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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실 <프로필 나이 집안 남편 남석진, 누구? 아들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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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오영실이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합니다. 이에 오영실 나이 남편 근황 등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오늘은 배우 오영실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모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영실(배우)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종교 학력 소속사

 

배우 오영실

 

배우 오영실은 1965년 1월 30일생으로 올해 나이 59세입니다. 오영실 고향은 서울특별시 동작구이며, 가족으로는 남편 남석진과 아들 남종수(1994년생), 남혁수(1991년생)가 있습니다.

 

오영실은 키 159cm에 몸무게 49kg이라고 하고요, 오영실 종교는 개신교이며, 학력은 서울흑석국민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이화 금란중학교,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여자고등학교, 홍익대학교 금속공예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영실의 현재 소속사는 스케치E&M 소속이라고 합니다.

 

* 추천 글 -> 조영남 <프로필 나이 과거 윤여정, 두번째 아내 이혼 자녀 딸 재산 근황>

 

오영실(배우) 집안 과거

 

배우 오영실

 

오영실의 아버지는 군인이었으며 그녀가 7살 때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해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합니다. 

 

오영실 : "나는 내가 아버지가 없는 줄 몰랐다. 그때서야 아버지의 부재를 알았다. 7살 때 엄마를 따라 한복을 입고 아주 좋고, 넓은 데를 간 적이 있다. 알고보니 한복은 상복, 장소는 국립묘지였다. 아버지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마냥 뛰어 놀았다."

 

 

오영실 : "중학교 때까지 내가 최고인줄 알았다. 하루는 작고 예쁜데 잘난 척 여자에 집을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우리 딸 이제 오냐고 자애로운 얼굴로 반겨주더라."

 

오영실 : "결국 몸져 누웠다. 몸만 누운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누웠다. 어린 나이에 나는 쟤보다 착한데 왜 아버지도 없고 가난할까 생각에 실어증이 걸렸다. 괴로워서 말도 안 나와서 하늘을 보고 원망밖에 안 했다."

 

오영실 : "그 충격으로 중학교 시절 3년 동안 내내 의기소침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사과장수 딸, 아버지가 아프신 애들을 친구로 만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다시 자신감을 찾았다."

 

오영실(배우) 활동 이력(아나운서 -> 배우)

 

배우 오영실

 

이후 오영실은 1987년 KBS 15기 아나운서로 입사하여 가요톱10을 비롯한 예능프로그램은 물론 TV유치원부터 9시뉴스 주람앵커까지 아나운서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본인 말로는 서서 하는 프로그램은 열린음악회 뺴고는 다 해본 것 같다고 하네요.

 

오영실은 1990년 서울대학교병원 전공의였던 현재의 남편과 결혼, 이후 육아 문제 등으로 1997년 4월에 KBS를 퇴사하여, 이후에는 프리랜서 활동을 하다가 이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 출연하여 활동 영역을 배우 분야로 넓혔습니다.

 

 

오영실은 2009년 SBS 연기대상 뉴스타상을 받기도 했으며, 2010년 감상선암으로 수술을 받기도 했지만 이후 완쾌되어 다시 조연으로 꾸준히 활동 중에 있습니다. 

 

오영실(배우) 결혼 남편 남석진 나이차 직업, 누구?

 

배우 오영실

 

오영실은 남편 남석진과 1990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오영실과 남편 남석진 두 사람의 나이차는 오영실은 1965년생인 59세이고 남편 남석진은 1961년생인 63세로 4살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오영실 남편 남석진의 직업은 의사(유방암 전문의)입니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나왔고, 인하대학교 대학원 의학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삼성서울병원과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오영실(배우) 남편 남석진 결혼스토리 자녀 아들

 

배우 오영실

 

오영실은 남편 남석진을 캠퍼스 커플로 만납니다. 

 

오영실 : "친구들과 단채미팅을 했을 때도 킹카가 몇 번을 연락해 왔지만 남자친구 때문에 거절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오영실 : "대학 동아리 선배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시켜준다고 했는데 6개월이 지나도록 말이 없더라. 나중에 이유를 물어봤더니 그쪽에서 연애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더라.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해 지금의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개팅 날짜를 잡았다."

 

 

오영실 : "사실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청바지 입고 다니던 또래의 친구들만 만나다가 양복바지에 와이셔츠를 입은 된장국 같은 지금의 남편이 웃을 때 너무 귀여워 눈에 들어왔다."

 

당시 남편 남석진은 오영실보다 의대생이었습니다. 당시 인기가 높았던 오영실에게 관심이 없는 행동으로 주목을 끌었던 것인데요, 하지만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오영실 : "남편과 결혼 전 심하게 다툰 후 헤어지려고 결심하고 안 만나줬다.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 의료용 메스와 종이를 꺼내 들고 사랑한다, 앞으로 잘하겠다, 결혼하자라는 내용의 혈서를 썼다."

 

배우 오영실

 

결국 둘은 1990년 결혼식을 올렸고, 슬하에 남혁수, 남종수 두 아들을 두게 됩니다. (오영실 아들 남혁수(첫째)는 1992년생인 31세이고, 둘째 아들 남종수는 1995년생인 28세) 그리고 결혼 후에도 오영실은 남편이 자리를 잡기까지 계속해서 일을 합니다. 

 

오영실(배우) 남편 남석진 결혼생활

 

배우 오영실

 

오영실 : "결혼 후에도 남편이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직장생활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남편이 자리를 잡은 뒤에도 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쉽게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었죠."

 

오영실 : "남편과 7년 열애 후 결혼을 했다. 늘 한결같고 듬직한 모습에 끌렸는데 결혼 생활을 해보니 단점이 보였고, 돈을 너무 안써서 휴대폰 하나를 안 사줬다. 그런데 아이들 물건은 잘 사준다."

 

 

오영실 : "월급 통장 한 번 안가져다 주는 남편이 섭섭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아직도 매달 생활비를 받는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아이들 교과서를 비닐로 싸주면서 난 어릴때 달력으로 쌌다고 하는데 남편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게 됐다."

 

오영실 : "남편은 생활비 외에 내가 써야할 돈은 주지 않는다. 언제나 통장 관리는 남편이 했다. 남편이 주는 용돈으로 집 넓혀서 이사가느라 정말 힘들었다. 남편이 옷을 사거나 뭔가를 사는 걸 싫어한다. 쇼핑 때 필요한 것만 사고 집에 가야한다. 꼭 필요한 것을 사고 있는데도 남편의 표정이 굳어져 벌벌 떨었다."

 

오영실(배우) 남편과 갈등 요인

 

배우 오영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문제는 항상 돈이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남편에게 돈을 빌리기로 한 그가 출근길에 돈 얘기를 꺼내자 남편은 알았다는 말 대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에 상처를 받은 그는 한동안 남편과 말도 안 하고 침묵으로 투쟁했다고 합니다. 

 

오영실 : "한번 주기로 한 거면 기분 좋게 줘야지, 남자가 한숨을 쉬는 건 뭐예요. 내가 혼자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알뜰한 건 좋지만 남편이 저한테 너무 인색하게 굴 때면 저도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들어요."

 

그날의 사건이 어떻게 보면 사소한 문제인 것 같지만 신혼 초부터 돈 문제로 남편과 신경전을 벌여야 했던 그는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연애시절부터 지극정성으로 남편을 뒷바라지했다고 믿고 있는 그에게 남편의 그런 행동은 때로 배신감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오영실 : "저는 어려서부터 애교가 많아서 엄마한테 용돈을 잘 타 썼고, 남편은 알뜰한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대학시절 주머니가 넉넉지 못했다.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책 산다고 만원을 삥땅치면 둘이 오천원, 오천원씩 나눠 쓰면서 남다른 사랑을 쌓았단 말이죠."

 

 

오영실 : "하루는 남편이 다 해진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파서 그길로 바로 당대 최고의 브랜드였던 리바이스에 데리고 가 남방과 청바지로 한 벌을 쫙 빼줬어요. 제가 그렇게 남편을 보필했는데, 그런 남편이 저한테 돈을 아낀다는 것에 대해 참을 수가 없었어요."

 

배우 오영실

 

그가 더욱 서운했던 건 그에게는 인색한 남편이 아이들에게는 관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때는 큰 아이가 첫돌을 맞을 무렵, 장소는 남편 동료 아들의 돌잔치 집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아이들에게 한복 대신 유명 브랜드의 청바지를 입혀서 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었는데, 그 집 아이가 그 청바지를 입은 걸 보고 그는 자신의 아이에게도 청바지를 입히고 싶은 마음에 동료 부인에게 청바지를 빌려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합니다. 

 

집에 돌아와 그 사실을 알고 덩달아 화가 난 남편은 아이에게 당장 청바지를 사주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하네요. 오영실은 그 틈을 이용해 "그럼 나도 하나만..."이라고 말했는데, 남편의 반응은 예상대로 "No"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도 부부에게는 청바지 사건에 버금가는 일들이 수차례 반복됐고, 그러다가 1998년경 드디어 오영실이 이혼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오영실 : "(90년대 초반만) 해도 휴대전화가 귀한 시절이었는데, 너무 비싸 직접 사지는 못하고 친한 선배한테 전화기를 새 걸로 바꾸면 헌 것은 나를 달라고 부탁을 해놨었어요."

 

오영실 : "그런데 얼마 뒤 선배가 휴대전화를 새 걸로 바꾸고도 저한테 연락을 안 하는 거예요. 제가 왜 안 주냐고 물었더니 선배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니 남편이 주지 말라고 했어라고 말하더라고요."

 

오영실 : "깜짝 놀라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선배가 남편을 만나서 전화기를 주려고 했는데, 남편이 가입비가 20만원이면 너무 비싸니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는 거예요. 제거 얼굴이 얼마나 뜨겁던지, 순간 그동안 힘겹게 쥐고 있던 인연의 끈을 저도 모르게 놓아버렸죠."

 

오영실(배우) 남편과 이혼을 생각하기도

 

배우 오영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남편에 대한 원망이 도를 넘어 한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남편도 자식도 모두 소용없다고 느낀 오영실은 허무주의에 빠려 오랫동안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고 하네요. 

더 이상 마음을 둘 데가 없다고 느낀 나머지 골프의 세계로 빠져들었는데, 날마다 방송국 PD, 아나운서, 연예인 매니저들과 함께 골프를 치러 다니면서 밤늦게 귀가하는 날이 잦았다고 합니다. 아내가 밖으로만 돌자 남편 또한 화가 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서 두 사람의 싸움은 더욱 격해졌다고 합니다. 

 

오영실 : "제가 말이 많은데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커요. 밤늦게 부부싸움을 할 때면 남편은 창문 닫기에 바빴어요. 그렇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내뱉었죠."

 

오영실 : "콧방귀를 뀌며 흥! 아나운서와 의사의 조합? 남들이 보면 환상적인 커플이라 생각하겠지. 이렇게 속이 곪아터지는 건 모르고 하면서 비아냥거리기도 많이 했어요."

 

남편에 대한 미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도가 더욱 세졌다고 합니다. 심지어 자는 모습까지 밉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몇몇 친구들은 심지어 이혼을 권했다고 합니다. 

 

그 역시 새해 첫날 남편에게 "내 소원이 뭔지 알아? 둘째아이까지 장가보내고 당신하고 이혼하는 거야"하고 극한 말까지 던졌다고 합니다. 그는 "친정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만큼은 편부 편모 밑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오영실(배우) 남편과의 관계 회복

 

배우 오영실

 

하지만 이후 오영실은 다시금 남편이 멋있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남편을 미워하면서도 제발 남편을 다시 사랑하게 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한 나의 기도가 통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오영실은 남편이 점점 예쁘게 보이자 친구들 앞에서도 "요즘 우리 남편이 더 멋있어진 것 같지 않냐. 역시 남자들은 중년의 모습이 더 멋있어"등의 칭찬을 늘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의 반응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던 남편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화해 모드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2002년 경 오영실은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남편과 같이 미국 생활을 하면서 다시 한번 남편과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참고로, 당시 남석진이 1년 반 동안 미국 워싱턴 버지니아대학교 교환교수로 가게 되면서 오영실 온 가족이 함게 미국으로 가게 된 것)

 

오영실 : "미국에 있는 동안 저도 학교에 다녔는데, 아침 일찍 한 시간 반 정도 운전을 해서 학교에 가야 했어요. 하루는 남편이 운전하면서 먹으라고 토스트랑 달걀을 싸주더라고요. 속으로 운전하면서 이걸 어떻게 까나 하고 달걀을 집어 들었는데, 이미 껍질이 다 까져 있는 거예요."

 

오영실 : "순간 감동이 밀려왔죠. 고마운 마음에 달걀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세상에, 달걀에 소금간이 돼 있지 뭐에요. 남편이 달걀을 3등분으로 나눠서 십자로 칼집을 낸 뒤 거기에 소금을 밀러넣었더라고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그동안 남편에게 품고 있던 모든 원망이 한순간에 눈 녹듯이 사라지더라고요."

 

결국 이런 배려에 그동안의 상처받았던 오영실의 마음이 눈녹듯이 녹게 된 것이었습니다. 

 

오영실(배우) 재테크

 

배우 오영실

 

신혼초부터 둘 사이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은 바로 재테크 문제였습니다. 

 

오영실 : "재테크의 시작은 집이었어요. 서울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 대출을 받아 첫 집을 장만했죠. 집값 9000만원 중 절반이 대출금이었어요. 남편은 모은 다음에 장만하자고 했지만, 돈을 마련한 다음에 집을 사면 이미 늦는다는 친정 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였죠."

 

 

오영실 : "집들이할 때 제가 친구들한테 소고기를 사오라고 했는데 친구들은 제 얘기가 장난인 줄 알고 케이크를 사온 거에요. 너무 속상해서 친구들 몰래 혼자 부엌에 가서 울었어요"

 

하지만 이 첫번째 집에 대한 투자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고, 두번째 서울 강남 반포 아파트 집이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재개발 효과로 집값이 크게 뛴 것입니다. 

 

오영실 : "그 다음에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죠. 10년 넘게 아는 분이 괜찮은 반찬 가게를 할 예정이라며 창업 투자 제의를 해왔어요. 제대로 된 계약서도 없었죠. 하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인 만큼 믿고 맡겼어요."

 

오영실 : "집을 담보로 1억 넘게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고스란히 동업자에게 건넸었어요. 주변 사람들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말렸어요. 다들 계약서 꼭 작성하라고 하는데도 저는 왜 사람을 못 믿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고 했어요. 결국 그 동업자가 도망가는 바람에 투자금의 반의반도 건지지 못했죠."

 

배우 오영실

 

그래도 투자에 대한 오영실의 미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영실 : "아는 사람이 노른자 땅이 있다며 땅 테크를 추천했어요. 일단 10배 수익을 보장하고 5년 뒤 10배 보장이 안 될 경우 최소 2배라도 보장하겠다고 했어요."

 

오영실 : "주변에선 기획부동산 사기 느낌이 난다며 말렸지만,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듣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어요. 역시나 빚을 내 땅을 매입했어요. 하지만 5년 뒤, 최소 2배 수익은 보장해주겠다던 사람들은 종적을 감췄어요."

 

 

오영실 : "빚쟁이처럼 그 사람들을 쫓아다녔어요. 결국 어느 정도 손실을 보고 나머지 돈은 되돌려 받았지만, 5년을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만 했죠."

 

오영실 : "이번에는 방송에서 만난 주식 전문가 도움을 받아 처음엔 개인적으로 주식 투자를 했어요.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죠. 그러다가 대박의 손이라 불리는 사람을 만났죠. 모 증권회사 이사라는 사람이었는데, 적어도 원금은 보장해준다는 말을 듣고 역시나 빚을 냈죠. 석 달만 꼬박꼬박 돈을 받으면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오게 되거든요. 원금 대비 10분의 1만 줘도 넘어가게 돼 있어요."

 

오영실 : "그래서 초반엔 5000만 원만 투자하다가 빚을 내 5000만 원을 더 보탰어요. 그런데 이사라던 그 사람은 현직이 아닌 전임이사로, 일반 사이버 투자자였어요. 결국 투자금 1억 중 2000~3000만 원만 겨우 회수했죠."

 

오영실 : "한참 사기당하고 울고 있는데 아들이 집에 먹을 게 없다고 떼를 쓰기에 용돈으로 사먹으라고 했더니,주머니에 800원밖에 없다더라고요. 재테크라는 게 아들을 굶기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더군요."

 

오영실 : "지금은 다시 적금으로 돌아갔어요. 사실 재테크로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가더라고요. 지금 적금으로 들어가는 돈은 제가 새벽 네 시까지 드라마 촬영하고 받은 출연료에요. 그돈은 예전 제가 갖고 있던 돈이랑은 너무 다른 거죠. 쉽게 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오영실 : "옷도 덜 사게 되고, 먹는 사람들한테 베풀 일 있을 때만 좋은 데서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허름한 데서 그냥 싸게 먹어요. 새는 돈을 막고 규모에 맞게 소비를 하는 거죠."

 

배우 오영실

 

결국 이렇게 오영실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남편의 말이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오영실 : "(남편은 내 인생의) 동반자죠. 내 인생의 절정기 그리고 가장 힘든 모습도 보았으니 가장 편안한 남자에요. 만만하고 편안하고, 아 하면 어가 나오는 사람.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할 거예요."

 

오영실 : "하고 싶은 거 다 하려고 하는 자유부인을 감당할 남자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남편이 도망갈까 걱정이에요. 요즘은 남편이 소파에 앉아 있으면 착 붙어 앉아요. 남편도 저를 귀여워하고요."

 

오영실 :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에 대한 믿음이 커져요. 여전히 곰살궂은 행동에는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남편이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투철하고 아이들을 예뻐하는 모습을 보면 결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오영실 : "남편이 가장 멋있게 보이는 순간을 꼽으라면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버리고 올 때 내가 아플 때 물 한잔과 약봉지를 건넬 때에요. 대단한 이벤트는 아니더라도 진심이 느껴지는 소소한 행동을 통해서 큰 감동을 받죠."

 

오영실(배우) 아들 교육

 

배우 오영실

 

오영실 : "갑상선암 수술 이후로 아이들 교육 문제로 아등바등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공부를 못하면 못하는 대로 아이가 올바른 사고방식을 지닐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는 게 부모 노릇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결국 오영실은 전남 벌곡에 있는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냅니다.

 

 

오영실 : "아이가 이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학교 생활을 즐거워하고 예전에는 쉽게 찾지 못했던 공부 의욕도 점차 갖게 됐어요. 아이가 2주에 한 번 집에 오는데 그때마다 학교 얘기, 친구 얘기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죠."

 

오영실 : "처음에는 남편의 반대가 심했어요 제도권 밖의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저는 직접 벌곡에 내려가 학교를 둘러보고는 마음을 굳혔어요."

 

오영실 : "마침 그날 아이들이 학예회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발표 내용도 정말 창의적이더라고요. 지금은 남편과 아이 모두 저한테 고마워하죠. 덕분에 요즘 집안에서 발언권이 세졌어요."

 

이처럼 오영실 부부는 정말 서로 상반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혼하지 않았던 것은 두 사람의 참고 살자는 생각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오영실은 남편의 매력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가정에 책임감이 있고, 또 삶에 안정감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입니다. 

 

이상 배우 오영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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