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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미(디자이너) 나이 집안 프로필 남편 자녀 매출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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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퀴즈 온 더 블록 디자이너 우영미 나이,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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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퀴즈 온 더 블록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가 화제입니다. 

 

 

11월 17일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는 D-DAY 특집으로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가 출연했습니다. 이날 유재석은 "패션쇼 하나를 준비하는데 얼마나 걸리냐"라고 질문하자 우영미는 "1년 전에 컬렉션을 준비한다"라고 밝혀 시선을 모았습니다. 

 

또한 2002년 한국 남성복 디자이너 최초로 파리에 진출했던 그는 파리지앵을 사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당시를 공개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우영미가 누구인지, 학력, 나이 등에도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네요. 그래서 오늘은 디자이너 우영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영미(패션 디자이너)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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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남성복 여성 디자이너 우영미의 나이는 1959년생으로 올해 나이 63세입니다. 우영미 고향은 서울이며, 1남 4녀 다섯 남매 중 둘째 딸로, 현재 가족으로는 남편과 두 딸이 있습니다. 우영미 학력은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외 우영미 키 혈액형 남편 자녀 들 가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우영미(패션 디자이너) 집안 가족 아버지 

우영미의 큰 언니 우경미와 셋째 동생 우현미는 지금 함께 과천에서 마이알레라는 온실카페를 운영하며 공간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동안 우영미와 함께 했던 동생 우장희까지 남매 대부분이 예술 계통 일을 하는 셈인데요, 우영미는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인 것 같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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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미 : "철이 없어도 너무 없으셨죠. 경북 영주에서 유복하게 자랐고 일본 유학 다녀온 이후엔 미군 부대에서 일을 받아 건물을 짓는 일을 했어요. 인스턴트커피도 희귀하던 시절에 아버지는 매일 아침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그라인더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려 마셨어요. 남들은 저희가 엄청난 부자인 줄 알았지만, 사실 우리 집엔 쌀 한 톨 없을 때가 많았죠."

 

 

아버지는 저축이라곤 모르고 살아 돈을 많이 벌 땐 대궐 같은 삼층집에 살던 때도 있었지만, 금세 빛쟁이에게 몰려 내쫓기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보그, 마리끌레르 같은 외국 잡지를 쌓아놓고 읽었고, 매일 꽃을 사다 화병 가득 꽂아두었다고 합니다. 

 

우영미 : "옷장을 열면 아버지 옷이 한 가득이었다. 로브 가운부터 트렌치코트까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연둣빛 클래식 자동차를 몰고 다니기도 했다. 그 자동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는 날이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우영미 : "중고로 산 차였는데 겉보기만 근사할 뿐 보통 낡은 게 아니었어요. 걸핏하면 멈춰섰거든요. 나는 나름대로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고 도도하게 고개 들고 다니는 아이였어요. 아버지랑 그런 차를 타고 학교에 가면 다들 구경 나올 거 아녜요. 그런데 그때 아이들 앞에서 차가 멈춰 서기라도 하면 웬 망신이겠어요. 아버지. 제발 걸어가게 해 주세요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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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아버지가 직접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집은 따뜻하고 편해야 하지만, 아버지는 제멋대로 특이하게 짓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결국 집은 오각형 모양이 됐는데 바람이라도 불면 지붕이 덜컹거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네 딸은 그 집에서 다 같이 누워 뒤척이며 이런 다짐을 했다고 합니다. 절대로 아버지 같은 남자와 살지 않겠다고.

 

우영미 : "다들 결국 정말 평범한 남자를 골라 결혼했다. 참 오랫동안 속으로 아버지를 원망하고 또 미워했다. 아버지의 그 허세와 무절제 덕에 우린 돈이 그렇게도 없으면서 값비싼 그릇에 밥을 나눠 먹었고, 옷 하나를 지어 입어도 남다르게 입었어요. 그땐 그토록 아버지가 싫었지만, 그 덕에 우리 남매 모두 진짜 멋있고 근사한 게 뭔지 몸으로 익혔죠."

 

 

아버지는 치매를 앓다 2014년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말년의 그는 시력을 거의 잃고 앞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숨지기 직전까지 영국 빈티지 찻잔에만 커피를 담아 마셨고 큰 딸이 무심코 둘러준 고급 머플러를 만지며 "이건 진짜 좋은 거네"라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우영미(패션 디자이너) 솔리드 옴므, 우영미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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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미는 학창시절 늘 소심하고 조용한 우등생이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미대를 하려 했지만 1978년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우영미는 이때부터 의상 공부를 시작했고, 이후 1986년 우리 나라 대학생 대표로 뽑혀 일본 오사카 인터내셔널 패션 콘테스트에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에스모드, 영국 세인트 마팀, 이탈리아 마랑고니 가튼 쟁쟁한 패션 학교 출신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한꺼번에 몰려온 자리였다고 하는데요, 심사위원 중에는 일본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도 있었다고 합니다. 우영미는 이 대회에서 3등 상(오사카 국제 패션 어워드)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영미 : "우리나라에는 의상학과도 별로 없었고, 복식학원 몇 개 가 있을까 말까. 다른 학생들은 학교 교장 선생님까지 대동하고 왔는데, 나만 혼자 왔죠. 그때 처음 봤어요. 외국에선 패션 디자인을 어떻게 하는지. 한국에서는 나 혼자 옷본 뜨고 미싱 돌렸는데, 그들은 팀을 짜서 움직이더라고요. 기가 죽으면서도 약이 올랐죠. 언젠간 내가 실력으로 다 이길게 했죠."

 

 

이후 우영미는 반도패션(LG패션의 전신), 뼝뼝 같은 회사를 다니다 1988년 서울의 작은 부띠끄에서 남성복 브랜드 솔리드 옴므를 시작하게 됩니다. 재봉사 두 명 데리고 시작한 가게였다고 하네요. 하늘하늘한 여성복보다 무덤덤한 남성복을 좋아했던 우영미였기에 솔리드 옴므라는 이름도 다른 색깔이 섞이지 않았다는 뜻의 영어 단어 솔리드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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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드 옴므는 그 때 당시 사회적인 움직임과 그 흐름이 잘 맞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이문세, 신승훈, 이승철, 윤상 등 당시 핫한 연예인들이 앞다퉈 그를 찾기 시작, 배우 박중훈, 신현준 등도 수시로 가게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이후 솔리드 옴므는 백화점에 입점했고, 매장은 금세 30여개로 불어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후 2002년 우영미 디자이너는 자신의 이름을 딴 우영미라는 브랜드를 설립, 그는 당시에 자신의 제품들이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우영미라는 브랜드로서 파리 진출에 도전하게 됩니다.

우영미(패션 디자이너) 해외 진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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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부분 패션 브랜드가 대기업에 흡수되는 시기에 우영미 디자이너 또한 솔깃할만한 제안들을 종종 받았지만 누군가의 밑에서 오로지 매출만을 올리기 위해 컬렉션을 뽑다 보면 브랜드의 본질이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든 제안들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선택은 백화점에서 대기업드로가의 경쟁으로 이어졌는데요,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우리가 잘하면 된다라는 마인드로 꾸준히 노력했고 국내에서 우리를 원하지 않으면 해외에 나가서 찾으면 된다는 단순한 발상에서 해외 진출을 시도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데는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우영미의 동생 우장희 전무의 힘이 컸다고 합니다.

 

우영미 : "남성복 시장은 좁고, 우리나라 대기업과 경쟁하면서 백화점 유통 시장에서 밀려나지 않으려면 때론 내가 만들기 싫은 옷도 만들어야 했어요. 더 많은 남자에게 내 맘대로 지은 옷을 입힐 순 없나 고민할 때 동생이 그럼 해외로 나가자고 했죠"

 

우영미 : "둘이서 쇼에 내놓을 옷을 이고, 지고 한밤중 파리 공항에 딱 내렸는데 비가 쏟아지더라고요. 짐은 많고, 택시는 안 잡히고...그때 속으로 나 여기 왜 왔지? 했는데 동생이 택시를 불러 세우며 제게 이랬죠. 언니, 가자!"

 

 

우영미(패션 디자이너) 파리 도전에 성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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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맨땅에 헤딩하는 상황이었던 우영미는 첫 쇼를 프레스 파티가 있었던 날의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에 배정받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쇼 다음날, 르 피가르의 신인 디자이너를 소개하는 섹션에 우영미에 대한 평이 실렸다고 합니다. 

 

우영미 : "유명 패션 에디터인 프레그리크 마르탱 베르나드가 쓴 기사였는데, 한국에서 온 우영미라는 디자이너의 쇼를 봤는데 도대체 왜 이 사람이 파리에서 숍을 내기 않는지 모르겠다. 당장 열어달라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 기사를 보고 우영미는 당시에 기죽지 않고 다음 컬렉션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우영미는 5-6번의 쇼를 개최했고 마래의 숍을 오픈하고 봉마르셰, 프랭탕 백화점에도 입점하는 등 파리로 진출한 성공적인 한국 브랜드로서 자리매김을 하게 됩니다. 

 

우영미 : "말도 마세요. 쇼 당일 다리미 하나 제대로 빌릴 데가 없어서 발 동동 구르고 그랬어요. 변변한 에이전트 하나 알지 못했으니까요. 쇼만 해선 안되고 파리 편집매장에 내 옷을 걸고 바이어에게 상품을 팔아야 하는데, 누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디자이너 옷을 받아줘요. 3년쯤 매일같이 거절당했어요.

 



우영미 : "그러던 어느 날 한 유명 편집매장 매니저가 그러더라고요. 너는 그래도 좀 다르구나? 파리에서 쇼를 하는 디자이너가 한둘이 아니지만, 계속 꾸준히 하는 디자이너는 없다는 거죠. 게다가 모르는 나라에서 온 디자이너니 그냥은 못 믿는다는 거죠. 얘가 꾸준히 버티는지 한참 지켜보고 나서야 받아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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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1년에는 우리나라 디자이너 중 최초로 파리의상 조합의 정회원이 되기도 합니다. 참고로, 패션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파리의 의상 조합 정회원이 되기 위해선 그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결과물이 있어야 하고, 어떤 한 사람이 추천을 하면 일정 수 이상의 찬성표를 얻어야만 정회원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솔리드 옴므는 삭스피프스 백화점 등 해외에 15개 매장을, 우영미는 프랑스 봉마르쉐, 프렝탕 백화점, 영국 해러즈 백화점 등 해외 33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고 하는데요, 우영미는 세계 최고의 명품 백화점에서 연매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답니다. 이는 국내 대기업 패션회사가 수년간 돈을 쏟아부으며 투자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라고 합니다. 

 

또 매년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패션 인물 500을 선정해 발표하는 BOF의 리스트에 2014년 국내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이후 3년 연속 선정될 만큼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데뷔 30주년을 맞은 2018년에는 서울 패션위크 명예 디자이너로 선정되어 DDP에서 2019 S/S 시즌 개막쇼를 펼치기도 했습니다. 

 

우영미(패션 디자이너) 결혼 남편 자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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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미는 이미 결혼해 남편과 자녀를 두고 있는데요, 남편과 자녀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공개된 적은 없지만 남편의 직업은 외과 전문의로서 패션과 전혀 무관한 직종에 있고, 큰 딸 정유경은 영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세인트 마틴)을 나와 최근까지 우영미와 솔리드 옴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째 딸 정유진은 프랑스 파리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스코틀랜드에서 대학 세인트 앤드류스를 졸업하고 솔리드옴므에서 MD로 활약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영미 큰 딸 정유경 : "어릴 때부터 엄마가 일하는 사무실에서 원단을 만지고 미싱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늘 일하는 엄마가 야속해서 나는 결혼하면 워킹맘 같은 건 절대로 안 할 거다라고 말했는데, 막상 결혼 후 임신해서 만삭인데도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봤다. 보고 배운 게 참으로 무섭다는 걸 새삼 알았다."

 

우영미 : "아이 낳기 일주일 전에도 비행기 타고 출장을 다녔어요. 항공사에서 만삭 임산부는 그냥은 못 태운다고 해서 의사 진단서에 사인까지 받아서 갔죠. 저는 천재는 아니지만 기왕 시작한 일은 끙끙대면서 어떻게든 해야 하는 사람이었어요. 딸도 그걸 보면서 은연중 닮아가고 있는 거겠죠."

 

우영미(패션 디자이너) 매출 근황과 앞으로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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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드 옴므를 설립했을 당시, 냉철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휴머니스트인 남성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현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을법한, 말 그대로 이상형의 남성상이었지만 이러한 이상적인 남성을 생각하며 디자인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고 영원한 디자인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영미는 데뷔 32년 만인 지난해 여성복을 시도하기도 했는데요, 2020F/W 시즌부터 서울과 파리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우영미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솔리드 옴므는 지난 2019년 매출규모가 약 543억 원 정도, 우영미보다는 쏠리드옴므의 매출 비중이 높고, 해외보다는 국내의 매출 규모가 더 큰 편이라고 합니다. 솔리드 옴므 직원 수는 해외 직원을 포함해서 총 1백 여 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2012년 솔리드의 본사가 있던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국내 첫 플래그십스토어이자 복합 문화공간인 맨메이드를 오픈한 바 있는데요, 2층은 카페와 전시 공간, 3층과 4층은 쏠리드옴므, 5층은 우영미 브랜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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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미 : "독립 브랜드를 운영한 지 벌써 32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정말 앞만 보고 정신없이 살아왔다. 국내외 기자들이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가 우영미 밖에 없다는 얘기를 할 때 몹시 씁쓸하고 슬프다. 덩어리로서 무리 지어 활동할 때 힘이 생기는 법일 텐데... "

 

우영미 : "하지만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한국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부분에서 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뿌듯할 때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글로벌 브랜드로서 부족한 게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 브랜드가 글로벌 브랜드로 반석을 확고히 다지는 것이 현재 나의 당면과제이자 목표다."

 

이상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 추천 글 -> 윤계상 <나이 프로필 아내(부인) 차혜영,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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