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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나이 과거 실명 아내(부인) 박찬실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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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나이 과거 실명 아내(부인) 박찬실 자녀



<인생앨범 예스터데이 배우 송승환>



배우 송승환이 11월 20일 방송되는 MBN 인생앨범 예스터데이의 세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해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송승환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시력 저하로 실명 위기를 겪은 사연을 고백했는데요, 그 누구보다 다양한 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던 그였기에 갑작스러운 실명 위기는 큰 충격일수 밖에 없었답니다. 하지만 다행히 송승환은 "현재 시력 저하가 멈춘 상태"라며 안심을 시켰습니다. 


이날 방송에서는 송승환의 절친 양희은이 스튜디오를 깜짝 방문했는데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오랫동안 DJ로 호흡을 맞춰온 절친한 두 사람은 과거 가수와 공연 제작자로도 각별한 인연을 맺은 바 있답니다. 



이날은 특히 대중문화계의 산 역사로 불리는 배우 송승환이 그의 인생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과연 그가 말하는 그의 인생사 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지 기대가 되는데요, 이에 오늘은 먼저 배우 송승환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모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송승환 프로필 나이 키 몸무게 학력 

-송승환 데뷔 및 활동

-송승환 대학 자퇴 이유

-송승환 집안 아버지 사업 실패, 가정환경, 유학

-송승환 눈 시력저하 실명, 황반변성 망막색소변성증

-송승환 결혼 부인 박찬실 직업




-송승환(배우), 송승환 프로필 나이 키 몸무게 학력 


송승환은 1957년 1월 10일생으로 올해 나이 64세입니다. 송승환은 키 174cm에 몸무게 69kg이라고 하구요, 송승환 학력은 서울보성중학교, 휘문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 중퇴, 이후 명예졸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송승환(배우), 송승환 데뷔 및 활동


송승환은 1965년 9살의 어리 나이에 KBS 아역 성우로 데뷔한 이후 김수현 작가의 작품에 자주 출연했던 배우로 알려져 있는데요, 송승환은 휘문고등학교 재학 시절 손석희 JTBC 대표이사 사장과 방송반 동기로 함께 활동을 했으며, 가수 이용도 고등학교 동기라고 합니다. 



송승환이 배우로 데뷔하게 된 계기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어린이 공화구연대회에 나가 1등을 하게 되면서 KBS 라디오에 출연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이 끝나자 피디가 이것저것 대본을 읽어보라고 시키더니,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겠냐고 해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송승환은 아역 성우일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네요. 그는 어린 시절 운동신경도 좋지 않아 공놀이나 딱지치기 심지어 구슬치기도 못했고 그런 운동들은 다 재미가 없었는데 유일하게 재미있어 했던 것이 책읽기였다고 하네요. 



송승환은 1965년 아역성우로 데뷔한 이후 자연스럽게 연기도 시작하게 되었는데요, 송승환은 영화 꿈나무, 춘자는 못말려, 내 인생은 나의 것, 아리랑, 별빛 속으로 등과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 얄개전, 목욕탕집 남자들, 아일랜드, 무자식 상팔자, 부탁해요 엄마 등에 출연했습니다. 


또한 송승환은 하이틴 스타 출신답게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는 청소년들이 많이 보는 각종 프로그램의 MC를 자주 맡기도 했는데요, 소년가장 케이스라 대학도 취업이 잘 된다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에 들어갔다가, 결국 자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송승환(배우), 송승환 대학 자퇴 이유


송승환은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연기를 취미 생활로 여겼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대학 가서는 새로운 일을 할 생각으로 재수까지 하면서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에 입학하게 된 것이라고 하네요. 



당시 중동 건설 바람이 불던 때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아랍어과에 대한 관심이 높던 때라 송승환 역시 처음에는 중동을 누비는 사업가가 되기를 원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학년이 되었을 때 자퇴를 하게 되었는데, 부모님이 강경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송승환은 뜻을 꺾지 않았고 다시 극단으로 돌아가서 연기를 새로 시작했다고 하네요. 


송승환 : "당시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배우로 인생을 산다면 어떻게 살까? 혹은 내가 공부한다면 어떤 미래가 될까? 이런 식으로 노트에 막 쓰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였다"




이후 송승환은 청춘스타로 성장하게 되었는데요, 정윤희뿐만 아니라 장미희, 유지인 등의 트로이카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답니다. 하지만 송승환은 이 시절이 꼭 그렇게 좋았던 것만 아니었다고 합니다. 


-송승환(배우), 송승환 집안 아버지 사업 실패, 가정환경, 유학


송승환은 집안은 중학교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때때로 빚쟁이들이 집으로 쳐들어와서 방에 드러눕기도 하고 또 송승환의 출연료 역시 고스란히 빚을 갚는데 나갔다고 합니다. 


당시 송승환 집안은 쌀이 없어서 굶기도 하고, 미아리 산동네에서 살기도 했는데요, 당시에 송승환의 집에는 전화가 없어 방송국에서 출연 섭외 전화가 동네에 하나 있던 약국으로 걸려왔다고 하네요. 그러면 약사 아저씨가 슬리퍼를 끌고 달려와서 알려줬다고 합니다. 송승환은 결국 이런 가난을 통해 송승환은 자신의 인생관을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송승환은 1985년 6월 미국유학을 가게 되었는데요, 송승환은 어릴 때부터 연예활동은 할 만큼 해봤기 때문에 인기에 대한 미련도 없었고 그 당시에는 서울에서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할리우드 영화를 마음껏 보기 힘든 상황이라 문화적인 갈증이 심했던 상태였다고 합니다. 



또한 송승환은 자신이 번 돈을 매번 아버지 사업에 쏟아붓고 나니까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네요. 그렇게 아등바등 돈을 버는 것보다 젊을 때 더 많이 보고 느끼는 것이 나중에 더 큰 재산이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송승환은 아내와 함께 가져간 돈이 고작 3천 달러가 전부였다고 하네요.


-송승환(배우), 송승환 젊음의 행진 등 예능 MC


송승환이 진행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1981년 KBS2에서 방영됐던 젊음의 행진을 꼽을 수 있는데요, 이외에도 라디오 프로그램 별들의 합창, 송승환의 음악앨범 등과 예능 프로그램 100분쇼, 두드림쇼 등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승승환은 한국의 역대 방송사고 중 순위권 안에 드는 배철수 감전 사건과도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당시 그는 배철수가 감전됐을 당시 젊음의 행진 MC였고 배철수가 쓰러지자 황급히 뛰어나와 생방송 도중에 감전사고가 났다 며 사태를 수습했는데요, 




스태프들도 충격을 받아 얼음처럼 굳어있는 걸 보고 본인이라도 정신차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이크를 다시 잡고 아무 말이라도 했다고 하네요. 



이후 쇼 특급 MC도 보았고 가요톱10도 1992년부터 1993년까지 손범수 전임으로 진행했습니다. 송승환은 진행한 프로그램은 이외에도 특종 웃음대결, 빅 브라더스, 장학퀴즈, 한밤의 데이트, 연예특급 등이 있습니다. 


-송승환(배우), 송승환 공연기획자, 연출자, 교수


송승환은 지금은 공연기획자 및 연출자로 명성을 얻고 있는데요, 비언어극인 난타의 기획자로 난타 이후 1998년 한국뮤지컬대상 특별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승승환은 성공한 문화산업 CEO반열에 오르게 되었답니다. 1997년에 초연한 이래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비언어극 공연 중 하나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송승환은 이후 2012년까지 PMC프러덕션 창립 대표이사로, 2005년~2010년까지 명지학교 영화 뮤지컬학부 교수로, 2010년~2012년까지 성신여대 융합문화예술대학 학장으로, 2011년~2012년까지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을 재임했으며, 이후 현재까지 PMC프러덕션 회장 및 예술감독, 문화융성위원회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송승환은 과거 2015년 7월에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 폐회식 총감독을 맡았는데, 그의 커리어에 비해 빅이벤트 개회식, 폐회식을 총괄하는 것이 우려된다는 시각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소위 최순실 게이트의 차은택 라인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막상 공개된 개회식과 폐회식은 한국의 전통과 문화, 현대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성공적인 개회식이 되었고, 그의 경력에도 난타를 뛰어넘을 경력으로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송승환(배우), 송승환 눈 시력저하 실명, 황반변성 망막색소변성증


송승환은 평창올림픽이 끝난 직후 황반변성 및 변형된 망막색소변성증이 발생해서 현재는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수준이라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송승환은 현재 1997년 이후 23년째 공연 중인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의 제작사로 알려진 PMC프러덕션에서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고 합니다. 



송승환은 또한 지난해 MBC 드라마 봄밤을 통해 오랜만에 배우로서 방송 복귀를 알렸는데요, 송승환은 "지난해(2018년)에도 드라마 캐스팅 제의가 몇 건 있었는데 건강 때문에 못했다. 다행히 지난해 11월부터 더 악화되지 않고 있어 이번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지난 2018년 올림픽이 끝난 후 공연계에선 그의 시력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았었는데요, 모니터의 강한 빛 때문에 안압이 높아져 시신경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전세계 수억명 시청자를 겨냥한 올림픽 개 폐회식을 만들며 총감독의 시선이 모니터에 집중됐을 테니 제법 그럴싸한 해설이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그가 활발한 강연 활동에 이어 연기 활동까지 재개하자 소문은 쑥 들어갔다고 합니다 



승승환 : "올림픽 때문이 아니에요. 모니터를 많이 봐서도 아니고요. 병명이 두 가지 나왔는데 하나는 황반변성이고, 다른 하나는 변형된 망막색소변성증이에요. 유전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하네요"


송승환의 눈에 증세가 나타난 건 올림픽 폐회식 직후, 평창의 혹한에 시달린 그가 따뜻한 날씨를 찾아 난타 전용관이 있는 태국 방콕으로 쉬러 갔을 때였다고 합니다. 갑자기 사람 얼굴이 흐릿해졌고, 휴대전화의 글씨가 안 보였다고 하네요. 이에 깜짝 놀라 귀국을 서둘렀고, 이후 원인과 치료법을 찾으러 국내 양 한방 병원은 물론, 일본과 미국의 병원까지 다녀왔다고 합니다. 



송승환 :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들어 솔직히 겁이 났어요. 하지만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나니 어떻게든 극복해보자란 마음이 들더라고요. 안 보이면 듣지 뭐 란 배짱도 생겼고요. 내가 하고 싶은 일, 그동안 해왔던 일을 계속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죠"



송승환은 떨어진 시력을 보완할 방법을 여럿 고안했다고 합니다. VR(가상현실) 기기에 평볼록렌즈를 끼워 넣어 모니터 영상을 또렷이 볼 수 있는 도구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의 아이디어를 연극 소품 제작 스태프가 구현해낸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휴대전화 문자를 읽을 수 없는 그는 아이폰의 화면 말하기 기능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시각장애인 지원센터도 찾아가 조언을 구해 그곳에서 알려준 대로 독일제 OCR(광학문자판독)기기도 구입했다고 하는데요, 이 기기는 글자가 적힌 종이를 기기 위에 올려놓으면 음성으로 변환해 읽어주는 도구라고 합니다. 


송승환 : "문서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대본 파일을 받아 들으면서 외웠지요. 아이패드로는 대본을 듣고, 아이폰으로 내 대사를 녹음해 비교해 들어가며 제대로 외웠다 확인했고요. 처음엔 불편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눈으로 보며 외우는 것보다 더 속도가 빠르던데요"



송승환 : "상대 배우 얼굴은 안 보여요. 하지만 연기는 어차피 상상력으로 하는 거잖아요. 안 슬퍼도 슬픈 척, 안 아파도 아픈 척, 그러니까 안 보여도 보이는 척하는 거죠"



송승환은 지난 2018년 연기를 쉬는 동안에도 별주부전을 각색한 어린이 뮤지컬 더 스토리 오브 언더더씨를 만들어 지난해 공연한 바 있고, 또 난타를 이을 새로운 넌버벌 퍼포먼스 더 스페이스를 준비하기도 했답니다. 송승환은 앞으로도 눈이 보이는 한은 계속 연기하고 작품을 연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요, 앞으로 눈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송승환(배우), 송승환 결혼 부인 박찬실 직업


송승환은 미국으로 가기 전에 현재의 부인 박찬실을 만났다고 하는데요, 송승환과 아내(부인) 두 사람의 나이차는 동갑이라고 하구요, 당시 송승환 아내(부인) 직업은 네일아트 종업원이었다고 합니다.  



송승환은 1981년 아내를 처음 만났다고 하네요. 당시에 송승환은 젊음의 행진 MC를 보고 있었는데, 자주 가던 카페의 단골 손님이었다고 하네요. 어느날 아내와 우연히 합석하게 되었고 볼수록 마음에 들어 이후 진지하게 만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약 4년을 사귀다가 약혼만 한 상태에서 1985년 미국 유학을 같이 떠나게 되었는데요, 당시 송승환은 가난한 상태였고,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송승환 : "미국에서 저는 노점상으로 시계나 신발을 팔았고, 집사람은 네일 아트숍에서 일했어요. 그렇게 번 돈으로 끼니는 대충 해결하고, 틈만 나면 집사람과 함께 브로드웨이로 달려가서 연극을 봤죠"



송승환 : "어느날은 노점에서 신발을 팔고 있는데 어떤 젊은 여자가 "혹시 송승환 씨 아니세요?"라고 묻더라고요. 맞다고 하니까, 그 분이 측은한 눈빛으로 저를 보면서 정말 용감하시네요 라고 하는 거예요. 아마 잘 나갔던 연예인이 노점이나 하고 있었으나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죠"



송승환 : "하지만 저는 제 처지가 비참하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그렇게 신발을 판 돈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고, 남은 돈으로 아내와 연극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더 행복했으니까요"


이후 송승환은 1987년 일시 귀국해서 박찬실과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약 1년 정도의 문화 유학을 계속했다고 하네요. 참고로 송승환에게 아이는 없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한때 송승환 이혼, 송승환 재혼 등의 루머가 퍼지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송승환은 "힘들 때 만난 사람한테는 푹 빠지잖아요. 사실 뉴욕에 있을 때도 아내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아내가 제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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