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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일(가수) 프로필 나이 고향 과거 이혼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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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일(가수) 프로필 나이 고향 과거 이혼 근황

 

-한상일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가족 학력 

-한상일 과거 

-한상일 가수 데뷔 앨범 활동

-한상일 가요계를 떠나 건설업으로...

-한상일 퇴직 이후 가요계 컴백

-한상일 전 아내(부인)와 황혼 이혼 이유(사유), 근황


 

-한상일(가수) 프로필 본명 나이 고향 가족 학력 

 

원로 가수 한상일의 본명은 한재상이라고 합니다. 한상일 나이는 1941년 1월 18일생으로 올해 나이 81세이며, 한상일 고향은 이북 개성에서 5남 2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한상일 학력은 개성만월초등학교를 거쳐 인천서림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뒤이어 인천중학교와 서울경동고등학교,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 한상일 키 혈액형 등 정보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한상일(가수) 과거 

 

한상일은 개성만월초등학교 4학년 때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인천으로 피난을 와서 인천서림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인천중학교와 서울경동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상일 : "중 2 때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하고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인천의 보육원에서 생활하며 신문배달을 하기도 했습니다. 유년시절부터 노래도 잘하고 학업도 줄곧 우등생이었습니다. 꿈은 의사였지만 서울대 공대 건축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한상일은 어린 시절 골수염을 앓아 오른쪽 발목을 잘라낼 위기를 겪었지만 공부와 노래를 잘하는 영재로 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팝송에 심취해 대학 시절에는 친구들과 사중창단을 만들어 활동했을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하는데요, 특히 마리오 린자, 앤디 윌리암스 등에 열광했고, 가수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고 합니다. 

 

-한상일(가수) 가수 데뷔 앨범 활동

 

그러다보니 한상일은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은사의 김희춘 설계사무소에서 설계기사로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노래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고 하네요. 이에 한상일은 취미로 노래를 부르다 손석우의 눈에 띄게 되었고, 결국 당시 미 8군 장교 클럽인 유썸 클럽에서 한상일이라는 예명으로 전속 가수로 음악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상일 : "이때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팝송 악보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스탠더드 팝송을 3백여 곡 정도 부를 수 있었고, 영어 발음도 원어민 발음처럼 소리 낼 수 있었습니다. 작곡가 손석우 선생의 신곡을 취입하기도 했습니다. 가거라 저 멀리 가 히트하면서 1966년 KBS 전속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한상일은 지난 1965년 손석우 작곡의 추억의 아카시아, 나의 사랑 기타 를 발표하며 데뷔, 이후 1966년에는 가거라 저 멀리가 히트하면서 손석우 선생의 권유로 KBS 전속가수 모집에 응시해 칸초네(피노키오의 편지)를 불러 1기생으로 발탁되었다고 합니다.

 

한상일 : "화면테스트까지 거친 TV 전속가수였기 때문에 무대에서 노래는 물론 율동까지 소화해내야 했지요. 그러나 어린 시절 골수염으로 인해 오른쪽 발목을 잘라낼 위기까지 넘겼던 터라 다리가 불편해 무대에서의 율동을 소화해내기가 어려웠어요"

 

때문에 방송국 측 입장에서는 한편 난감했을 것으로 생각된다는 그는 결국 무대 대신 라디오 진행자로 밤으로의 초대나 장미의 화원 같은 음악프로그램에 주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후 한상일은 1967년 내 마음의 왈츠를 발표하여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요, 당시 그의 인기는 특히 여대생들에게 폭발적이었다고 합니다. 젠틀한 외모에 중저음의 보이스, 거기에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학력까지 어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한상일은 1969년 웨딩드레스와 1970년 애모의 노래(당시 뮤지컬 카니발의 수첩의 주제가)가 크게 히트하게 되었고, 이 무렵 그는 문화공보부 제정 방송대상 남자가수상, 서울신문사 제정 서울문화대상 남자가수상, MBC 10가 수상 등을 휩쓸었다고 합니다.

 

 

또한 한상일은 틈틈이 드라마 주제가도 취입했고, 또한 당시 인기 드라마 수사반장 등에 출연하기도 했으며, 이어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 에서 가수 윤복희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상일(가수) 가요계를 떠나 건설업으로...

 

그렇게 계속 성공이 이어질 것 같았던 한상일은 하지만 한상일은 가수로서의 활동 기간이 길지 않았는데요, 결국 그는 집안의 반대로 70년대 말 가요계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그는 자신의 전공을 찾아 건설 분야로 유턴,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 37세였다고 하네요.

 

 

-한상일(가수) 퇴직 이후 가요계 컴백, 황혼 이혼 이유(사유)

 

그리고 이후 1998년 퇴직한 이후 지난 2005년(30년 만인) 작곡가 손석우 노래 55주년 헌정음반을 통해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그 이름 등을 발표하며 돌아오게 되었는데요, 오랜 동안 가요계를 떠나 있었음에도 가창력은 여전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2007년 한상일은 전 아내(부인)와 황혼이혼을 하고 말았는데요, 한상일은 과거 한 방송을 통해 전 아내(부인)와 결혼 40년 만인 2007년에 황혼 이혼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한상일은 "직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상황이다. 시가와 처가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며 이혼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했는데요, 이어 "결혼 4년째부터 불화와 갈등이 있던 것이다. 당시에는 이혼이란 것은 사회 분위기상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이혼은 인생의 파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상일은 당시 이혼과 함께 그는 제주도 조천의 전원주택을 사들여 전원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ㅣ 이후 2014년 제주생활을 청산하고 현재 경기도 분당으로 돌아와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상일(가수) 근황

 

그는 건강관리에 있어서는 굉장히 철저하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그는 아침마다 조깅을 하고 복식호흡을 하고 발성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집 근처에 위치한 성 마리아 성당에서 매년 열리는 성당 음악회에도 자주 선다고 하네요. 

 

 

또한 마음공부를 위해 불교방송 많이 듣는다는 그의 철학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하는데요, 일체유심조, 마음이 있는 곳에 인생이 있고 행복이 있다며 늘 마음을 가다듬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배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한상일 : "분당 구미동에서 전원생활을 하며 건강관리와 여러 가지 취미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산책하고 복식호흡과 발성 연습을 합니다. 요즘 KBS 가요무대에 자주 출연하게 되어 가요 무대에 한번 출연할 때마다 3-4일간 혼자서 집에서 연습합니다."

 

 

한상일 : "유튜브를 활용하여 노래를 배우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배우는 즐거움에 푹 빠져 지냅니다. 매일매일 배움의 연속입니다. 구미동 주민 헨터에서 요일별로 서예와 가곡, 요가 등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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