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탁구선수 유남규가 11월 7일 TV조선 스타 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합니다. 이에 유남규 프로필 나이 아내 딸 근황 등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네요. 그래서 오늘은 유남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유남규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학력 소개
전 탁구선수 유남규는 1968년 6월 4일생으로 올해 나이 54세입니다. 유남규 고향은 부산광역시이며, 가족으로는 아내(부인)와 딸 유예린(2008년생)이 있습니다. 유남규는 키가 170cm라고 하고요, 유남규 학력은 영선초등학교, 부산남중학교, 경성전자고등학교, 경성대학교 체육교육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과, 경희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박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남규는 전설적인 전 탁구 선수이자 올림픽 탁구종목 최초의 금메달리스트로, 유승민이 등장하기 전까지 김완, 김기택, 김택수와 함께 오랜 기간 한국 남자 탁구계의 레전드였습니다.
유남규 과거 탁구를 하게 된 계기
유남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탁구를 시작합니다.
유남규 : “제가 부사 영선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사실 저는 우리 학교에 탁구부가 있는 줄도 몰랐다. 탁구에 별 관심도 없었고, 제가 탁구를 쳐본 건 여름에 집에 모기약을 뿌려놓고 갈 데가 없어 집 앞 탁구장에 가서 가족들하고 몇 번 똑딱거려 본 게 전부였다.
유남규 : “그런데 4학년 때 학교에서 탁구부를 뽑더라. 마침 그때 제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한테 뭔가 자랑을 하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는 거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여학생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탁구부 지원을 하러 강당에 갔다.”
유남규 : “우리 학교 탁구부는 제가 3학년 때 만들어져서 이미 1년 동안 운영이 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사실상 탁구를 처음 쳐본 제가 1년 동안 탁구부를 했던 친구에게 이겨버렸다. 그러니까 코치가 저한테 더 시합을 못하게 하더니, 탁구부도 안 시켜주겠다고 하는 거다. 오기가 생겼다. 내가 이겼는데 왜 안 되냐고 따졌다.”
유남규 : “지금 생각해보면 코치가 제가 탁구를 안 할 까봐 심리전을 한 거였다. 안 시켜준다고 하다가 나중에 집에 가서 부모님한테 도장받아 오면 시켜줄게 그러니까 좋아서 당장 집으로 달려갔다. 탁구가 좋아서라 아니라 이겼는데 안 시켜주겠다고 하니까 억울하고 분해서 탁구부에 들어간 거다.”
유남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하지만 유남규의 부모님은 처음에 그가 탁구 하는 것을 심하게 반대합니다.
유남규 : “당연히 반대했다. 부모님이 사주를 봤는데, 제가 굉장히 성공할 사람이라는 사주가 나왔다고 하더라. 제가 세 형제 중 둘째인데, 부모님이 거의 저한테 올인하다시피 했다. 제 이름 남규가 남녘 남자에 별규자다. 제 고향 부산이 남쪽이니까, 남쪽에서 별이 뜬다는 뜻이다. 그런 아들이 운동을 하겠다고 하니 결사반대를 하셨다.”
유남규 : “부모님은 제가 의사가 되기를 바라셨다. 하지만 저는 운동이 너무 좋아서 자리에 한 시간 이상 못 앉아 있는 성격이었다. 어릴 때부터 축구, 태권도, 복싱 다 좋아했으니까, 그래서 어린 마음에 제가 부모님한테 탁구를 안 시켜줄 바에는 권투 해서 맞아 죽어버리겠다고 했다. 그제야 허락을 해주셨다.”
유남규 : “어릴 때부터 제 성격이 좀 별났다.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갖고 싶은 걸 못 가지면 분에 못 이겨서 기절을 했을 정도니까.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하루에 기본적으로 10번씩 기절을 했다. 눈을 뜨면 병원이었다. 부모님이 너 그러면 학교 못 간다. 그러시기에 성격을 조금씩 고쳤다. 그래도 승부근성이 강해서 뭘 하든 1등을 해야 됐다.”
유남규 : “제가 다른 선수들보다 1년 늦게 탁구를 시작했는데 지는 게 싫어서 밥을 먹을 때도 탁구 폼으로 먹었다. 젓가락도 탁구 그립처럼 잡았다. (탁구 스윙 모습을 보여주면서) 밥 먹을 때도 이렇게 먹으니까 부모님한테 되게 혼났다. 밥상 앞에서 그러지 말라고. 어쨌든 그렇게 해서 6학년 때는 1등이 됐다.”
유남규 국가대표의 꿈을 꾸며
유남규 :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제가 초등학생일 때 박찬희라는 복싱 선수가 있었다. 그분이 세계 타이틀 매치를 하는 날이 마침 탁구부가 목욕탕에 가는 날이었다. 그래서 목욕을 하고 나오는 길에 그 경기를 보게 됐다. 그분이 머리에 태극기를 달고 경기를 하고, 이긴 뒤에 애국가가 울리는 걸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처음 국가대표라는 꿈을 꾸게 됐다.”
유남규 : “그때부터 저는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1년 동안 새벽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1년 동안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운동을 했다. 국가대표는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나가기 싫어도 오늘 안 나가면 국가대표가 못 된다 그 마음으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새벽운동을 했다. 그런 마음가짐이 있었기 때문에 탁구선수로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유남규 : “육체적으로 고된 것보다는 친구들과 못 어울렸던 게 제일 힘들었다. 저는 초등학교 때 국가대표라는 목표를 설정했는데 친구들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저는 크리스마스 때도 탁구대를 반으로 접어서 거기 대고 혼자 연습을 했다. 올림픽 금메달 따는 상상을 하면서 러닝도 하고, 친구들은 놀고 싶고 쉬고 싶어 하니 어울리기가 어려웠다. 저는 훈련만 하기도 바쁜데 놀 시간이 어디 있었겠나. 그래도 뭔가를 얻으려면 희생하는 게 있어야 하니까 그렇게 지냈다. 금메달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지 않냐."
유남규 탁구 선수 경력
유남규는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7강전에서 당시 세계 최강자였던 중국의 장자량을 극적으로 꺾고 결승전에 진출해 중국의 후이준을 3대 0으로 이기고 단식 우승을 차지, 이후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결승전에서 김기택을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1989년에는 세계선수권에서 현정화와 함께 혼합 복식에 참가하여 우승하였고, 1990년과 1992년 월드컵 남자복식에서 김택수와 함께 우승해 월드컵 복식 2회 우승을 달성, 여기에 유남규는 올림픽에서도 복식 3회 연속 동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유남규 탁구 감독 경력
유남규는 S 오일 탁구단의 감독을 맡은 바 있는데요, 팀이 해체가 되면서 바로 삼성생명 탁구단 여자 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이는 한때 그가 코치로도 있었던 농심삼다수 탁구단이 해체될 당시 추교성 감독의 행보와 비교되며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요,
당시 추교성 감독은 팀 해체에도 선수들을 독려하고 타 팀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노력한 반면, 유남규 감독은 곧바로 새로운 팀의 감독으로 부임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유남규는 한동안 언론과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합니다.
유남규 : "많은 사랑을 받다가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다. 나락으로 떨어지고 나니까 나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안 나오게 되더라"
아무튼 유남규는 감독생활 초기 선수단을 지도하는 방식이 전형적인 "천재가 범재를 가르치는 형식, 말하자면 "야~ 이렇게 하면 돼"하면서 알려줘도 선수들이 잘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후에 자신의 지도 방식에서 문제점을 깨달아 선수들에게 알기 쉽게 자세히 알려주는 방식으로 바꾸었고 이후 선수들이 잘 따라와 주면서 괜찮은 성적을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남규 : “제가 2000년에 처음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첫 2년 동안은 정말 혼란스러웠다. 제 선수 때 생각만 하면서 왜 기본을 못하지라며 선수들을 다그쳤다. 그러던 중에 2년 동안 선수들을 다그쳐서 1등을 만든 뒤 회식자리를 만들었다."
유남규 : "선수들하고 술을 한 잔 하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하라고 했더니, 선수 하나가 이런 말을 하더라. 저희들이 유남규가 아니지 않습니까. 감독님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딸 정도의 실력을 갖고 계시지만, 저희는 아직 그 정도 능력이 안 되는데 좀 기다려주시지 않고 너무 혼내기만 하십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1등을 했지만 별로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유남규 : “충격을 받았다. 느낀 점도 많았고, 그래서 다음 날 선수들한테 얘기했다. 선생님이 너희를 너무 기다려주지 못하고 다그치기만 했다. 바꾸겠다. 충분히 기다려주고 소통도 열심히 하겠다. 2002년부터 테 지도 방식이 바뀌었다."
유남규 국가대표 선발 기준 논란
또한 유남규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겸임하기도 했는데요, 지난 2020 도쿄 올림픽을 위해 국가대표 선발 기준을 바꾸어 일부 탑급 선수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2019년 11월 갈등이 심했던 전지희가 대화 내용을 녹음한 뒤 탁구협회에 제출하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었는데요, 이후 유남규 감독은 한 달 뒤인 12월에 자진 사퇴했고 두 사람 간의 갈등 해결을 위해 탁구협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 스포츠공정위에서는 이미 사퇴한 유남규는 참고인이라 징계대상이 아니고 전지희에게만 견책 처분 결정을 내렸습니다.
기존의 여자 탁구 대표팀 선발 방식은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추천 선수를 뽑고 나머지 선수들끼리 선발전을 치르는 것이었지만 유남규는 세계랭킹 기준을 없애고 무한경쟁을 통해 선발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었는데요, 선발방식에 대한 견해차와 특정 선수의 코치 선임 요구에 의한 갈등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고 사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기존의 방식으로 선발한 후 도쿄올림픽에 참가했지만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어 결국 다시 남녀 탁구대표팀 모두 무한경쟁을 통한 선발방식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유남규 경력 사항>
- 2016.02.~삼성생명 여자탁구단 감독
- 2014.~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여자 탁구 국가대표 감독
- 2012.~제30회 런던 올림픽 대한민국 탁구 국가대표팀 감독
- 2010.~문화체육인 환경 지킴이단 환경 홍보대사
- 2010.~농심삼다수 탁구단 감독
<유남규 수상 내역>
- 1998.제13회 방콕 아시아경기대회 탁구 단체전 은메달
- 1997.맨체스터 세계선수권대회 탁구 단체전 동메달
- 1996.제26회 애틀랜타 올림픽대회 탁구 복식 동메달
- 2011.월드팀컵 남자 탁구 준우승
- 1995.월드서키드대회 탁구 개인전 금메달
유남규 결혼 아내(부인) 윤영실 나이차 직업
유남규는 아내(부인) 윤영실과 2007년 12월 1일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유남규와 아내 윤영실 두 사람의 나이차는 유남규는 1968년생인 54세이고, 아내 윤영실은 1975년생인 47세로 7살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유남규 아내 윤영실의 직업은 당시 모 유명 제화회사 가방 디자이너로 알려졌습니다.
유남규 아내(부인) 윤영실 결혼 스토리
유남규는 아내 윤영실을 2006년 8월 1일 후배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당시 그는 도하 아시안 게임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여서인지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는 못했고 그저 오빠 동생 사이로 지냈다고 합니다. 이후 연인으로 발전한 건 이듬해인 2007년 초, 결혼을 결심한 건 2007년 7-8월 정도였다고 합니다.
유남규 : "30대 중반을 넘어 동료나 후배 결혼식장을 많이 다니다 보니 결혼 언제 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자꾸 들으니 스트레스가 되더라고요. 농담 삼아 후배에게 소개를 시켜줘야 결혼을 하지 했더니 정말 소개를 해준 거예요."
유남규 : "어느 날 문득 이제 나이도 있는데 빨리 가정을 꾸리고 살아야겠다. 시간을 더 끌다 여자 친구가 바쁜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면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때마침 먼저 결혼한 동생이 딸을 낳았어요. 딸 사진을 봤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빨리 결혼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유남규 : "여자 친구 집에 인사를 갔더니 이왕이면 결혼을 빨리 하라고 하셨어요. 그쪽에서는 9월에 하기를 바라셨는데 대회 때문에 제가 시간이 안 되고, 올림픽파크텔에 12월에 취소된 일정이 있어 겨우 결혼 날짜를 잡았어요. 여러 군데 식장을 알아봤는데 올림픽이라는 상징 때문에 그곳에서 하고 싶더라고요."
당시 여자 친구(지금의 아내)에 대한 주변의 반응은 "무조건 잡아라, 여자가 아깝다"였다고 하는데요, 그의 말에 따르면 "웃으면 옥주현을 닮은 "대단한 미인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를 사로잡은 매력은 미모뿐 아니었다고 합니다.
유남규 : "제가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하잖아요. 밥도 잘 못 먹을 때가 많고, 성적이 잘 안 나오면 예민해져요. 그런데 아내는 항상 긍정적이고 밝거든요.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도 만나면 웃게 돼요. 취미고 잘 맞아요. 아내나 저나 스노보드 타는 걸 좋아하거든요.
유남규 : "제게 부족한 부분을 아내가 채워줄 것 같았어요. 좋은 집안에서 반듯하게 자라 기본이 잘 되어 있고, 일도 열심히 해서 프로다운 근성도 보였거든요."
유남규 : "만나는 중간중간 많이 싸우긴 했어요. 아내가 제 직업을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제가 바쁘면 만날 수가 없어요. 체력이 최악인 상태에서 아내를 만나면 힘들기 때문이죠. 그래도 지금은 힘들더라도 만나려고 노력해요. 아내도 저를 많이 이해하는 편이고요. 서로 양보하는 거죠."
결국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지 약 1년여 만인 2007년 12월 결혼에 골인, 이후 이듬해인 2008년 딸을 낳게 됩니다. 딸 이름은 유예린으로 올해 나이 14살이 되었는데요, 딸 역시 아버지인 유남규를 따라 현재 탁구 유망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유남규 딸 유예린에 대해
유남규 : “저는 재능이 없으면 운동을 시키면 안 된다는 주의다. 마찬가지로 공부가 안 되는 아이한테 공부를 계속 강요해서도 안된다는 주의고. 그런데 예린이는 제 판박이다. 운동 좋아하고 밖에서 체력을 소비해야 잠을 자는 아이다."
유남규 : "제가 처음에 예린이한테 탁구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건 5살 때다. 부모가 아이하고 놀아주다 보면 너무 힘이 든다. 그래서 천장에 탁구공을 단 고무줄을 연결해놓고 탁구채로 혼자 툭툭 치면서 놀게 했다. 이게 쉬워 보이지만 어른들도 하기 어려운 거다. 그런데 예린이가 리듬을 잡으면서 움직이는 거다. 재능이 있다 싶어서 아내한테 탁구를 시키자고 얘기했다.
유남규 : “아내는 반대를 했다. 아내가 미대를 나와서 가방 디자이너를 하고 있다. 예린이는 그 길로 데려가겠다더라. 그렇게 2-3년 미술을 했는데, 아내가 그제야 예린이한테 탁구를 시키는 게 좋겠다는 거다. 저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아내가 한 번 해보자고 설득을 하기에 일주일에 두 번씩 하루 15분만 탁구를 치게 했다. 재능이 있었는지, 곧잘 하더라. 그래서 1학년 때 처음으로 탁구부를 시작했다.”
유남규 : “사실 요즘은 대부분 탁구를 5-6살에 시작하기 때문에 예린이는 좀 늦게 시작한 거다. 그런데 2학년 3월에 나간 첫 대회에서 2등을 했다. 너무 잘한 거지. 그래서 2학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탁구를 시켜 지금까지 왔다. 저는 예린이가 중 3 때 국가대표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유남규 감독의 딸 유예린 선수는 2학년 때 전국대회 2위를 기록하며 유망주로 떠오른 뒤 5학년 때는 교보생명 배 전국대회 학년별 개인전 우승에 이어 전국회장기대회 학년별 개인전에서도 2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에도 삼성생명 우수 초청대회에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초등학교 탁구연맹 랭킹에서도 전국 1위를 지켰습니다.
유남규 : “제 복사판이라고 생각은 하는데, 제가 그 나이였을 때와 비교해보면 아쉬운 점은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그때 이미 국가대표라는 목표를 세우고 알아서 운동도 하고 그랬으니까. 가끔은 내가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가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아빠 물! 아빠 양말! 하면 다 챙겨주면서 키웠다.”
유남규 : “아무튼 가르쳐주면 곧잘 하는데 왜 스스로 못할까 싶은 아쉬움은 든다. 시합을 앞두고 있으면 혼자 연구도 좀 하고 작전도 써보고 했으면 좋겠는데… 요즘 애들이 다 그런 건 알고 있지만, 유남규 딸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인데… 잘 모르겠다. 좀 더 기다려야 하는지,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다."
이상 전 탁구선수 유남규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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