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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정(가수) 나이 이혼 3번, 교통사고 4번 인생사 남편 자녀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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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하정이 7월 11일 가요무대에 출연합니다. 이에 김하정 나이 근황 등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오늘은 가수 김하정에 대한 알려진 정보들을 모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하정(가수) 나이 고향 가족 학력

 

가수 김하정

 

가수 김하정의 본명은 김지숙입니다. 김하정 나이는 1948년생 정도로 올해 나이 75세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하정 고향은 사시사철 동백꽃이 피어난다는 섬, 진도의 고군면 신리이며, 부친 김대봉, 모친 박정납 사이에 3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이외 김하정 키 혈액형 학력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김하정(가수) 프로필 및 경력

 

가수 김하정

 

김하정은 70년대 가수 패티김을 닮은 음색으로 혜성같이 등장해 사랑, 야생마, 금산아가씨 등 히트곡을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국내 여가수 중 최초로 비키니를 입어 화제를 모았고, 10대 가수상 수상을 비롯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가수입니다. 

 

 

김하정(가수) 집안 부모 과거

 

가수 김하정

 

김하정 : "진도에서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던 아버지께서 초등학교 5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때부터 활달하던 성격이 내성적으로 바뀌면서 혼자 노래 부르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지요."

 

부친이 타계한 뒤 생활이 어려워지자 모친은 작게나마 농사일을 시작했고, 그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큰 언니 은순씨가 광주로 나가 직장생활을 하며 동생들을 뒷바라지했습니다. 

 

김하정 역시 언니의 권유로 광주 수피아여고에 들어간 뒤 졸업 후 언니가 차린 화니미용실에 미용사로 들어갔고, 언니의 권유로 방학 때 미용학원을 다니면서 미용사 자격증을 딴 것입니다. 

 

김하정 : "낮에는 미장원에서 일하고 밤에는 음악학원에 다니며 기타를 배웠어요. 손님이 없을 땐 혼자 기타 치며 노래하기도 했고, 나중에 손님이 많을 때도 손님들 요청으로 노래를 불러 박수를 받곤 했지요. 단골 중에서는 내 노래를 듣기 위해 미용실에 오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었죠"

 

 

이에 점차 노래를 잘 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주위의 권유로 1967년 광주문화방송이 주최한 호남가요콩쿠르에 출전, 이때 패티김의 노래 내 사랑아를 불러 1등 상을 차지하며 광주 MBC 전속가수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어 그때 곧 개봉할 영화 사랑의 주제가인 내 사랑아를 부를 가수로 발탁됩니다. 본래는 패티김이 부를 예정이었는데 해외공연 관계로 녹음이 늦어져 급하게 대체할 가수를 찾고 있던 상황에서 발탁된 것이었습니다. 

 

김하정(가수) 데뷔 앨범 활동

 

가수 김하정

 

김하정은 그렇게 1968년 영화주제가 사랑으로 데뷔, 처음부터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영화주제가 사랑을 취입하자마자 곧바로 오아시스레코드사에 전속되며 히트곡을 잇달아 발표합니다. 사랑을 비롯해 첫사랑 별이 움니다, 기도하는 도미니카 등.

 

이후 데뷔 이듬해인 1969년 김하정의 위상은 사뭇 달라져 당시 연예오락 부문에서 절대 강자였던 동양 TV(TBC)가 김하정과 전속 계약을 체결했고, 당시 음반계에서 양대산맥을 구축하고 있던 경쟁사 지구레코드가 김하정을 스카우트합니다. 가요계 다크호스로 등장한 오아시스의 신예, 사랑을 계절 따라의 박건과 함께였습니다. 

 

김하정은 그렇게 지구로 전속을 옮기면서 작곡가 손석우, 백영호, 김인배, 홍현걸, 김영광, 고봉산 등과 새롭게 손잡고 신곡을 발표하기 시작, 첫날밤 갑자기, 눈물의 여인, 진도아리랑, 임은 어디에, 사랑이 남긴 것 등입니다. 

 

 

김하정 : "방송국 전속 가수에게는 장 단점이 동시에 존재했지요. 물론 저 같은 신인에게는 엄청난 행운이지만...방송국 전속가수는 우선적으로 방송국에서 만드는 프로그램에 대부분 참여해야 했어요."

 

김하정 : "그러다 보니 아침방송부터 오후 늦은 토크 방송까지 마치고 나면 늘 파김치가 되곤 했지요. 그 무렵 합께 전속으로 활동하던 가수로는 이석, 조영남, 최영희 씨 등이 있었지요."

 

김하정(가수) 데뷔 초기 수입

 

가수 김하정

 

데뷔 1년만인 1969년, 김하정은 놀랍게도 세금을 가장 많이 낸 가수 8위에 오릅니다. 

김하정 : "처음 뉴스를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세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지? 그동안 수입은 소속 음반사 측과 사촌오빠가 관리했기 때문에 저는 실제로 잘 몰라요. 그러나 어쨌든 세금을 많이 냈다는 것은 그만큼 수입이 많았다는 것이겠지요. 그때는 정말 쉴 새 없이 방송과 음반 취입, 공연을 다녔으니까..."

 

1969년 당시 초임 공무원 월급이 1만 2천 5백 20원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세금만 15만 원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수입이 많았던 인기가수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김하정(가수)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가수 김하정

 

이후 김하정은 1970년 4월 TBC 전속이 풀리자마자 MBC 후라이보이쇼에 출연, 이전의 크라운쇼가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단장한 첫 회였습니다. 

 

 

그렇게 MBC를 시작으로 어느 방송국이든 자유롭게 출연할 수 있게 되어 쇼 일레븐(MBC), 쇼쇼쇼(TBC), 스카이쇼(MBC), 즐거운 주말(KBS), 백화스테이지(MBC), 고요한 밤에(KBS) 등등 특히 쇼 일레븐에선 미니 뮤지컬 코너에 단골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해 8월 MBC 드라마 석양의 나그네에서 출연 섭외가 왔고, 이를 계기로 김하정은 탤런트로도 연기력을 점차 인정받기 시작, 이후 드디어 대형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애랑 역에 캐스팅됩니다. 

 

김하정 : "그 무렵 MBC 쇼 일레븐의 미니 뮤지컬 코너에 거의 고정으로 출연했어요. 아마 드라마 제작진이 그걸 본 후 캐스팅한 것 같아요. 처음엔 못한다고 고사를 했는데 할 수 있을 거라며 계속 설득해왔어요."

 

예그린의 살짜기 옵서예는 뮤지컬의 대중화에 성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뮤지컬입니다. 이후 회를 거듭할수록 김하정은 점점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무엇보다 이 공연을 통해서 춤, 연기, 노래 3박자를 모두 갖춘 가수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김하정(가수) 누O 논란

 

가수 김하정

 

그리고 대담해진 김하정은 1971년 그해 가을 다시 예그린 뮤지컬 바다여 말하라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모 주간지(서울신문사가 발행하던 주간지 선데이서울 창간 3주년 기념호의 별책부록 선데이 펀치) 화보페이지를 위해 나 자신의 누O 사진을 제공하게 됩니다. 

 

 

당시 톱싱어 김하정, 옷을 벗다라는 제목과 함께 누O가 게재되며 연예계를 뒤흔들었고, 이에 선데이서울은 간행물 윤리위원회로부터 경고 조치를 받았고 한국연예협회에서는 김하정 제명 논란으로 시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사진이 누O가 아니라 누O처럼 보이게 찍은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이 논란에 대해 김하정은 살짜기 옵서예 팜플렛을 통해 담담히 입장을 이어갔습니다. 

 

김하정 :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무엇인가 호소하는 것인데, 그러다 보면 입으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들의 본능인가보다. 살짜기 옵서예는 나를 정말 대담하게 만들었다."

 

김하정(가수) 비키니 논란

 

가수 김하정

 

그런데 논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른바 김하정 국내 연예인 최초로 비키니를 입다 사건이 그것입니다. 

 

김하정 :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공연이 끝나고 나니까 국방부에서 명령이 내려왔어요. 월남 위문공연을 준비하라고. 당시 위문공연은 국가적 행사였기 때문에 연예인이면 대부분 가야 했죠. 살짜기 옵서예 팀들과 함께 간 것이 1971년이었어요."

 

당시 문화공보부가 주관한 이 주월 국군 연예위문단을 통해 그는 1971년과 72년 두 차례 파월장병 위문공연을 다녀오게 되었고, 이곳에서 우리나라 연예인 중 최초로 비키니를 입은 김하정이 탄생하게 됩니다. 

 

김하정 : '청룡부대에서 위문공연을 하는 도중에 장병들과 바다에서 수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저는 진도 섬에서 태어났지만 수영을 전혀 하지 못했고 또 어릴 때 물에 빠져 겨우 살아났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유독 심했어요. 때문에 그때까지 수영복을 입어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위문공연이었던지라 주최 측에서는 수영놀이 프로그램을 강행했고 할 수 없이 수영복으로 갈아입어야 했는데 하필 여자 연예인에게는 당시 외국 사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비키니 수영복을 입으라는 거였습니다. 

 

김하정 : "위문공연이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었어요. 제게 주는 수영복은 예쁜 링이 달린 비키니였는데 아예 장병들이 수영복에 제 이름까지 적어 놓았더라구요. 행사가 끝나니까 기념선물로 주더군요."

 

김하정 : "공연을 마치고 귀국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공항에 카메라 기자가 와 있어요. 별 수 없이 그를 따라 뚝섬에 가서 요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이 사진이 주간지 표지에 실리면서 저는 본의 아니게 비키니를 입은 최초의 연예인이 되었어요."

 

김하정(가수) 이후 활동

 

가수 김하정

 

이후 김하정은 일 년 여의 지구 전속을 마치고 다시 오아시스레코드사로 돌아온 후 금산 아가씨, 소라의 노래를 발표했고, 이어 예그린 창단 9주년 기념 뮤지컬 바다여 말하라 무대에 오릅니다. 이 뮤지컬은 당시 국내 뮤지컬 사상 최대 제작비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바쁘게 보낸 1971년, 김하정은 이 해에 서울신문 문화대상에서 여자가수상과 MBC 10대가수상 특별상을 수상, 이듬해인 1972년 결성한 김하정 패키지쇼와 함께 거침없이 질주하게 됩니다. 

 

당시 김하정 패키지쇼의 멤버는 김하정을 비롯해 한익평무용단 출신의 무용수 양자영, 이헌재, 그리고 가수 문영 등 남자 둘, 여자 둘로 구성된 4인조였는데, 특히 대표곡인 야생마의 인기는 절정이었습니다. 

 

김하정(가수) 결혼 남편 쓰리보이 나이차, 누구?

 

가수 김하정

 

하지만 이 무렵 김하정 관련 뉴스 하나가 각종 언론의 연예면 톱을 장식합니다. 바로 천의 입을 가진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코미디언 쓰리보이와의 약혼기사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김하정 나이 26세인 1973년 11월 10일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김하정의 전 남편 고 신선삼은 이름에 S가 세 번 들어간다고 해서 쓰리보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원로 코미디언입니다. 고인은 지병을 앓다가 2002년 2월 25일 향년 63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고인(신선삼)은 19세 때인 1959년 미8군 영내 행사인 김 시스터스 쇼의 MC로 데뷔하여 60-70년대 원맨쇼와 MC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특히 원맨쇼 분야에서는 순발력 있는 말솜씨와 다양한 성대모사로 후라이보이 고 곽규석과 쌍벽을 이뤘습니다. 70년대 후반에는 한국연예협회 연기분과 10대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김하정(가수) 남편 쓰리보이 결혼스토리

 

가수 김하정

 

그런데 사실 김하정의 이 결혼은 원래 그녀가 원치 않는, 반강제로 진행된 결혼이었습니다.

 

김하정 : "어느날 지방공연을 가서 선배 여가수와 한 방을 쓰게 됐는데 (신선삼이) 넌 내거야 라며 내 방에 쳐들어왔다. 손만 잡혀도 결혼을 해야 하는 시대였기 때문에 내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하정 : "전 남편의 잘생긴 외모와 진실성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 싫어서 거절을 했다. 그런데 그 분이 다음 날 기자들을 불러서 우리가 결혼한다고 발표했다."

 

김하정 : "신인 가수에게 스캔들은 연예계 생활 끝인 줄 알았다. 그래서 결혼을 했다. 당시 신선삼은 세 번의 이혼 경험과 애까지 있었다. 어머니가 다시는 안 본다고 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해야 했다."

 

 

김하정 : "전 남편(신선삼)이 결혼하면 세계일주를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다해주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결혼한지 하루 만에 방송국에서 캐스팅 전화가 오니 본인이 거절하더라."

 

김하정(가수) 남편 쓰리보이 결혼생활

 

가수 김하정

 

김하정 : "게다가 도박중독도 있었다.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다. 일방적으로 당했다. 신혼여행을 간 첫날밤 새벽이 되도록 남편은 오지 않았다. 알고 봤더니 카지노 도박장에 가서 밤을 새고 왔더라. 내가 남편에게 한소리 했더니 오히려 남편이 나에게 화를 냈다."

 

김하정 : "용서해줄 테니 반성해라. 베란다로 나가서 반성하라고 하더라. 당시 12월 초 첫 눈이 내릴 무렵이었는데 얇은 잠옷차림으로 밖에 섰다."

 

김하정 : "눈 가리고 귀 닫고 3년을 살았다. 가수도 못하게 했다. 남편이 의처증도 조금 있었다. 내 무대 의상을 다 찢어버렸고 외출하는 것도 힘들었다."

 

실제로 김하정은 결혼 기간 내내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결혼 기간 중 유일하게 낸 독집 음반이 그 남자를 타이틀로 한 음반이 1974년 12월에 발표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이 음반 수록곡 중 내 이름은 사랑이 금지곡이 되면서 음반도 함께 사장됩니다. 3년 사이에 유일하게 발표한 독집 음반도 그렇게 묻히게 됩니다. 

 

김하정(가수) 전남편 쓰리보이 이혼, 이후 2번의 결혼과 이혼

 

가수 김하정

 

김하정은 결국 3년 뒤 남편의 외도현장을 급습하면서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 김하정은 이후 2번이나 더 결혼에 골인했지만 결국 두 번 다 실패하고 맙니다.

 

김하정(가수) 개명 이후 활동

결국 김하정은 1977년 6월, 한 고명한 스님의 권유로 하정(夏廷)에서 하정(河廷)으로 이름을 바꾼 후 얼마 뒤 한 작곡가(엄진)가 그를 찾아왔고, 그는 내가 걸어온 길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비롯해 음반으로 취입했고,

 

얼마 후 MBC 드라마 제작진의 권유로 이러한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방송작가에 의해 라디오 드라마 고백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전파를 타면서 청취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1977년 8월 MBC 라디오를 통해 모노드라마 형식의 고백이 방송, 약 한 달 반 동안 매일 15분씩 방송된 이 프로그램 MBC 라디오 실화극, 고백에서 김하정은 본인의 배역을 본인이 직접 맡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때문에 녹음 도중 울음을 터트리기도 수차례. 심지어 그 무렵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뺨을 13바늘이나 꿰매는 등 전치 3주의 부상에도 드라마를 감행, 재출발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여주었고, 이후 점점 웃음을 되찾기 시작, 그동안 무려 여덟 개의 밤무대에서 활약한 끝에 급기야 수유리에 35평짜리 집을 마련하게 됩니다. 

 

 

아울러 작곡가 길옥윤 선생으로부터 정 때문에와 고향을 배경으로 한 향토색 짙은 노래 진도가이나, 그리고 서승일 작곡의 미련을 발표하며 재기의 시동을 걸었고, 이후 1979년 들어 김하정은 뮤지컬 땅콩 껍질 속의 연가 무대에 서게 됩니다.

 

송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디스코 뮤지컬화 한 이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 올려졌습니다. 이후 1980년대에는 8.15 광복절 기념공연 차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기도 했고, 이후 프랑스 파리를 거쳐 LA와 뉴욕 등 미국 전역을 돌기도 했습니다. 

 

김하정(가수) 교통사고, 성형수술, 생활고

 

가수 김하정

 

하지만 김하정은 이후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 상태로 6개월을 보내기도 했는데, 당시 김하정은 교통사고 때문에 머리를 200바늘 꿰매고 7번의 성형수술을 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김하정 : "4번의 교통사고를 겪었다. 비가 오던 날 고속도로에서 전 남편이 과속했다. 두 번째 교통하고는 방송국 가는 도중에 택시와 부딪치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이마 볼, 눈 모두 찢어질 정도로 얼굴이 크게 다쳤다."

 

김하정 : "이어 버스와 충돌하면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망우리에 있는 병원에 가서 6개월 간 병원 생활했다. 한 달간 식물인간이었다. 다 끝났나 했는데 네 번째 사고가 났다. 다리 위에서 차가 뒤집어 지면서 생사 갈림길에 섰다."

 

김하정(가수) 40년 만에 만난 첫사랑과 재혼 근황

 

가수 김하정

 

이후 김하정은 생활고를 겪으며 불행한 삶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그런 김하정에게도 행복은 찾아왔습니다. 과거 20대 초반에 만났던 첫사랑과 40년 만에 재회한 것이었습니다. 

 

 

김하정 : "실버 클럽 공연장에 공연 갔다가 40년 만에 봤다. 일부러 저를 만나러 왔다는데 눈물만 흘렸다. 당시 건강 악화로 정말 외로울 때 나타났다."

 

김하정 : "인생을 살 만큼 살았고 지금까지의 고통이 끝났다고 느꼈다. 마치 구름 뒤에 가려진 태양이 나타난 것 같았다."

 

김하정 : "나이 60세만에 처음으로 여자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 이런 기분을 얻기 위해 그 시련을 견뎠구나 라고 깨달았다. 세 번의 이혼과 네 번의 교통사고 만에 얻은 끝사랑이다."

 

김하정(가수) 아들 근황

 

가수 김하정

 

한편, 김하정은 첫번째 남편 쓰리보이에게서 얻은 아들이 있는데요, 그녀는 과거(2014년) 한 방송에서 아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김하정 : "아들한테 진짜 미안하다. 엄마는 돈 벌기 위해 지방과 외국으로 공연다니니까 할머니와 지냈다. 그래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제가 재혼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받아들이더라. 엄마가 그렇게 해서 편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하정은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영상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아들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아프다. 엄마가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아들은 평범하게 잘 자라길 바란다. 아들 정훈아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라며 눈물을 보였습니다. 

 

가수 김하정의 이후 근황에 대해서는 가끔씩 아침 방송 등에 출연한 것 외에는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이번에 가요무대를 통해 오랜만에 얼굴을 보여주었네요.

 

앞으로 좀 더 활발한 활동을 시작하려는 듯하네요. 앞으로도 멋진 활약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가수 김하정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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