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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프로필 사망이유 아내(부인) 아들 김완제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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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든싱어7' 고 김현식이 원조가수로

 

가수-김현식

 

11월 4일 JTBC 히든싱어7에서는 고 김현식이 시즌7 마지막 원조 가수로 자리를 빛냅니다.

 

 

이날 히든싱어가 고인이 된 원조 가수 편을 진행하는 것은 히든싱어2 고 김광석 편과 히든싱어4 고 신해철 편에 이어 세 번째입니다.

 

내 사랑 내곁에, 사랑 사랑 사랑, 비처럼 음악처럼 등 수많은 명곡을 남긴 고 김현식은 1998년 선정하나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무려 6장의 앨범을 포함시킨 전설적인 인물로, 비주류였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린 가수입니다. 

 

고 김현식이 활동했던 1980년대에는 목소리만이 분리된 보이스 파일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제작진은 인공지능 프로세싱을 기반으로 한 음원 분리 기술을 제휴 받아 뜻깊은 대결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날 방송에는 고 김현식을 존경하는 동료 가수들과 후배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고 김현식과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함께 불렀던 권인하는 "본인 노래를 부르는 것을 알면 하늘에서라도 꼭 와서 지켜볼 분"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봄여름가을겨울을 열창합니다. 

 

고 김현식의 독보적 목소리를 모창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고 1라운드부터 실력자들이 등장합니다. 고 김현식의 팬을 자처한 조나단과 백지영, 린을 비롯한 히든 판정단 전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절친인 김종진마저 "얼굴 한 번 봤으면 좋겠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김현식(가수) 출생일과 사망일 고향 가족 키 혈액형 학력 

 

가수-김현식

 

고 김현식은 1958년 2월 18일 태어나 1990년 11월 1일 향년 3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현식 고향은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이며, 가족으로는 어머니와 누나와 남동생과 사촌, 그리고 아들 김완제가 있습니다. 

 

 

김현식은 키 171cm에 혈액형은 A형이라고 하고요, 학력은 서울수유국민학교, 보성중학교, 명지고등학교 중퇴,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현식(가수) 집안 과거

 

가수-김현식

 

김현식은 어린시절 상당히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가(간장공장 운영)로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고 할아버지 역시 충청남도 흥성군에서는 알아주는 유지였다고 합니다. 

 

또 외할아버지 역시 만석꾼의 아들로 와세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영문학자였다고 합니다. 위로 지금은 캐나다에 이민 가 있는 누나가 있고, 여섯 살 밑으로 역시 지금 뮤직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있는 남동생(1964년생)이 있습니다. 

 

김현식은 초등학교 때부터 가수의 꿈이 있었고, 또 공부도 꽤 잘해서 1970년에는 서울보성중학교에 전교 4등의 성적으로 입학했다고 합니다. 

 

이후 김현식은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기타를 접하게 되었고 사촌형인 양국정이 기타를 가르치면서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지만 음악을 알아가면서부터 중학교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던 성적은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부친의 사업이 실패하자 한동안 방황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중학교 3학년 때는 열심히 공부해 당시 명문 학교였던 경기고등학교에 지원했지만 낙방, 이후 결국 명지고등학교에 전교 3등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이후 고등학교 시절 음악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선배의 악기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손찌검을 하자 이에 대들어 뒤엉켜 싸운 사건으로 밴드부에서 탈퇴를 당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그는 고등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게 되었고 결국 1학년을 마치기 전이었던 1974년 초에 가족들 몰래 자퇴서를 낸 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학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김현식(가수) 데뷔 전 언더그라운드 시절

 

가수-김현식

 

하지만 김현식은 이후에는 더이상 공부에 손을 대지 않았고, 계속 방황하다가 기타를 메고 종로에 있는 한 음악 다방에서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시작으로 명동의 큰 무대로 활동 범위를 넓히게 됩니다. 

 

그러다가 사촌형 양국정의 소개로 종로에서 당시 인기를 끌던 음악다방에서 일하던 한 DJ를 찾아가 그의 앞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DJ가 바로 당시 20대 중반이던 개그맨 전유성이었다고 합니다. 

 

전유성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면서 어린 김현식이 부른 노래에 감탄하며 "넌 음악다방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게 아까워. 그야말로 가수로 나가면 전설이 될 거다!"라며 적극적으로 가수가 되길 권유했다고 합니다. 

 

이후 김현식은 밤무대나 여러 곳을 떠돌며 통기타를 연주하며 가수로서 길을 내딛고자 노력했는데, 이때 나이를 5~6살은 올려 소개를 했다고 합니다. 

 

 

김현식은 이때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주목받는 신인으로, 전인권, 한영애 등 선배 보컬들 사이에서 활동하며 검은 나비, 동방의 빛, 신촌블루스 등의 그룹사운드에서 보컬로 활동, 밤무대 최고의 가수로 부각되었고, 이때 이장희의 남동생 이승희를 만나게 됩니다. 

 

김현식(가수) 데뷔 초 앨범 실패로

 

가수-김현식

 

이후 1978년 정식 데뷔를 준비했지만 대마초 흡연 혐의로 몇 달 간의 옥살이를 거치며 데뷔가 미뤄지게 되었고, 이후 이장희의 주선으로 1집 앨범 녹음을 완료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마초 사건 직후의 상황임을 우려한 레코드사의 판단으로 앨범 발매가 계속 미뤄지다가 1980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데뷔 앨범 봄여름가을겨울을 내지만 처절하게 실패합니다. 

김현식(가수) 결혼 이후 아들을 얻으며

이에 김현식은 또 다시 방황하지만 우연히 들른 신촌 옷가게의 여인(전부인(아내) 김경자)에게 반해 1982년 결혼, 자신의 분신이라 부르며 사랑하던 아들 완제를 얻으며 처자식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고모가 준 돈으로 피자가게를 열게 됩니다. 

 

하지만 잘 되는가 싶더니 프랜차이즈의 공습에 밀려 1년 만에 문을 닫고, 투자금도 날린 후 다시 밤무대 활동에 전념, 이후 크라운호텔과 하얏트 호텔에서도 활동합니다.

 

그러다가 동아기획에 스카우트되어 1984년 심혈을 기울여 2집 사랑했어요를 발매, 좋은 반응을 얻으며 가수로 자리잡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가수-김현식

 

이때는 김현식과 돌개바람이라는 6인조 밴드 체제로 나이트클럽 등지에서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시기였습니다.

이후 백밴드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제작한 3집은 수록곡 비처럼 음악처럼이 히트하며 3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음악적으로도 호평을 받습니다. 

 

 

하지만 당시 방송 출연은 촬영 도중 계산된 기획에 의해 움직이는 방송의 속성에 거부감을 느껴 PD와의 의견 충돌로 촬영장을 박차고 나오는 등 그의 비타협적인 태도로 방송 출연을 거의 하지 않다보니 소위 얼굴 없는 가수로 통하면서 전국적 인지도 형성에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김현식(가수) 이혼과 대마초 흡연 혐의로

 

 

가수-김현식

 

그리고 이 무렵 김현식은 이혼을 하며 아들과도 떨어져 지내게 됩니다. 그런가운데 김현식은 신촌블루스의 멤버로서 1집 앨범 준비 중이던 1987년 10월, 전인권, 허성욱 등과 함께 다시 대마초 흡연 및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동아기획 김영 사장이 선처를 부탁해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됩니다. 

 

이후 김현식은 1988년 2월 63빌딩에서 재기 콘서트를 열고 팬들을 실망시킨 데 대한 사죄의 뜻으로 삭발을 하고 무대에 올랐는데, 이때 많은 팬들의 성원에 감동받아 음악 활동에 대한 열의를 다시 불태우며 4집 앨범을 발표합니다. 

 

이후 1989년 베스트 앨범을 내고, 신촌블루스 2집 바람인가, 빗속에서, 골목길, 환상, 그리고 영화 비오는 날 수채화 OST에 참여해 권인하, 강인원과 같이 부르게 됩니다. 

 

김현식(가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며

 

가수-김현식

 

그리고 이때부터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 1990년 5집 앨범을 발표할 당시에는 의사가 술을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죽는다라고 경고할 정도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됩니다. 

 

유재하가 사망한 이후 몇 달을 술에만 매달릴 정도로 슬퍼했고, 간경화 진단을 받은 이후에도 그는 흡연, 음주를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김현식은 술을 여전히 끊지 못합니다. 하루는 신촌블루스 방송공연을 준비하던 아침, 객원보컬로 활동한 한영애가 김현식에게 술냄새가 나는 걸 알고 현식아 아침부터 술을 마셔? 방송공연 연습하는데! 라며 쏘아붙였다고 합니다.

 

이에 김현식이 한영애를 쳐다보다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몸이 떨려서 마이크가 입에 닿질 않아, 누나..라고 했을 정도로 얼굴이 붓고 복수가 가득 한 차흔 상태에서도 펑퍼짐한 옷으로 복수가 찬 배를 가리고 공연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 김현식은 자신의 집에서 술과 담배로 오랜시간을 밥도 먹지 않고 지냈고, 마지막 6집 앨범ㅇ르 낼 때에는 그를 이전부터 아끼전 동아기획 김영 사장을 만나서 '언젠가 술 먹다가 죽고자 했는데...'라는 식의 말을 할 정도였고 후에는 간경병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현식은 자주 탈출을 하여 지방까지도 공연을 다녔고 술을 마시고 앨범 녹음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겐 언제나 기타가 들려 있었고 병실에서도 항상 노래소리가 끊임이 없었다고 합니다. 

 

김현식(가수) 사망, 사망이유

 

가수-김현식

 

그러다가 결국 김현식은 1990년 11월 1일 오후 5시 자신의 자택 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 렉스아파트에서 간경화(김현식 사망 이유, 원인)로 인해 끝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 누나인 김혜령이 임종을 지켰고 동아기획 김영 사장은 전날 각혈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가 세상을 그리 빨리 뜰 줄은 몰랐으며 당일 불과 2시간 전인 호우 3시경에 김현식이 전화로 '사장님 저 괜찮으니까 오늘 퇴원해서 내일 녹음에 들어가야겠어요'라면서 밝게 얘기해서 전혀 짐작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음날 그의 누나에게 갔어요 라고 한 마디로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망연자실했다고 합니다. 이때 김현식은 겨우 32세라는 한창 젊은 나이였습니다. 

 

이후 2010년 김현식 20주기 기념 다큐멘터리에 나온 김영 사장이 회상하길, 전화를 받고 믿기지 않아서 '그럴 리가 없어! 어제 겨우 두 시간 전에 현식이가 나한테 밝게 전화하면서 내일이라도 녹음 들어간다고 했다고! 그런데 현식이가 죽었단 말이야?! 라면서 소리쳤을 정도로 충격 받았다고 합니다. 

 

사후 그는 벽제 화장터에서 화장 후 한 줌의 재로 돌아가 경기도 성남시 야탑3동에 위치한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 안장되었는데요, 그의 묘비에는 1집 앨범에 수록된 당신의 모습의 가사와 할머니란 가사가 적혀 있습니다. 

 

유작인 내 사랑 내 곁에를 제외한 실질적 유작인 5집 앨범 넋두리 앨범이 바로 이때 병원에서 외출을 다녀오다시피 해서 간신히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김영 사장이 포기하자는 말에도 각혈을 하면서 죽어갈 때까지 엄청난 유작을 남기고 떠난 것입니다. 

 

김현식(가수) 사후, 아들 김완제 근황

 

가수-김현식

 

그의 유작인 6집 내 사랑 내 곁에는 100만장이 넘게 팔리는 대박을 거둬들였으며 가요톱텐 1991년 12월 방송분에서 골든컵을 탄 김정수의 당신과 같이 공도 수상을 했습니다. 다만 이때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기 때문에 수상은 그의 아들 김완제가 대리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1991년 골든디스크 대상을 차지, 어머니와 아들 완제군이 수상했는데, 원래 이 때 신인 시절의 김장훈이 무대에 설 예정이었지만 김장훈은 그를 팔아먹으며 인기를 노린다는 부분을 영 내키지 않아했고 그래서인지 아예 생방송을 펑크내버렸다고 합니다. 

 

결국 김현식의 아들인 김완제가 대리 수상을 하게 되었고 이 일로 김장훈은 한동안 방송금지 처분을 당했다고 합니다. 

 

한편 김현식이 살아 생전 어느 날 그와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에게 직접 15곡 정도를 불러준 적이 있는데 그 환자가 그 노래들을 휴대용 카세트에 녹음해놨다가 김현식이 작고한 지 7년 뒤인 1997년 동아기획에 전달하였고 2002년 정식 앨범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가수-김현식

 

가수-김현식

 

한편, 김현식 아들 김완제(1982년생으로 김현식이 사망했을 때 8살, 올해 나이 41세)는 2008년 가수로 데뷔, 한동안 가수로 활동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초창기 김현식과 똑같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김현식 아들 김완제 : "고교 시절부터 가수 시켜주겠다는 제의가 많았어요. 그렇지만 어머니가 반대했죠. 공부하러 캐나다까지 왔는데 왜 한국에 가느냐고요. "

 

김완제 : "캐나다 한인 라이브카페에서 일을 했는데, 몇 번 노래를 했더니 반응이 좋았어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잘 한다고 말을 들으면 그만큼 기쁜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가수를 하기로 결심했죠."

 

하지만 수천만원의 빚을 진 아들 김완제는 이미 아버지의 노래 저작권까지 다른 사람에게 넘긴 후 별다른 수입 없이 생활을 했고, 2014년 아버지의 추모 콘서트를 열어 빚을 갚으려고 했지만 실패로 돌아간 후 결국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고 합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모든 혐의를 인정(2016년)하고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상 고 김현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 추천 글 -> 권인하 <프로필 아내(부인) 최덕순, 누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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