인 그 사람 역시 선수 선발을 위해 제주도 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조선희 : "제주도에서 만남을 가졌는데 나는 촬영 중 선물 받은 오렌지를 들고나갔고, 그 사람은 숲에서 발견한 네 잎 클로버를 나에게 선물로 주더라. 그렇게 2주 정도 매일 만났다"

 

조선희 : "세 번 만나고 2주 만에 같이 살자고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난 밀당하는 게 싫었다. 그 사람이 생각해보겠다 라고 대답하기에 그럼 관계를 끝내자 라고 말했다.  

 

 

송경섭 : "둘 다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이다. 자꾸 등을 때리더라. 조선희 동거 제안에 정말 깜짝 놀랐다"

 

 

결국 두 사람은 다음날부터 약 1년 반 동안 동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만난 지 2년 후인 2004년,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희 : "남편은 이 세상에서 축구를 가장 사랑하고, 두 번째로 조선희를 사랑한다고 했다. 결국 그 말이 결혼 이유가 되었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남자의 열정이 신뢰가 가고 열정이 멋있었다. 사실 저 역시 사진이 제일 좋고 그다음이 송경섭이다"

 

-조선희(사진작가) 아들 출산 후에 변화

 

그리고 2년 뒤인 2006년경, 조선희는 아들 송기휘를 낳게 되었는데요, 조선희 아들 송기휘에 대해서는 현장 토크쇼 택시에서 공개한 바 있습니다. 조선희 아들은 당시 축구교실에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희는 출산 이후 그의 사진 경력에 큰 위기를 맞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희 : "아들을 2006년에 낳고 난 뒤에 한 10개월 정도 쉬었어요. 이왕 쉴 거 공부도 좀 하고 세상 구경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뉴욕에 갔었고요. 그러니까 한국의 사진 관계자들은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렇게 정말로 쉬어버렸던 거예요"

 

저 선희 : "당시 사진업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던 시기였어요. 아날로그에서 완전히 디지털로 넘어가던 시기였고, 신인작가 5~6명이 크게 부상했으며, 잡지 기자들도 많이 바뀐 때였죠. 그래서 복귀를 했는데, 3개월 동안은 정말 일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조선희 : "결국 당시에 약간의 우울증까지 생겼어요. 그래도 디지털카메라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계속 준비를 했어요. 이후에 일이 하나둘씩 들어왔을 때 저는 과거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하게 되었어요. 열정적으로 일에 달라붙었죠. 아마 그 시간이 없었다면 제가 오만에 빠지지 않았을까요?"

 

 

조선희 : "출산을 한 다음에는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화를 내면서 고치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항상 옳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조선희 : "또한 상대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왜 그렇게 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요. 옛날에는 나만 옳다는 식이었지만 아이가 ㅎ생긴 다음에는 제삼자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생긴 것 같아요"

 

조선희 : "이전에는 터프하고 남성적인 사진을 했다면, 지금은 아름답고 부드러운 여성적인 경향도 늘어난 것 같아요. 저에게 길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죠. 좀 더 둥글고 부드러우면서 더 아름다운 선택의 폭이 넓어진 거죠"

 

 

실제로 조선희는 출산과 함께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많이 변했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남들도 자신과 똑같을 거라 생각하면서 상대방이 힘들어하는 줄도 모르고, 오로지 좋은 사진 한 장 찍겠다고 경주마처럼 막 달리듯 12시간씩 사진을 찍고 이후 3일씩 앓아눕는 일들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또 한 번은 모 배우의 헤어와 메이크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어떻게 찍어도 원하는 사진이 나오지 않자 그 배우의 담당자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다른 잘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섭외해서 촬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촬영은 무사히 끝났지만 그 배우는 두 번 다시 조선희와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희(사진작가) TV는 사랑을 싣고

 

조선희는 2021년 3월 31일 TV는 사랑을 싣고에 의뢰인으로 출연하게 되었는데요, 이날 조선희는 시골에서 상경해 맨땅에 헤딩하며 자신만의 성공을 거둔 사연을 전했습니다. 

 

 

모두가 힘겨웠던 IMF 시절, 창문도 없는 56만 원 월세 지하방에 첫 스튜디오를 개업한 조선희는 아예 "건물을 사 버리자"는 마음을 먹고 5년 뒤 실제로 강남 건물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이날 조선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찾아 나섰는데요, 두 사람은 졸업 후 조선희가 대학을 서울로 가게 되면서 멀리 떨어졌지만 서로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고 조선희가 처음 스튜디오를 차렸을 때도 가장 먼저 찾아올 정도로 절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조선희는 "20여 년 전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친구와 연락이 끊겼다."며 멀어지게 된 이유가 혹시 자신이 취중에 했던 독설 때문은 아닌지 자책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엿보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추적 영상을 보던 조선희는 친구 남편과의 통화 내용을 통해 자신도 몰랐던 사실을 알고 전혀 기억이 안 난다며 크게 당황했습니다.

 

추억 여행의 마지막 장소에 도착한 조선희는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과거 자신이 준 선물만 덩그러니 좋아진 것을 발견했고 이후 주저앉아 오열했는데요, 과연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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