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부일체 이낙연 후보 사부 등장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주자 빅 3 특집 마지막 사부로 등장해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10월 3일 SBS 집사부일체에서 이낙연 전 대표는 집사부 청문회 시작 전, "그냥 당할게요"라며 솔직하게 고백할 것을 다짐했는데요, 이에 멤버들은 국회의원직 전격 사퇴 심경과 지지율에 대한 심경 등을 거침없이 질문하며 어디에서도 밝히지 않았던 이낙연 전 대표의 찐 속마음을 집중 조명했습니다.
이날 이낙연 전 대표는 학창 시절 이야기 중 "나의 청춘은 빚이었다"라며 영화 기생충 현실판인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광주 유학 생활 이야기 등 과거 경험담을 털어놓아 현장에 있던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낙연 후보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키 혈액형 종교 학력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낙연 후보는 1952년 1월 11일생으로 올해 나이 70세입니다. 이낙연 후보 고향은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용덕리이며, 가족으로는 아내(부인) 김숙희와 아들 1명이 있습니다.
이낙연 후보는 키 175cm에 혈액형은 A형이라고 하고요, 종교는 개신교(예상 대신)이며, 이낙연 학력은 영광 삼덕초등학교(현 법성포 초등학교), 광주북성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낙연 후보 집안 가족 과거
이낙연 후보는 본관은 전주이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이복 형인 완풍대군의 후손으로 1952년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두 형은 어려서 사망하고 위로 누나가 한 명 있는 둘째라고 합니다. 그리고 한 명의 여동생은 어려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농사일과 채소 장사를 병행했다고 하는데요, 농사를 지었지만 소 한 마리 없는 가난한 집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배가 고파서 물배를 자주 채웠다고 하네요.
하지만 공부를 잘했던 소년 이낙연은 중학생 때부터 광주로 유학을 가 광주북중학교와 광주제일고를 다녔고, 중학교 3년 동안 일기를 썼는데 시골에 사는 동생들에 대한 미안함, 장남의 책임감 등을 잔뜩 적었다고 합니다. 소년 시절 그의 별명은 메주, 생영감이었다고 합니다.
이후 1970년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할 때 이 전 대표의 아버지는 "등록금은 어떻게든 보내줄 테니 먹고사는 것은 알아서 하라"라고 선언해, 청년 시절 끼니를 자주 굶어서 "시체처럼 말랐었다"라고 합니다. 몸무게는 50kg, 배꼽이 등에 닿을 정도의 24인치 허리였고, 영양실조 초기 증상을 겪기도 했으며, 또 잘 곳이 없어서 친구들의 하숙집을 돌아가며 며칠씩 묵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낙연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육군에 입대해 카투사로 서울 이태원의 미 8군 21수송중대에서 복무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이낙연 후보에게 입대 영장은 숙식이 해결되는 탈출구였다고 합니다.
그는 "웃통을 벗었을 때 갈비뼈가 안 보인 건 그때가 처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는 그렇게 육군병장으로 만기 전역 이후 친구의 지원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했다가 7개월 만에 포기했다고 합니다.
고향에 있는 동생들에게 미안해 느긋하게 고시를 준비할 여유가 없었던 것인데요, 이후 그는 생계를 위해 1978년 한국 토지신탁에 입사했지만 이듬해(1979년 3월) 동아일보에 취직해 기자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낙연 후보 기자 활동 이력
이후 이낙연 후보는 21년간 기자로 근무했는데요, 정치부 기자로 주로 일하면서 옛 민주당인 동교동계를 출입하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이에 1990년 DJ가 기자 이낙연에게 보궐선거에 출마하라고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하고 도쿄 특파원행을 택하게 됩니다.
이낙연 후보 : "내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더라면 진작 유학을 했을 텐데 그럴 형편이 못 된 터에 회사에서 외국을 보내주는 기회를 놓치는 게 아까웠다"
이후 그는 1989년 12월부터 1993년 4월까지 동아일보 국제부의 일본 도쿄 주재 특파원을 파견, 귀국 후에는 1993년 4월부터 1994년 1월까지 동아일보 편집국 기획특집부 기자로, 1994년 1월부터 1997년 9월까지 동아일보 정치 1부, 정치부, 기획부, 국제부 차장을 역임했고, 1997년 10월부터 1999년 2월까지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내기도 합니다.
이낙연 후보 정치 입문부터 근황까지
그러다가 1999년 2월부터 2000년 2월까지 동아일보 국제부 부장을 역임하고 퇴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 당시 대통령 겸 새천년민주당 총재 김대중 측의 발탁으로 고향인 전남 함평, 영광 지역구에 출마,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이후 이낙연 후보는 초선 시절 두 차례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했고, 2002년 치러진 제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기도 했으며, 노무현 당선 이후 당선자 대변인으로 활동을 이어가면서 민주당에서 총 5번이나 대변인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이낙연 후보는 4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 민주당 전남도당 위원장, 사무총장, 도쿄 특파원 시절 쌓은 인맥을 발판으로 국회 한일 의원연맹 수석부회장 등을 지내기도 했고, NGO 모니터단으로부터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10차례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최우수 위원장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낙연 후보는 이후 2014년 제 6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전라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78%의 득표율로 당선, 95%가 넘는 공약이행률을 달성했다는 2016년 공약 이행 실적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퇴임 직전 전국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사에서 전 충남지사 안희정의 뒤를 이은 2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낙연 후보는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취임, 1987년 이후 2020년 기준으로 역대 국무총리 중 재임기간이 가장 긴 총리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퇴임 이후 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이해찬 후임으로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었다가 2021년 3월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제 20대 대통령 선거 당 경선에 출마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대표직에서 퇴임, 이후 9월 8일에는 국회의원직 사퇴를 선언 후 현재 대통령 후보로 경선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낙연 후보 결혼 아내(부인) 김숙희 여사 나이 직업
이낙연 후보는 지금의 아내(부인) 김숙희 여사와 1980년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이 후보 아내(부인) 김숙희 씨는 전라북도 출신으로, 전주여고와 이화여대 서양학과와 동대학교 교육대학원(미술교육)을 졸업했으며, 결혼 전 고등학교 미술교사(이낙연 후보 아내 직업)로 재직했었다고 합니다.
이낙연 후보 아내(부인) 김숙희 여사 결혼스토리 아들
이낙연 후보는 동아일보 기자를 하던 1980년 당시 미술교사였던 아내(부인) 김숙희 씨를 맥줏집 주인아주머니의 중매로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요, 이후 그해 바로 결혼해 서울 봉천동의 단독주택 2층 280만 원짜리 전세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후 열 번 넘게 이사를 다니다가 신반포의 13평 아파트를 처음 사게 되었다고 하며, 1982년 외동아들 이동한을 낳고 자라는 걸 볼 때 김숙희 여사는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행복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이낙연 후보의 아들 이동한 씨의 직업은 현재 정신과 의사로, 지난 2013년 초등학교 동창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상 이낙연 후보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추천 글 -> 윤석열 <나이 집안 프로필 아내(부인) 김건희, 누구? 재산 자녀>
* 추천 글 -> 홍준표 의원 나이 집안 과거 아내(부인) 이순삼 자녀 <와카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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